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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각종 종교인도 탄 난파선의 목자

작성자
최세창
작성일
2016-04-21 11:10
조회
621
1. 시작하는 말

일부 목사들의 비리가 방영되기도 하고, 목사의 수가 넘치고, 믿음보다는 지식이나 재력으로 교회의 중직이 된 이들이 많기 때문에 하나님의 종이자 교인들의 목자인 목사를 피고용인이나 직업인으로 여기는 풍조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목사들 중에도 직업인이나 노동자로 오해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목사란 하나님의 종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인들을 지도하고 양육하고 돌보면서 천국으로 인도하는 목자입니다. 그러나 목사가 하나님의 종이기 때문에 순종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가 교인들의 목자이기 때문에 순종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종노릇에 대한 순종이 되어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는 목자 노릇에 대한 복종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목사의 사표인 바울은 광풍 때문에 연장과 기구와 재물을 다 버리고도 배가 부서지는 절망적 상황에 처한 배 안에서, 하나님의 종노릇이자 모두의 목자 노릇을 잘했습니다.

2. 광풍에 떠다니는 배에서의 바울의 목자 노릇

바울 사도는 자신의 경고를 무시하고 떠났다가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만나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배 안의 사람들에게 기도 중에 받은 계시의 말씀으로 권면과 위로를 했습니다. 요는, 모든 사람의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다는 것입니다.
동행한 역사가요 의사인 누가는 미항을 떠난 지 14일째 되는 날 밤에 일어난 일을 자세히 묘사했습니다. 배가 현재의 이탈리아와 아프리카와 그리스 사이의 지중해인 아드리아 바다에 이리 저리 쫓겨 가더니, 밤중쯤 되어 선원들이 어느 육지에 가까워지는 줄을 짐작했습니다.
선원들이 재 보니 수심이 약 36m이었고, 조금 가다가 다시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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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니 수심이 약 27m이었습니다. 수심이 얕아지는 것은 육지가 가까워지고 있는 증거이며, 따라서 암초에 걸릴 위험이 있었습니다. 암초에 걸릴까 봐 배의 뒤쪽인 고물(船尾)로 닻 넷을 주었습니다. 정상적인 조치가 아니라, 태풍에 대비한 비상조치입니다. 보통 배가 정박하면 배의 앞쪽인 이물(船首)에서 닻을 내립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 배 앞쪽인 이물에서 닻을 내리면 배가 돌다가 도중에 뱃전을 파도에 내줄 수 있으며, 따라서 배가 전복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배의 뒤쪽인 고물에서 닻 넷을 준 후에 날이 새기를 고대한 것입니다.
그 절체절명의 때에 정말 기막힌 일이 벌어졌습니다. 무역상이나 해군이나 여행객을 태우고 항해하던 배가 침몰하는 바람에 수십, 수백 명이 익사한 끔찍한 사건들을 잘 아는 선원들이 자기들만 살겠다고 시도한 것입니다. 승선한 모든 사람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선원들이 도망하려고 이물에서 닻을 주려는 체하면서 거룻배를 바다에 내려놓은 것입니다.
한 배에 탄 운명 공동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남이야 망하든 말든 자기만 흥하면 된다는 이기적인 인간도 있고, 나라 주인인 국민이야 죽든 말든 자기들만 살면 된다는 집단도 있습니다. 제 나라가 흥하려고 다른 나라를 망치고, 제 민족만 살겠다고 다른 민족을 사지로 몰아넣는 추악한 정복자들도 있습니다. 창조주에게서 천하를 주어도 바꾸지 않을 생명을 받아 가지고, 인생 항해에 파선하거나 난파되는 인간들이 많이 있습니다. 난파선에서도 떨어져서 죄악의 큰 물결에 휩쓸려 허우적대면서 남을 해치는 인간들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하나뿐인 소중한 생명을 가지고 자기 인생을 망가뜨리거나, 남의 인생을 망가뜨리는 것을 보면서 희희낙락하는 인간들도 있습니다.
문병하 목사님이 소개한 유머입니다.
어느 마을 사람들이 고해성사를 위해 신부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이 고백하는 내용이 언제나 똑같았습니다. “신부님, 오늘 누구와 불륜을 저질렀습니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신부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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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고해성사를 듣는 것이 아주 지겨워졌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미사 시간에 신도들에게 말했습니다. “이제는 고해성사를 할 때 불륜을 저질렀다고 하는 대신에, 누구와 넘어졌다고 말하세요.” 그 후, 마을 사람들은 고해성사를 할 때, “신부님, 오늘은 누구와 넘어졌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신부님이 바뀌었습니다. 새 신부님이 고해성사를 들어보니 넘어졌다는 소리뿐이었습니다. 신부님은 독실한 신자였던 읍장을 찾아가 말했습니다. “읍장님, 마을에 도로 공사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도로에서 넘어지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알고 있는 읍장은 혼자서 껄껄 웃기 시작했습니다. 신부님은 재차 강조하며 말했습니다. “읍장님, 웃을 일이 아닙니다. 읍장님 부인은 지난주에 세 번이나 넘어졌습니다.”
