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선교사대회 개회예배 설교(2008.4.3)
희망의 순례자
행 20:13-17
할렐루야!
세계선교사대회에 참석한 모든 선교사님들께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모두를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그동안 고향과 조국을 떠나 주님의 사역을 위해 몸소 큰 고생을 자청한 여러분의 수고 덕분으로 우리 감리교회의 세계선교는 나날이 성장하고 발전하고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세계 구석구석에서 오지와 벽지를 가리지 않고 헌신하고 있음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선교사는 본인이 받은 소명이고, 스스로 자청하고 나선 일이지만, 가족이 겪는 불편과 불안은 함께 감수해야할 십자가일 것입니다.
늘 송구스러운 것은 우리가 여러분을 파송하였지만, 충분히 지원하고, 배려하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 때문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우리 감리교회가 여러분과 더불어 세계로 나아가면서도, 여러분과 함께 미래에 대해 구체적으로 고민하지 못하고 있음은 참 죄송한 일입니다. 이제 선교사대회가 계기가 되어 서로 격려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새로운 희망을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얼마 전 우리는 부활주일을 맞았습니다. 이젠 역사책으로나 이해합니다만, 꼭 123년 전 부활주일에 아펜젤러 선교사 내외가 제물포항에 도착하여 한국 선교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역사학자 E.H 카는 “역사는 언제나 다시 쓰는 현대사이다”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이 이야기에 비추어보면 아펜젤러의 역사는 오늘 우리의 현실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바로 ‘희망의 순례자’로 부름 받은 여러분은 자기가 몸담고 있는 선교지에서 또 다른 이름의 아펜젤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선교사 여러분의 복음을 위한 헌신과 희생은 또 하나의 역사가 될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19-20)고 하셨습니다.
이 명령은 바로 여러분이 처음 파송 받았을 때에 들었던 말씀일 것입니다. 아니 이 당부는 여러분이 처음 주님의 사역을 결단했을 때에 이미 가슴을 두드렸던 음성일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 주님의 칭찬과 함께 들을 말씀인 줄 믿습니다.
이러한 파송의 말씀이 언제나 여러분을 일깨워주고, 여러분을 새롭게 하고, 여러분에게 능력을 주고, 여러분을 든든히 세워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통해 우리가 희망을 파송하였음을 깨닫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세계 선교 시대를 개척한 분은 사도 바울입니다. 2천 년 전, 하나님께서 바울 사도를 통해 선교적 사명을 위임하시고, 감당케 하신 일을 묵상해 본다면 지금 나 자신이 얼마나 위대한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고 있는지 실감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인 사도행전 20장은 제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사도 바울의 이야기입니다. 사도 바울의 발자취를 순례하는 사람마다 강조점이 다르고, 감동이 다를 테지만, 오늘 본문은 매우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사도행전 20장 13절을 보면 “우리는 앞서 배를 타고 앗소에서 바울을 태우려고 그리로 행선하니 이는 자기가 도보로 가고자 하여 이렇게 정하여 준 것이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자세히 읽지 않으면 중요한 메시지를 놓치기 십상입니다.
성경에 단 한 절로 지나치듯 다루어진 이 말씀은 바울이 전도여행을 마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여정에서 ‘드로아에서 앗소까지’혼자 걸어갔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고 있습니다. 다른 일행은 뱃길을 이용하였는데, 이상하게도 바울은 도보로 갔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제3차 전도여행을 하는 동안 선교의 중심지역은 에베소였고, 사도행전 19장에는 이곳에서 사역했던 내용이 자세히 소개되어 있습니다. 선교지역을 자주 옮겨 다녔던 바울이 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에베소 한 곳에만 머물렀다는 사실은 이례적인 일입니다.
사도행전 19장 10절은 “이같이 두 해 동안을 하매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바울의 에베소 사역은 큰 결실을 이루어냈습니다.
드디어 바울은 임무를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애초에 고린도에서 팔레스타인 북쪽 시리아 지역으로 가는 배를 탈 계획이었습니다. 그곳은 곧장 예루살렘과 육로로 통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암살음모를 피해 마게도냐 지역으로 돌아가는 길을 택하게 되었기 때문에 육로를 이용하여 빌립보까지 올라가서, 거기서 배를 타고 소아시아에 속한 항구 도시 드로아에 도착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곳에서 며칠 묵은 바울은 동행하는 모든 일행을 배편으로 앗소까지 가게 한 후 자신은 혼자 ‘드로아에서 앗소까지’ 걸어가는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이것은 의외의 일입니다. 왜 바울은 부지런히 걸어도 한나절은 꼬박 걸리는 약 25 킬로미터 남짓의 거리를 혼자서 걸어가려고 했을까요?
