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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기독교대한감리회 영적 기상도를 본다.

작성자
오재영
작성일
2018-12-13 08:48
조회
1222
자기신념을 신탁(神託)이라 주장하는 사람들...

지난주 토요일아침 지방 실행부회의를 마친 후 말미에 현 전국여선교회 회장이신 백 장로께서 드디어 우리지방에서도 성명서를 내주어 자신의 면(面)이 서게 되어 그 내용을 수백 군데에 뿌렸노라 면서 그동안 하나님께서 자기를 전적으로 부르시고 사용하셔서 여기까지 오게 하셨고, 이미 교단의 재판절차가 구성이되어 진행이 되고 있음에도 다음 월요일에는 감신대생들과 전국여선교회 회원들이 감신대에서 기도회로 모이게 된다고 하였다. 그분 듣기에 불편했겠으나 정말 염려되어 하나님의 뜻을 그리 사용하지 말라했다.

나는 가끔 공적인 자리와 사적인 자리에서 신앙을 빙자하여 자신이 하나님께 무슨 응답을 받았다는 이들의 흔히 말하는 간증의 말을 듣노라면 생각이 복잡하다. 저이가 정말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상식과 자신의분수를 알고서 하는 말인지, 아니면 순진한 건지 무지한 것인지 도통 이해가되지 않을 때가 많다. 치유의 집회에 참여해보면 상태가 더욱 심하다. 응답을 받았다는이들이 예언과함께 간증으로 그자리에 있는 이들로부터 박수를 받지만, 대부분1~3년내에 세상을 떠난다. 뭔 그리들 본 것이 많고 들은 것들이 그리도 많은가? 자기개인적인 신념은 모르겠으나, 이 거대한 우주만물 중에 자신의 비중을 얼마나 착각하고 있기에 그리 함부로 목소리들을 높이는가? 그리 말하는 본인자체가 60억분의 1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에 따르는 상식만 갖고 있어도 본인이 그리 대단한 사람이 아님은 즉시 알 수 있다.

현재 자신의 위치는 어디에 있는가?

공상소설이 아닌 과학이 사실로 증명한대로 지금 우리가 존재하고 있는 이 지구와 태양이 속해있는 은하계만 해도 약 2천억 개 이상의 별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리고 우주의 지평선(cosmic horizon)안쪽 즉 인간이 관측할 수 있는 범위의 우주 안에는 그러한 은하가 약 1천억 개 이상이 있다는 것이다. 이태양계는 우리 은하의 중심에서 약2만6천 광년 되는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태양주위를 여덟 개의 행성들이 돌고 있고, 그 행성들 주위를 다시 약 160개의 더 작은 위성들이 돌고 있다. 이처럼 은하계에 있는 모든 항성들마다 태양계와 같은 공식을 적용한다면 우리 은하계만 해도 지구보다도 수천, 수만 배의 거대한 약 3조 2천억 개의 별들이 있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이 우주 안에 그런 은하계가 1천억 개가 넘게 존재하고 이를 인정한다면 과연 어떠한 생각을 하게 될까? 태양계를 이루고 있는 각 행성들의 크기와 위치역시 신비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만 해도 태양으로부터 세 번째 있는 행성이고, 또 다른 행성인 화성을 지나면 목성이 있고 지구보다 약 천배의 크기인 목성은 지구를 감싸고돌면서 우주에서 날아오는 거대한 운석들을 막아주고 있어 지금도 지구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상식이다. 이 놀라운 세계를 하나님께서는 말씀 한마디로 창조하셨다(창1:1절).

시편기자와 이사야 선지자의 고백처럼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이며, 열방이라 할지라도 통의 한 방울의 물과 같고 저울의 작은 티끌이며, 섬들은 떠오르는 먼지와 같은 존재다.”(사40:15).그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말씀하셨다고?...

