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 여러분께.
현재 ‘감리회소식’이 ‘자유게시판’처럼 사용되고 있습니다.
정치적 입장표명이나 감리회정책과 관계되지 않은 내용 등
‘감리회소식’과 거리가 먼 내용의 글은 ‘자유게시판’을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

난해‧중요 성구 22회: 주기도문 연구 II (마 6:9-13)

작성자
최세창
작성일
2016-11-15 13:08
조회
1210
[이름]은 오노마(ὄνομά)이며, 성경에서는 대개 본성과 인격과 성격과 재능과 능력 등을 포함한 그 존재 자체를 지시하므로(요 2:23, 3:18, 요일 5:13), 여기서는 아버지 하나님을 의미하는 것이다.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는 하기아스테토(ἁγιασθήτω)이며, 깨끗하게 된 결과로서의 분리를 하거나 성별한다는 뜻이다.

이 말과 관련되는 형용사는 하기오스(ἅγιος)이며 관사(τό)와 더불어 ‘구별된 자’, ‘거룩한 자’, ‘성별된 자’, ‘바쳐진 자’ 등을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는 ‘제사장’(레 21:6-7), ‘땅의 십분의 일’(레 27:30), ‘하나님의 거룩한 집’ 또는 ‘장소’(왕상 8:10. 비교: 히 9:2), ‘지성소’(출 26:33. 비교: 히 9:3), ‘다른 민족들로부터 분리되어 하나님께 봉헌된 이스라엘 백성’(출 19:6, 신 7:6, 단 7:22, Ⅱ 에스드라서 8:28) 등을 가리켰다.

신약성경에서는 ‘기독교인들’ 또는 ‘교회’에 적용되었다(행 9:13, 32, 41, 고전 6:1, 2, 벧전 2:9).

관념적으로는 ‘인격적인 거룩’이나 ‘도덕적 순결’을 의미하기도 한다(레 11:44, 19:2, 고전 7:34, 벧전 1:16). 또, 이 낱말은 ‘천사’(시 89:5, 단 4:13, 슥 14:5, 에녹 1:9, 12:2, 14:23, 39:5), ‘세례 요한’(막 6:20), ‘그리스도’(행 3:14), ‘하나님’(삼상 6:20, 요 17:11, 벧전 1:15), ‘하나님의 율법’(롬 7:12), ‘하나님의 성령’(행 2:33, 38, 롬 5:5 등)을 지시하기도 한다.

여기의 동사는 하나님의 존재가 사람들에게서 거룩하게 여김을 받게 되기를 간구하는 것이다. 인간들이 하나님을 경홀히 여기거나 모독하거나 거역하는 죄를 범하는 대신에, 유일하신 절대자 하나님으로서 경외하고 예배하고 순종하도록 역사해 달라는 간구이다. 구체적으로 주님께 영광을 돌리게 해 달라고 빌거나(J. Calvin), “하나님 아버지가 홀로 예배의 대상이 되게”(Bruce) 비는 것이다.

이 첫 조목은 십계명 중 둘째와 셋째 계명과 대응하는 것이다.

주기도문의 둘째와 셋째 조목은【10】[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이다.

[나라](바실레이아, βασιλεία: 3:2의 주석을 보라)는 유대인들의 글에도 나오는 표현이다. 랍비들은 “하늘나라에 대한 언급이 없는 기도는 기도가 아니다.”라고 하였다. {“카디쉬 기도(Qaddish Prayer)도 그런 간구를 포함하면서, ‘그가 너의 생전에 그의 나라를 이루시고 이스라엘의 모든 집에 언제나 그리고 속히 그 나라를 이루실지어다.’라고 덧붙인다”(I. H. Marshall).}(눅11:2의 주석). 그러나 랍비들의 천국관과 예수님의 천국관에는 차이가 있다.

[나라이 임하옵시며]는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게 하시고’라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본격적인 통치가 이 세상 구석구석에 구현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하나님 나라, 즉 예수님의 출현으로 본격화된 하나님의 통치가 완성될 때가 오기를 간구해야 한다. 그 때에 사단의 역사는 종식될 것이다. “이는 세계의 복음 전파와도 관련이 있는데,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목적은 특히 영혼을 구원함에 있기 때문이다”(R. Earle).

웨슬리(J. Wesley)는 “그리스도여, 모든 인류가 당신을 왕으로 영접하여 당신의 이름을 진실로 믿으며 그들이 당신과 함께 영원히 다스리기 위해 영광의 나라로 옮겨질 때까지 의와 평화와 기쁨과 거룩함과 행복으로 채워지게 하소서.”라고 하였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의 [뜻]은 텔레마(θέλημά)이며 ‘의지’, ‘소원’, ‘목적’, ‘법’ 등을 의미한다.

