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학박사원 최고지도자과정 졸업식 설교(2008.7.7)
희망을 주는 목회자상
빌 3:12-16
하나님의 은혜가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축원합니다.
오늘 목회학 박사원 최고지도자과정 졸업식을 축하드립니다. 지난 3년 동안 공부하느라 얼마나 고생하셨습니까? 바라기는 오늘의 성취에 만족하지 말고 더욱 기도와 학문을 통해 목회적 성장과 성숙을 이루어가길 축원드립니다.
또 이 과정을 마치기까지 이를 주관해 오신 조영준 원장님과 실무를 맡아 수고하신 장종철 교수님 등 박사원 관계자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동안 우여곡절이 참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졸업식이 더욱 커다란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위로를 주시고, 앞으로 더욱 정진하여 귀한 일에 쓰임받기를 기대합니다.
우리는 메도디스트입니다.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존 웨슬리는 ‘한 책의 사람’이요, 또 ‘만 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한 책의 사람’이라고 불리는 까닭은 존 웨슬리가 오직 성경의 사람이었음을 의미하며, ‘만 권의 사람’이라고 불린데서 알 수 있듯이 우리는 웨슬리가 목회자로서 평생 자신의 지적능력을 위해 노력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감리교회 목회자로서 존 웨슬리를 통해 모범을 배워야 합니다. 존 웨슬리는 그의 설교에서 목회자가 갖춰야할 영적이고, 지적인 조건에 대해 말한 적이 있습니다. 히브리어와 헬라어 등 성서원어에 대한 마스터는 물론 주석과 방법론에 대한 확고한 이해는 필수적이고, 게다가 인문과학과 사회과학, 자연과학 등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요구하였습니다.
목회자에게 지적인 능력은 필요조건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당연하고 기본적인 것일 뿐입니다.
<가톨릭 신문>은 창간 71주년 기념으로 설문조사를 하였습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오늘날 평신도들은 성직자에 대해 이런 기대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개신교 목회자에게도 해당될 것 같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① 신자들에게 모범이 되는 영성과 기도생활
② 겸손과 자상한 태도
③ 헌신적이고 봉사적인 태도
④ 폭넓은 지식과 안목
⑤ 검소하고 절제있는 생활
⑥ 맡은 소임을 원활하게 수행할 수 있는 행정 능력과 책임감
사실 설문에 응답한 사람들이 성직자에 대해 어떤 지적인 능력이나 학위를 요구하지 않는 것은 바로 기본적으로 갖추어야할 소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덧붙여 필요하고도, 충분한 조건이 있는데 그것은 영적 능력입니다. 그 능력은 매우 구체적인 데서 출발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람은 목회자로서 능력을 남다른 출세나, 욕망의 실현이나, 경쟁의 도구로 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는 사랑과 섬김, 자유로움과 가난함을 체질화해야 합니다.
지난 해 장단기발전위원회가 백서를 내면서 우리 감리교회의 미래를 위해 하루 빨리 “섬김의 영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이것은 ‘세속 속의 성자’를 강조하였던 웨슬리의 영성을 의미하는 것이고, 21세기 우리 감리교회가 새로운 부흥을 모색하기 위한 대안이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우리는 영성을 강조하지만 감리교회다운 영적인 생활에 대해서는 소홀합니다. 우리 감리교회의 특별한 영성과 리더십은 더욱 강화되어야 하고, 이를 통해 목회자와 평신도가 모두 새로워져야 합니다.
성경에서 대표적인 모델을 찾아보면 사도 바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본문인 빌립보서 3장에서 자기 경험을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쫓아가노라”(빌 3:12).
당시 최고의 초대 교회 최고의 지성인 바울이 쓴 편지들은 기독교 신학의 정수요, 오늘까지 기독교 신앙의 핵심으로 계승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평생 그리스도에게 붙잡힌 바 된 그의 삶에 더욱 커다란 은혜를 받습니다. 그의 성숙한 경험담은 지금도 목회라는 달음질을 계속 하고 있는 우리에게 좋은 교훈이 되고 있습니다.
바울의 달음질을 생각해 보십시오. 바울의 자랑은 결코 빠름에 있지 않습니다. 그는 결코 다 이루었다고도, 자신이 완전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꾸준히 한결같은 마음으로 달음질 해왔음을 고백합니다.
그의 달음질에는 분명한 목표와 중심이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부르신다는 믿음과 또 목표를 가르쳐 주셨다는 믿음 그리고 언제나 함께 달리시며 내 삶의 중심이 되신다는 믿음입니다.
빌립보서 3장은 13-14절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빌립보서는 사도 바울이 감옥에 있을 때 쓴 편지입니다. 흔히 생각하기에 감옥은 희망을 말하기에 참 부적합한 곳입니다. 그곳은 앞길이 열려있는 희망의 장소가 아니라, 사방이 꽉 막혀 있는 절망의 현장이었습니다. 사실 바울은 환경에 좌우되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상황이나 조건이 아니라 달음질 하는 사람의 태도입니다.
우리 감리교회는 올해는 존 웨슬리 회심 270주년 기념주일을 맞이 하였습니다.
몇 주 전에 저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어느 언론사(한겨레 20주년)와 창간 기념 인터뷰를 한 내용을 읽으면서 깜짝 놀란 일이 있습니다. 그 이야기 속에 감리교회가 언급되었기 때문입니다.
김 전 대통령은 18세기 영국사회를 설명하면서, 당시 영국이 산업혁명 이후 서민 특히 노동자층이 절망하여 폭동이 일어날 지경에 이르렀으나 평화적으로 민주혁명으로 전환할 수 있었던 것은 세 부분의 역할이 중요하였다면서 평가하면서 그 중에서도 “우선 감리교가 서민층에 들어가서 그들과 고통을 함께 하였다”고 가장 높이 추겨 세웠습니다. 참 놀라운 식견이 아닐 수 없습니다.
종종 우리는 존 웨슬리가 우리 감리교회 창시자요, 그래서 집안 인물이기 때문에 우리끼리 자화자찬 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존 웨슬리는 그만큼 위대한 하나님의 사도였고, 사랑의 실천자였습니다. 그래서 프랑스 역사가 토마스 칼라일은 “웨슬리의 신앙운동은 곧 사회개혁운동이었기에 영국은 프랑스 같은 유혈혁명을 사전에 막았다”고 높이 평가하였던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복종하신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서로 섬기는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겸손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알고,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깨달으며, 자신의 한계와 연약함과 죄인임을 인식할 때 가능합니다. 우리의 실패의 원인은 결코 약함에 있지 않습니다. 스스로 강하다고 생각하는데 있습니다.
저는 가장 아름다운 경건의 모양은 한 마디로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리스도를 본받는 일, 예수의 마음을 닮아가는 일은 최고의 영성이요, 최상의 영성입니다.
이용도 목사는 1930년 2월 20일 <일기>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예수를 요구하느냐,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찾으라.
사람의 예수,
너희가 만들어 세운 예수 말고!
예수를 갖다가
너희 마음에 맞게 할 것이 아니라,
너희를 갖다가
예수에게 맞게 하라.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사역과 제자의 길에 함께 하셔서, 언제나 은총과 존귀함이 같이 하시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희망을 주는 감리교회”와“희망을 주는 목회자상”을 함께 만들어 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