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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받아야 할 목자의 자세

작성자
최세창
작성일
2016-06-29 10:17
조회
1219
1. 시작하는 말

어느 나라나 부흥하고 발전하는 데 중요한 것은 사회 각계각층에 존경할 만한 인물이 많아지는 것이고, 본받고 싶은 인물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훌륭한 인격과 뛰어난 실력을 갖춘 인물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그만큼 더 개인의 인격 성장과 실력 배양에도 큰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저도 어렸을 때에는 존경하는 인물들이 있었고, 본받고 싶은 인물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철이 들면 들수록, 또 그러한 인물들의 이면을 알면 알수록 그만큼 더 많은 실망을 하곤 했습니다.
주 예수님의 종이자 교인들의 목자인 교역자들은 주 예수님을 본받는 자가 되어야 하고, 교인들은 그러한 교역자들을 본받음으로써 세상 사람들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2. 본받아야 할 교역자의 자세

말씀이 심히 혼잡하고 영적 혼란이 극심한 이 말세에, 본받을 만한 교역자를 만나는 것은 정말 큰 복입니다. 바울 사도는 제자인 젊은 디모데에게 교인들이 본받을 만한 주님의 종이자 교인들의 목자로서의 자세에 대해 가르쳤습니다.
첫째, 청년의 정욕을 피하라는 것입니다.
“정욕”의 헬라어 에피튀미아스(ἐπιθυμίας)는 ‘의욕’, ‘간절한 욕망’, ‘열망’ 등 자연적인 인간의 욕구 전체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원래 하나님께서 창조하신바 식욕과 성욕을 비롯한 인간의 본성은 좋은 것으로 살아 나가는 데에 필수적인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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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의 대상과 내용인데, 여기서는 죄악의 욕망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당시의 이교 세계에는 음란한 이성애자들은 물론, 음란한 동성애자들과 양성애자들의 부도덕한 성적 욕망이 팽배했습니다.
이런 죄악의 욕망을 피하라고 한 바울 사도는, 주 예수님을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좋으라고 했습니다.
“의”의 헬라어 디카이오쉬넨(δίκαιοσύνην)은 하나님의 법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마음 및 정신 상태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의로운 사람이란 하나님과 인간에 대해 마땅히 할 일을 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요 성령의 은사로서,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인 인간의 전 인격적인 응답입니다. 전 인격적인 응답이란 인간의 삶, 즉 사고와 의지와 감정 및 행위의 전체가 하나님께 복종적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사랑”의 헬라어 아가펜(ἀγάπην)은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되는 하나님의 사랑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4:10에,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라고 사랑에 대해 간결하면서도 심오한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사랑이란 받을 자격이 없는 상대에게도 상대의 요구대로가 아니라, 진정한 의미에서 상대에게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공로나 선행의 대가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형벌이 마땅한 대가일 수밖에 없는 죄인들에게 화목제로 그 아들을 주신 것이 사랑 중 사랑입니다.
화목제로 주셨다는 말씀에서, 우리는 참된 사랑이란 진리와 정의가 내포되어 있다는 것과, 또한 사랑은 상대의 조건과는 상관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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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스스로 분출하는 본성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놀라운 사랑은 인간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인간은 하나님과 인간을, 더욱이 원수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인간이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는 대상을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있다면, 그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그 마음에 부어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사랑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이 수행해야 할 가장 큰 의무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요, 전 삶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가장 큰 계명 중 하나인 인간을 사랑하는 것과 분리되는 것이 아닙니다. 실상 인간을 사랑하는 것이란 하나님 사랑의 시금석이요, 하나님 사랑의 일환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그 자신이 느끼고 있든지 없든지 상관없이 영적인 면에나 정신적인 면, 또는 육체적인 면에나 물질적인 면에서 결핍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에게 있는 것으로 그들의 결핍을 채워 줌으로써 사랑을 실현해야 합니다.
