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봄맞이
감독회장 이 철
여전히 힘든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어김없이 봄은 찾아옵니다. 새 절기는 희망을 품게 합니다. 감리회 모든 가족에게 봄의 축복과 은혜가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3월입니다. 삼일절이 있는 달이자 사순절기입니다. 3‧1운동이 일어났던 1919년은 한반도에 기독교 복음이 전해진 지 30년 조금 넘은 초창기였습니다. 당시 기독교인의 숫자는 전체 인구의 약 1% 정도였습니다. 그럼에도 기독교는 3‧1운동의 모든 과정에서 주도적이고 핵심적인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교회가 들어간 곳에서는 어김없이 만세운동이 일어났다.”는 선교사의 보고도 있습니다. 교회 종소리는 믿는 자든 믿지 않는 자든 모두에게 만세 부르러 교회에 나오라는 신호가 될 정도였습니다. 교회와 기독교학교는 3‧1운동의 요람이고 거점이었습니다. 3‧1운동 이후 기독교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바뀌었습니다. 교회가 부흥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라와 민족도 달라졌습니다. 그 이유는 기독교인들에게 3‧1운동은 정치운동이 아니라 신앙고백을 바탕으로 한 신앙운동이었기 때문입니다.
3‧1운동의 실질적 대표였던 이승훈 장로는 “민족자결은 천제(하나님)의 혜택으로 되는 것”이라고 했고, 신흥식 목사는 “조선도 하나님의 의사로 독립국이 되리라고 믿고 가담했다.”고 했습니다. 신석구 목사는 천도교와 연합하는 것이 불편했고, 목회자가 정치적 운동에 참여하는 것이 타당한지 고민했지만 기도응답으로 참여하였고, 체포된 후 심문을 받을 때도 ‘상제(하나님)의 명령이었다’고 참여 이유를 진술했습니다. 3‧1운동 당시 서울에 뿌린 <독립단 통고문>을 보면 “일본인을 모욕하지 말 것, 돌을 던지거나 주먹으로 치는 등의 폭력을 사용하지 말 것, 매일 기도와 성경 묵상을 통해 신앙투쟁으로 전개할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3‧1운동의 근본이 신앙고백으로 결단한 신앙운동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대한제국이 대한민국이 되게 한 3‧1운동, 우리 역사에서 절대 잊을 수 없는 나라와 민족의 암울한 시기에 ‘봄’을 가져다준 신앙운동이었습니다.
코로나19 시대, 전 세계가 새로운 질서를 찾을 수밖에 없는 지금, 위기라고 할 수밖에 없는 지금. 3‧1운동 당시 ‘봄’을 가져다준 그 신앙고백과 신앙운동이 필요합니다. 봄을 맞는다는 것, 그것은 달리 말하면 겨울을 떨쳐버리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봄맞이는 사순절기부터 시작됩니다. 사순절기를 지키는 생활의 기본 덕목은 전통적으로 ‘기도’와 ‘자선(나눔)’입니다. 세례의 의미를 되돌아보며 세속의 것을 끊어버리고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이웃을 돌아보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시기입니다. 민족의 현실을 아파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신앙고백에 따라 행동했던 믿음의 선진들에게서 오늘의 어려움을 떨쳐버리고 이겨내는 지혜를 배웁니다. “하나님이 있다면 왜 이런 일이?” “교회가 왜 저러냐?” 하는 비난과 “이 눈이 어찌 다시 좋은 일을 보겠습니까?(욥 7:7)”라는 욥의 탄식을 넘어서는 ‘봄’을 맞이하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