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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해‧중요 성구 27회:…구원하소서…죽겠나이다…바다도 순종하는고…(마 8:25-27)

작성자
최세창
작성일
2017-01-31 13:18
조회
2354
고물에서 주무시는 예수님과 대조적인 제자들의 태도에 대해, 마태는 【25】[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가로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라고 하였다.

이 구절은 위기에 처한 제자들의 불안과 두려움, 그리고 주무시고 계신 예수님께 대한 서운함으로 인한 소동을 묘사한 것이다.

주여(퀴리에, κύριε)는 1:22의 주석을 보라.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는 제자들의 긴박한 상황과 두려움을 반영하는 것이다. 주로 어부 출신인 제자들이 두려워한 것을 보면, 큰 놀이 얼마나 대단했던가를 알 수 있다. 그들은 예수님을 깨우면서 [우리가 죽겠나이다]라고 부르짖었다. 아무튼, 똑같은 상황에서 주무시고 계신 예수님과는 아주 대조적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위기나 불행을 과장하는 나쁜 습성이 있다. 그래서, 위기나 불행 그 자체가 아니라, 스스로 과장한 위기나 불행에 짓눌려 좌절하는 것이다. 사실상, 위기나 불행의 때야말로 창조주요 섭리자이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정말 필요한 때이다. 그러나 그러한 때에는 오히려 믿음이 움츠러들거나 사라지고 만다. 이러한 사실은 제자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은 죽게 되었다고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들의 생각일 뿐이지, 아직은 실제로 죽게 된 것은 아니다. 배에 물이 덮이게 되었을 뿐이지, 배가 난파된 것은 아니다. 설령 난파됐다 하더라도 헤엄칠 힘이 있는 한 아직도 죽기까지는 분명히 여유가 있는 것이다. 더욱이, 메시아이신 예수님이 그들의 배 안에서 주무시고 계셨다. 정말 어려운 인생 문제는 인생의 풍랑을 풍랑 그 자체로 직시하지 못하고 과장하는 것이다.

제자들이 비난의 성격을 지닌 것이기는 하나, 예수께 도움을 구한 것을 보면 그들의 믿음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 점에 대해, {헨드릭슨(W. Hendriksen)은 “그들의 비난은 어느 정도의 신뢰와 뒤섞인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경험 있는 항해자들인 그들 중 어떤 사람도 일종의 목수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을 것이다. 확실히 믿음이 완전하지는 않지만, 거의 없는 믿음이긴 하나 믿음이 있기는 있는 것이다.”라고 설명하였다.}(막 4:38의 주석). 그러나 예수께서 바라시는 만큼의 믿음은 없었다.
제자들의 소동에 잠을 깨신 예수님의 반응에 대해, 마태는 【26】[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신대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이라고 하였다.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8:10의 주석을 보라.)이 적은 자들아]는 인간의 관점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예수님의 책망이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문제삼는 것은 ‘생각’이라기보다는 ‘믿음’이다. 예수님이 책망하실 때에는 ‘생각이 적은 자’나 ‘생각이 없는 자’라고 하시지 않고, ‘믿음이 적은 자’(6:30, 14:31, 16:8, 17:20, 눅 12:28)나 ‘믿음이 없는 자’(17:17, 막 4:40, 9:19, 눅 9:41)라고 하셨다.

주님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믿음으로 생각하고, 믿음으로 판단하고, 믿음으로 행하는 생활을 원하신다.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신대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은 메시아로서의 예수님의 신적 권능을 나타낸 것이다. 구약성경에는 하나님께서 바다를 꾸짖으신다고 하는 표현이 있다(사 50:2, 나 1:4, 시 106:9). 따라서, 마태의 의도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권능으로 자연을 명하여 복종케 하시는 메시아이심을 드러내려고 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환자들을 고치시는 메시아적 권능을 행하시는 이로 알려지셨던 예수님은, 이제 대자연까지 지배하시는 이심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 창조주로서의 예수님은 또한 만물을 통제하신다(골 1:16-18).

신적 권능을 가진 이로서의 예수님은 어떤 상황이나 어떤 처지에 있는 인간이라도 구원하실 수 있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때로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관심 없이 주무시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분명히 예수님은 자신을 숨기기도 하신다. 그렇게 해서 예수님은 사람의 힘으로는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고통을 당할 때, 그를 구함으로써 그로 하여금 자신이 메시아임을 깨닫게 하시는 것이다. ‘확실히 드러내기 위한 일시적 숨김’이라는 예수님의 취지가 여기서도 나타나는 것이다. 인간에 대한 예수님의 궁극적 관심은 치유도 아니고, 귀신 쫓음도 아니고, 재물의 복도 아니라, 영원한 구원이다.

바람과 바다를 꾸짖어 잔잔케 하신 기적을 보이신 예수님께 대한 제자들의 반응에 대해, 마태는 【27】[그 사람들이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고 하더라]라고 하였다.

[기이히 여겨]는 8:10의 주석을 보라.

[이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고]는 단순한 질문이 아니라, 대자연까지 순종케 하시는 예수님의 메시아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놀라운 인식을 나타내는 것이다. 교인들이 예수님의 메시아로서의 본질적 정체를 더욱더 깊이 인식하는 데에는 인생의 풍랑보다 더 좋은 계기가 없다.

출처: 최세창, 마태복음(서울: 글벗사, 2004년), pp. 297-299.

필자의 newrema.com의 저서들: 신약 주석(마-계 8610쪽)/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설교집 25권/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다수의 논문들 010-6889-3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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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멘.
    무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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