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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통해본 감리회 정체성과 갈길.

작성자
민관기
작성일
2017-04-03 15:54
조회
1821
오늘은 제주 43사태, 사건, 항쟁이 일어난 날이다. 우린 이 역사 여행을 통해 무엇을 배워야할까?

제주는 제주 이전 탐라국이엇다. 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하고 토착인을 아내로 다시 맞아 아들들을 낳앗다.
하여, 그 아들들이 왕위를 이을거라 예상햇으나 주몽이 부여시절 유화와의 사이낳은 유리가 부친을 찾아왓다.
다른 아들들은 대안을 찾아야 햇다. 어머니와 아들인 비류와 온조는 남하를 단행햇다.
부친인 주몽에게 인사하며 모친과 저희 형제는 다른 땅으로 이주하여 나라를 따로 세우겟습니다하엿다. 주몽은 축복하며 격려햇다.


또 다른 아들이 잇엇다. 아버님 저도 이주하여 나라를 따로 세우겟습니다. 그래 아들 부디 건강하여 세상을 잘 다스리거라하며 격려하며 아들인 고씨와 양씨와 부씨를 딸려서 이주케 하엿다.



비류온조는 한강유역에 도착하여 십제를 거쳐 백제라 이름한 나라를 건국햇으며, 고양부는 제주로 이동하여 탐라국을 건국햇다. 이 때는 기원전이거나 기원후 바로이다. 유리를 제외한 아들들은 왜 이주를 햇을까?
근래에 잇던 롯데그룹 왕자의난이나 현대그룹 왕자의 난 그리고 조선초기 성계의 아들들간 벌어진 왕자의 난을 피하려는 효심과 형제애를 그르치지 않게하려는 마음이엇을 것이다.



그중 고양부는 다름 형제들이 한강 유역을 다른 부족들이 반도 남부강역 진한 마한 변한으로 원삼국을 이루고 잇어서 뭍에 머무를수 없엇다. 그들은 본래 가지고 잇던 항해술과 조선술을 이용해 먼 바다로 가기로 결정햇다. 그들이 닿은 곳이 지금의 제주도이다.


흔히 고양부는 제주시에 잇는 삼성혈에서 솟아나왓다는 신화가 잇으나 이들은 본디 대륙인의 후손들이다.
고양부는 중앙집권국가를 건설하지 않고 민주적인 부족국가의 형태로 나라를 이끌엇다. 왕정을 이루지 않앗다는 말이고 고양부가 서로 돌아가며 부족의 수장에 오르는 화백회의식 운영을 햇다. 몇 안되는 이들이 서로 대장하겟다고 싸워야 소용없고 이곳으로 이동해 올때의 첫마음을 잊지않고 계승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엇다.
그렇게 1000 여년을 서로 도우며 평화롭게 살앗다. 고유의 문화와 생활을 이어가며..


한편, 탐라는 [담알]이란 말의 변화어이다. 이곳에 담겨진 알족이란 뜻이다. 백록담은 하얗게 올라잇는 한라봉에 담겨진 한라 정상을 의미한다.


그렇게 천여년을 살앗나보다.
대륙과 반도에선 여러가지 일이 일어낫다. 수많은 부족과 나라들의 쟁투와 전쟁 그리고 쿠데타들.
천년이 지나 반도와 대륙은 후삼국을 왕건이 통일하고 고구려의 후신 발해가 태동하여 남북국 시대가 열렷다.
이 때 탐라인들은 결단햇다.


그래 우리가 온곳은 대륙인 고구려이지만 그곳은 너무 멀다. 일단 고구려의 후신을 자처하며 고려가 창건되엇으니 이제는 우리도 따로 살지 말고 같이살자 결의하엿다. 항복이나 복속이 아닌 자진하여 우리는 본디 한 형제들이다. 같이 사는게 어떠니?하며 합병하엿던 것이다. 처음엔 구박하지 않앗으나 탐라가 제주로 호칭이 변경되엇다.
담겨진 알족이 아닌 젖어들어 줄어든 땅이라는 제주로 호칭이 바뀌엇으며 본시 대륙출신이라 말을 잘 다루는 능력이 잇어 말산업을 융성시키고 엄청난 대륙기질의 탐라 여성들은 제주인들은 먹여 살리다시피하며, 조선조에 이르러선 조선정부 불만자들이 제주로 다수 귀양을 들어와 우습게 보이는 제주인과 제주 여성들을 아랫것으로보고
하대하며 별짓을 다햇다.



어째든 제주인들은 다 감내하며 살앗다.
항왜구국성전기엔 남성 제주인들도 뭍으로 공부하러 나가거나 왜로 유학을 가기도하며 민족주의와 사회주의를 습득하며 고향으로 귀환해 각종 교육과 민족활동에 나선다. 이 때 300 여명의 사회주의자들이 양성되엇다.
민족은 피나는 노력을 빛을 보게된 광복을 맞이하여 전 민족은 꿈에 부풀엇다. 허나, 남북이 분단으로 치닺는 위기에 봉착햇다.


이승만은 남쪽만의 단독선거 단독정부 수립을 선포햇다. 대륙인이며 스스로 한민족으로 살자 합처진 제주인들은 능멸감을 느꼇다. 우리가 무슨 마음으로 나라를 대륙과 합하게 되엇는지에 대한 일종의 자괴감이랄까?
사회주의자들은 항전을 준비하여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는 무장투쟁을 벌이기 시작한다. 아마도 고립된 이 제주를 어떻게 하랴 싶은 오판이 작용햇다.


