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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가 이런 자(아이들의 순수? 단순? 겸손? 순종?)의 것이…받들지?…(막 10:14-15)

작성자
최세창
작성일
2016-04-29 10:29
조회
643
그러나 아이들에 대한 예수님의 태도는 전혀 달랐다. 이 점에 대해, 마가는 【14】[예수께서 보시고 분히 여겨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라고 하였다.
제자들이 자기들 나름대로 스승을 위한답시고 하는 일을 보신 예수님은 오히려 분개하셨다. 예수님의 분노는 제자들의 영적 우둔과 “아이들과 아이들을 데려온 자들에 대한 깊고도 부드러운 사랑 때문이었다”(W. Hendriksen).
우리가 생각하는 주님의 뜻과 주님 자신의 뜻이 다를 때가 많으므로, 기도와 말씀을 통해 신령한 지혜와 지식의 은사를 받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주님의 뜻은 ‘우선적으로 어떻게 사랑을 실천할 것인가’에 집중되었고, 반면에 제자들의 뜻은 ‘우선적으로 어떻게 자신들의 이기적 욕심이나 이성적 판단을 실천할 것인가’에 집중되었다.
예수님이 분개하여 하신 말씀, 즉 [어린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는 제자들의 당치 않은 짓을 강력히 제지하시는 것이다. 그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하나님의 나라]가 어린아이와 같은 자의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나라(1:15의 주석을 보라.)가 이런 자] 곧 어린아이와 같은 자[의 것이니라]고 하신 예수님이, 어린아이의 어떤 요소들을 염두에 두셨는가에 대해 (1) 천진난만, 솔직, 단순, 자연스러움이라는 설(黑崎幸吉), (2) 순결, 겸손, 신뢰 또는 신앙이라는 설(이상근), (3) 천진성, 단순성, 솔직, 겸허, 허약성, 신뢰성이라는 설(마경일), (4) 힘이 약하거나 없는 것이라는 설(山口 昇), (5) 겸손, 순종, 신뢰, 악의와 원한을 오래 기억하지 않는 것이라는 설(W. Barclay), (6) 받아들임, 신뢰, 실행력이라는 설(A. E. Sanner), (7) 받드는 것, 의지하는 것이라는 설(W. W. Wessel), (8) 단순하게 신앙으로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설(米田豊), (9) 낮춤이라기보다 신뢰라는 설(R. A. Cole), (10) 온순, 겸손, 의존, 종속이라는 설(E. P. Gould), (11) 의존, 받아들임이라는 설(F. C. Grant), (12) 신뢰, 받아들임, 낮춤이라는 설(J. Gnilka, 하권, p. 111) 등이 있다.
학자들이 내세우는 요소들이 부분적으로 겹치는 것이 많으므로 종합적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단, 천국과 관련된 것이므로 아이들의 공로나 덕성 또는 장점으로 여겨지는 요소들은 배제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아이들의 특징 중에서 신뢰(신앙), 단순성, 허약성, 무력성, 받아들임 등을 염두에 두신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닐카(J. Gnilka, 하권, p. 111)는 그러한 요소들을 다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그럴듯한 설명을 하고 있다. “하느님의 나라는 은총이며 하느님이 인간에게 주시려는 선물이다. 당시의 일반적인 판단에 의하면, 율법을 모르는 어린이는 토라에 있어서나 하느님 앞에서 아무 공적도 세울 수 없었다(Billerbeck. I, 786; Jub. 23, 26). 하느님의 나라를 바로 이런 어린이들에게 약속함으로써 예수는 가부장적인 사회에 팽배해 있던 신학적 공적 사상을 공격하고, 하느님을 깊은 신뢰 가운데 아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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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라 부르며 하느님의 선물을 받을 수 있는 어린이의 능력을 중요한 것으로 선언한다.”
설사 그러한 요소마저 갖추지 못한 어린이의 경우도 별로 다를 바 없다. 이 점에 대해, 칼빈(J. Calvin)은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거룩한 욕망 때문에 자발적으로 오는 자들과 믿음에 의해 온 자들만 받아들이시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은혜가 얼마나 필요한가를 인식할 만큼 충분한 나이가 안 된 자들도 받아들이신다는 것을 가르치신다. 이 아이들은 자기들이 그리스도의 축복을 구해야만 한다는 것도 이해하지 못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유아 세례가 거부되어서는 안 된다.① 칼빈(J. Calvin)은 주로 이 이야기를 재세례파의 견해에 반대하여, 유아 세례를 입증해 주는 논증으로 이용하였다. 벵겔(J. A. Bengel)도 “만일 그들이 세례받기를 원했다면, 그는 의심할 바 없이 그들에게 세례를 허락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예수님이 14절을 받아, 이를 이중 부정법을 사용하여 반복 강조하신 것에 대해, 마가는 【15】[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라고 하였다.