인생 항해 중에 파선하거나 난파되는 사람을 보면 바로잡아 주어야 합니다. 죄악이 장성하여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서둘러 끌어올려야 합니다. 행선지가 천국인 구조선에 태워 함께 가야 합니다. 시편 119:105을 보면,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그 선원들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바울 사도가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을 것이라고 한 말씀을 믿고 받아들였더라면, 이기적이며 얌체없는 추악한 짓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선원들은 바울 사도의 말을 전적으로 믿지 못하고 반신반의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육지가 가까워지자 도망치려고 이물에서 닻을 주는 체하며 거룻배를 바다에 내려놓은 것입니다.
선원들이 백부장과 선장과 선주를 속이고, 그 밖의 모든 사람을 속일 수 있어도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종인 바울 사도는 도망치려고 거룻배를 바다에 내려놓은 선원들을 보고, 율리오 백부장과 군인들에게 “이 사람들이 배에 있지 아니하면 너희가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라고 경고했습니다. 배에 탄 사람들의 목숨을 구해 주신다고 하신 하나님은 마법의 담요를 사용하는 마법사가 아니라, 사람을 인격체로 대하시는 섭리자이십니다.
율리오 백부장은 출항하면 재앙을 만날 것이라고 한 바울 사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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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보다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믿고 출항했지만, 바울 사도의 예언이 적중한 것을 체득한 이제는 바울의 지시대로 이행했습니다. 그는 한 번 걸려 넘어진 돌에 또다시 걸려 넘어지지 않았습니다. 그의 명령을 받은 군인들은 거룻줄을 끊어 거룻배를 떼어 버려서 선원들의 탈출 시도도 막고, 배도 가볍게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날이 밝기 전, 14일이나 못 먹은 사람들에게, 먹는 것이 구원을 위한 것이니 음식을 먹으라고 권했습니다. 그리고 떡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축사하고 떼어 먹기를 시작하자 사람들도 안심하고 받아먹었습니다. 배 안에 있는 사람 수는 276명이었습니다. 거의 다 각종 종교인들이었습니다.
교인들은 환난으로 불안해하는 사람들에게, 주 하나님을 믿는 사람답게 의연한 태도로 안심하도록 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모두가 배부르게 먹은 후에 배 안의 밀을 바다에 버려 배를 가볍게 했습니다. 배가 육지에 보다 더 가까이 가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날이 새매 경사진 해안으로 된 항만이 눈에 띄자 배를 거기에 들여다 댈 수 있는가 의논했습니다. 그런 후, 닻을 끊어 바다에 버리는 동시에 킷줄을 늦추고 돛을 달고 바람을 맞추어 해안을 향하여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두 물이 합하여 흐르는 곳을 당하여 배를 걸매 이물은 부딪혀 움직일 수 없이 붙고, 고물은 큰 물결에 깨어져 갔습니다.
다급해진 군인들은 죄수가 헤엄쳐서 도망할까 하여 저희를 죽이는 것이 좋다고 했습니다. 로마의 법에 의하면, 죄수가 탈출하면 간수나 호송 군인들이 대신 형벌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율리오 백부장은 부하들의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처음부터 바울에게 친절했던 율리오 백부장은, 바울 사도의 예언대로 만난 광풍과 그 와중에서의 남다른 의연한 태도와 믿음과 지도력 등에 존경심을 품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그는 바울 사도를 구하기 위해서 죄수들을 죽이는 것이 좋겠다는 부하들의 뜻을 막은 것입니다. 그리고 헤엄칠 줄 아는 사람들을 명하여 물에 뛰어내려 먼저 육지에 나가게 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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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니다.
그리고 헤엄칠 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널조각 혹은 배의 물건에 의지하여 나가게 하였고, 마침내 사람들이 다 상륙하여 구원을 얻었습니다. 하나님께 계시를 받은 바울 사도의 예언은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3. 맺음말

