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 여러분께.
현재 ‘감리회소식’이 ‘자유게시판’처럼 사용되고 있습니다.
정치적 입장표명이나 감리회정책과 관계되지 않은 내용 등
‘감리회소식’과 거리가 먼 내용의 글은 ‘자유게시판’을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

난해‧중요 성구 12회(마 4:23)…회당…천국 복음을 전파…고치시니

작성자
최세창
작성일
2016-06-22 11:15
조회
762
마 4:23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의 [회당]은 쉬나고가이스(συναγωγαίς: 복수형)이며 ‘같이 모이다’라는 뜻이다.
손네(Sonne)는 “회당의 기원은 확실히 알 수 없다. 랍비의 자료들은 무엇이나 핵심적인 것을 제공해 주지 않는다. 탈굼(Targum), 특히 위-요나단(Pseudo-Jonathan)의 것과 미드라쉬(Midrash)에 있는 여러 구절들은 유대 민족의 초기부터 회당이 있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같은 사상이 사도행전 15:21의 사도 야고보의 말에 나타난다.
필로(Philo, Life of Moses, Ⅲ. 17)와 요세푸스(Josephus, Apion, Ⅱ. xvii. 75)는 그 제도가 모세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명백하게 진술하고 있다.”①라고 함으로써, 유대 민족의 초기부터 회당 제도가 시작됐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회당에는 회당장과 장로들이 있었고, 이곳에서 안식일의 예배 외에 아이들 교육도 하였다. 안식일 예배 때에는 율법을 봉독하고 해석하며 기도하였다. 회당장의 허락 아래 나그네(순회 랍비)들도 자유롭게 설교할 수 있었다.}(눅 4:15의 주석). 브트릭(G. A. Buttrick)은 “회당은 학교, 지방 의회, 교회도 되었다.”라고 하였다.
예수님이 회당에 참석하시는 일(눅 4:16)과 그 곳에서 가르치시는 일(요 18:20)은 하나의 습관이셨다. 예수님은 혁명론자가 아니다. 즉, 그분은 백성들의 정상적인 종교 생활을 따르셨다. 그러나 미구에 유대인의 배척을 받아 회당을 떠나시게 되는데, 그와 같은 일은 바울의 선교 여행에서도 발생하였다.
[회당에서 가르치시며]의 [가르치시며](디다스콘, διδάσκων)는 복음과 복음에 합당한 생활에 대해 가르치셨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가르치실 때에 비유를 많이 사용하셨다.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않았으므로 사람들이 감탄하였다(막 1:22). 사람들은 더러운 귀신들이 쫓겨 나갈 정도로 권세 있는 새 교훈이라고 평하기도 하였다(막 1:27, 눅 4:36).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의 [천국](바실레이아스, βασιλείας) 곧 하나님 나라의 개념은 예수님의 교훈의 기본 주제이다(W. W. Wessel, H. E. Luccock). 비록 “하나님의 나라”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 주석서와 주해서에서 인용할 경우에는 저자의 이름만 밝혔고, 같은 견해를 가진 학자들이 네 명 이하일 경우에는 본문의 괄호 속에 이름만 밝혔음.
1) I. Sonne, “Synagogue” in IDB, Vol. pp. 476-479.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라는 용어가 구약성경이나 외경에 나타나지 않으나, 그 사상은 양쪽에 풍부하다. 구약성경에는 “여호와의 다스리심이 영원 무궁하시도다”(출 15:18), “여호와께서 그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 정권으로 만유를 통치하시도다”(시 103:19), “여호와께서 홍수 때에 좌정하셨음이여 여호와께서 영영토록 왕으로 좌정하시도다”(시 29:10),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자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의 왕이니라”(사 43:15),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사 52:7), “주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니 주의 통치는 대대에 이르리이다”(시 145:13)와 같은 진술이 많이 있다.
그러한 문장들에 대한 고찰은, 주님의 왕권이 현재적 실재(하나님은 지금 자기 권한을 행사하신다)와 미래의 소망(하나님은 마지막 때에 통치하실 것인데, 그때에 그분은 자신의 통치를 거역한 모든 것을 진압하실 것이다) 둘 다임을 드러내 준다(W. W. Wessel).
현재(마 12:28, 눅 11:20, 17:21)와 미래(마 13:41-43, 20:21, 막 9:1, 47, 14:25, 눅 22:16, 18, 요 14:2, 18:36, 고전 15:50, 고후 5:1, 갈 5:21)로서의 하나님 나라 사이의 긴장은 예수님의 교훈 속에도 있다.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는 그 성격에 있어서 새로운 것이었다. 즉, 유대교 개념처럼 육적이며 현세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이며 영원한 나라이었다(E. Schweizer). 하나님 나라는 본질에 있어서 하나님의 통치이다.② 이 통치는 주권자이신 하나님과 개인 사이의 인격적 관계이다. 하나님의 통치 원리는 죄인을 구원하시는 사랑이며, 이 실제적 구현이 곧 예수님의 인격과 교훈과 생애이다. 따라서, 바울은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 14:17)라고 하는 것이다. 이 하나님의 통치에 의해 인간의 마음과 생각과 행동이 움직여져야 한다.(막 1:15의 주석).
