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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해‧중요 성구 18회(마 5:14-15)…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작성자
최세창
작성일
2016-09-16 11:40
조회
1145
다음으로. 예수님이 제자들을 빛으로 묘사하신 사실에 대해서, 마태는 【14】[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라고 하였다.
[세상]은 코스무(κόσμου)이며 ‘우주’ 또는 ‘세상’(요 1:9, 10, 롬 1:20, 딤전 6:7, 히 9:26, 요일 4:1), ‘모든 인간’(마 5:14, 눅 12:30, 요 1:29, 3:17), ‘하나님을 떠난 인간’ 또는 ‘하나님과 대립되는 불신앙적인 삶’(요 3:16, 8:23, 18:36, 고전 1:20, 엡 2:2, 벧전 5:9, 벧후 2:5, 요일 3:13, 4:5) 등을 의미한다. 이 외에 ‘단장’, ‘화장’, ‘꾸밈’(벧전 3:4) 등의 뜻도 있다.
성경에서 [빛](포스, φώς)은 하나님(요일 1:5) 또는 그리스도(요 8:12) 및 기독교인을 가리키는 것이다.
{하나님은 빛이시라(ὁ θεὸς φώς ἐστιν)는 표현에 대해 불트만(R. Bultmann)은 “…그 문장은 하느님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말해 주고 있다. 구약성서와 유다교, 그리고 또한 희랍 사상과 영지주의에 있어서도 하느님, 하느님의 본질, 신적인 것의 영역 등을 빛으로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형태는 모두 다르더라도 그 기본적인 이해는, 빛의 본질적 의미가 인간이 자신의 일상생활 가운데서 그리고 또한 자신의 영적인 생활 가운데서 자신의 길을 찾기 위해 필요로 하는 성결이란 점이다.…빛은 일반적으로 구원, 특히 종말론적 구원을 나타내 주는 표현이다(요일 2:8).”라고 하였다.}(요일 1:5의 주석).
그와 비슷하게 {켈리(J. N. D. Kelly)도 “빛은 유대교에서 메시아 및 메시아 시대와 관련되어 있었다(SB Ⅰ, 161f. : 곧 시 36:9의 ‘주님의 광명 중에 우리가 광명을 보나이다.’에 관한 랍비들의 주석). 그리고 그와 같이 원시 기독교에서는 예수님이 빛이셨으며(요 1:4, 8, 8:12 등), 그분을 주님으로 영접하는 자들은 종말론적인 빛에 들어가 그분 안에서 거하는 자들로 간주되었다(요 12:35, 행 26:18, 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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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골 1:12, 살전 5:5, 요일 1:5-2:11).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의 그들의 과거는 ‘어둠’으로, 그들의 세례는 ‘빛을 받는 것’으로 간주되었다(롬 13:12, 엡 5:14, 히 6:4, 10, 32. Justin, Ⅰ Apol. lxi. 12f.; lxv. Ⅰ; Dial cxxii. Ⅰ).”}(벧전 2:9의 주석)라고 설명하고 있다.
{빛(포스, φώς)은 “하나님[그리스도]의 본질을 가장 잘 묘사한 것”(A. E. Brooke)으로 ‘존엄성과 영광’(딤전 6:16, 요일 1:5), ‘불변성’(벧전 1:17), ‘완전한 의와 진리’(시 43:3, 94:1, 요 3:20, 요일 1:5), “순수성”(A. E. Brooke, W. Barclay), “탁월한 거룩성”(M. Henry, W. Barclay) 등을 나타내는 말이다.
또, 빛은 하나님(그리스도)의 사랑의 행위를 잘 묘사한 것이다(시 27:1, 80:3, 7, 19, 요 12:36). 하나님은 죄의 종으로서 어둠에 속한 인간에게 그의 점과 흠을 드러내 주시고, 구원자로서의 자신을 계시하신다. 뿐만 아니라, 어둠 속에서 방황하는 인간에게 마땅히 가야 할 길을 비춰 주신다. 빛만이 어둠을 물리치는 것처럼, 어둠의 권세자인 사단은 빛의 근원이신 하나님만이 물리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빛이 그대로 심판이 되는 것이다(요 3:19).}(요일 1:5의 주석).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빛과 성도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성경은 하나님의 완전하고도 특수한 계시인 예수 그리스도를 빛이라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빛이시자(요 1:4) 세상의 빛이신(요 8:12) 참 빛이시다(요 1:9).
{알란(J. A. Allan)은 “이 빛은 충분히 그리고 명백하게 그리스도 안에서 비치므로 무지와 죄와 죽음이 극복된다(눅 1:78, 마 4:16, 요 1:1-18, 8:12, 9:1-41, 고후 4:4-6). 그리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인간은 빛의 본질을 나누어 갖는다(요 12:35-).”라고 하였다.}(엡 5:6의 주석).