시대의 흐름을 거절치 못해 위기에 처한 우리감리교회

지금 선교130여년의 찬란한 역사와함께 이민족 앞에 자랑스럽게 존재하든 우리 기독교대한감리회가 처한 오늘의 위기는 교조 존 웨슬리가 하나님께 부름 받았던 과거 18세기 영국사회의 극심한 타락의 시대와 너무나 흡사하다. 감리교도들이라면 모두가 상식적으로 아는 교조 웨슬리의 회심이전의 영국사회의 당시 기록으로 전해지는 모습은 한마디로 매우타락하고 부패한 모습들이었다. 무능한 국가의 지도자들, 삶에 절망한 서민들의 알콜중독, 아프리카 흑인들에 대한 노예사냥과 매매. 노예로 팔기위한 인신납치. 빈민가 어린이들의 높은 유아사망률. 유흥을 위한 심한동물학대, 보편화된 투전판의 놀음. 감옥의 잔혹한 규칙과 피비린내 나는 형법과 풍기문란. 극장의 퇴폐적인 영업. 무법한 무정부상태. 외설적인 사회분위기. 정치의 부패와 공직자의뇌물수수. 성직자의 오만과 횡포. 이신론(理神論)의 유행. 위선과 타락 등등이 그 당시의 영국사회에 대한 모습들이었다.

무려160여 가지의 죄목에 해당되는 범죄자들을 수시로 길거리에서 공개적으로 교수형에 처형하는 공포정치, 이처럼 공개적으로 교수형에 처형하는 죄목들 중에는 오늘날 경범죄에 해당하는 죄목들도 있었다는 기록이다. 그러나 이러한 엄격한 법들이 그 당시의 잃어버린 사회 질서와 도덕을 회복시키지는 못했다. 더욱이 이러한 극심한 타락의 배경에는 그 당시 기독교가 국교이면서도 사회에 본을 보여야할 고위 성직자들의 일탈된 행동들이 한몫을 하였다. 이처럼 사람들이 육적肉的, 명목상의 성경을 떠난 형식적인 교회생활로 영적인 기류가 급랭하고 있을 때 대부분의 성직자들은 여우사냥을 다니며 부유한 이들의 파티에 참석 하는 등, 사교 생활을 즐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성찬과 예배에 대한 거룩한 경외심은 사라지고 예배시간에 조는 사람들이 많았으며 가정예배와 교리교육. 성경 읽기 등의 경건한 삶이 자취를 감추고, 야비하고 조잡한 언행이 교인들 가운데 일상적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상황을 조나단 에드워즈의 는 “이시대의 가장 큰 죄악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기뻐하지 않는 것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했다.

오늘 우리가 함께 공존하는 삶의 현장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와 다른 각자의 다양한 신앙을 따르며 살아가고 있다. 이처럼 이 땅에는 각자가 믿고 따르는 수많은 여러 종교들이 있지만 종교학에서는 그 종교를 고등종교와 하등종교로 구분한다. 그리고 구분하는 그 기준을 그들은 자기부인(自己否認)에 둔다. 즉 해당종교에 자기부인이 있으면 고등종교로, 없으면 그 어떠한 희생과 열정에 상관없이 미신에 불과한 하등종교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여긴다. 여기에서 말하는 자기 부인이란, 영원한 가치를 위하여 자기 욕망을 내려놓는 것을 말한다. 즉 자기가 믿는 종교가 표방하는 영원한 가치를 위하여 자신의 욕망이 부인되고 있다면, 그는 고등종교를, 자기부인처럼 보이지만 그 모두가 자기 욕망을 성취하기 위하여 따르고 있다면 그 어떠한 형태와 관계없이 그가 믿는 종교는 하등종교에 속하는 미신에 불과한 것으로 본다.

문제는 이처럼 영원한 가치를 위하여 존재하며 세대를 이어 영향을 끼치는 고등종교에도 그 종교가 겪게 되는 위기가 있는데, 그 위기의 때에 예외 없이 나타나게 되는 공통적인 현상이 있다는 것이다. 그 현상중의 하나가 어느 순간 갑자기 그 종교에 성직자가 급증하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의 역사에서도 고려 말 불교가 타락했을 때 온 고려 땅이 중 천지였음은 역사가 기록하고 있으며, 지금도 종종 등장하는 티베트의 라마 불교의 타락당시에는 티베트 남자의 70%가 승려였으며, 가톨릭의 부패가 극심했을 때인 1830년대의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대륙에도 신부들이 넘쳐남으로 그 당시의 똑똑한 유럽청년들은 적(赤)과 흑(黑)을 놓고 고민을 해야 했다. 즉 적(赤)은 가톨릭 사제의 붉은 성의를, 흑(黑)은 판사의 법복을 의미하므로 당시 유럽청년 엘리트들은 자신들의 욕구를 성취하기에 가톨릭 사제와 판사 중 어느 쪽이 자신에게 더 이익이 되는지 저울질을 하였다는 것이다. 그것은 사제가 되어도 얼마든지 축첩까지도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성직자가 갑자기 급증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먼저 그 종교의 책임을 맡고 있는 지도자들로부터 자기부인(自己否認)이 없어져 편안해졌기 때문이다. 사람이 영원한 가치를 위해 자기부인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 앞에서, 모든 사람의 本으로 살아가는 구도의 삶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기부인이 정당하게 요구되고, 또 바르게 행해지고 있는 종교라면 갑작스럽게 성직자가 급증할 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성직자가 급증한다면 그 종교에는 이미 자기부인이 실종되었고, 성직 자체가 모든 사람이 탐을 내는 세속적 직업으로 타락했다는 증거이다. 지금 우리교단도 같은 위기인데, 우리의 미래의 희망이어야 할 신학교조차도 불편한 진실이지만, 자신들의 소명과는 상관없이 부모 따라 일반대학 진학의 좁고도 좁은 과정을 피하여 좀 더 쉬운 상대로 신학대학을 지망한 학생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재철 , 비전의 사람, 참조)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참담한 현실들...

