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가 희망입니다.
해마다 6월 첫째 주를 앞둔 한 주간을 평신도 기도주간으로 보내고 난 뒤 평신도주일을 지키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는 기도주간이 되고, 간증을 함께 나누며 기쁨의 찬양을 드리는 평신도주일이 되시길 바랍니다. 특별히 올해는 오랫동안 코로나 팬데믹으로 힘들었던 상황이 일상회복단계로 접어들어 다시 일어서는 시기를 맞고 있습니다. 올해 평신도주일은 함께 간증을 나누며 서로에게 희망이 되어 주고, 감리교회 평신도가 ‘희망’임을 확인하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정결한 마음, 정직한 영성회복”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이어지는 평신도주일의 주제입니다. 1748년 페로네 목사에게 보낸 편지에서 존 웨슬리는 “종교는 부정(否定)이나 무상해주의(無傷害主義)로 성립된 것도 아니요 형식이나 덕행이나 은혜 받는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나 경건한 행동이나 자선사업으로 성립된 것도 아니다. 종교는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는 것이요, 하나님의 형상을 그 마음에 인치는 것이요, 하나님의 평화가 있는 내부적 의(義)요, 또 ‘성령 안에 있는 기쁨’ 이다.”라고 썼습니다. 정결한 마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진정한 희망은 정결한 마음을 가질 때 비로서 품을 수 있습니다. 서로에게 희망이 되려면 우리 자신이 먼저 희망이 되어야 합니다. 서로에게 희망이 보이는 거울이 되어 주어야 합니다.
“평신도!” 목회자와 성도를 구별하기 위한 용어로 헬라어인 ‘라이코스’를 클레멘트가 사용했고, 중세시대에 교권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었던 단어라고 합니다. 최근에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 사람’, ‘예수님 안에서 형제와 자매가 된 사람들을 의미하는 ’성도‘를 사용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만큼 평신도가 중요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감리교회를 시작한 존 웨슬리는 평신도에게 설교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등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역할을 부여할 정도로 평신도와의 협력을 중요하게 다루었습니다. 평신도들의 사역과 참여가 없었으면 초기 감리교회 운동의 발전과 확산은 불가능했을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감리교회의 역사는 평신도와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1930년 한국감리교회가 자치시대를 열었을 때 미국감리교회보다 앞선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모든 의회를 구성함에 있어 목회자와 평신도를 동수로 한다는 규정이었습니다. 한국감리교회는 존 웨슬리의 신앙정신을 시작부터 구현하고 발전시켜 왔습니다.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에서 한국감리교회 평신도의 역할을 뺄 수가 없습니다. 이 땅에 성경이 처음 전해졌을 때 주체적으로 복음을 수용하고 교회 설립의 주역이 된 것은 평신도였습니다. 일제강점기에도 신앙으로 민족계몽을 이끌었고, 민족의 수난 현장에 십자가의 신앙으로 동참하며 민족문화와 역사 전통을 지키는 활동에도 적극 참여하였고, 교회 분열의 시련 속에서 ‘하나 된 감리교회의 전통’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하며 교회부흥과 사회갱신에 앞장서는 실천신앙의 모범이었습니다. 한국감리교회의 평신도는 혼탁하고 어려운 시대 한 복판에서 정결한 마음, 정직한 영성으로 희망이 되었습니다. 1979년 평신도주일을 제정한 것은 평신도사역의 전문화와 평신도를 통한 부흥과 사회구원을 향한 소망 때문이었습니다. 이 사회에 평신도가 희망임을 보여주는 믿음의 결단을 하는 주일이 평신도주일인 것입니다. 복음전도자와 부흥운동의 주역이 되어 사회 속에서 사랑의 봉사를 실천하는 데 앞장섬으로써, 감리교회가 영국사회를 개혁하며 든든히 서가게 하였던 것처럼 우리 사회에 ‘그리스도의 능력’을 보여주는 평신도, ‘다양성 속의 일치’를 위한 밀알이 되는 평신도로 자리매김하여 서로 간증하며 하나님을 찬양하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