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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레몬서 9회 문안과 축도(1:23-25) A.: 에바브라, 마가

작성자
최세창
작성일
2015-12-30 11:22
조회
2109
도망친 노예인 오네시모와 관련하여 그 주인인 빌레몬에게 부탁하고, 또 자신을 위해서도 부탁한 바울은 【23】[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와 함께 갇힌 자 에바브라와 【24】또한 나의 동역자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가 문안하느니라]라고 하였다.
본서는 바울이 골로새서와 같은 때에 기록하여 같은 곳에 보낸 것이므로 문안에 나타나는 인물도 거의 같다(골 4:10-14의 주석을 보라).
바울과 함께 갇힌 자인 [에바브라](Ἐπαφράς)는 골로새인(골 4:2)으로서 바울이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을 받아들여 그의 제자가 된 것 같다(행 19:10, 26). 에바브라는 바울의 사랑과 신임을 받았으며, 골로새 교회를 설립하고 지도하면서 바울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한 하나님의 종이었다(골 1:7, 4:12). 그가 히에라볼리와 라오디게아 교회도 설립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그가 두 교회도 열심히 돌본 것은 사실이다(골 4:13).
[동역자 마가](Μάρκος)는 {신약성경에 자주 나타나는 편이다. 그의 이름은 마가로도(행 15:39, 골 4:10, 딤후 4:11, 몬 24, 벧전 5:13), 요한으로도(행 13:5, 13), 또 요한 마가로도(행 12:25, 15:36) 기록되었다. 요한은 유대식 이름이고, 마가는 로마식 이름이다. {빅켈스테트(E. Bickersteth)는 “마가라는 이름은 라틴어로 해머를 뜻하는 ‘Marcus’에서 파생되었다고 추측하는 사람들이 있다. 로마에 흔한 이름이었던 ‘Marcus’는 대개 첫아들에 붙여 준 이름이었다. 따라서, 마가는 영적인 의미에서 베드로의 첫 열매이자 가장 사랑하는 아들이었다.”라고 하였다. 흥미 있는 주장이기는 하나, 유감스럽게도 마가가 베드로의 선교의 첫 열매라는 확실한 증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유대인인 마가의 어머니는 예루살렘에 살았던 경건한 여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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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이다(행 12:12). 마리아는 상당한 재산이 있었고, 그녀의 집은 유명한 ‘마가의 다락방’으로 주님께서 최후의 만찬을 잡수신 곳이고(막 14:12-17),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120명의 신자가 모여 기도한 곳이다(행 1:15). 또, 오순절에 교회가 탄생한 장소이었다(행 2:1-4). 그 후 제자들은 이 집에서 계속 모였으며, 옥에 갇혔던 베드로가 하나님의 기적적인 도움으로 탈출해 찾아간 곳도 바로 이 집이었다(행 12:5-17).
“전설에 의하면, 이 집은 시온산 꼭대기에 있었고, 예루살렘이 멸망했을 때(70년)에도 이 집만은 화재를 면하여 오래도록 교회로 존재하였다고 한다. 현재 이 유적에는 기념 교회가 서 있다”(이상근)}(벧전 5:13의 주석).
이저저러한 사정에 의해 마가는 우리 주님의 구원 사업에 따른 말씀과 행위 그리고 그 장소와 상황 등에 대해 알 기회가 많았을 것이다. 그는 교양 및 종교적 교육뿐만 아니라, 자기의 어머니를 자주 찾아오는 교회의 지도자들과도 접촉할 기회가 많았을 것이다.
물론, 마가는 예수님의 직제자는 아니었다. 그는 구브로 섬에서 출생한 부하고 자선심이 많은 레위 사람 바나바의 생질이었고, 또 베드로의 제자로 베드로에 의해 아들이라고 불리었다(벧전 5:13). 그는 예수께서 잡히실 때에 베홑이불을 벗어버리고 도망한 젊은이로 믿어지고 있는데, 그 까닭은 그 기사가 마가복음에만 있기 때문이다.
마가의 공생애의 출발은 오순절 이후 약 15년경 유대 지방에 큰 기근이 있었을 때, 구제 헌금을 모아 온 바울과 바나바를 따라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으로 온 때부터이었다(행 12:25). 그는 안디옥 교회에서 파송받은 바울과 바나바의 수종자가 되어, 제1차 선교 여행에 동행하다가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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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그들을 떠나 예루살렘에 있는 집으로 돌아갔다(행 13:3-13). “그가 떠난 이유는 위험을 느끼고 비겁해졌거나, 너무 힘들어서 어머니 생각이 났거나, 급진적 이방 전도에 반대해서였을 것이다.” 아무튼, 바울이 몹시 못마땅히 여긴 것을 보면 시원찮은 이유였던 것 같다.
이 사건에 충격을 받은 바울은 제2차 선교 여행을 떠날 때, 또 마가를 동반하자고 하는 바나바를 반대하다가 결국 갈라지게 되었으며, 따라서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가고,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구브로로 갔다(행 15:36-41).
바울에게서 선교 여행 동참을 거부당한 마가의 잘못이 무엇이었든 간에, 마가는 자신에 대한 바나바의 신임을 헛되게 하지 않았고, 후에 또한 바울의 신임을 회복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사랑까지 받게 되었다. 마가는 로마에서 감옥 생활을 하는 바울과 함께 하면서 그를 섬기기도 하였다(골 4:10, 몬 24). 바울은 마가를 가리켜 나의 동역자라고 하였고(몬 24), 골로새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는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골 4:10)라고 부탁하였다. 또, 바울이 두 번째 옥에 갇혔을 때에는 디모데에게 자신의 일에 유익한 마가를 데리고 오라고 부탁하기도 하였다(딤후 4:11).
여기서 우리는 마가의 위대한 점, 즉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여 돌이킬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큰 업적을 남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마가는 바울과 바나바 외에 베드로와도 밀접한 관계였다. 전술한 바와 같이, 신약성경 이외의 초대 교부들의 진술은 오히려 이 후자에게 집중되었다. 벤겔(J. A. Bengel)은 “데마는 배교하였고, 마가는 회복하였다. 뿐만 아니라, 보다 쉬운 사건에 떠나 간 그는, 이제 훨씬 더 어려운 중대사에 참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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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하였다.
마가의 최후에 관한 것은 분명하지 않다. {전설에 의하면, 그는 마가복음을 쓴 후에 애굽으로 건너가 알렉산드리아 교회를 설립하고, 초대 감독이 되었다가 거기서 순교하였다고 한다(Eus. H. E. ii. 5).
마가의 됨됨이에 대해 헨드릭슨(W. Hendriksen)은 “그는 위대한 지도자가 아니라 추종자였다. 그는 건축가가 아니라 조수였다. 그는 흠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약점을 극복한 사람이었다. 그는 집에만 박혀 있는 사람이 아니라 대단한 여행가였다. 그는 탁월한 사색가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는 죄인들의 구원을 위해 행동으로 그리스도를 묘사하기를 즐기는 행동인이었다.”라고 잘 평하고 있다.}(벧전 5:13의 주석). 또, 우리는 그의 복음서의 세밀한 묘사를 미루어 그가 매우 세심한 성격의 소유자임을 알 수 있다.}(딤후 4:11의 주석).

출처: 최세창, 목회서신, 빌레몬서(서울: 글벗사, 2002년 2판 2쇄), pp. 298-300, 413.

필자의 newrema.com의 저서들: 신약 주석(마-계 8610쪽)/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설교집 23권/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다수의 논문들 HP 010-6889-3051 T 02-426-3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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