영성이 희박하고 거룩함이 소멸되니 별 희한한 이들이 등장하여 교단을 혼란스럽게 한다.
과거엔 일반사회에서도 수치스럽게 생각하고 부끄러워하든 일들이 이제는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것도 성직자라는 이들에게서 버젓이 행해지고 있다. 모두가 성직자로서 맡은바 직분에 합당치 못한 자기성찰에 실패한 부끄러운 이들이다. 타 교단은 차치하고 우리 안에서도 지금 대중매체를 통하여 전도의 대상인 이교도들에게 온갖 부끄러운 모습들을 여과 없이 낱낱이 보여 주고 있다. 이모두가 자신들의 성결에 실패한 것을 감추고 영적 리더 가 되겠다고 온갖 수단과 방법들을 가리지 않고 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님말씀대로 자기십자가를 지고 따라야할 이들이 방향을 잃고 방황하는 가엾은 모습들이다.

이처럼 전 교단이 총체적으로 혼란스러운 때에 우리를 더욱 염려케 하는 이들이 있다. 교단의 각부서와 기관의 책임을 맡고 있는 이들의 가볍고 경박한 자기희생 없는 리더십의 부재다. 지금 몰려다니며 지적 질로 성토에 매진하고 있는 이들의 모습들이 정상들인가? 또 지난 33회 총회의 소란이후에도 각 연회의 책임을 맡고 있는 감독들이 보여준 모습들은 정말 실망을 넘어 절망이다. 총회에서 취임식을 거행하지 않았다면 각 연회에서 관계된 이들끼리 조촐한 시무식으로 진행하면 안 되는가? 이들은 도무지 “잘못 살아있는 것 자체가 차라리 죽어있는 것보다 더 악함을 모르는 분들이다.”성경이 말씀하고 교회의 역사가 증언하고 있듯이 개인과 시대를 변화시키는 것은 거창한 인위적인 방법이나 선전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좀 더 낮아지고 섬기려는 자세다.

주님으로부터 보냄 받은 설교자를 기다리며...

지나온 기독교역사의 종교개혁 이전 개혁자였던 이탈리아의설교자 기롤라모,사보나롤라(Girolamo Savonarola), 의 삶은 설교자로서의 생을 마쳐야 할 우리에게 좋은 예가된다.

그는 14세기에 접어든 후 더욱 부패해진 로마교회 아래서 온갖 향락을 즐기며 타락해 가는 조국 이탈리아에서 설교했던 사람이다. 그는 멸망을 향해 치닫는 조국과 플로렌스를 향하여 외쳤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라. 죄악의 도성 플로렌스를 하나님이 멸하시리니 회개하라”는 말씀으로. 그는 추기경의 자리를 주겠노라고 제의하던 로마교황을 향해 추기경의 붉은 모자보다는 차라리 순교의 피로 물든 붉은 모자를 쓰겠다했다. 그는 결국 1498년 어느 날, 적들에게 체포되어 목졸려죽은 뒤 화형 후 한줌의 재로 아르노(Arno)강에 뿌려졌다. 그가 생전에 1485년부터 설교하던 두오모(Duomo)교회당에는 매번 수많은 청중들이 모여들고, 각성된 그리스도인들이 한밤중부터 교회 문 앞에 줄을 서서 예배시간을 기다렸다는 역사의 기록이다. 이때 사보나롤라를 통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미소를 띠신 하나님이아니라 순결을 상실해 버린 교회를 향하여 진노하시는 엄위로 우신 하나님이셨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구실로 방종으로 흘러버린 천박한 교회를 향한 심판의 위협 앞에서 성도들은 사무치는 두려움으로 눈을 뜨게 되었다. 비록 사보나롤라는 한줌의 재로강물을 따라 흩어져버렸으나 하나님에 대한 각성을 외친 그의 설교는 그대로 살아있어 다음세대에 도래할 종교 개혁을 알리는 횃불이 되어 칠흑 같은 중세 교회사에 찬연히 타올랐다. 그가 이처럼 신적인 확신에 불타는 메시지로 회중에게 커다란 영적감화를 끼친 이면에는 그의 남다른 자기를 버린 조국과 영혼을사랑하는 뛰어난 영적생활이 있었다. 그는 성경을 사랑하여 신구약 66권의 본문을 거의 외울 정도로 해박한 성경지식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그의 탁월한 영적 삶은 그의 기도생활 속에서 나타났다.

