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서지방 광복절 연합예배 설교(2008.8.10)
참 해방의 길
누가복음 9:28-36
할렐루야!
하나님의 은혜와 평화가 오늘 연합으로 모인 철원서지방 17교회 성도님들 위에 함께 하시길 축원합니다.
광복 63주년을 맞아 역사적인 현장인 구 철원제일교회에서 이렇게 연합예배를 드리게 된 것을 감사드립니다. 올해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지 60주년을 맞는 해이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더욱 뜻 깊은 감사의 해요, 은총의 해입니다.
철원은 우리 감리교회 강원도 지역 선교의 발상지이고, 많은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곳입니다. 특별히 평화통일시대를 준비하며 구 철원제일교회에 대한 복원과 또 철원지방의 순교자에 대한 기념사업은 우리 감리교회 차원에서 큰 관심사가 되었습니다.
한동안 철원지역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지 지역의 하나였습니다. 예전에는 한 나라의 도읍이 있던 곳이고, 쌀농사로 유명한 평원지대였으며, 또 여러분이 서 있는 구 철원제일교회의 터만 보더라도 규모있는 도회지였지만 다만 군사적 전략지로만 인식될 뿐이었습니다. 그것은 남과 북의 분단의 현장이요, 민간인의 통제가 금지되는 작전지역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더 이상 철원은 오지도 아니고, 민통선 지역도 아닙니다. 이 지역 땅값이 많이 올랐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만큼 남북 사이에 평화가 찾아오고, 정착하여 살 만한 곳이 되었다는 증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앞으로 더욱 발전할 철원지역과 더욱 부흥할 우리 감리교회의 내일을 꿈 꿉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것처럼 철원은 당시 38선 이북의 북한에 속한 지역이었습니다. 여러분의 부모님과 믿음의 선배들은 신앙을 지키기 위해 눈물과 피를 요구 당하였고, 또 순교의 정신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서기훈 목사님을 비롯하여 한국전쟁 당시 순교자들의 뜨거운 피가 그 의로움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은 이 땅에서 더욱 진실한 믿음을 지키고 화해와 평화를 위해 기도해야할 사명이 있습니다.
우리는 일제 강점 시기에 민족과 교회가 겪은 고난과 아픔을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그럴수록 8월 15일, 이 날을 생각할 때 그 감격과 기쁨이 새롭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반복되는 독도와 관련한 일본의 야욕과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시비를 보면 우리는 아직 일제의 우산을 완전히 벗지 못했다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우리는 과거의 짐을 벗고, 온전한 해방을 이루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과제인가를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일제시대와 분단시대 우리 민족의 삶은 골고다와 같았고, 십자가와 다름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민족에게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은총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고통 속에서, 아픔 가운데 십자가를 극복할 수 있는 신앙과 용기를 주셨습니다. 민주화를 이루고, 경제성장을 통해 부흥케 하셨습니다.
우리는 오늘의 평화와 행복이 있기까지 우리 민족과 교회를 위해 눈물과 피를 흘렸던 선구자들이 계셨음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고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짊어지라는 말씀을 들을 때는 “아멘”할 수 있지만, 실제로 그 십자가를 짊어지고 산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우리 자신의 목숨을 거는 희생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는 수없이 많은 변화산 체험이 필요하고, 수없이 많은 겟세마네의 밤이 필요할 것입니다.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변화산 사건입니다. 누가복음에 따르면 변화산 사건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고난과 부활에 대한 첫 번 째 예고를 한 다음에 일어난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변화산 사건이 있기 8일 전에 주님께서는 무리를 향해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변화산 사건이지만, 다시 본문을 자세히 살펴봅시다. 예수님께서 제자 베드로,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산에 올라가서 기도하시던 중에 갑자기 신비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기도하시던 주님의 용모는 변화되었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난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일은 문득 두 사람이 나타나 예수님과 대화하는 장면입니다. 그들은 히브리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와 예언자인 모세와 엘리야였습니다.
흥미를 끄는 것은 예수님과 두 사람이 나눈 말씀의 내용입니다. 누가복음 9장 31절은 세 분의 대화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영광 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씀할 쌔”.
여기에서 ‘별세’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이 낱말을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당할 죽음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물론 십자가 사건을 가리키지만, 단지 죽음이란 의미는 아닙니다.
