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총감 출판감사예배 설교(2008.6.3)
희망의 중심
호 12:6
하나님의 은혜와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축원합니다.
장로총감 출판을 축하드립니다. 여기에 우리 감리교회의 기둥이요, 허리와 같은 장로님들의 모든 인명이 기록된 줄로 알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기록하여 하나의 정보록이요, 역사책으로 남긴 박경진 회장님을 비롯하여 수고하신 모든 분들의 헌신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바라기는 이 책자가 단순한 인명록에 그치지 않고 하늘나라의 생명록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기대하기는 이 안에 담겨있는 모든 장로님들의 이름이 “희망을 주는 감리교회의 모범 장로상”으로 이름 날 줄로 믿습니다.
저는 어느 조직이든 구심점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 중심이 바른 역할을 할 때 전체가 무게중심과 바른 비전을 갖고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것은 주도권을 독점한다든지, 우선권을 갖는 차원은 아닙니다. 저는 이 구심점을 희망의 중심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조선소를 방문하여 몸통을 드러낸 배를 본 적이 있습니다. 먼 바다를 항해하는 큰 배들은 나룻배와 달리 밑바닥 앞부분이 주둥이처럼 툭 튀어 나와 있습니다. 이것을 용골이라고 부릅니다. 용골은 한마디로 풍랑을 만난 배가 기울지 않고 언제나 제자리로 돌아오게 하는 쇠뭉치를 말합니다. 즉 오뚜기와 같이 중심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배는 역설적인 몸을 지니고 있는 셈입니다. 빨리 목적지를 가려면 제 몸을 가볍게 해야 하는데, 제 몸에 무거운 쇠뭉치를 달고 다니니 말입니다. 저는 큰 배의 용골이야말로 꼭 필요한 무게중심이요, 그렇기 때문에 희망의 중심이라고 믿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감리교회도 커다란 배입니다. 배중에서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지으신 방주입니다. 저는 4년 가까이 감독회장직을 수행하면서 위기의식을 많이 느꼈습니다. 참 커다란 파도를 만나고, 풍랑을 헤쳐 나간다는 생각이 든 것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물론 우리 감리교회 뿐 아니라 한국기독교 전체의 문제입니다.
문제는 우리 스스로 안일하여 남들이 다 아는 그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과연 우리를 소망의 항구로 이끌어 줄 희망의 중심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탄 배의 용골은 누구일까요? 여러분도 그런 생각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바라기는 여러분 자신이 우리 감리교회의 ‘희망의 중심’이 되시길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이제 21세기는 ‘섬김의 리더십’이 가장 커다란 지도력이라고 합니다. 실은 지난 2천년동안 이 진리는 한결 같았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몸소 가르쳐주신 성육신의 가르침이었습니다.
저는 지난 4년 동안 희망을 역설해 왔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만 희망을 두는 것입니다. “그러니 너희는 하나님께로 돌아오너라. 사랑과 정의를 지키며 너희 하나님에게만 희망을 두고 살아라”(호 12:6).
저는 이러한 교단적인 대회와 행사가 있을 때마다 희망을 설교해 왔습니다. 교회가 참 희망을 주기 위해서는 먼저 거룩함을 회복해야 한다고 설교하였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사람들이 교회를 향해 희망을 보지 못하는 까닭은 본래 교회의 모습을 잃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교회가 거룩하지 않고, 성도들이 신실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한국교회는 참으로 많은 것을 가졌습니다만, 가장 중요한 거룩함, 즉 하나님의 성품인 거룩함을 잃어 세상으로부터 비판을 듣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최우선과제는 거룩함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이제 우리는 말로만 회개하고, 입으로만 각성할 것이 아니라 변화된 삶을 살아야 하고, 회개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 신실한 백성으로 거듭나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희망을 주는 감리교회”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우리 감리교회는 존 웨슬리의 영적 유산을 계승하여 “신실한 사람들, 희망을 주는 감리교회”를 위해 진력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이것이 열매를 맺어 우리 5,923 감리교회와 156만 감리교인이 먼저 “신실한 사람들”로 거듭나고, 영적인 능력을 회복함으로써, 전체 기독교의 건강성을 회복하는데 앞장서기를 바랍니다.
누구보다 여기 장로총감에 기록된 이름들이 빌립보서 3장 14절 말씀인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음질친 사도 바울처럼 우리 감리교회의 믿음의 승전보를 전하는 자랑스런 용사의 이름들이 되기를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5장 3절에서 장로들을 향해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여러분은 그 의미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러한 권면은 당시 소아시아에 있는 교회들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좋은 환경, 좋은 대접, 좋은 미래가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러기에 베드로는 장로를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예할 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그들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당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그리스도를 위하여 증언했다는 사실을 뜻합니다.
특히 베드로 사도는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 왔으니’라고 그리스도의 재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인류의 역사에 가장 위대한 사건 즉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사건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오신다는 그 사실 때문에만 그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날이 우리에게는 삶의 결산의 날이요 또한 우리들에게 승리의 날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여러분은 거룩한 직책을 위해 부름 받은 사람들입니다. 앞으로 더욱 종말론적인 자세로, 마지막 때란 심정으로 더욱 충성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이럴 때에만 우리 감리교회는 희망이 있습니다. 바로 여러분이 우리 교회의 희망의 중심이 되셔야 합니다.
오늘의 우리 기독교대한감리회는 목회자들의 희생과 수고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현재 우리 감리교회는 숱한 평신도 지도자들의 눈물의 기도와 헌신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그 자랑스런 선배들의 그 헌신을, 그 기도를, 그 사랑을 먼저 본받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리하여 베드로 사도의 희망대로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벧전 5:4)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지난 주간에 우리가 기념했습니다만, 올해는 존 웨슬리 회심 270주년의 해입니다. 존 웨슬리는 1789년 감리교 설교자 총회에서 감리교의 목적에 대해 이렇게 선언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감리교인을 불러일으키신 목적은 어떤 새로운 교파를 세움이 아니요 먼저 교회를 개혁하고, 민족을 개혁하고, 성서적 성결을 온 땅에 전파하는 것이다”
저는 우리 감리교회가 희망의 통로가 되기 위해 늘 기도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우리 감리교회가 이 민족과 세계를 향한 축복의 통로가 되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 너희는 하나님께로 돌아오너라. 사랑과 정의를 지키며 너희 하나님에게만 희망을 두고 살아라”.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 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