그의 이러한 삶에 대하여 한 전기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그는 깊은 기도의 사람이었다. 수도원에 있을 때에 말씀을 전하고 독서하는 시간 이외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무릎을 꿇은 채로 지냈다. 그리하여 그는 기도 생활 속에서도 다른 사람들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의 뛰어난 깊이를 소유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영력 있는 선포사역의 중요한 비결이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깊은 기도는 필연적으로 기도시간의 연장을 가져왔는데, 무릎을 꿇고 간절히 드리는 그의 기도는 대체로 대여섯 시간씩이나 계속되었으며, 어떤 때는 기도하고 일어나서 말씀을 강론하기 위하여 그가 단상에 오를 때에는 회중들이 때때로 그의 얼굴에서 밝은 광채가 발하여 그 빛을 뚜렷이 의식할 정도였다는 것이다.” (김남준, 설교자는 불꽃처럼 타올라야 한다. P.72~74.인용).

정말 우리 모두의 겸손과 각성이 필요하다.

일찍이 세계적인 기업 ‘제너럴 일렉트릭’의 최고 경영자이었던 잭 웰치 는 어느 기고문에서 “조직 내부의 변화속도가 조직 바깥의 변화속도보다 느릴 때, 그 조직의 종말이 보인다.”했다. 지금 우리교단의 구성원들의 냉철한 이성과 의연함으로 해결하려는 각오 없이 앞으로 밖으로부터의 끊임없이 밀려오는 도전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전체 13

  • 2018-12-13 09:37

    영적 기상도를 본다.
    정말 우리 모두의 겸손과 각성이 필요하다.
    서양사를 배우던 시절 중세 카토릭의 부패 권력남용등이 기억난다
    목사님 말씀 잘 읽고 공감됩니다 감사합니다 성탄절 새해에도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 2018-12-13 14:02

      장로님! 인사늦어 죄송합니다.

      아래에 있는 분들의 오해에 대한 답 글을 달고 잠시 밖에 다녀왔습니다.
      저는 꼭 사람들 동원하고 피켓을 들고 기도해야 응답이 된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누구에 보라고 그 야단들인지도 모르겠고, cbs를 비롯하여 신문과 방송화면에는 잘
      어울릴지 모르나, 진정으로 참회하는 자세로는 부적절 하다는 생각입니다. 감독
      취임식들도 그렇고,...

      저의 옆에 강 감독께도 서울연회처럼 본부 16층에서 조촐하게 예배드리라고 권하라 했지만
      굳이 가드니 口舌,에만 휘말리고, 버티고 있는 이나, 공적 공간에서 망신주기에 집착하는 이들이나
      정말 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격려의 말씀 고맙습니다. 은혜 안에 평안하십시오.


  • 2018-12-13 10:50

    목사님의 현 감리회 사태에 대한 주기적인 글의 프레임은 완벽하리만치
    구성력이 뛰어납니다.
    예컨대 어느 저명 학자들의 글 인용,
    J. 에드워즈, 사브나롤라같은 고전적 영성가들의 무게감 있는 지침들
    그리고 인문학에서 들을 수 있는 각 방면의 세계적 인물들 등...

    틀린말은 아닌 것 같은데 공감력이 떨어지고 무얼 어쩌자는 것인지
    현재 얽힌 타래를 풀려고 몸부림 치는 외침에 대해 앞선 게시판에도
    누군가가 지적했다시피 싸잡아 비판내지는 약 올리는 식의
    뉘앙스를 떨쳐 버릴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지리멸렬할 뿐입니다.

