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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회장의 근로 소득자 상위 1% 시대 이제는 끝내야 합니다.

작성자
박승복
작성일
2016-06-24 21:37
조회
1248
오늘자(6월24일) 뉴스앤조이 (www.newsnjoy.or.kr)에 "감리교 감독회장, 연봉만 4억!"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는 중부연회 부천남지방 성은교회 담임 허원배 목사의 기자회견 내용을 요약한 기사이다.

뉴스앤조이 기사에 보면 감독회장이 일 년에 받는 혹은 전용할 수 있는 금액을 적시 하였는데. 그 총 액이 4억 원에 가깝다는 것이다. 만약 이것이 액면 그대로 사실이라면, 그간 왜 그렇게들 감독회장이 되려고 하는 지, 의문도 풀어지는 듯하다.

넓은 거실이 있는 집, '우와'하는 차량, '억' 소리 나는 연봉, 가는 곳 마다 연신 허리를 굽히는 무리들의 비릿한 미소들, 은퇴 후의 안정적인 노후를 담보하기 위해, 꼼수로 보여지는 한 수. 이모든 것이 꿈인가 싶어진다. 아니, 한여름 밤의 꿈이었으면 하였다.
그러나 이 꿈이 현실이 되고, 더러운 '개'꿈을 꾼 후유증처럼 비릿하게 올라오는 욕지기가 더럽다.

영국을 구원한 거룩한 사람 “요한 웨슬리”의 후예라고 늘 자부하는 감리교도들이 그의 청빈(淸貧)은 배우지 않고, “예우(禮遇)”라는 미명에 눈멀고, 귀먹은 사람처럼 그 치졸함에 동참하였다. 이 부끄러움은 그 더러운 일에 침묵하므로 동의하고, 방관함으로 방조한 것에 대한 치 떨림이다.
한국교회가 ‘자정의 능력을 상실’하였다는 말들이 많이 있었다. 감리회도 역시 자정의 능력이 있는 집단-공교회성(共敎會性)을 잃어버린 교회는 집단일 뿐이다-인지 의심받고 있고, 그 의심은 늘 현재화 했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이 기사를 보고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지 우리 자신에게 물어야 할 것이다. 과연 감리회가 이 문제를 이성적이며, 합리적으로 해결할 것인지 한국의 교회는 지켜 볼 것이다. 그리고 이 문제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외침으로 치유되고 회복해야 할 ‘병(病)’이다.

마태가 전한 기쁨의 소리에서 예수는 이렇게 제자들에게 당부한다.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을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 (마 10:9-10)

그 길이 얼마나 멀고 험난한 것인지, 선생 예수는 확연하게 알았고, 이 말씀을 듣는 제자들도 명확하게 실천에 옮기려는 결기를 보였을 것이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기사인가. 아프지만 그리하라고 당부하는 주님의 심정, 쓰리지만 기쁘게 감당하기로 결심하는 제자들. 이런 복음(福音)을 우리도 전파해야 하지 않을까?

“기독교 대한 감리회” 이 외침이 가슴 시리게 다가오는 오늘이다. 배낭도, 두 벌의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가지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심심한 당부를 오롯하게 가슴에 담는다.
하나님의 자녀로 예수그리스도의 제자로, 요한 웨슬리의 후예로 우리가 가야할 길이 마태가 전하는 여행길이다.

오는 9월 27일 이면 연회 감독과 감독회장을 선출하는 선거가 진행 될 것이다. 연회 감독들도 그렇지만, 감독회장 선거는 늘 선거이후 후폭풍으로 몸살을 앓아왔다. 선거를 치르면 치를수록 감리회는 바닥으로, 바닥으로 추락하였다. 금권 선거로 얼룩지며, 더러운 송사(訟事)에 휘말리고, 졸렬한 타협에 만신창이가 되었다. 언제까지 이런 끔찍한 일들이 번복되어야 하는가?

