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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와 용서의 강요를 넘어선 폭력

작성자
홍성호
작성일
2017-01-05 20:16
조회
2165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의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삼상 24:6)

사울이 삼천 군사를 이끌고 다윗을 잡으러 왔을 때 다윗과 그 부하들이 굴속에 숨었는데 공교롭게도 사울이 그 굴 속에 쉬러 들어오자 부하들이 하나님이 다윗에게 원수 갚을 기회를 주셨다며 즉시 죽여버리자 합니다. 그 때 다윗은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죽일 수 없다며 부하들을 제지합니다. 사울의 겉옷 자락만 베고는 굴을 벗어나 자기 길을 가는 모습에 뒤따라가는 부하들은 필시 불평 불만을 표시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하들 입장에서 보면 이런 기회가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이나 있었기에 그 때마다 불평 불만은 강도를 더했을 것입니다. 지금 사울을 죽여 버리면 여기 저기 떠돌아 다니지 않아도 되고 사울 대신 왕관 쓰기가 쉬워지는데 왜 그리 하지 않느냐? 옛 정 때문이냐?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는 무슨 용가리 통뼈냐? 왜 그를 죽이면 안되느냐? 다윗의 고집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에 우리는 다윗의 고집을 깊이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죽일(칠) 수 없다는 다윗의 고집이 악용되기 때문입니다.
심각한 분쟁이 있는 교회에서 그 정도가 크든 작든 허물이 있는 담임목사가 다윗의 고백을 변하지 않는 하나님 말씀과 권위의 근거로 내세웁니다. 그리고 오히려 성도들에게 이렇게 큰 소리를 칩니다.

"비록 내가 죄와 허물이 있을지라도 여러분에게 판단받지 않는다.
기름부음받은 종은 오직 하나님께 판단받는다.
그러니 성도 여러분이 하나님의 위치에 이르려 하지 말라!"

스스로 허물을 인정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책임을 지고 물러나지도 않고 어떤 외부적인 압박에도 자신의 지위를 굳건히 고수하는 것이 교회를 평안케 하는 지름길이라고 합니다. 적반하장(賊反荷杖)도 유분수"인데 이런 상식이 교회에서 통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왜 교회는 원칙과 상식에 벗어나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 말씀 그 자체의 귄위와 하나님 말씀을 선포하는 도구로서 목사의 권위가 같은 위치라고 착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 선포의 도구 즉 설교자(메신저)는 하나님 말씀 그 자체의 권위와 동격이 아닙니다. 목사는 하나님 말씀 선포를 독점했고 성도에게 설교 외에도 도전받지 아니할 특권이 있다고 인식하는 권위주의적 태도, 제왕주의의 문제점 때문이지만 하나님은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실 수 있는 분이고 고집센 나귀 입을 통해서 말씀하기도 하셨습니다. 그렇기에 말씀 선포자로서의 권위는 하나님 말씀이 그 입에 주어졌기에 온전한 도구로서 존재하는 것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정결하게 늘 준비되지 못한 도구는 오래 쓰일 수 없습니다. 허물을 스스로 찾지 못할 때 타인을 통해서도 찾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임을 깨달아야 하는데 기름부음 받아 세워진 이스라엘 초대왕 사울은 자신은 왕관과 왕좌, 권력의 욕망에 사로잡혀 있었기에 회개하지 않았고 선지자 사무엘의 책망도 헛수가 되었고 비참한 죽음을 맞았습니다. 블레셋과 평생 전쟁했던 사울은 마지막 전투에서 큰 상처를 입고 자기 칼에 엎드러져 죽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윗을 통해 사울의 인생을 종결하지 않게 하시고 자신 스스로 인생을 종결하게 하신 것이 하나님이 사울에게 취하신 징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다윗의 고백(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죽일 수 없다)으로 돌아가서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은 다윗의 입장에서 이 고백을 받아 들여야지 사울의 입장에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죽일 수 없다는 말씀이 악용되는 것은 고백의 대상이 뒤바뀌었을 경우입니다.