우리는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을 에베소 교회 장로들에게 한 ‘고별설교’(행 20:17-38)를 통해 그 단서를 찾을 수 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 대표들을 밀레도까지 불러내어 그들과 작별인사를 하였습니다. 그는 설교에서 자신의 힘겨웠던 지난 시간을 잠깐 회상한 후에, 이제 자신이 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또 절실하게 에베소 교회의 평안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2-24).
이 설교는 마치 죽음을 앞에 둔 것처럼 절절함과 비장감을 느끼게 합니다. 그리고 설교를 마친 후 바울과 에베소 교인들은 서로 목을 끌어안고 대성통곡하였습니다.
바울의 고별설교는 서둘러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그의 속마음이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선교를 마치고 돌아가는 바울에게는 ‘환영과 축복’ 대신 ‘결박과 환난’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성령께서 자신을 그렇게 이끌어 가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비장한 결단을 하고 예루살렘 행을 택하였으며, 이미 목숨을 거는 각오를 하였습니다.
바울이 ‘드로아에서 앗소까지’ 홀로 걸었던 이유는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그는 남의 방해를 받지 않고, 그 비장한 결심과 목숨을 건 결단을 굳게 하려고 나 홀로 걸었던 것입니다. 바울에게는 결단하려는 시간이 필요했기에 일행을 먼저 뱃길로 보내고 홀로 남았습니다.
마치 얍복강을 건너기 전의 야곱의 심정과 같았습니다. 마치 잡히기 전날 밤,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던 겟세마네를 연상케 합니다. 바울은 울부짖고, 뒹구르며, 원망을 쏟아냈을 지 모를 일입니다. 마침내 바울은 성령이 이끌어가고 있는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을 자신이 가야할 길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 후부터 바울은 끝내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바울은 울부짖으며 바울에게 매달리는 사람들에게 대답하였습니다.“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행 21:13).
더 이상 바울은 자신의 결단에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바울의 ‘거룩한 고집’은 어떤 환상이나 계시보다 오히려 우리에게 더 큰 신비감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그의 거룩한 고집은 말할 수 없는 감동으로 다가 옵니다.
우리는 중요한 결정을 앞둘수록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길을 고민하게 됩니다. 아마 여러분도 선교지를 선택할 때든지, 그곳을 떠날 때든지, 또 어떤 위기와 어려움에 부닥쳐서든지 나 홀로 결단해야할 자신만의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누구에게나 ‘드로아에서 앗소까지’그 결심의 길, 희망의 순례는 꼭 필요하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혼자서 걸어갔던 그 길, ‘드로아에서 앗소까지’는 고귀한 결단을 낳은 자리였습니다. 바울이 오늘의 바울인 까닭은 그가 저술한 위대한 편지들과 세계적인 전도여행 뿐만 아니라, 바로 ‘드로아에서 앗소까지’ 홀로 걸으며 위대한 결단을 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길은 바로 야곱을 야곱 되게 했던 얍복강 가였고, 예수 그리스도를 예수 그리스도답게 하였던 겟세마네였습니다. 사랑하는 선교사 여러분! 자신의 얍복강 가와 겟세마네가 있는 사람은 결코 실패하지 않을 줄로 믿습니다. 그는 막다른 길에서 조차 순간순간 하나님을 체험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선교사 여러분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온 인류를 향해 파송한 복음 전도자이며, 희망의 사도라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복음 전도자로, 희망의 사도로 삼으신 까닭은 하나님께서 만민을 구원하고자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위대한 사도 바울의 영적 자녀요, 선교사 학교 후배요, 믿음의 역사의 남은 자가 되었습니다.
이제 선교 123주년을 맞은 기독교대한감리회는 나라 안에서는 민족의 복음화와 화해를 위해, 나라 밖에서는 땅 끝 전도와 세계 평화를 위해 감리교인답게 더욱 헌신할 때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 자신부터 성령으로 충만하며, 나를 파송하신 하나님께 죽도록 충성합시다. 그리하여 복음에 목마른 온 세상과 인류를 위해 참 희망 그 자체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선교사 여러분과 가족들 위에, 이를 위해 기도하고 후원하는 모든 교회 위에 크신 은혜를 베푸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