감리회가 공동체의 위상을 회복하는 길을 없는가? 어떻게 하면 감리회 처음의 영성을 회복하고, 청빈과 섬김으로 나갈 수 있을까?
답은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 답은 아주 선명하게 있다. 우리가 애써 돌아 안 보고, 안 듣고, 다가가지 않기 때문이다.

‘벌거벗은 자 보다, 발거 벗은 자를 보는 자들의 죄가 더 큰’것을 기억해야 한다. 감독에 출마한 사람들이 벌거벗은 자라면, 우리는 그 벌거벗은 자들을 보는 사람들이다. 달려가서 그 벗은 몸을 가려야 한다. 더 이상 이 부끄러움에 동참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벌거벗은 자들이여! 당신들도 더 이상 옷을 벗지 말아야 한다. 의도적으로 벗는 옷은 진정한 ‘악(惡)’으로 용서받을 수 없음을 분명하게 밝힌다. ‘알고 짓는 죄는 그 죄과가 준엄할 것’이다.

고뇌에 찬 결단으로 ‘거룩한 전환’이 있는 감리회를 만들어가자!
공교회를 회복하고, 첫 신앙의 뿌리로 돌아가자!
가슴으로 화답하는 “기독교 대한 감리회”를 일으켜 세우자!
2016년 6월 24일.



전체 2

  • 2016-06-24 23:50

    이런 분들의 목소리가 크게 들려지고 나아가 이런 호소를 들을때면 몸둘 바를 모를만큼 여겨 삶의 수정이 일어날때라야 존 웨슬리 후예라는 말도 식상하지 않을 것이라 여긴다
    이 시대 너무 필요한 무게감 있는 고언이라 생각된 이 글을 읽고 뉘신가 금년 연회록을 찾았더니 어느 지방 목사님이 신 것으로 보인다. 일면식도 없고 이곳 게시판에서 처음 대하는 이름이지만 내용에 있어 공감하는 바가 크다.
    그런 점에서 감리교회 가 진정으로 공교회성을 향해 가고 있는가? 목회자의 자정 능력 회복은 희망적인가? 새삼스럽지도 않은 질문을 다시 던져본다
    만시지탄이긴 하지만 이제라도 이 물음에 대한 실날같은 희망을 주고자 한다면 무얼위해 그토록 지방의 수장, 감리회의 수장이 되려고 세상판보다 더 못하게 적잖은 추태를 벌여가면서까지 연례행사처럼 그러는지 냉정하게 거듭거듭 물어보라!. 아니 그도 부족하면 일년이고 십년이고 그리고 그 이상이라도 무릎으로 주님앞에 독대하여 고뇌하되 목사인 우리 모두는 예외없이 이 시대의 진정 살아있는 양심인지를 묻고 또 물으며 분명한 정체성 재고와 철학의 빈곤에서 비롯된 판세에 뛰어든 들러리가 아닌지를 괘씸이란 말로 듣지말고 액면 그대로 꾸밈없이 포장함 없이 역시 물어보라. 그런 길 아니라도 영혼 하나 돌보기가 만만찮은 작금의 척박한 이 현실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한 길만을 가고자 하는 불특정 다수의 애꿎은 목사들의 마지막 희망마저 거덜내지 않는 미덕이라도 보일순 없는가? 사도행전 당시 사도들이 전한 복음을 도리어 심문했던 종교지도자들-주님은 안중에도 없는-의 처신과 다를바 무엔가?
    돈, 인기, 예우받는 일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길들여지는 한 그런만큼 그렇게 초년 목회 시절 눈물흘리며 부르던 십자가는 온데 간데 없고 타락은 속히 오리라는 부대껴 오는 마음에서 하는 일성이다.


  • 2016-06-25 14:47

    이참에 본부에서 일하시는 목사님들, 연회 감독과 총무들의 연봉도 까 봅시다.
    개 교회의 담임자들과 얼마나 차이가 나느지?
    이런 저런 말들만 풍성한데...한번 까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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