그러타. 그들은 고립되어 잇엇기에 뭍에서 보낸 진압세력에 의해 처절히 죽어갓다. 빨갱이?는 300 여명인데 왜 3만이 죽엇쓰까? 국방군과 경찰 그리고 서북청년단이 동원되엇으며 이는 감리회 장로 이승만과 감리회 권사 조병옥 내부장관에 의해 주도되엇으며 악랄한 짓은 북으로 부터 쫒겨난 서북청년단에 의해 자행되엇다.
인구는 6만인데 반인 3만이 죽엇다. 300명 잡아 족치고 실수로 200 여명 피해로 줄일 수 잇엇는데 참으로 안타깝다.


어재든 제주인의 심정은 우린 다시 헤어져 살 수없다 엿다. 단독 안돼.
제주사건과 대구인민사건, 여순반란사건, 호남일대의 빨치산 활동 등.
김일성이 오판할 토대가 마련되엇다. 여기서 밀고 내려가면 남반부의 인민들이 들고 일어나 조국해방전쟁에 일떠설것이다 엿다. 하지만, 오판. 이미 역량은 거의 소진되어 산속에 숨어든 빨치산 몇과 지하당원들 소수에 불과 하엿다.


제주43으로 감리회 정체성과 갈길을 몇가지 생각해 본다.
1. 왕자의 난을 피해 스스로 이주한 순수를 보자.
2. 돌아가며 세성씨가 부족의 대표을 맞고 화백회의식 국가 운영 통해 같이하는 것이 소통하는 것이 얼마나 길고긴 세월을 인내하여야 하는것인지에 대해서 깨닫자.
3. 그들이 비록 일부 사회주의자가 잇엇지만 통일된 하나의 나라로 살아야 한다는 정신만은 대단히 중요하다 사료된다.
4. 만일 그들이 무장투쟁을 조직하지 않고 정치투쟁 즉,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는 농성이나 이런 행동을 햇더라면 300 여명은 죽거나 투옥되엇을지언정 제주인의 절반이 죽어 나가는 사태는 발생하지 않앗을 것이다.


*. 감리회는 130여년의 역사동안 잠시는 대결과 분립이 잇엇지만 특유의 하나 정신으로 단일교단을 유지하고 잇다.
*. 왕자의 난을 피하기 위한 그들의 결단과 돌아가며 부족장을 역임한 정신에서 우리도 그와 연원한 제도를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예) 3개 신학교 출신들이 총회와 연회의 대표를 번갈아 맡는거 등.
*. 죽음을 맞이하면서도 하나의 조국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은 그들을 추모한다.
*. 제주인을 너무 많이 죽인것에 대한 감리회의 지금 반성이 잇어야 한다. 감리교인이라서 죽인건 아니지만 결정권자와 실행자는 감리인들이엇다. 그리고 감리회인들은 이박사를 비롯한 감리회인들이 잘되는 것(? 권력차지)에 상당히 만족하엿다. (많은 설명 필요함) (교황청의 요한 바오로 2세는 십자군 전쟁시 아르메니아인 20만 학살과 방화 약탈과 강간을 1000년도 지나 회개하고 사죄햇다하여 대성인의 반열에 오름 = 반성 시간은 5분도 안걸림)
*. 폭력적 방법으로 어떤 목표를 이루고자 함은 잘못된 것이다.



당시 제주의 인구 구성은 6만중 산신과 용왕신 숭배 59000 여명, 사회주의자 300 여명, 장로교의 이기풍 목사가 전도한 일부 교인들이 잇엇으며 소수의 천주교인들도 잇엇다. 감리교인은 전혀 없엇다 보면 된다.


참고로, 감리회에서 목회자가 처음 제주에 간건 625전쟁중 흥남에서 남하한 피란민들을 이끈 도인권 목사가 잇다.
도목사는 상해임정과 독립군 장교 활동을 한 독립유공자이며, 향후 제주를 떠나선 대전감신의 건립에 참여햇다.




평안.



전체 5

  • 2017-04-03 20:51

    화산도1-12권을 보면 정부는 43사건은 완전히 발갱이와 북한지령으로 일어난 반란사건으로 제주도민전체를 죽이려했다는 겁니다.제주도민과 유가족들에 대한 위로의 국가정책적 돌봄이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이승만대통령과 조병욱내무장관이 감리교인이라면 기독교대한감리회는 제주도43사건에대한 사과와 통회의행사나 혹은 제주도에 대한 특별....그만해야겠네요^^

    우쨌던 민목사님의 역사적으로 본 제주도43사건을 잘봤어요.감사.


    • 2017-04-03 21:48

      문제는 더 늦기전에 지금해야 한다는..
      나쁜일한거에 대한 사죄 반성 먼저..
      다음으로 이런 좋은거 합시다로 가야 한다고 봅니다.
      이 장롯님.


    • 2017-04-03 21:59

      그렇다고 뭐 반 살려주셔서 감사해요 할 수는 업짜나요(없잖아요)


  • 2017-04-03 16:04

    좋은글에 감사. 근데 왜 받침ㅆ을 ㅅ으로 쓰나요? 혹 일부러?


  • 2017-04-03 16:09

    있다의 ㅆ은 존재한다는 뜻이고,
    잇다의 ㅅ은 이어지게하다라는 의미에요.
    존재하는 것은 이어졋기에 존재하게된 것이므로 잇다가 본디 말에 더 가깝게 보여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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