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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절과 고종,감리교회

작성자
백영찬
작성일
2016-03-01 15:02
조회
4470
삼일절과 고종,감리교회

1919년 기미년 3월 1일 정오 탑골공원에서 점화되어 삼천리방방곡곡으로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삼일만세운동의 의미는 “대한제국은 독립국가로서 영원한 나라로 존속된다”라는 대한제국의 절규, 민족의 염원을 선포하는 운동이었다. 이와같은 민족운동이 태동되어 일어났던 원인은 목숨 바쳐 헌신한 감리교 선교사들에 의해 이 민족을 깨우고, 항일독립 의지를 심어주고 지원하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고종황제의 선교윤허로부터)
3.1운동은 당시 일본제국에 나라를 빼앗길 위기상황을 감지한 고종황제의 국력 신장의 묘책으로 1883년 민영익등 11명의 보빙(報聘)사절단을 미국으로 파견하는 것으로 시작되며,그 사절단과 워싱턴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감리교목사 “가우처”를 만남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조선민족 구원계획이 시작된다. 고종의 어명을 받은 민영익은 가우처에게 조선선교의 가능성을 예시하였고, 가우처는 일본선교 책임자 맥클레이 선교사에게 조선선교 타진을 지시하였으며, 맥클레이는 1884년 조선에 입국하여 고종으로부터 선교윤허를 받아 드디어 1885년 4월5일 부활절날 아펜젤러선교사 부부와 언더우드선교사 그리고 이어서 감리교회 스크랜턴,헐버트,벙커선교사 등이 암울했던 이땅에 찾아와 잠자는 백성을 깨우는 민족의 여명의 시대로 돌입하였으며, 이는 개화의 열망과 항일운동으로 이어진다.

(항일운동의 태동과 감리교회)
쇠약해진 조선은 일제에 의하여 명성황후가 시해되고 을사보호조약 이후로 국권을 빼앗긴 조선은 1910년 일제에 강제 병합을 당하게 된다. 그러나 고종황제에 의하여 선교의문이 열린 조선의 청년들은 정동교회,상동교회,동대문교회등 교회를 중심으로 독립의지를 불태우며 천도교도,불교도 등의 모든 백성에게 까지 신문물과 애국심, 항일정신을 심어주어 개화의 기치를 들고 일본과 항쟁하는 동학난 등의 민중항쟁이 태동되었고, 특히 상동교회에는 전국에서 수백 명의 애국청년들이 모여들었다.

(3.1운동의 태동)
감리교회 손정도목사의 건의에 의하여 고종황제를 북경으로 망명시켜 망명정부를 세우는 계획이 완성되어가고 있을 때 일제는 이를 감지하게 되며 결국 고종황제를 살해하므로 그 계획은 좌절되고 만다. 이때 손정도목사는 전민족적인 항쟁의 밑그림을 그리어놓고 2월15일 상해로 망명을 한다.
일제의 탄압에 조정과 전국이 초토화되어 일촉즉발의 민중심리가 들끓고 있을 때 1919년1월21일 일본의 지시에 의하여 매국노 이완용으로부터 직접 사약을 받은 고종황제는 독살을 당하게 되며(이석황손의 증언). 온백성의 애도 가운데 3월3일 장례식 참석을 위하여 전국에서 모여든 백성들은 분노를 이기지 못한 상태에서 3.1만세운동이 발발한 것 이다.

(태극기제작과 동대문교회)
당시 의료선교,교육선교가 동시에 전개되고 있을 때 동대문 밖 민중들의 치료를 위하여 흥인문동산에 메리스크랜턴이 1887년 시약소를 건립하는 것을 시발로하여 보구녀관, 볼트윈병원, 볼트윈여학교,흥인배제학교와 간호학교,의과대학등이 설립되어 동대문교회와 함께 이곳은 당시 거대한 선교타운이 형성되었다.
그러하기에 이 선교타운 내에는 수많은 선교사들이 있었으며 이곳은 치외법권 지역으로서 은밀히 일제의 눈을 피하여 삼일운동의 거사를 준비하는 장소로 로서 당시 이곳에는 “감리교의료선교본부”가 있었으며 동대문교회 김상옥의사가 중심이 되어 본인이 경영하는 영덕철공소 50명의 직공과 목판으로 태극기를 만들고, 첨단의 등사 인쇄시설을 이용하여 많은 선교사들과 간호사, 학생.교인들과 함께 태극기와 전단을 제작하여 탑골공원등 전국으로 태극기를 배포 한다.

