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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원섭섭하다 하였다.

작성자
노재신
작성일
2016-04-22 10:03
조회
1369
'자격심사위원회에서 상정이 결의된 노재신 목사에 대한 복권이 본회의에 상정되어 만장일치로 결의됐다. 전용재 감독회장은 노재신 목사가 재판비용을 납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근신1년 정직1년을 받아 2년간 미파되며 회원권을 잃었었다고 사정을 밝혔다.'(당당 뉴스 중에서)

감독회장님은 내가 재판비를 내지 못하는 가난한 목사였기 때문에 근신 1년 정직 1년을 당하였노라 하셨다.
그러나 나는 가난하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리고 주님은 나를 재판비도 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가난케 하지 않으셨다.
만약 진실로 재판비의 문제만이었다면 나는 막노동을 해서라도 재판비를 내었을 것이다.
그리고 주님은 은혜를 베푸심으로 내게 더 빨리 재판비를 납부하도록 하셨을 것이다.
어쩌면 원관리자로부터 고소를 당하지 않았을 지도 모르며 감게에 글을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

감독회장님은 뭔가 큰 오해를 하고 계신 듯 하였다.
그 첫째 오해는 근신 1년은 맞지만 정직 1년이 되어 미파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온통 재판비에만 관심을 갖았다.
평소에 늘 돈에 관심이 많기 때문이며 늘 돈은 목회자라 할찌라도 주관심의 대상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신도들은 돈에 관심을 두기보단 다른 것에 관심을 두기도 한다.

만약 목회자와 평신도 중 누가 더 돈을 섬길 것이냐? 라고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도 없이 목회자라 말 할 것이다.(왜냐하면 적어도 내가 그러했기 때문이다.)
주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도 언제나 돈을 위해 일하고 자신의 명예와 유익이 되는 돈을 향해 일을 하는 이들이 목회자들 속에 너무도 많다.
그래서 그러한 목사를 먹사 또는 삯꾼이라고 하는 것 같다.
주님의 삯꾼은 괜찮다. 그러나 사람의 삯꾼과 먹사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사라 불려지는 것에 감사해 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먹사로 불리는 것을 감사해 하지만 실상 그러한 분이 먹사가 아닌 진짜 목사님들이다.
먹사라 불려지는 것에 화를 내고 성질을 부리며 자신은 신실한 주님의 목사라 호통을 치는 목사가 어쩌면 진짜 먹사일 것이다.

나는 정직 1년을 당하고 미파된 적이 없다.
어디에 내가 미파라 한 곳이 있던가?
기독교세계 임면공고를 지난 해 연회 즉 2015년 4월부터 올해 2016년 4월까지 정독하고 정독해보시라 어디에 내가 면이 되었다 하며 미파로 보고되어 있는가 말이다.

연회 주소록을 보시라.
어디에 내가 미파로 되어 있는가 말이다.
혹자는 기독교 세계의 임면공고와 연회 주속록은 큰 의미가 없다고 말을 한다.

그렇다면 왜 기독교 세계는 각 연회의 임면 공고를 내며
왜 목회자들의 이동과 일신에 대한 것을 기독교 세계를 통해 확인을 하는가?
기독교 세계 지면을 채울 내용이 부족하기 때문인가?
아니면 기독교 세계가 감리교회의 주간지임을 드러내고 싶어서인가?

나는 감리교 게시판에 글을 쓰면서 이러한 재판에 휩싸이고 근신1년을 받게 되었다.
나는 감리교 게시판에 언론의 자유가 있으리라 믿었다.

왜?
자유는 그리스도께서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구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웨슬리안이라고 늘 자랑하는 감리교회의 자유 게시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무엇보다 내가 감리교회의 목사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자유란 말이 부끄러워 이젠 자유 게시판이 아닌 감리회 소식이라 바꿨다. ㅎㅎ
(게시판의 자유는 없어도 관리자의 양심은 살아 있는 듯하다.)