누가복음은 이 낱말을 분명하게 사용하는데 원어로는 바로 ‘엑소더스’입니다. 엑소더스란 무엇입니까?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종살이로부터 해방의 사건, 즉 출애굽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새로운 ‘출애굽’을 계획하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에 국한하지 않고, 온 인류에게 해당하는 ‘엑소더스’입니다. 그리고 모든 백성을 향해 참 해방의 길을 가도록 이끌어 내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베드로가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라고 말한 것은, 변화산의 황홀경에 빠진 탓이었습니다. 바로 십자가의 의미도, 주님이 이끄시는 엑소더스의 의미도 모른 채 하는 말이었습니다.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편안한 삶에 자주 주저하고, 자주 머물고 싶고, 자주 안주하고 싶은 것이 우리들의 마음입니다.
성경은 위대한 하나님의 해방을 기록합니다.
첫 번 째 엑소더스는 애굽에서 종살이하고, 억압받던 히브리인들이 가나안으로 출애굽 한 것입니다.
두 번 째 엑소더스는 바벨론 포로귀환 사건입니다.
세 번 째 엑소더스는 바로 하나님의 엑소더스, 즉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짊어지신 십자가 사건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엑소더스 사건은 바로 주님의 자기 비움이었고, 십자가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십자가는 우리로 하여금 끊임없이 너희의 속박을 벗어나라, 너희를 옥죄는 죄의 올가미로부터 자유로워지라고 명령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광복 63주년 기념예배를 드리면서, 여러분은 어떤 엑소더스를 계획하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슬픔으로부터 탈출, 가난으로부터 탈출, 고난으로부터 탈출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자신의 엑소더스를 계획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진실하고 아름답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은 주위 강대국에게 끊임없이 시달렸고, 결국 식민지 상황을 겪기도 했습니다. 수난과 핍박을 당했으나 그럼에도 하나님께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강렬한 사명감으로 가득하였습니다. 고난을 뛰어 넘은 희망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엑소더스를 노래합니다.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로다”.
우리 민족도 오랜 세월동안 고난과 핍박을 받았습니다. 이민족의 침략, 일제 식민지 지배, 분단과 군사독재의 폭력성은 쉴 날 없이 계속되었습니다. 한국교회가 부족했음에도 불구하고 민족의 고난에 함께 한 역사적인 교회라는 평가를 듣는 것은 순교와 자기희생의 사랑 덕분이라고 믿습니다. 순교의 피는 예수를 사랑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이 민족의 해방을 이끌어낸 나라사랑이었습니다.
이제 미완의 광복을 극복하고 화해케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이 민족이 완전한 해방을 누릴 수 있도록 주님과 함께 새로운 엑소더스, 참 해방의 길로 나아가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일제로부터 해방되었지만 이것은 참된 해방이 아니었습니다. 여전히 남과 북의 분단이 계속되는 한 우리는 편안히 잠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참 해방의 길은 우리 민족 남과 북이 화해하고, 평화롭게 통일되며, 공동의 번영이 이루어질 때만이 가능할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바로 이러한 험난한 해방의 길에서 평화를 위해 일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보여주신 거룩한 삶의 모범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오늘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십시오.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능력을 믿기를 즐거워하지만,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 일은 멀리합니다. 어디서든 잘 살고, 축복받는 방법을 가르치는 교회는 많지만, 평화로운 삶을 깨우치는 곳은 미미하기만 합니다. 누구나 평화를 간절히 원하지만 우리 교회에서나, 우리 사회에서나 평화란 가장 비현실적인 화제가 되었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9절은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화해자로 부르셨습니다. 우리 가운데 죄 없이 사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죄인인 우리를 책망하시기는커녕 오히려 자녀로 부르시고, 용서하셨습니다. 또 당신과 화해하셨을 뿐만 아니라, 화해의 사절로 삼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우리는 죄를 용서받고, 화해케 하는 직분을 맡은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번 광복 63주년을 맞아 우리가 더욱 뜨거운 사랑과 뜨거운 가슴으로 우리 민족의 하나 됨을 위해 기도하길 바랍니다. 이 폐허가 된 자리에 새로운 역사가 일어나서 구 철원제일교회 복원사업이 하루 속히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철원지역에 구원받는 백성이 늘어나고, 우리나라에서 으뜸가는 평화선교의 모델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삼천리 방방곡곡에 제2의 해방, 제3의 광복이 이루어지길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철원서지방 모든 성도님들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이 땅에서부터 진정한 해방과 광복을 허락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