.(탑골공원의 만세운동)
거사당일 동대문교회 민족여명의 종(최초 최대의 서양종)이 정오에 장안으로 울려 퍼질 때에 탑골공원으로 인파가 모이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참석하기로 약속 된 민족대표 33인 (감리교인9명,장로교인7명,천도교인15명,불교인2명)은 일제에 의하여 태화관에 감금되어 모습을 보이지 않던 차에 동대문교회 김상옥(30세)은 상동교회 정재용(27세)이 보관중인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게 한 후 김상옥의 선창으로 만세운동이 시작된 것이다.
이 땅에 선교사들이 찾아와 민족을 일깨워온 후 34년 만에 3.1 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탑골공원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은 일제의 방해로 해산되어 일부가 동대문쪽에서 만세를 부를 때에 일본헌병이 장규동이라는 여학생을 장검으로 살해하려 할 때에 김상옥의사는 맨 주먹으로 일본헌병을 제압한다.

(삼일운동의 파장)
이와 같은 3.1운동은 폭력과 억압에 항거한 비폭력적 자주독립운동으로 자유와 평화, 박애와 평등을 세계만방에 전하고, 반만년역사문화와 홍익인간 민족정신을 되살려낸 우리민족의 대서사시로서 이는 감리교인이 주도한 예수그리스도 사랑의 정신이다.

3.1운동의 파장은 약1년 여 동안 우리나라 방방곡곡과 만주, 연해주까지 확산되는 항일민족운동으로 발전되었고, 대외적으로는 세계1차대전의 승전국인 일본의 침략과 세계질서파괴를 비판하며 일어난 운동으로 피압박민족의 입장에서 세계최초의 항거운동으로서 조선을 본받자고 일어난 중국의 5.4운동, 인도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 무저항독립운동의 효시가 된 것이다.

(항일독립운동의 산실)
동대문교회출신 독립운동 헌신자로는 스크랜턴모자,헐버트,벙커,케블,스웨어러,
하워드,로제타 홀, 해리스,커틀러,손정도,정춘수,김상옥,박용만,이하영,황중극,박원경,이효덕,정희종장로 등이 있으며, 이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고 치료하고, 가르치기 위하여 선교사들이 피 흘려 세운 종합선교타운으로 형성 된 흥인문동산은 명실공이 국내 유일한 “항일독립운동의 성지”이다.
이와같이 훌륭한 역사를 물려받은 감리교회는 오늘날 변질되어 역사의식을 잃어버리고 선교사들과 선진들의 순교의 현장이며,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든 민족의 성지를 서울시에 팔아버리려는 행위가 현재까지도 멈추지 않고 있다.
역사의식을 잃어버리고 무력해진 감리교회는 몇몇의 몰지각한 지도자에 의하여 그 들의 뜻대로 서울시에 의하여 강제 수용 당하고, 항일운동의 역사와 문화는 말살되어 현재 풀밭공원으로 변하여버린 동대문교회의 터를 포함한 4,500여 평의 “감리교회종합선교타운”은 분명 항일운동과 선교역사의 성지로서 국가의 보호 대상이다.
일제 때에는 빼앗긴 나라를 찾기 위해 이 동산에서 3・1 만세 운동을 하였고, 오늘날 우리는 서울시에 빼앗긴 항일역사동산을 다시 찾기 위한 운동을 지속 하여야한다. 이 동산에서 감리교회의 정체성과 잃어버린 역사를 회복하고, 보존하여 “항일독립운동의 성지”“민족여명의 동산”으로 건립하여 하나님께 영광 드리는 역사의 현장으로 후대에 이어주는 사명에 총력을 다 하여야한다

(고종의 희생)
고종의 윤허에 의하여 선교의 문이 열리고 일제강점기를 거쳐 오늘의 대한민국을 건설한 기독교는 고종의 위대한 선견지명을 재평가 해야한다.
결론적으로 삼일운동은 고종에 의하여 이 민족이 깨우쳐지고 그의 희생은 3.1운동으로 완성되는 민족사이며, 이와 같은 복음의 역사는 하나님이 함께하심 이었다.

2016년 3월 1일 상암교회 백영찬장로



전체 5

  • 2016-03-02 05:18

    백장로님, 그런 역사적인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군요. 장로님 글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 2016-03-02 07:02

    감리회 산 역사의 상징인 동대문교회가 하루속히 제 자리에 다시 세워져서 그 역사와 가치가 길이 보전이 되기를 바랍니다.


  • 2016-03-02 11:41

    잘 정리하셨네요.
    위 글 중 \" 매국노 이완용으로부터 직접 사약을 받은 고종황제는 독살을 당하게 되며(이석황손의 증언). \"은
    황손 이석의 증언은 이완용이 사약을 가져와 상궁에게 주고 상궁이 식혜에 타 고종에게 마시도록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 2016-03-05 18:32

    세번은 읽어아애 겟디.


  • 2016-03-05 18:38

    두번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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