[전파하시며]는 케뤼스손(κηρύσσων)으로서 {임금, 군주, 행정 장관, 총독, 군대 장관 등의 공식 통신문을 배달하거나, 공공 소환장이나 공적 요구서를 전달하거나, 기타 여러 가지 의무를 이행하는 것을 뜻하였다. 신약성경에서는 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거나 선포하는 것, 또는 그런 사람을 뜻한다(딤후 1:11, 벧후 2:5). 특히, 이 말은 바울 서신에 자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2) C. E. G. Swift, “Bruce, Metzger”(in W. W. Wessel), W. W. Wessel, W. Hendriksen, C. R. Erdman, D. W. Burdick, R. McL. Wilson, 山口 昇.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주 나오는데(롬 10:8, 고전 1:23, 고후 4:5, 빌 1:15), “언제나 엄격하고 공적이며 권위 있는 선포의 개념을 지니는 것이다”(F. D. Gealy).}(딤전 2:7의 주석).
이 일을 위해 임명된 사람은 자신의 의견이나 다른 사람들의 사상을 말해서는 안 되고, 오직 하나님의 것만을 받아 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에스겔은 이스라엘의 거짓 예언자들에게 “주 여호와의 말씀에 본 것이 없이 자기 심령을 따라 예언하는 우매한 선지자에게 화 있을진저”(겔 13:3)라고 힐책하였다.
[복음](유앙겔리온, εὐαγγέλιον)은 {좋은 소식을 전하는 사람에게 준 보상(Homer, W. Hendriksen, 마경일)과 전쟁에서의 좋은 소식(E. Schweizer)을 뜻하였고, 여기서 왕자의 출생이나 황제의 즉위의 고지 등을 의미하게 되었다.
신약성경의 경우에는 하나님에게서 파견된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죽음과 부활을 통해 계시된 인류 구원에 관한 좋은 소식을 의미한다. 따라서 복음에는 그리스도에 의해 성취된 구원뿐만 아니라, 그분의 왕국에 관한 좋은 소식도 포함되는 것이다.}(막 1:1의 주석).
특히, 바울에게 있어서 복음은 죄와 죽음과 멸망으로부터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죽기까지 복종하신 그리스도의 은혜로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복된 소식이다. 따라서 {“그것은 인간의 철학 체계, 인간이 만든 어떤 종교, 그리고 어떤 생활양식의 형태에 대한 훌륭한 충고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다”(C. R. Erdman)}(갈 1:6의 주석).
{휴스(P. E. Hughes)는 “구약성경의 약속과 신약성경의 ‘복음’ 사이에는 참된 동질성이 있다. 왜냐하면, 이들의 본질은 동일하기 때문이다. 전자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성취를 내다보고 있었고, 후자는 약속된 것의 그리스도 안에서의 완성을 선포하고 있다.”라고 하였다.}(히 4:2의 주석).
[천국 복음]의 [천국]은 복음의 성격을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에 대해, 힐(D. Hill)은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의 정확성이 일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반화되어서는 안 된다. 즉, 예수님은 자신의 놀라운 능력을 최대한 과시하고 싶어하시는 것처럼, 모든 사람을 고치신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현존과 자신의 인격적 권위를 표시하는 치유를 하셨다.”라고 하였다.
예수님은 메시아로서 오셨고, 따라서 그분의 기적의 치유는 그분의 교훈과 마찬가지로 메시아적 권능에 의한 것이다.
헨드릭슨(W. Hendriksen)은 “그리스도의 치유 기적들은 삼중의 의미가 있다. 첫째,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확증한다(요 14:11). 둘째, 그리스도가 정말로 예언된 메시아이심을 보여 준다(사 35:5, 53:4, 5, 61:1, 마 11:2-6). 셋째,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 나라가 방금 도착했다는 것을 증명하는데, 그 이유는 이미 간단하게 말해진 바와 같이 하나님 나라의 개념이 영혼과 마찬가지로 몸에 대한 복들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복음서들은 곳곳에서 하나님 나라의 개념과 기적들 사이의 아주 밀접한 관련을 확증하고 있다(마 9:35, 10:7, 8, 12:28, 눅 9:1-2. cf. 행 8:6, 7, 12).”라고 하였다.

출처: 최세창, 마태복음(서울: 글벗사, 2004년), pp. 163-165.
필자의 newrema.com의 저서들: 신약 주석(마-계 8610쪽)/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설교집 24권/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다수의 논문들



전체 0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공지사항 관리자 2014.10.22 68128
공지사항 관리자 2010.12.29 66304
3473 관리자 2016.06.16 1259
3472 박영규 2016.06.16 987
3471 장병선 2016.06.16 1308
3470 유은식 2016.06.15 1271
3469 이종선 2016.06.15 975
3468 현종서 2016.06.15 918
3467 성모 2016.06.15 1142
3466 함창석 2016.06.15 634
3465 최세창 2016.06.15 710
3464 함창석 2016.06.14 809
3463 김성기 2016.06.14 794
3462 고영기 2016.06.14 1582
3461 유삼봉 2016.06.14 765
3460 함창석 2016.06.13 647
3459 장병선 2016.06.13 1144
3458 이주익 2016.06.11 1930
3457 이주익 2016.06.11 1845
3456 함창석 2016.06.10 672
3455 오은석 2016.06.10 1006
3454 박영규 2016.06.10 12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