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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작성자
최세창
작성일
2018-12-03 22:58
조회
424
1. 시작하는 말

평화롭던 가정의 남편이 실직한 후에 마음의 평안을 잃게 되고, 벌이를 위해 바깥 생활을 하는 아내를 의심하는 의처증이 생겨서 구타하며 괴롭히다가 결국 아내를 살해하는 사건이 벌어지곤 했습니다. 평화롭던 가정이 생지옥이 되고 풍비박산이 된 것입니다.
인간관계 중에 가장 끊어지기 어려운 혈연관계인 가정조차도 평온과 평화가 지속되기가 쉽지 않고, 어느 순간에 불화와 분쟁의 생지옥이 되는 것입니다. 우애가 두터워서 평화롭던 형제자매도, 결혼한 다음에는 달라지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개인과 개인, 집단과 집단 사이의 평화나, 국가와 국가 사이의 평화 분위기나 평화 조약에 경각심이 없이 도취되지 말아야 합니다.

2. 세상이 주는 평화와 다른, 주님이 주시는 평화

주님은 구원을 위한 십자가를 지실 때가 가까워지자, 제자들에게 평안을 끼치신다고 하셨습니다. 평안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주님의 평화는, 사람들이 추구하는 돈이나 권력, 지식이나 명예, 죄악의 성취나 죄악의 낙, 이념이나 사상, 종교나 도덕 등으로 얻고 누리는 평화가 아닙니다. 그런 것들은 마음을 근심과 걱정, 불안과 초조, 시기와 질투, 우월감과 교만, 열등감과 자괴심으로 채우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은 마음을 괴롭히고, 반목과 싸움을 부추기면서 지옥으로 끄는 죄의 사함과 성결한 삶과 영생을 누리게 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죄로 인한 수치심과 죽음과 멸망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심화시킵니다.
세상이 주는 마음의 평안이나 인간과 인간 사이의 평화나 집단과 집단 간의 화평이나 국가와 국가 간의 평화는, 여건이 달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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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나 이해관계가 상충되면 근심과 불안과 두려움으로 바뀌고, 반목과 분쟁과 전쟁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세상적인 평화는 외적이고 가변적이며 일시적인 것입니다. 게다가 평화 조약을 맺어도 군사력과 경제력과 외교력과 지력 등의 국력이 뒷받침 되지 못하면 평화를 누리지 못합니다. 역사를 보면, 국가와 국가 간의 평화 조약치고 안 깨진 것이 없습니다.
세상이 주는 개인의 평안이나 가정의 평화도, 누릴 정신력과 외적 힘이 없으면 유지될 수 없습니다. 이 평안이나 평화는 생각의 현격한 차이나 육체적 폭력이나 정신적 폭력 등으로 깨지면서 반목과 분쟁이 되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가난입니다. 아무리 평화로운 가정도, 떳떳하게 실력을 발휘하면서 돈을 버는 가족이 없으면 그 평화가 지속될 수 없습니다. 몇 년씩이나 일자리를 찾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이 평안할 리가 없고, 그 가정이 평화로울 리가 없습니다.
남미 최고의 부유국으로 평가받다가 과도한 복지 정책과 무상 복지 정책 등의 좌파 포플리즘 정책을 편 베네수엘라는 결국 경제 파탄 상황이 되었습니다. 물가는 올해 기준으로 83만%나 치솟았습니다. 국민 대다수가 쓰레기 더미 속에서 먹을 것을 찾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평안하겠습니까, 그들의 가정이 평화롭겠습니까, 그 나라가 평화롭겠습니까?
그러므로 기업인들이 알든지 모르든지 간에, 기업 경영은 그 자체로 소극적 사랑이 되는 것이고, 기업 경영을 잘해서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것은 얻은 자들의 마음의 평안과 가정의 평화에 기여하는 사랑입니다. 게다가 대기업에 의거해서 중소기업은 물론, 각양각색의 상권이 형성되어 뭇사람이 평안히 먹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기업 경영을 갑질로만 알면 안 됩니다. 괜찮은 일자리 제공은 수천만 원의 구제와는 비교가 안 되는 큰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최상의 마음의 평안과 최상의 가정의 평화, 그리고 먹고 마시고 즐길 것이 풍성한 에덴동산을 다스리는 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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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은 사람은 아담과 하와입니다. 이 아담과 하와 부부는 마귀의 유혹에 넘어간 죄로 인해 마음이 수치와 두려움으로 바뀌고, 반목과 책임 전가를 하는 부부로 바뀌었습니다. 그 마귀가 집권자들을 유혹하여 국가까지 혼란과 혼돈과 환난의 소용돌이로 몰아가는 것입니다. 그 대책에 대해 베드로전서 5:8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라고 했습니다. 야고보서 4:7에는,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것이자 주님이 주시는 평안 또는 평화를 누리기 위해 전제되는 것이 있습니다. 루터(M. Luther)는 “근본적으로 먼저 죄를 용서받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이유는 율법이 죄 때문에 양심을 비난하고 두렵게 만들기 때문이다.”라고 주석했습니다. 주님의 평화를 얻고 누리려면, 인류를 위해 대속 제물이 되신 주님을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로마서 5:1을 보면,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라고 했습니다. 이 화평 곧 평화는 내적이며 영적이며 영원한 것입니다.
툭하면 술에 취해서 때리는 남편에게 맞는 생지옥 같은 가정생활에 지친 한 아주머니가, 전도를 받아 생전 처음 교회를 나왔습니다. 안타까워하며 그 가정의 평화를 위해 기도를 해 오던 담임 목사님이, 얼마가 지난 다음에 궁금해서 물었습니다. “그래, 교회를 다니니까 어때요?” 밝은 표정으로 빙그레 웃으면서 한 아주머니의 말이 걸작입니다. “교회만 나오면요 너무너무 마음이 평안하고 은혜로워서 소르르 잠이 와요.”
피로나 출장의 시차로 졸 수는 있지만, 그녀의 경우는 좀…그래도 교회에 나오면서 잠시라도 평안을 누린다니 감사한 일입니다.
354년에 북아프리카의 타카스테에서 태어난 성 어거스틴(St. Augustine)은 믿음이 좋은 어머니인 모니카의 사랑을 받으면서 자라났지만, 하나님을 애써 외면하고 16세에 여자와 동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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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서 아들을 낳았을 정도로 젊은 시절을 방탕과 혼돈 속에서 살았습니다. 19세에는 키케로의 철학에 심취하였고, 마니교에 9년 동안이나 빠져 있었으며, 플라톤의 철학에도 심취했습니다.
384년 밀라노로 건너가게 되면서 암브로우스 주교를 만나고 그의 설교를 통해 은혜를 받은 것이 하나님을 다시 바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386년에 회심하였고, 397년에 히포의 주교가 되었습니다. 3년간 「참회록」을 집필했습니다.
그 성 어거스틴(St. Augustine)의 고백입니다. “아버지여, 내 영혼이 아버지의 품안에서 쉼을 얻기까지 내게 평안이 없나이다.”
방탕한 지성인이었다가 회개한 어거스틴에게 주신 평안이 사람과 사람, 국가와 국가의 평화의 근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반즈(A. Barnes)는 주님이 주시는 주님의 평안에 대해, “영혼의 모든 소원을 충족시키고, 양심의 경고를 잠잠케 하고, 모든 외적인 변화 한가운데서도 확고하게 하며 안정되게 하고, 죽음의 때는 물론 영원토록 지속될 것이다.”라고 주석했습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은 개인과 국가를 포함하는 인류의 죄를 사하시고, 성결한 삶을 살게 하시고,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게 하시려고 대속 제물이 되시고, 부활‧승천하셔서 아버지께로 가셨다가 성령으로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아무리 극심한 근심거리가 있거나 두려운 것이 있어도, 믿을 데가 있는 사람은 근심하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습니다. 가장 큰 근심과 두려움은 죽음인데, 영생의 주님을 믿는 우리야 죽으면 천국밖에 더 가겠습니까?
또, 주님은 제자들이 자신을 사랑했다면, 성육된 자신보다 더 크신 아버지께로 가는 것을 기뻐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일 곧 십자가와 부활‧승천과 성령으로 다시 오시는 일이 이루기 전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는 목적은, 그 일이 이뤄질 때에 제자들로 믿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일어날 중대한 일들을 예고하신 주님은, “이 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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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희와 말을 많이 하지 아니하리니 이 세상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저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 임금인 마귀는 결정적으로 가룟 유다를 이용하여 주님의 죽음을 획책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주님이 세상의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 못박히시자 오히려 당한 것을 알고, 교권자들을 비롯한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십자가에서 내려오도록 유혹하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일을 주님이 미리 아셨으므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는 자신의 일에 사단은 아무 관계가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아버지만이 관계된 주님의 자의적인 일입니다. 주님이 뭐라고 하셨습니까? “오직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아버지의 명하신 대로 행하는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 일어나라 여기를 떠나자”

