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선교사 수련회 개회설교(2008.2.11)
오늘의 마게도냐
행 16:6-12
가든지 보내든지 하라!!
이 문구 그대로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선교를 위해 이 땅에 보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 주님의 지상 명령에 순종하여, 복음을 위해 삶을 드린 사랑하는 선교사 여러분 한 분 한 분을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여러분 모두와 여러분의 가정, 그리고 여러분이 여러분의 삶을 드린 사역지 가운데 주님이 주시는 은혜와 평화가 넘치기를 기원합니다.
한국 교회가 지난 120여년의 선교 역사에서 큰 부흥을 이루고 많은 영혼을 구원한 것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복입니다. 한국교회는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총을 기억해야 합니다. 저는 감사하는 마음에는 반드시 책임감이 뒤 따른다고 믿습니다.
누군가 밭을 갈았기에 씨앗을 뿌릴 수 있었습니다. 또한, 씨앗을 뿌리는 사람이 있었기에 이 땅에서 복음의 나무가 무럭무럭 자랐습니다. 물주고, 거름을 주는 사람이 있었기에 열매를 맺을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계획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전도의 과정을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고전 3:6-7).
우리 민족과 한국교회는 선교의 빚을 지고 있습니다. 아직도 이 땅에는 구원받아야 할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만하면 되었다’는 자만에 빠지거나 타성에 젖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더 나아가 세상을 향해 복음선교를 확장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옥토도 중요하지만 씨를 뿌리는 자가 있어야 합니다. 씨 뿌리는 자가 없으면 종자가 땅에 들어갈 수 없듯이 누군가 뿌리는 수고를 감당해야 합니다. 바울 사도가 전한대로, 전파하는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복음의 소식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뜨거운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먼저 구원받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간절한 소원을 이루어 드려야 할 의무가 있고 사명이 있으며 책임이 있습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이것은 또한 예수님의 소원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8장 19절에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유언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부탁한 말씀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고백한다면 예수님의 유언의 말씀은 꼭 지켜야 할 것입니다. 육신의 자식들도 부모님의 마지막 유언의 말씀을 지키는데 하물며 주님의 유언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은 당연한 도리일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주님의 명령과 유언에 충성을 다한 분입니다. 그는 복음을 전하는 일에, 주님께로부터 받은 대사명에 충성을 다했습니다. 사도행전 16장 9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 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하나님께서 아시아 지역을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하던 바울에게 밤에 환상을 보이셨습니다. 환상을 본 후 바울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첫째, 먼저 바울은 하나님의 명령에 즉각 순종하였습니다.
그가 밤에 환상을 본 드로아는, 옛날의 그 유명한 트로이 전쟁이 벌어졌던 터키 반도의 끝 부분에 있는 트로이입니다. 바울과 실라, 그리고 디모데와 누가 일행이 드로아로 오던 뱃길은 지금도 남아 있는데, 바람이 불면 돛단배로 이틀쯤 걸린다고 합니다. 그들이 내린 곳은 네압볼리 항구였는데, 이 네압볼리는 현재 카발라로 이름이 바뀌어 있고 비행장까지 갖춘 번화한 항구도시가 되어 있습니다.
이렇듯 바울은 환상을 보았을 때, 즉시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썼습니다. 왜냐하면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마게도냐 사람의 요청을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믿고,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저 사람들에게도 예수의 복음, 생명의 복음, 구원의 복음을 전하라고 부르신 줄로 인정하였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바울이 아시아에서 전도활동에 성공하였지만, 일단 아시아 전도를 중단케 하시고, 유럽으로 발걸음을 돌리게 하셨던 사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교사들의 계획을 방해하신 셈입니다. 성령, 곧 예수의 영을 통해 하나님께서 더 큰, 원대한 계획을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거룩한 훼방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훼방을 통해 오히려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위대한 비전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는 마게도냐인의 요청에 응답한 바울처럼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더 큰 성공을 위해 우리를 중단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더욱 아름다운 성취를 위해 잠시 포기하게도 하십니다. 우리는 어느 때든지 말씀하시는 성령의 부르심에 자신을 내려놓고 즉각 순종할 줄 알아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은 복음전도의 사명을 더욱 굳게 하였습니다.