[진실로]는 3:28의 주석을 보라.
[받들지 않는]은 메 덱세타이(μὴ δέξηται)이며, ‘받아들이지 않는’이라는 뜻이다.
이 구절은 문법적으로 보면, 어린아이를 영접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영접하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는 뜻으로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전후 문맥상 그리고 그와 비슷한 마태복음 11:25, 18:13(참조: 요 3:3, 5)을 보아, 앞에서 밝힌 요소들을 지닌 어린아이가 자기에게 주어지는 어떤 것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자는 결단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뜻으로 보아야 한다. 이러한 이해는 “천국을 받아들이는 것과 들어가는 것에 관해 말하고, 천국을 세우거나 혹은 탈취하는 것에 관해서는 말하지 않는 것을 보아 더욱 확실해진다. 천국은 인간의 힘으로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다. 인간은 아무리 해도 천국을 받을 자격을 갖출 수 없기 때문에, 단순히 천국을 받아들여야 할 뿐이다”(Rawlinson, p. 137).②
인간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길은 거기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선물로 주어지는 것임을 단순히 믿고 받아들임으로써만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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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서와 주해서에서 인용할 경우 저자의 이름만 밝혔고, 같은 견해를 가진 학자가 네 명 이하일 경우 본문의 괄호 속에 이름만 밝혔음.
1) J. Gnilka, 하권, p. 111: Cullmann*, Jeremias*는 14절 후반의 “금하지 말라”의 동사(κωλύειν)가 행 8:36, 10:47, 11:17에서 세례 의식과 관련하여 나오고, 초기 교회에서는 세례 청원자가 세례받지 못하도록 막아야 할 사유가 있는지 검토되었으므로 전통이 확정된 무렵에 유아 세례가 현실적인 문제였다고 생각하나, 그처럼 이른 시기에 이런 문제가 있었으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2) in W. W. Wessel.

출처: 최세창, 마가복음(서울: 글벗사, 2006, 3판 1쇄), pp. 438-441.

필자의 newrema.com의 저서들: 신약 전체 주석/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설교집 24권/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다수의 논문들 HP 010-6889-3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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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2

  • 2016-04-29 15:32

    우리가 생각하는 주님의 뜻과 주님 자신의 뜻이 다를 때가 많으므로, 기도와 말씀을 통해 신령한 지혜와 지식의 은사를 받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주님의 뜻은 ‘우선적으로 어떻게 사랑을 실천할 것인가’에 집중되었고, 반면에 제자들의 뜻은 ‘우선적으로 어떻게 자신들의 이기적 욕심이나 이성적 판단을 실천할 것인가’에 집중되었다. 천진성, 단순성, 솔직, 겸허, 허약성, 신뢰성이라는 설(마경일), 마경일 고향교회 목사님의 글을 대하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어린이주일을 앞두고 귀한 말씀 주셔서 감사합니다.........!


  • 2016-04-30 15:33

    김정효 장로님, 필자의 주석에 공감하시고, 보다 더 공감되는 부분을 적시하시고, 의견을 표하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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