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예수 오심을 기다리며
아기 예수 오심을 기다리는 모든 감리교인 위에 성탄의 기쁨이 충만 하기를 기도합니다. 강림절은 아기 예수가 오시기를 기다리는 기대와 설렘의 절기입니다.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정결함을 옷 입어 아기예수를 영접할 준비를 하는 절기이며, 그분이 우리 삶에 변화를 가져와주시기를 소망하는 절기이기도 합니다. 복된 강림절을 맞이하는 여러분과 함께 그 의미를 되새기며 나누고 싶은 것들이 있습니다.
첫째, 기다림입니다. 기다림은 참을성 없는 세대가 잃어버린 소중한 가치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참을성이 없습니까. ‘빨리빨리’는 세계 공용어라고 할 정도로 전 세계 어디에서나 들을 수 있습니다. 심지어 비행기를 타러 갈 때에도 한국 사람들은 뛰어간다고 합니다. 문자나 카톡을 보내놓고는 조바심이 나서 화면을 수십 번씩 들여다보며 즉각적으로 답이 오기를 원합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 빛의 속도로 응답이 오지 않으면, 견디지를 못합니다. 하나님의 응답이 올 때까지 인내하며 기다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번 강림절 기간에,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훈련을 해보면 어떨까요?
둘째, 내려놓음입니다. 아기 예수는 높고 화려한 궁궐이 아니라, 가축우리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말구유에 누우신 아기 예수는 하나님 나라의 영화와 권세를 모두 내려놓으셨습니다. 우리는 이 권세를 갖겠다며 사나운 욕심과 욕망에 사로잡혀 집착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 권세를 차지하기 위한 시기와 다툼, 갈등과 폭력이 얼마나 대단합니까? 하나님의 본체이시나 오히려 자기를 비워 인간으로 오신 아기 예수 앞에 부질없는 욕심과 집착을 내려놓으면 어떨까요?
셋째, 낮아짐입니다. 높고 높은 하늘 보좌 버리시고 낮고 낮은 이 땅에 찾아오신 예수님의 낮아짐은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얼마나 교만하며 오만방자하게 살고 있습니까? 예수님의 이름으로 더 좋은 집, 더 좋은 차, 더 높은 권세를 차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의 삶은 비천했고, 경멸과 조롱, 무시가 따랐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의 아픔을 품에 안고 나의 구세주가 되실 수 있었습니다. 이 강림절에 예수님의 삶을 묵상하며 그분의 낮아짐을 배우면 어떨까요?
감리회 6,500교회, 150만 성도 모두 행복한 성탄을 맞이하기를 바랍니다. 또한 주변에 어려움과 고통 중에 있는 이들이 없는지 살펴, 그들과 함께 이 기쁨을 나누는 성탄절을 보내기를 소망합니다. 북녘 땅은 얼마나 추울까요? 폭압적 정권 아래 고통받는 동포들을 위해 기도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남과 북의 동포들이 손에 손을 잡고 성탄 축하예배를 드리는 그날을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