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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회 망신(妄信)

작성자
함창석
작성일
2018-12-11 11:36
조회
674
망신(妄信)

산돌 함창석 장로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오.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인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나더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마다 들어가리라.’고 하신 말씀에 대한 자신의 믿음으로부터 표현된 것이다.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다시 번역하면 그런 믿음으로 자신이 구원받을 수 있겠습니까? 이다.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입으로만 고백하는 믿음이 결여된 자에 대해서 극한 가난에 처한 형제, 자매의 예를 들면서 믿음의 가식성을 지적하고 있다. ‘평안히 가라.’ 는 히브리어 ‘레쿠 레샬롬’에서 유래된 말로 유대인들이 해질 때 사용하는 통례적인 인사법이다.

‘더웁게 하라.’ qermaivnesqe(데르마이네스데)는 '알아서 스스로 더웁게 하라'는 말이다. ‘배부르게 하라.’ cortavzesqe(코르타제스데)는 방목하는 짐승에게 실컷 꼴을 먹인다는 뜻이다.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라고 위선적인 믿음을 가진 자들을 지적한다.

입으로만 형제를 위하는 척 하는 믿음은 외식 적인 죽은 믿음에 불과하다. 스스로 자기 자신에 대하여 란 뜻으로 믿음의 사망이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멸망하는 것임을 나타낸다. 바울은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라고 말한다.

아담과 하와로부터 지은 죄에서 예수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에게 믿음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행함은 믿음으로 온 열매이다. 야고보는 믿음을 행함으로 보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만일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행함이 없는 자에게 믿음을 어떤 방법으로 보일 수 있는지에 대해서 묻고 있다.

하나님이 한 분이신 것은 사실이며 야고보도 여기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은 귀신들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 사실을 믿고 있다는 것만으로 구원을 받을 수는 없는 것이다. 지금도 유태인들은 중보자 되시는 예수그리스도는 믿지 않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믿고 있다.

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 알고자 하느냐? ‘알고자 하느냐?’는 표현은 논쟁의 새로운 국면으로 전개하고 있다. ‘허탄한’, ‘헛된, 텅 빈’사람을 가리킨다. 예수께서는 ‘무익한’ 말은 심판 날에 심문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다. 복음을 믿지 않는 영적으로 어리석은 사람을 말한다.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의 경우 행함과 믿음이 믿음과 행함이 일치되어 온전케 된 것을 설명. 즉 ‘행함 없는 믿음도 안 되지만, 믿음 없는 행함도’ 무익하다. ‘온전케 되었느니라.’, ‘완성하다, 마치다.’로 믿음의 완성을 뜻한다.

아브라함의 행함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된다. 예수그리스도께서도 하나님께 순종하심으로 구속의 사역을 완수하셨다. 그러므로 야고보가 말하는 행함은 믿음 없는 선행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의 역사인 복음 즉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을 뜻하고 있는 것이다.

야고보는 아브라함 외에 이방인이었던 기생을 등장시킴으로 믿음을 가진 구체적인 행동으로 지금까지의 논리를 확증하고자.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라합은 이방인이었고 기생이었지만 하나님 편에서 결정적일 때 자신의 민족을 도운 여인으로 이해하니 야고보의 이 말에 반박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영혼과 몸’, ‘행함과 믿음’은 떨어질 수 없다. 만일 떨어졌다면 바로 그것이 죽은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로서 야고보는 입으로만 주님을 고백하고 따르는 공허한 헛된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분명히 믿음은 그에 따르는 행함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며 행함 있는 믿음의 결단을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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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2-11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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