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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사상과 기독교회의 운동이 다양해도

작성자
현종서
작성일
2017-02-06 22:50
조회
1699
기독교회의 사상과 활동의 외연이 광범위하게 퍼지더라도 그것이 하나로 집약되고 정리되는 한 일치 점이 있다.

그것은 베드로가 한 신앙고백, 즉, "주(예수)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한 말이다.

그 신앙고백과 더불어 세례받고(육을 따라 사는 옛 사람은 죽고, 죽었다가 다시 사신 부활의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아) 살아가는 이들이 기독교 신자들이다. 핵심은 그러하지만 문화와 사상과 풍속의 역사를 달리하는 이들의 조금씩 다른 모습의 다양한 형태의 교파와 지역교회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성경에 계시된 기독교의 핵심 진리를 부정하고 새로운 이념으로 해석하여 비슷할 지라도 전혀 다른 내용과 교리를 말하는 이들, 즉 이단들도 있는 것이다.)

교회의 일치운동을 말하는 WCC 그와 보조를 같이 하려는 KNCC, 교회의 일치운동에는 근본적으로 동의 하지만 기독교의 핵심진리를 축으로 한 일치운동인가 하는 것은 늘 경계하고 점검하여 진정한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된 교회들의 일치운동으로 존재하도록 하는 책임을 가지고 참여해야 한다.

WCC의 주도세력이 종교다원주의로 흐르고 있다면,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선교사를 제일 많이 보내고 있는 한국 감리교회, 그리고 한국 개신교회는 그런 흐름을 바로잡으며 참여해야 한다. 미국 교회를 비롯하여 서구 교회들의 세속화 현상은 한국교회가 현재의 그들을 본으로 삼기 어려운 상태에 와 있다.

이제 한국교회는 신학부분에서도 서구 교회를 본 삼으며 쫓아갈 때가 아니다. 그들의 신학들을 신앙 선진국의 것이라 하여 무조건 여과없이 받아들일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지도하에 교회 역사속에서 빛을 발하였던 때의 신학들을 참고 하면서 21세기 한국교회의 신학을 이제 창조적으로 해 나가야 한다.

기독교 진리의 설명과 효과적인 삶의 적용, 한국은 세계적 종교들을 수용하여 재창조해 낸 경험이 있는 민족이다. 한국의 신학자들이 제종교의 교리들을 승복시키는 신학을 한다면(최병헌의 신학작업의 예가 있었다.) 우리 한국 교회는 세계교회의 리더로 부상하게 될 것이다.

변 박사께서 후학들에게 나를 밟고 넘어가라 하는 말은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유일한 구세주로 믿고 사랑하는 분이 틀림없었다면- 그분의 신앙적 실존과 이론은 서로 다른 것일 수도 있다고 보아서, 그분의 오해 받은 ? 미완성의 이론을 넘어서서 교회안과 밖이 다 호응할 수 밖에 없는 신학이론을 창조해 내야 한다. 그의 후학들은 그분에게 미흡했던 부분들 (보수적인 면, 체험적인 면)을 보강하여 그분의 학문적노력의 축적도 무익하지 않은 것으로 만들어내야 한다. 교회 내부의 소리를 무시만 하지 말고 교회외부, 타종교의 소리못지 않게 좀 더 귀를 기울이며 성령의 지도하에 신학을 해야 할 것이다.

신학작업은 새분야 개척의 경우, 당대만으로는 부족하다. 그의 진수를 다 배우고 여러 비판을 수용하고 넘어서서 더 깊이 들어가는 신학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그래서 학문(이론)뿐아니라 체험적으로도 불교를 넘어선 이들과 동감하는 자리에 나아가야 할 것이라 본다.

그리고 이대 기독교학과 출신중에 정무슨 교수의 성령과 모든 잡령과 무당의 영까지 한 영의 역사로, 본 거룩한 성령을 잡신의 혼합영으로 취급한 살풀이춤도 이제 예리하게 한국신학자들이 분별해 내어 외국 신학자들에게 제대로 분별하여 설명해 주어야 할 것이다.

자유주의 신학을 전공한 신학자들은 이제라도 복음주의 또는 정통주의 신학자들의 글도 읽어나가기 바란다.
한국교회의 모판의 신학을 거기서 발견하게 될 것이다.(종교개혁 신학의 재발견 그리고 spiritual movement)

"신앙은 보수로 신학은 진보로!" 이런 슬로간 속에서 우리가 신학을 해 온 바 있지만, 그런 슬로건도 반성해 보아야 한다. 신학은 우리의 믿는 바를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인데 우리의 실제신앙생활과 거리가 있고 관련이 적은, 교회 현장에 전혀 안맞는 신학을 함으로써 목회자와 신학자들이 서로 별개의 세계로 가게 하였던 것이다. 목회자가 신학자가 되고 신학자가 목회자가 될 수 있는 신학을 해야 하지 않을 까?.



전체 2

  • 2017-02-06 23:16

    칼 바르트 이후 세계적인 신학자라 일컬어졌던 몰트만 교수가 모국, 모교의 석좌교수가 아니라 서울 신학대학의 석좌교수로 계시며 그의 남은 여생을 보내고 있다. 이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 가?
    이것이 우리 한국 신학계의 현주소이다. -어학 실력이 신학 실력이 아니다.


  • 2017-02-07 02:53

    바르트, 불트만, 몰트만 탸령.
    하야튼 귀신계는 산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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