이와 비슷한 내용이 랍비들의 교훈에도 있다. “랍비들은 가장 단순한 기도에 대한 질문을 듣고, ‘주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지며, 땅에서 주를 두려워하는 영혼들에게 안식을 내리소서!’라는 내용이라고 하였다”(A. Barnes).

웨슬리(J. Wesley)는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거룩한 천사들처럼 당신의 뜻을 즐겨 행하게 하소서. 그들이 천사들처럼 방해를 받지 않고 끊임없이 자발적인 봉사를 하게 하소서. 뿐만 아니라, 천사들처럼 완전한 예배를 드리게 하소서. 은혜의 성령이시여 그들이 당신의 뜻을 행할 때, 영원한 계약의 피로 그들을 완전케 하시며 당신 보시기에 기쁨이 되는 모든 일을 그들 안에서 이루소서.”라고 하였다.

주기도문의 넷째 조목은【11】[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이다. 이 구절 이하는 간구하는 자들과 관련된 간구의 내용이 전개되는 것이다.

누가복음 11:3에는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로 되어 있다.

[오늘날]은 세메론(σήμερον)이며(눅 2:11), ‘오늘’로도 번역되었다(눅 19:5, 히 3:13).

[일용할]은 신약성경에서 주기도문에만 사용된 에피우시온(ἐπιούσιον)이며, 그 의미를 올바로 규정하기가 쉽지 않다. 이 말의 의미를 규정하기 위해서 어원학적 증거와 고대의 해석들과 셈어족의 동의어 등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헬라어로서 ἐπιούσιος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가) ‘생존을 위하여 필요한 것’(ἐπί ίοὐσία에서 파생: Origen이 그렇게 이해함. 비교: SB I, 420), (나) ‘현재의 날을 위하여’(ἐπὶ τὴν οὖσαν[ἡμέραν]: ἑφημέρίος의 병행 형식: BD 123t), (다) ‘다음날’(행 16:11)이라는 ἡ ἐπιούσα(ἡμέρα)와 관련될 수도 있다. 그래서 ‘오늘날’이라는 뜻이 되고, 아침 기도에서는 ‘오늘’이 되고 저녁 기도에서는 ‘내일’이 된다고 볼 수 있다. (라) 이 말은 ἐπιέναι(3항의 견해처럼)와 연관되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뜻은 ‘오늘 우리에게 그 날에 먹을 빵을 주십시오’, 즉 ‘오늘 필요한 빵을 주십시오’라는 뜻이 될 수 있다”(I. H. Marshall). (마) 낱말 자체는 ‘내일의’를 의미하는 것 같다. (바) 외경인 나사렛인의 복음서에는 ‘내일의’ 혹은 ‘미래의’로 번역하여 ‘장차 하나님 나라에서 먹게 될’이라는 의미를 나타내었다.}(눅 11:3의 주석).

이와 같이 여러 가지 의미가 있거나, 여러 가지 의미로 번역되는 에피우시온(ἐπιούσιον)의 이곳에서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앞의 [오늘날](날마다)과 뒤의 [양식](아르톤, ἄρτον: 양식을 나타내는 제유법으로 사용된 ‘빵’)과 관련지어 보아야 할 것이다.

{이 표현을 전체적으로 이해한다면 (1) ‘날마다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이라는 의미’가 많은 지지를 얻는다(참조: 출 16:18). (2) 이와 약간 비슷한 것으로 ‘오는 날을 위한 양식’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J. Carmignac, 214-221). (3) ‘오는 날’을 ‘다가오는 시대’로 이해할 수도 있는데, 이 견해에 따르면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서 장차 먹을 양식을 오늘 우리에게 주십시오’가 되고, 빵은 물질적인 양식뿐만 아니라 영적 양식을 뜻하는 것이 된다.

(2)설은 전후 문맥상 적합하지 않다. [날마다]라는 말에는 다가오는 모든 날들이 포함되는 것이므로, (1)설과 (3)설을 종합해서 이해하는 것이 적합할 것이다. 마살(I. H. Marshall)은 “사실 그것들은 서로 그다지 다르지 않다. 하느님이 마련하시는 양식은 몸과 혼을 위한 것이다. 하느님은 인간들에게 필요한 바를 주시고, 그의 나라에서 맛보게 될 것을 맛보게 하신다. 매일같이 기도에 응답하심으로써 그렇게 하신다. 뷕톨(A. Vgtle)은 우리들이 필요한 양식을 하느님께서 주시도록 구해야 하는데 그것은 또한 영적 문제를 관심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해석한다.”라고 하였다.}(눅 11:3의 주석).

주기도문의 다섯째 조목은【12】[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이다.