    즉 소망을 갖게 하기보다는 답답하게
    하고, 음식으로 말하자면 느끼하여 맛은 없고 속만 아프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마 오랜 목회 경험으로 아시겠지만 목회는 해박한 이론이나
    달변이나 사변적 전달이 아니라 몸으로 체득해 내고
    끝까지 사랑하시되 조잡한 타협이나 불의를 기뻐함은 아니잖습니까?

    의로운 분노가 거룩한 침묵보다 못합니까?
    만인앞에 드러난 불의한 지도자의 죄악이 제도권속에 보호받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의입니까?
    이에 대해 외치는 자들의 집단 행동이 영성의 모자람이고, 기도없는 무모함입니까?

    중세 수도원의 아빌라의 성 테레사, 성 프란시스의 길을 걷지 못하거든
    아니 감리회가 사막교부들의 영성을 본받지 못하는 위선된 침묵의 영성을
    걸을 바에는 현재 감리회 불편한 진실을 외치는 자들이 지금보다
    더 일어나야 함은 마땅히 해야 할 시대적 요청이라고 봅니다.

    이 역사의 최첨단에 서야 할 자들이 다름 아닌 그렇게 소명받은
    목회자들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 2018-12-13 11:28

    민돈원목사님의 예리한 지적이 담긴 댓글이 더욱 제 가슴에 와 닿는군요 이성은 이미 마비되었기에 감성으로 받아드립니다.
    바라기는 이런 댓글을 헛된 지적질로 차버리지 말고 새겨보았으면 좋겠습니다.


  • 2018-12-13 11:35

    민목사님!
    직접 뵌 적은 없으나 합리적인 사고를 갖고 있는 목사님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전에 김진호 감독님과의 관계도 소개하시고, 목사님께서는 제가 무슨 오기와 객기로 튀는 행동과 어깃장 놓는 것으로
    생각하시는 가본데, 저도 교단을 염려하며 기도합니다. 긴 글 장난이 아닌, 밤새워 기도하며 쓴 겁니다.
    목사님께 묻습니다. 앞으로 제2의 전준구 목사 같은 이들이 안 나온다고 생각합니까?
    그때마다 이러한 방법으로 여선교회 회관과 신학교에 모여 예배를 빙자하여 피켓들고 성토합니까?
    목사님! 당당의 하단을 보십시오. 병든 개에게 파리 달라붙듯이 각양 방송과 신문에 감리교단이 등장했습니다.
    목사님은 신문과 방송은 안 봅니까? 지금 전준구 목사 때문에 수면아래에 있어 그러하지 그 일이 끝이 나면 또 등장할 것입니다.

    무조건 가만히 있으라는 것이 아니라 이정도면 앞으로 함부로 나오지 않겠지요?
    저도 전준구 목사의 저리 버티는것 당황스럽지만 이제는 무슨 사연들인지 밝혀야 된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목사님께서도 전준구 목사를 직접 찾아가 권면해보세요. 후배 되실터인데...
    전, 후임자의 관계로 연결되어 주구走狗노릇 한 이들이 교단안에 이름만대면 알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저는 그가 순순히 물러나지 않으면 이제는 어떻게 된 일인지 제도로서 분명히 밝혀야 된다는 생각입니다.
    혹시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해도 보완하여 가는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섭섭한 맘 푸십시오.-


    • 2018-12-14 08:41

      현재 분출되고 있는 목소리를 목사님은 이른바 기득권자들이
      입버릇처럼 매도하는 집단행동 내지는 선동으로 격하시키는 것으로
      보고 있기에 이에 대한 유감이요
      목사님의 너무 관변적인 색깔이 짙은 글에 대한 반론입니다.

      저도 '목적을 위해 수단을 정당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하는 행동에는
      찬동할 수 없습니다.

      다만 그렇다고 거룩을 가장한 침묵이나
      또 다른 이권을 챙기려는 얄팍한 지도자들,
      그리고 감리회와 목사의 위상을 망가뜨린
      한 저급한 인간에 대한 관용이 사랑으로 둔갑한
      역겨운 모습을 보다 못해 의분을 갖게 되었고
      그런 다수의 의분들을 평가절하 시켜서는 안된다는
      단호한 입장에 선 저와의 관점 차이라 여겨집니다.