사랑에 있어서 명심해야 할 사실은 남을 사랑할 조건이 완벽하게 구비된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며, 남을 사랑할 조건이 하나도 없는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가 오는 대로 우리에게 있는 것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인간에게 줄 수 있는 최대의 사랑이란 영생의 주 예수님을 선물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인간을 사랑하면서 자랑이나 공로로 여기면 안 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받았고, 또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우리의 모든 소유와 지체 그리고 생명은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한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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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가 되어야 합니다. 이 놀라운 사랑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는 것입니다.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고 가르쳤는데, 화평이란 죄악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누릴 수가 없습니다. 화평이란 대속의 주 예수님을 믿어 의롭다 하심을 받아야 하고, 사랑의 주님과 연합된 삶을 살아야 누릴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작가로 유명한 지오바니 파피니(Giovanni Papini, 1881-1956)는 허무주의자요 실용주의자요 무신론자요 반기독교도로서 교회를 몹시 핍박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파피니는 죽을병에 걸려 꼼짝 못하게 되었습니다. 백약이 무효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의 어머니에게 “그의 병에는 인육이 제일 좋습니다. 인육을 구해서 먹이면, 어쩌면 그의 병이 나을는지도 모르겠습니다.”라고 일러주었습니다.
파피니의 어머니는 아들이 모르게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내어 요리를 해서 파피니에게 먹였습니다. 그 덕분인지 파피니의 병세가 날로 호전되어 갔습니다. 며칠 뒤, 파피니는 어머니에게 그 고기가 또 먹고 싶다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외출한 틈을 타서 자신의 다른 쪽 허벅지 살을 베어내다가 그만 동맥을 잘랐습니다. 과다 출혈로 정신을 잃고 그 자리에 쓰러져 버렸습니다. 외출에서 돌아온 파피니는 그 끔찍한 장면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죽어 가는 어머니를 품에 안고 통곡했습니다. 통곡 소리에 겨우 정신을 차린 어머니는 사랑하는 아들에게, “아들아, 나는 죄 많은 인간이다. 죄인의 살을 조금 네게 주어 네 목숨을 일시적으로 구했을 뿐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으로 인간의 죄를 사하시고 영생을 얻게 하시려고 십자가에 달려 자신의 몸과 피를 아낌없이 주셨다. 그러니 너는 반드시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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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님을 믿어야 한다.”라고 당부하고 숨을 거뒀습니다.
파피니는 어머니의 유언대로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었습니다. 그 후, 자신의 남은 삶을 「막다른 골목의 사나이」, 「그리스도전」,「떡과 포도주」같은 불후의 명작 등 신앙적인 글로 복음을 전하는 데 바쳤습니다.
둘째, 바울 사도는 제자 교역자인 디모데에게 다툼의 원인인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고 했습니다.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은 이단자들이 교인들을 미혹하기 위해 즐겨 행하는 특징 중 하나입니다.
셋째, 다투지 말고,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라는 것입니다. 입술만의 교육이 아니라, 삶 전체로서의 교육을 잘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영적 지도자란 말이나 행실에 있어서 주 예수님의 도구가 되는 사람입니다.
넷째, 거역하는 자들을 온유함으로 징계하라는 것입니다. 온화하고 부드러운 마음으로 하는 징계의 목적은, 혹 하나님께서 거역하는 자들에게 회개함을 주사 복음의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바라는 것입니다. 또한, 거역하는 자들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 바 되어 그 뜻을 좇게 하실까 하며 바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징계의 목적은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하나님을 등진 모든 인생 발걸음이 멸망으로 이끄는 마귀의 올가미에 걸린 것을 깨닫고, 벗어나 하나님을 향해 발걸음을 돌리고 하나님의 복음을 믿고 복음에 합당하게 살게 하는 것입니다.

3. 맺음말

교인들이 본받아야 할 교역자의 자세는 이기적 또는 죄악의 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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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을 피하고,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는 것입니다. 다툼의 원인인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을 대하여 참고 온화하고 부드럽게 대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는 것입니다.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하나님을 등진 모든 인생 발걸음이 멸망으로 이끄는 마귀의 올가미에 걸린 것을 깨닫고, 벗어나 하나님을 향해 발걸음을 돌리고, 하나님의 복음을 믿고 복음에 합당하게 살도록 온유함으로 징계하는 것입니다.
먼저 주 예수님의 종이자 교인들의 목자인 교역자들이 주 예수님을 본받는 자가 되어야 하고, 교인들은 그러한 교역자들을 본받음으로써 함께 세상 사람들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필자의 www.newrema.com의 저서들: 신약 주석(마-계 8610쪽)/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설교집 22권/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다수의 논문들 HP 010-6889-3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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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6-29 10:18

    (설교의 성경 본문: 디모데후서 2:22-26)

    22또한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 23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이에서 다툼이 나는 줄 앎이라 24마땅히 주의 종은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25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저희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26저희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바 되어 그 뜻을 좇게 하실까 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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