누가복음 11:4에는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옵시고”로 되어 있다. 유대인의 유전에도 “하나님의 사하심을 받기 전에 사람끼리 용서하라”(Yoma 8:9)라는 말이 있다.

[죄 지은 자]는 오페이레타이스(ὀφειλέταις)이며 ‘빚진 자’, ‘잘못한 자’, ‘죄를 범한 자’ 등을 의미한다.

[사하여 준](아피에멘, ἀφίεμεν)은 ‘면죄하다’, ‘풀어 주다’, ‘지불을 강요치 않다’, ‘판결을 취소하다’, ‘추방하다’ 등을 의미한다. 이 말에 대한 가장 좋은 주석은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시 103:12)와 “다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미 7:19)이다.

이 구절은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사람들을 용서하는 것이 하나님의 용서를 받는 조건이나 자격이라는 뜻이 아니다. 용서를 가능케 하는 사랑이란 인간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는 것이다. 속죄 제물이 되시는 주님 예수에게서 극명해진 하나님의 사랑의 용서는 선행적인 것이다. 인간의 용서란 이미 받은 하나님의 용서에 대한 보은으로서 행해지는 것이며, 따라서 자신의 죄들에 대한 하나님의 용서를 받게 되는 것이다(참조: 마 18:23-35).

{칠더즈(C. L. Childers)는 “(a) 과거에 우리가 용서받은 것은 우리가 기꺼이 용서하는 것을 조건으로 하였다. (b) 우리는 다시 죄를 범할 가능성이 있다. 만일 죄를 범한다면 우리는 기꺼이 용서하는 것을 조건으로 하여 용서를 받게 된다. (c) 우리의 고의가 아닌 잘못을 깨달았을 때에는 고백해야 한다. (d) 하나님의 용서는 우리의 용서할 수 있는 정신을 조건으로 한다.”라고 하였다.

까미낙(J. Carmignac, 230-235)은 여기서의 조건은 하느님에게 용서를 ‘구하는 데’ 붙여지는 것이지, 하느님 자신의 은혜에 전적으로 해당하는 그의 용서의 행위에 붙여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한다.}(눅 11:4의 주석).

하우크(F. Hauck)는 “기도하는 사람은 기도의 응답을 받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제시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예레미아스(Jeremias)는 “이 점은 원래의 아람어가 ‘우리가 우리의 빚진 이들을 용서해 주듯이’라는 표현을 가졌다고 볼 때 더욱 분명해진다.”라고 하였다.}(눅 11:4의 주석).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용서를 비롯한 어떤 것을 구할 때, 하나님께서 들어주실 수밖에 없는 기도자인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출처: 최세창, 마태복음(서울: 글벗사, 2004년), pp. 235-244.

필자의 newrema.com의 저서들: 신약 주석(마-계 8610쪽)/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설교집 24권/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다수의 논문들



전체 2

  • 2016-11-15 18:50

    {칠더즈(C. L. Childers)는 “(a) 과거에 우리가 용서받은 것은 우리가 기꺼이 용서하는 것을 조건으로 하였다. (b) 우리는 다시 죄를 범할 가능성이 있다. 만일 죄를 범한다면 우리는 기꺼이 용서하는 것을 조건으로 하여 용서를 받게 된다. (c) 우리의 고의가 아닌 잘못을 깨달았을 때에는 고백해야 한다. (d) 하나님의 용서는 우리의 용서할 수 있는 정신을 조건으로 한다.”라고 하였다.
    효창교회를 담임 하셨던 곽철영 목사님의 주기도문 강해가 생각 납니다. 최세창 목사님의 주기도문 강해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2016-11-16 16:39

    김정효 장로님, 필자의 주기도문 부분의 주석에 관심을 보이시고, 특히 더 공감되는 부분을 적시하셔서 감사합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공지사항 관리자 2014.10.22 70751
공지사항 관리자 2010.12.29 69121
4182 장병선 2016.11.19 1832
4181 홍일기 2016.11.19 1176
4180 원학수 2016.11.19 1247
4179 박재영 2016.11.19 1587
4178 문석영 2016.11.19 1918
4177 김연기 2016.11.19 888
4176 함창석 2016.11.19 681
4175 신원철 2016.11.19 1513
4174 백영찬 2016.11.18 958
4173 함창석 2016.11.18 841
4172 김성기 2016.11.18 874
4171 조묘희 2016.11.18 1236
4170 신승도 2016.11.18 1041
4169 박영규 2016.11.18 2490
4168 유삼봉 2016.11.18 1025
4167 민영기 2016.11.17 1842
4166 홍일기 2016.11.17 1282
4165 함창석 2016.11.17 871
4164 장병선 2016.11.17 1520
4163 원학수 2016.11.16 1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