언론의 자유라 할지라도 상대방이 기분이 상하고 모욕감을 느낄 수 있는 명예 훼손에 해당하는 글을 함부로 적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라 하는 분들이 계시다.
연회 심사위원들이 그러했으며 재판위원들도 그러했으며 대부분 목회자들이 그리 생각을 하고 내게 충고를 해주었다.
어쩌면 그들의 주장이 옳게 보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그들에게 반문을 할 것이다.

나단 선지자가 다윗을 꾸짖는 성경의 말씀은 어찌 해석해야 할 것인가?
선지자들의 외침은 또 어찌 해석해야 하며 그리고스도의 복음이 듣기 싫다던 사람들에게 굳이 복음을 전하여서 어려움을 당한 사도들의 이야기는 어찌 해석해야 할 것인가?

예수님 조차 대제사장과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을 향하여 독사의 자식이라 하셨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을 향하여 강도의 소굴이라고도 하셨다.
이 말씀들이 진정 복음인가?
아니면 그 누군가의 명예를 훼손하며 불법을 합리화 시키려는 불온한 글인가?
그렇다고 무조건적인 신상털기와 인신공격의 글을 언론의 자유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재판을 받고 그 후 일련의 과정을 통해 복권이 된 이 번의 일에는 재판비가 중요한 것 같아 보이지만 실상은 이 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있었다.

1. 감리교회 안에 만연안 패권주의와 기득권에 의한 교회권력의 횡포였던 것이다.

2. 기득권자들은 자신이 누리는 권력을 통하여 감리교 게시판에 당연이 있어야 할 언론의 자유를 무시하고 폭정을 행하였다.
보자하니 감게에서 과격하고 무모하리 만큼 객기스럽게 글을 썼던 박운양 전도사가 구치소에 300일이 넘도록 수감되어 있다고 한다. 누가 박운양 전도사를 감옥에 수감시켰는가? 공권력인가? 물론 그런 듯하지만 실상은 박운양 전도사를 고소한 목회자들이 아닌가?

강단에서는 화해와 용서의 복음을 떠벌이면서 실상 자신의 신상과 언행에 대하여 실랄하게 비판하였던 박운양 전도사는 용서할 수 없어 목회자로써 진실로 하지 말아야 하는 공권력에 고소를 해서 그런것이 아닌가? 만약 박운양 전도사가 기득권을 갖고 있었다면 그리고 그를 비호하는 교회 권력의 패권 세력들이 있었다면 과연 그렇게 되었을까? 난 여기서 실소를 지어야 할 것 같다. ㅎㅎ

옳지 못한 언행에 대하여 실랄하게 비판을 하였던 박운양 전도사의 글이 문제가 아니라 그러한 언행을 자행하고도 회개하지 않는 이들이 더 문제가 아닐까? 그리고 편당을 짓고 권력의 뒷백을 두고 편당을 위해 글을 쓰면서도 자유(?)롭게 글을 써대는 일명 감게의 논객이라하는 양의 탈을 쓴 늑대들이 더 문제가 아닐까?

그리고 박운양 전도사의 글을 읽으며 대놓고 통쾌해 하면서도 한마디의 댓글도 달지 못하는 관음증을 즐기는 비겁한 목회자들이 더 문제가 아닐까?

어린 아이가 잠잠하면 돌들이 일어나 소리를 지를 것이라 하였다.
다수가 침묵을 하면 악한 자들이 득세하며 대중을 악한 길로 이끌 것이라 하였다.

박운양 전도사는 나보다 과격하였지만 어쩌면 나보다 더 진실했을 지도 모른다.
나는 박운양 전도사보다 똑똑한 척하면서 덜 과격한척 하면서 이리 저리 글을 비틀어 쓰면서 진실한 척을 했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근신을 받았고 박운양 전도사는 구치소에서 300일 넘게 수감되어 있다고 한다.

내가 더 똑똑한 것 같지만 더 부끄럽다.
부끄러운 내가 주님의 도우심을 구한다.
박운영 전도사에게 주님의 위로가 함께 하길 말이다.
주님은 나를 향하여 외식하는 자라 비판을 하실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다시 감리교 게시판으로 돌아 왔다.
그리고 나는 재판비 미납 때문에 이번 연회에서 복권이 된 것이 아니라 기득권을 유지하며 교권으로 복음의 자유를 유린하는 이들에게 진실이 무엇인지를 말하기 위함인 것이다.