3. 맺음말

누구나 마음의 평안과 가정의 평화와 직장의 평화를 원하고, 어느 민족이나 국가나 평화를 원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주시는 주님의 평안과 평화에 대해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세상이 개인과 단체와 국가에게 주는 평안과 평화는, 환경이 바뀌거나 국제 정세가 달라지거나 이해관계가 상충되면 언제라도 반목과 분쟁으로 바뀌는 일시적이고 가변적이며 외적인 것입니다. 그나마도 평안과 평화를 누릴 힘이 없으면 누리지도 못합니다.
영원불변하신 사랑의 하나님의 성육이시고, 화목 제물이 되시는 주님이 주시는 주님의 것인 평화는 세상적인 평화의 문제를 해결할 뿐만 아니라, 영원히 누릴 수 있는 내적이고 영적이며 영원한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평안합니까?


(설교의 성경 본문: 요한복음 14:27-31)

27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28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온다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나니 나를 사랑하였더면 나의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니라 29이제 일이 이루기 전에 너희에게 말한 것은 일이 이룰 때에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30이 후에는 내가 너희와 말을 많이 하지 아니하리니 이 세상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저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 31오직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아버지의 명하신 대로 행하는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 일어나라 여기를 떠나자 하시니라

필자의 newrema.com의 저서들: 신약 전체 주석/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설교집 26권/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다수의 논문들 HP 010 6889-3051



전체 2

  • 2018-12-04 09:25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세상이 주는 평안은 없는것 같습니다 인류역사는 끊임없는 전쟁과 다툼 뿐이었습니다
    언제나 귀한말씀 주시니 감사합니다


    • 2018-12-04 11:44

      필자의 설교를 귀한 말씀으로 여겨 공감하시고, 특히 더 공감하시는 부분을 적시하시고, 관련하여 좋은 의견을 피력하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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