      거시적 차원에서 이 난제를 해결하는데 윈-윈의
      전략과 행함있는 믿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 2018-12-13 12:08

    오목사님, 오목사님과 저는 원조 촛불, 원조 태극기부대였지요. 33년 전에 1986년 민주화항쟁이 일어나기 전에, 은평지방에
    함께 몸담고 있던 동역자들이 양광교회에 모여서 기도회를 갖고서 촛불을 들고 거리행진에 나섰지요. 이덕주목사가 십자가를 메고,
    저는 그 뒤에서 대형 태극기를 들고 나서서 민주화를 염원하는 그 첫번 기도회를 우리가 하였지않습니까? 당시 동아일보에 이 기사가 실렸고 이어서 시민들의 항쟁이 이어졌고, 결국 629 선언을 끌어내지 않았습니까? 당시 은평지방에서 함께 목회하던 오목사님과 저는 원조 촛불이고, 원조 태극기였다고 기억합니다. 그 당시 우리들은 군사정권에 맞서 의로운 분노를 그렇게 표현하지 않았습니까? 저는 지금 우리 감리회 일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의로운 분노의 표출이라고 봅니다. 앞으로는 J목사와 같은 사람이 나와서는 안되겠기에 많은 사람들이 침묵을 깨고 나서는 겁니다. 33년 전 시대를 아파하며 느꼈던 우리의 감정을 지금 우리 감리회에 몸담고있는 분들이 어머니 감리회를 보면서 똑같이 느끼며 행동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 의분과 결의를 너무 나무라지 마세요. 과거 우리가 촛불들고 태극기 들어 나라가 바뀌었듯이 지금 피켓들고 나서는 분들이 있기에 감리회는 분명 달라지고 바뀔 것입니다.


  • 2018-12-13 12:25

    채재관 목사님!
    우리가 진정 두려워 해야할 것은 내가 판단하는 義가 아니라 함께 공존하는이들의 눈에 어찌 비추이느냐 하는겁니다.
    지난번 글에도 섭섭히 생각하는 분들이 있어 표현했지만, 지금 성토의 대열에 있는이들중에 동성애를 찬양하든 이들도 있고
    본인도 야반 도주했으면서도 서명에 동참하고, 집요하게 소송의 달인이라는 별호가 붙은 이들도 있고, 도대체가 냉철하게 신앙안에서 의연함으로 대하자는것은 전준구를 지지하는것으로 몰아부치는, 이게 정상입니까? 저는 성토하는 모든분들을 잘못했다는것이 아니라.주변좀 둘러보면서 하라는것입니다. 그리고 신앙인과 영적리더인 목사들에게는 꼭 해야할 일과, 하고싶은일,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일도 있기에 제대로 판단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목사에게 있어 선동과 구호보다 더 쉬운것이 뭐가 있겟습니까? 물론 그 분들도 꼭 좋아서 정죄하는 그일을 하겠습니까? 그러나 몇분은 線을 넘었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서로 허물어대면 이제 우리를 도와줄이들은 이땅에 하나님 한분외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성경에서 하지말라는 일들만 골라하고 있으니... -참고하겠습니다.-


  • 2018-12-13 19:58

    공적 공간에서 망신주기에 집착하는 이들이나
    정말 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목사에게 있어 선동과 구호보다 더 쉬운것이 뭐가 있겟습니까?
    물론 그 분들도 꼭 좋아서 정죄하는 그일을 하겠습니까? 그러나 몇분은 線을 넘었다는 생각입니다.

    ----

    목사님 말꼬리를 잡는 게 아닙니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설명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 2018-12-13 22:19

    장광호 목사께...
    개인적으로 전화를 할 수도 있겠으나 공개된 장소에 물으셨으니,
    나는 장 목사님을 잘 모릅니다. 그리나 그 외에 몇몇분들은 대충 압니다.
    지난 10여 년 동안 크고 작은 사건 속에 많은 모습들을 보아왔기에, 그들의 신앙성향도 대충은 알고...