3. 나는 교권을 갖고 있는 이들의 직무 유기 때문에 근신과 정직의 위기에 있었던 것이다.
원관리자의 직무유기가 있었으며 그와 함께 하던 연회 사무간사와 연회 서기(정,부)와 지방 감리사와 나에 관하여 알고 있는 권력이 있는 이들의 직무 유기였던 것이다. 여기에 감독회장님도 무관하지 않다. 왜냐하면 내가 연회 미등록 사유서를 연회의 의장이신 감독회장님께 직접 드렸으나 결국 원관리자 때문이라 하면서 미등록 사유서를 처리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엄연히 진실로 있어서는 않될 연회의장의 직무유기인 것이다. 그것은 마치 빌라도가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피 값을 돌린 것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4. 나는 교권을 누리는 이들의 직권남용에 의해 근신과 정직의 위기에 있었던 것이다.
원 관리자의 직권남용이 그 대표적인 것이다. 나와 관계된 직권남용은 원관리자 한 분이지만 여전히 감리교회안에 직권남용을 자행하는 기득권자들이 있다. 나는 금번 연회를 통해 직접 보고 들을 수는 없었지만 그 누구보다 강력한 직권남용을 자행하고도 당당(?)한 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5. 나는 기득권에 기댄 채 공정하지 못한 비양심적인 목회자들의 언행 때문에 근신과 정직의 위기에 있었던 것이다.
심사위원들이 그러했으며 재판위원들도 그러했고 내게 적대심 내지 경계심을 두고 있던 대다수의 많은 목회자들이 그러했다. 그들은 원관리자의 고소건이 재판을 열어야 한 만큼 중대 사안이 아니라 권력자에게 밋보였던 나와 그리고 그 분의 나를 향한 감정적 괘씸죄임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러한 감정적 괘씸죄를 들어 근신 1년과 재판비를 선고한 것이다.

권력자의 용안이 힘없고 약한 자의 언론의 자유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6. 나는 나를 향한 원관리자의 직권남용과 직무유기와 웃지 못할 방해 공작을 통한 공무집행 방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사실엔 관심을 두지 않은 채 무조건 권력가의 편에서 약자에게 굴복을 요구했던 비겁한 목회자들에 의해 근신과 정직의 위기에 있었던 것이다.

과거 믿음의 선조들은 진리의 복음을 위하여 죽음 앞에도 굴하지 않는 당당하고 담대한 믿음이 있었다. 그 믿음은 사람들의 신뢰가 되었으며 때론 신념이 되기도 하였고 신의를 만들어 냈다. 그러나 지금의 목회자들은 이러한 신의도 신념도 그리고 신뢰와 믿음도 찾아보기가 어렵다. 그러면서도 교회에서는 그 어떤 분의 말처럼 마치 주님의 명견인 것처럼 짖어댄다. 그러나 교회 밖을 나가면 분명 아닌 것임을 알면서도 옳지 못함을 알면서도 한마디도 하지 못한다. 집 밖에서 옳지 못한 일에 짖지 못하면 그것은 명견이 아니라 잡견이라 하였다.

올 호선연회에 두드러진 것이 있었다면 여느 해보다 더욱 강력한 의장의 회의 진행 방식이었던 것 같다.
연회원이 의장의 의견에 반대적 의견만 내면 무조건 끌려 내쳐졌다 한다. 이러한 표현은 과장이 되었을 것 같다. 설마 그러했을까? 나는 연회원이 아닌지라 올 연회는 눈과 귀로 들을 수 없었다.

스탭들이 어디에 속한 누구인 지는 모르지만 그들은 연회장에 출임을 철저히 통제하였다.
내가 복권의 문제로 연회장에 들어 가려 할 때도 명찰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연회장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다.
스탭들의 승락을 받은 후에 연회장에 들어 갈수 있었다.
또 여기서 나는 실소를 할 수 밖에 없다. ㅎㅎ 무슨 비밀스런 회의 내용이 그리도 많았던 것인지... 오해이길 바란다.