바울 사도는 광풍 때문에 기구와 재물을 다 버리고도 부서지는 배 안에서, 하나님의 종노릇이자 모두의 목자 노릇을 잘했습니다.
율리오 백부장은 출항하면 재앙을 만날 것이라고 한 바울 사도의 예언보다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믿고 출항했지만, 예언이 성취된 뒤에는 바울 사도의 지시를 따랐습니다. 또한, 바울 사도의 믿음에서 비롯된 의연한 태도와 지도력 등에 존경심을 품게 됐습니다. 바울 사도의 말을 들은 백부장의 명령을 받은 군사들은 거룻줄을 끊어 선원들의 탈출 시도도 막고, 배도 가볍게 했습니다.
인생 항해에 복을 받아 사랑하며 살려면, 목사의 하나님의 종노릇에 대한 순종을 해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는 목자 노릇에 대한 복종을 해야 합니다.

필자의 www.newrema.com의 저서들: 신약 전체 주석/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설교집 24권/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다수의 논문들 HP 010-6889-3051



전체 4

  • 2016-04-21 11:11

    (설교의 성경 본문: 사도행전 27:27-44)
    27열 나흘째 되는 날 밤에 우리가 아드리아 바다에 이리 저리 쫓겨가더니 밤중쯤 되어 사공들이 어느 육지에 가까워지는 줄을 짐작하고 28물을 재어보니 이십 길이 되고 조금 가다가 다시 재니 열다섯 길이라 29암초에 걸릴까 하여 고물로 닻 넷을 주고 날이 새기를 고대하더니 30사공들이 도망하고자 하여 이물에서 닻을 주려는 체하고 거루를 바다에 내려놓거늘 31바울이 백부장과 군사들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이 배에 있지 아니하면 너희가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 32이에 군사들이 거룻줄을 끊어 떼어 버리니라 33날이 새어가매 바울이 여러 사람을 음식 먹으라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기다리고 기다리며 먹지 못하고 주린 지가 오늘까지 열나흘인즉 34음식 먹으라 권하노니 이것이 너희 구원을 위하는 것이요 너희중 머리터럭 하나라도 잃을 자가 없느니라 하고 35떡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축사하고 떼어 먹기를 시작하매 36저희도 다 안심하고 받아먹으니 37배에 있는 우리의 수는 전부 이백 칠십 륙인이러라 38배부르게…의논한 후 40닻을 끊어 바다에 버리는 동시에 킷줄을 늦추고 돛을 달고 바람을 맞추어 해안을 향하여 들어가다가 41두 물이 합하여 흐르는 곳을 당하여 배를 걸매 이물은 부딪혀 움직일 수 없이 붙고 고물은 큰 물결에 깨어져 가니 42군사들은 죄수가 헤엄쳐서 도망할까 하여 저희를 죽이는 것이 좋다 하였으나 43백부장이 바울을 구원하려 하여 저희의 뜻을 막고 헤엄칠 줄 아는 사람들을 명하여 물에 뛰어 내려 먼저 육지에 나가게 하고 44그 남은 사람들은 널조각 혹은 배 물건에 의지하여 나가게 하니 마침내 사람들이 다 상륙하여 구원을 얻으니라


  • 2016-04-22 18:58

    목사란 하나님의 종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인들을 지도하고 양육하고 돌보면서 천국으로 인도하는 목자입니다. 그러나 목사가 하나님의 종이기 때문에 순종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가 교인들의 목자이기 때문에 순종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종노릇에 대한 순종이 되어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는 목자 노릇에 대한 복종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조심스럽고 솔찍한 표현이지만 목사를 하나님의 종으로 신뢰하던 시절이 그립습니다.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 2016-04-23 15:42

    김정효 장로님, 필자의 설교를 귀한 말씀으로 받으시고, 특히 더 공감하시는 부분을 적시하셔서 감사합니다.


  • 2016-04-23 15:42

    실상, 목사는 성도들보다 먼저 주님 안에서 성령의 도우심을 받고, 또 자기의 이해(성경 주석 또는 해석)만 옳다는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관한 많은 신학자들이나 설교자들의 논문이나 책들을 통해 지도와 양육을 받아야 하고, 먼저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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