바울 당시의 네압볼리는 그저 배가 정박했다가 떠나는 초라한 어촌이었음이 분명합니다. 바울 일행은 네압볼리에 내렸지만 그곳에 지체하지 않고 빌립보로 걸어갔습니다. 그때는 빌립보가 이 지방에서 가장 화려하고 인구도 많은 도시였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은 그들은 아마도 주님께서 마게도냐로 선교여행을 떠나라고 명령한 것은 그런 초라한 항구를 상대로 복음을 전하라는 것이 아니라, 이 지역에서 가장 번화한 도시인 빌립보에 가서 전도하라는 것으로 확신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 로마 제국의 중심부까지 전해져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그 길을 타고 드디어 기독교의 세계화를 이루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시대는 예레미야와 같이 영혼을 사랑하여 마음속에 불타는 뜨거운 마음을 가진 전도자가 필요합니다. 지금 우리 주변에는 추수기가 되어서 복음을 전하기만 하면 예수를 믿으려는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즉 추수해 주기를 기다리는 무르익은 곡식들이 바람에 날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나가서 추수를 해야 될 일꾼들입니다. 우리는 추수할 일꾼으로 부름을 받은 사명자들입니다. 사명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 어떤 것보다 영혼에 대한 뜨거운 사랑입니다. 우리 모두의 마음에 한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불타오르는 열정이 회복되어야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사람의 영혼을 사랑하여 가슴에 불을 태웠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고백하기를 “나는 복음에 빚진 자이기 때문에 내가 부득불 복음을 전해야 하리라. 만일에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만일 스스로 복음을 전할 마음이 우러나지 않으면 불가불 직분을 가졌기 때문에 복음을 전해야 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지상에 교회를 세우신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 나라를 전 세계에 확장하는 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 나가서 우리의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열심히 증거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성공한 사람, 똑똑한 사람을 찾지 않으십니다. 다만 생명을 구하기 위해 기꺼이 선교의 사명을 자각하고 헌신한 일꾼을 부르십니다.
셋째, 아시아 지역은 오늘의 마게도냐입니다.
마게도냐 사람이 환상 중에 나타나 사도 바울에게 우리를 도와 달라고 요청했던 것처럼 우리의 도움을 기다리는 아시아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겠습니다. 눈을 들어 나를 보고, 우리를 보고, 세계를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눈을 들어 땅 끝과 그리고 방방곡곡을 바라볼 때 선교의 문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선교는 지상명령입니다.
우리는 선교사 사도 바울의 헌신을 배워야 합니다. 그가 받은 사명은 주님 자신이 말씀하신 것처럼 얼마나 큰 피해를 받아야 할지 모를 험난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한 번도 마다한 일이 없었으며 채찍을 맞고 옥에 갇힌 때도 오히려 감사 찬송하였습니다. 바울은 고통을 겪으면서 전도를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발걸음을 아름다운 구원의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롬 10:14-15).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를 향해 주님께서는 오늘의 마게도냐인 아시아 지역을 향한 복음사명을 일깨우고 계심을 믿습니다. 아시아 지역은 오늘의 마게도냐입니다. 세계 인구의 5분의 3인 황인종이 우리가 사는 지역에 있는데, 불과 7%만이 예수를 믿는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십시오. 아시아 여러 나라의 선교 현황에 비교해 볼 때 우리 나라는 25%나 되지만, 다른 나라와 민족의 교세를 살펴보면 참으로 미미합니다. 대만은 3%, 인도는 1%도 안 되며, 일본은 0.5%, 싱가폴은 한국과 비슷해서 교세가 강한 편이지만 인구가 200만밖에 되지 않아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계 인구의 4분의 1인 여러분이 섬기는 중국은 교세가 많이 성장하여 6천만 명이나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아직은 우리와 같은 선교의 자유는 없지만 복음은 계속 확산되고 있다고도 들었습니다. 우리의 책임이 막중합니다.