그렇게 의장의 뜻과 반대되는 회원이면 회의 진행을 방해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회의장 밖으로 이끌려 나갔고 급기야 연회 재판에 회부하겠다 선언하였단다. (단지 감독회장님의 엄포로만 끝나기를 바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동역자들이며 동연회원인 이들이 불의하게 이끌려 가는 것을 두 눈을 뜨고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이것은 아니라 이러면 안된다 더 나아가 의장의 그러한 회의 진행은 옳지 않다고 주장한 회원이 한명도 없었다 하고 끌려 나가는 연회원을 위해 함께 한 연회원이 없었다 한다. 비겁한 연회원들, 그리고 먹사인 목회자들.... 자기가 만약 그렇게 이끌려 내쫓겼다면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러니 자신도 끌려갈까 겁을 먹은 채 한마디도 하지 못 했을 것이다.

일전에 오셨던 "나 OOO감독이야!" 한마디로 조용해졌던 연회였으니 두말하면 입이 아프다 할 것이다. 그 자리에 나도 있었다. 나도 내가 비판하는 비겁자 중 한명에 불과하다. 그 비겁함이 나를 근신과 정직의 위기에 서게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내가 근신과 정직의 위기에 있었던 것은 자업자득인 샘이다.

7. '심은 대로 거두리라'는 말씀처럼 나는 자업자득에 의해 근신과 정직의 위기에 있었던 것이다.
나는 지방에서 목회자와 장로님 몇 몇이 관리자의 횡포로 인해 어려움을 당할 때 침묵하고 있었다. 나는 그 분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옳지 못함이었으며 만약 목회자들에겐 잘못이 있었다 하더라도 적어도 장로님의 문제는 목회자들의 잘못된 관례에 기인한 것이지 장로님의 잘 못은 아니었다. 장로님은 관례를 따라 목회자를 보호하려 하였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장로님과 그 일에 대하여 한 마디도 말하지 못했다.

그러니 나는 참으로 비겁한 목사였다. 아니 나는 참으로 비겁하고 겁이 많은 먹사였다.
그래서 나는 원관리자를 원망하거나 누군가를 향하여 개인적인 감정을 갖지 않으려 한다. 다행스럽고 감사한 것은 주께서 누군가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을 거둬주신 듯하다.

다만 그들이 행한 불법적인 권력 남용과 직무유기와 연회의 과정과 절차를 무시하고 자행한 폭정적 행정처리를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 왜냐하면 다시는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리기 때문이다. 더 이상 나와 같은 비겁한 먹사들이 있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이러한 교회 내에서 일어나는 폭정을 지적하면서 내 자신을 주님 앞에 내려 놓기 위함으로 5월 31일까지만 지금의 교회에 있기로 하였었다. 주님을 위하여 죽고자 하면 주님이 살리시리라 하셨다. 내가 낮추면 주님이 높이시리라 하셨다. 그리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이 내게 있기를 소원해 본다.

금번 연회를 통해 내가 다시 복권이 되어 이렇게 글을 쓰게 됨은 이를 위함일지도 모른다.
이것이 객기라면 주님이 나를 다시 놓으시리라.
그러나 만약 이것이 주님의 뜻이라면 주님이 나를 장중에 붙잡아 주시리라 믿는다. 아멘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내게 전화를 하여 복권에 대한 내 심정을 물었다.
복권이 된 지금 심정이 어떠냐고 말이다.
나는 시원섭섭하다 하였다.

복권되어 시원하고 해결되지 않은 것들이 너무 많기에 섭섭하다.
어쩌면 이 섭섭함은 호선연의 짧은 역사 가운데 최악의 연회가 된 올 해의 연회를 통해 복권이 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전체 1

  • 2016-04-22 10:43

    부끄러운 복권이지만 주께서 여기까지 인도하여 주심에 감사를 드리며
    저를 위하여 기도하여 주신 분이 있으리라 믿고 그 분들께도 이 덧글을 통해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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