또한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인물이 한 고백을 무조건 하나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성도들의 사업장에 걸려있는 성구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입니다. 수아 사람 빌닷이 욥에게 회개하면 하나님이 이와 같이 하시리라는 권면한 이야기일 뿐입니다. 그 성구가 상황에 적절하게 마음에 든다고 모두 하나님이 말씀인 것이 아닙니다.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의 금하시는 것이니..." 다윗은 자신에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이렇게 확신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의 확신을 모든 대상에게 확대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고 문제가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상식적으로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구할 것은 회개와 자비 그리고 용서입니다. 그런데 가해자가 자신에게 다가올 피해를 면하려 피해자에게 "예수님이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다, 당신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이 아닙니까" 이렇게 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피해자가 원수를 사랑하라 하신 예수님 말씀에 감동되어 당신을 용서한다고 한다면 감동이 되겠지만 가해자가 진정한 회개도 없이 나를 용서하는 것이 당신이 해야할 마땅한 도리라고 한다면 피해자는 용서할 마음을 거두어 들일 수도 있고 가해자를 영원한 원수로 보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죄와 허물이 많은 목사가 "기름부음 받은 종을 쳐서는 안된다, 칠 권리가 없다"고만 주장하는 것은 다수에게 행하는 용서의 강요 또 다른 폭력입니다.

다윗의 손에 죽지 않은 사울은 두 번이나 목숨을 연장받았지만 자신의 목숨이 끊어질 때엔 이방인이 쏜 화살에 중상을 입고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병기 든 자에게 이르되 네 칼을 빼어 나를 찌르라
할례 없는 자들이 와서 나를 찌르고 모욕할까 두려워하노라 하나
병기 든 자가 심히 두려워하여 즐겨 행치 아니하는지라
이에 사울이 자기 칼을 취하고 그 위에 엎드러지매..."

할례 없는 자들에게 죽임당하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겼던 사울이 취할 수 있었던 마지막 선택은 스스로 자기 칼에 엎드러지는 것이었습니다. 기름부음 받은 자가 기름부음 받은 자에 의해 죽지 않고 이방인에게 상처를 입고 스스로 죽는 것은 하나님이 행하신 심판의 한 예입니다. 죄와 허물이 있다면 목사든 성도든, 그 누구든 사울과 같이 비참한 결과를 맞이하지 않도록 지금 내가 처한 자리에게 진실한 회개와 겸손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전체 4

  • 2017-01-06 16:43

    지당하신 목사님의 말씀인것 같습니다.
    성경솎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을 잘 아시는 분들은 절대 그렇지 않을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잘 해석하지 못하는 우매한 몇몇분이 성경을 왜곡해서
    자기주해복음으로 만들어 버리니 오늘날 한국교회가 이지경이 된것이겠지요.


    • 2017-01-09 14:46

      하나님이 자신에게 부여한 권한(기름부음)을 절대화, 불가침 성역화하게 되면 하나님이 명하신 것, 자신이 해야할 마땅히 해할 의무를 등한시 하거나 무시하기까지 하는 경향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스스로 교만의 왕관을 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교만해지라고 그 일을 맡기신 것이 아닙니다. 맡겨주신 일은 하지 않고 완장차고 왕관쓰고 어깨, 목에 힘주기만 한다면 하나님이 맡기신 그 일을 계속 하게 하시겠습니까?


      • 2017-01-09 23:26

        오늘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이득적으로 교묘히 풀어 나간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라도 빼거나 더하지도 말라며 이를 어길시는 성경의 모든재앙과
        생명책에서 이름을 뺀다고 하신 계시의 말씀이 믿어지지 않으신가 보네요.
        간혹 하나님께 망령된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하여 자신의 권한과 교만함을 충족 시켜서
        육체의 모습으로는 승리자의 모습일진 몰라도 영은 하나님의 심판속에서 사명이 정리되는 불행한
        삶이 된다는것은 깨닫지 못함이 인간의 육된 모습일수 밖에 없음을 한탄해야 할것입니다.
        하나님은 분노하기를 더디 하시기에 지금도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의 백성들이 예배때 마다 애통해하며 탄식하는 소리를 벌써 듣으셨으며 죄의종 에게 미혹된 자녀들이
        분별력을 가지고 회개하며 돌아올 때를. 계획하고 계심을 잊지 말아야 할것입니다


  • 2017-01-11 21:20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읽는자는 깨달을 진저)
    그때에 유대에 있는자들은 산으로 도망할 찌어다(마24: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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