세계의 정치, 경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사람들은 다가올 미래의 세계를 지배할 언어를 다섯으로 꼽고 있습니다. 그것은 영어, 일어, 중국어, 프랑스어 그리고 한국어입니다. 한국어의 가치가 빛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지금 우리나라는 세계 11위의 경제강국이요, 복음의 부국입니다. 선교사적 관점에서 조명해 보더라도 한국은 더 이상 변방이 아닙니다.
과거에 중세의 유럽 지도를 보면 영국은 왼쪽 끝에 밀린 변방의 섬으로 그려져 있었고, 당시 세계의 중심지는 지중해였습니다. 그러다가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과 함께 변방 외딴 섬이던 영국은 세계의 중심이 되었고 자연히 세계지도는 영국을 중심으로 그려지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세계열강들이 자신들의 제국주의적 야망의 수단으로 이용해 오던 한국이었지만, 이제는 한국의 협조를 구해야만 되는 입장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정학적으로 세계의 변방에서 중심권으로 한국이 그 위치를 바꾸게 된다면 선교의 역할 역시 그 위치가 바뀌게 될 것입니다. 선교 120여 년의 짧은 역사 동안에 한국교회의 기독교인수를 우리나라 인구의 25% 정도로 크게 성장케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시아에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동방의 끝에 전초기지를 삼으신 것입니다. 마지막 날 추수하는 백성을 삼고자 하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위대한 환상을 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방향을 포기하고,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명령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비전을 꿈꾸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소원을 이루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저는 감독회장으로서 한두 가지 부탁과 권면으로 여러분을 격려해 드리고 싶습니다.
그 한 가지는, 하나님은 여러분을 일꾼으로가 아니라 자녀로 부르셨다는 믿음을 늘 잃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사역에서 때로는 실패하고, 실수하고, 그래서 지치고 상한 맘으로 힘겨울 수 있습니다. 누가 뭐라고 하기 전에 먼저 자괴감과 무력감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 때에도 하나님은 여러분을 있는 모습 그대로 긍정하고 계시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여러분 스스로를 긍정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상황과 환경 가운데서도 함께하시는 그 분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그 분은 여러분을 이곳에 보내신 분이십니다. 그것은 여러분을 또한 끝까지 책임지실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끝이라고 말씀하시기 전엔 결코 끝이 아닙니다. 여러분 자신을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그 사랑으로 동역자들을 사랑하십시오. 여러분에게 맡긴 영혼들을 사랑하십시오. 부디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맡기신 것은 일이 아니라 영혼들이라는 사실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여러분의 일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이라는 것을.
다른 하나는, 관계 가운데 성공하기를 부탁드립니다.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주 삶은 관계요, 관계 가운데 성공해야한다고 말씀드리곤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성공하십시오. 그러기 위해 그 분과 교제하는 일을 위한 시간을 따로 떼어 놓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이 현장의 체험으로 더 잘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다만 살아내기를 격려해 드리고 싶습니다. 또한, 여러분 여러분의 동역자와의 관계에서 성공하시기 바랍니다. ‘인간’이라는 말은 ‘사람 사이’라는 말입니다. 사람 사이에는 글자 그대로 사이, 즉 간격이 있어야합니다. 사이는 예의입니다. 예의는 존중이며 인정입니다. 있는 그대로 그 사람을 용납하는 것입니다.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 다를 뿐 틀리지 않습니다.” 절대 진리는 하나님 한 분 뿐이십니다. 서로 인정하고 격려하고 존중하는 가운데 동역자와의 관계에서 성공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선교 동역자 여러분. 본국의 선교국에서 여러분을 힘써 섬기고 돕고자 하다가 때론 실망을 안겨 드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을 파송한 교회나 후원단체에서 서운하게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린 찬양하지 않습니까? ‘하나님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 없으시고’… 계속해서 우리는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의 헌신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되어 여러분 스스로가 행복한 선교사가 되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오늘날의 마게도냐인 아시아, 세계인구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중국의 영혼들을 품고 헌신하는 여러분 한 분 한 분께 주님의 평화와 위로가 넘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