    아래 채재관 목사의 답 글, “전우리가... ...중 략... ...그리고 목사들에게는 꼭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도 있기에 제대로 판단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내용입니다. “그리고 저는 현 백 삼현 회장의 오로지 앞만 보는 선동과 학생들을 참여 시키는 것은 반대입니다. 저는”目的이 수단을 정당화 하는 것은 함정“이라는 소신을 갖고 있습니다. 나도 전준구 목사께서 사실여부를 떠나 물러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습니다. 다른 방법이 있나요? 제도뿐이 없다는 생각입니다만, 떠들면 교단만 망신살이 뻣치고...당당의 하단교계단신에 cbs의 동영상이 올려져 있습니다. 이게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회 입니까? 한두번 해본후에 효과가 없으면 교단을 생각하는 면에서 차분히 대처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장 목사께서는 같은 연회이시니 본인의 소신대로 하십시오. 관여치 않겠습니다.


    • 2018-12-14 06:44

      목사님!

      쓰신 원글을 또 읽어 보면서

      이런 중차대한 시기에
      목사로서 취해야 할 자세에 대해 권면하시는 것으로 저는 이해했습니다.

      다만, 댓글 논쟁에서는

      이 사태회복에 앞장 서시는 몇 분들의 과거 행적과 신앙색깔을 연관시키면서,

      교단의 명예를 위해서
      한 두번 해도 안 되면 법에 맡기고
      더 이상 선동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견과 함께

      제게는 소속 연회일로 하는 것이니 소신대로 하라는 의견을 피력하셨습니다.

      이런 읽기가 맞다면
      제 의견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사태와 관련한 우리들 모두의 현재 처신들은 심판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과
      감리교회와
      세상이라는 3군데 심판정에서.
      시간상으로는 차이가 날지라도.

      이 3가지 심판을 다 통과하지 못하는 행동과 처신들은 문제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진실은 어느 곳이든 승리하니까요.

      따라서 우리는
      이 세 곳에서 다 인정받는 논리라야
      교회가 교회다워짐에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지금의 이 사안에서만큼은 그렇습니다.

      과거의 행적이 어떠하든
      신앙의 색깔이 어떠하든

      집안 부끄러우니 그만 하자는 논리조차도 평가받게 될 것입니다.

      과연 감리교회를 살리려는 고언이었는 지
      아니면 자정운동을 약화시키려는 것이었는지를.

      머잖아 이 사태를 역사적으로 정리하시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그 속에 한 두줄 정도로 언급될 지는
      모르나 분명 이 논쟁들도 평가될 것입니다.

      아마도 목사님께서는 밤잠을 설쳐가면서까지
      신중에 신중을 거쳐 글을 쓰시는 곳으로 압니다.

      저 역시 밤잠을 설쳐가며 한달 동안 30여편을 글을 썼었는데 그때마다 수 십번을 검토한 후 올리고 있습니다.

      혹여 누구에겐가 단 한 사람이라도 상처주지 않을까 싶어서요.

      목사님 글이나 제 글 역시 모두를 살리는 글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목사님의 감리교회를 사랑하시는 마음에 경의를 표합니다.


  • 2018-12-14 11:04

    감리교회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감리교회를 염려하시는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최종 해결자는 주님이시라고 저는 확실히 믿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람의 입장에서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방법론상 차이가 있는 까닭에 목사님께서 우려 섞인 글을 쓰셨다고 생각합니다.
    감리교회의 일을 밖에서 떠벌리는 일이 감리교회에 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목사님께서 조금 너그럽게 생각하시면 어떠실지요.
    이미 세상에서 이 일을 다 알고 있으니, 이제 관심은 어떻게 결말을 맺을까 아니겠습니까?

    감리교회다운 결말을 위해 하는 행동이라고 너그럽게 넘기시면 어떠실지요?

    자칫, 목사님의 진의가 잘못 전달될까 하여 소견을 피력하였습니다.

    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 2018-12-14 20:52

    꽤 여러해전에, 인천 이유빈 장로의 외침전도에 참여한적이 있습니다.
    모두 이해가 되는것은 아니나, 전도하는 이들중에 자신의 罪를 자백하고
    외치는데 내용이 너무 충격적인 내용들인 까닭에 말들이 많았습니다.
    그날, 이장로께서 지나가는 말처럼, 거리에 나가서 전도해본이들은 그들이 비록 부족해도
    결코 전도하는이들을 비난하지않는다고...이미 세상이 다알고 있다고요?
    그들이 아는것과 자체내에서 연합회장이라는이들이 침소봉대하여 세상을 향하여 나팔을 불어대는것과 같습니까?
    저의 생각이지만, 지금 우리교단이 성경이 말하는 교회가 맞다면 전준구 목사못지않게 그들의 罪 결코 가볍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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