그러므로 빛이란 성도의 본질이라 할 수 있다(마 5:14, 요 3:20). 뿐만 아니라, 그들은 이미 어둠의 영역에서 빛의 영역으로 옮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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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다(눅 4:6, 행 26:18, 골 1:13, 벧전 2:9). 달리 말하면, 참된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로 옷 입은 자요(롬 13:14, 갈 3:27), 빛의 갑옷을 입은 자이다(롬 13:12). 그러한 의미에서 참 빛이신 성자와 그 빛의 본질을 나누어 받은 그리스도인들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빛의 아버지(약 1:17) 곧 근원적 빛이시다.
그러한 의미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가리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는 빛이 모든 동네나 도시를 비추면 그 지역이 숨겨지지 못하는데, 특히 산 위에 있는 [동네](폴리스, πόλις: ‘도시’)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라는 뜻이다. 산 위에 있는 마을이나 도시는 멀리서도 볼 수 있다. “실제로 유대의 마을이나 도시는 산의 능선이나 정상에 자리잡고 있었다”(A. Barnes).
빛이신 그리스도를 본받는 그리스도인들의 언행은 어두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의 죄악 생활을 밝히 드러낼 것이고, 또한 그들이 마땅히 걸어야 할 길을 밝혀 줄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각자 자신만을 비추는 빛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에게 밝히 비추어야 한다는 점에 대해, 【15】[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
이 등불의 비유(5:15-16)는 마가복음 4:21-25과 누가복음 8:16-18과 병행되나 약간의 차이가 있다.
[사람이 등불을 켜서]의 [등불]은 뤼크논(λύχνον)이며, 올리브유 속에 담긴 작은 심지가 있는, 진흙으로 만든 작은 등을 가리키는 것인데, 당시의 창문 없는 팔레스틴 집을 밝히는 주요 수단이었다.
{여기서는 “말씀”(W. Hendriksen), ‘진리’,① “은혜 받은 사람”(M. Henry), ‘복음’,② ‘예수의 인격 속에 현존하고 있는 왕국의 비밀’(W. L. Lane, 山口 昇), ‘예수’③ 등으로 해석할 수 있으나, 예수님이 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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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서와 주해서에서 인용할 경우에는 저자의 이름만 밝혔고, 같은 견해를 가진 학자들이 네 명 이하일 경우에는 본문의 괄호 속에 이름만 밝혔음.
1) E. P. Gould, E. Bickersteth, W. Barclay, C. E. G. Swift, A. E. Sanner, R. A. Cole.
2) J. A. Bengel, R. Earle, F. C. Grant, J. N. Davies.
3) E. Schweizer, W. W. Wessel, C. E. B. Cranfield, 黑崎幸吉, 마경일, J. Gnilka, p. 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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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핵심이며, 왕국의 비밀의 주인공이며, 진리 그 자체이시며, 말씀이 육신 되어 오신 이시라는 점(요 1:14)과 빛으로 비유되고 있다는 점(요 1:9, 8:12. 눅 1:79의 주석을 보라.)들로 보아 예수 그리스도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막 4:21의 주석).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의 [말]은 모디온(μόδιον)이며 {원래 곡물을 재는 도량형기이다. 십일조를 계산하는 데 꼭 필요했기 때문에 유대의 가정에는 반드시 말이 있었다. 나무 기둥에 불길이 붙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또는 불을 끄기 위해 사람들은 이 말을 가지고 등불을 덮었다. 이렇게 등불을 끌 때면 좋지 않은 연기가 났을 것이다(Jeremias, Billerbeck).}(막 4:21의 주석).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는 해석이 필요 없는 자명한 표현이다.
이 비유의 의미는 예수께서 선포하는바 그 자신을 핵심으로 하는 복음, 또는 그 자신을 주인공으로 하는 천국의 비밀은 널리 드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인격과 메시아로서의 생애와 선교 활동은 그분을 영접한 사람들에 의해 더욱 널리 드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등불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 세상을 잘 비추게 하는 [등경]이 되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들은 그분의 빛을 받은 빛의 자녀(엡 5:8)로서 자신의 신앙 인격과 언행을 통해서 그 빛을 모든 사람들에게 반사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받아들여 순종하는 생활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 교인의 삶이란 예수님의 빛을 비추는 것이다. 바울은 교인들을 가리켜,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하였고(고후 2:15), 또 그리스도의 편지라고도 하였다(고후 3:3). 바울 자신은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빌 1:20)라고 하였다. 우리의 인격과 생활은 그리스도를 존귀케 하는 무대가 되어야 한다.

출처: 최세창, 마태복음(서울: 글벗사, 2004년), pp. 190-194.
필자의 www.newrema.com의 저서들: 신약 주석(마-계 8610쪽)/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설교집 22권/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다수의 논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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