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도 평신도 신년하례회 설교
희망과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
갈라디아 5:1-6
할렐루야!
2008년 새해에 하나님의 은혜가 기독교대한감리회와 오늘 평신도단체연합회 신년하례회에 참석하신 여러분과 같이 하시길 축원합니다.
새해에 어떤 좋은 소망을 하나님께 아뢰셨습니까? 여러분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주님 안에서 평안하며, 가정마다 사업마다 화목하고 형통하시길 바랍니다. 올해에도 하나님께서 평신도단체마다 기도하고 계획하는 일, 특히 “희망을 주는 감리교회”를 이루어 가는 데 앞장서시고, 여러분 자신이 희망의 사람이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저는 지난 1년 동안 여러분의 사랑과 배려에 힘입어서 여전히 희망을 말할 수 있음을 감사드립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여러분 어떠신지 모르나 저는 요즘 제 마음의 시간이 시속 70 킬로미터로 달리고 있음을 느낍니다. 참 세월은 흐르는 물과 같다는 사실을 더욱 실감합니다. 흔히 말하듯이 마음은 이팔청춘인데, 몸은 예전 같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새해를 맞아 특별히 건강하시길 축원합니다.
저는 새해를 맞으면서 주마등처럼 지난 2007년을 돌이켜 보았습니다. 무엇보다 성공적인 영남선교대회를 위해 노심초사하던 일, 10여 차례 희망대심방을 위해 소외된 지역을 찾아다니던 일, 본부 행정책임자로서 투명하고 정직하게 운영하여 현장교회로 부터 신뢰를 얻기 위해 씨름하던 일, 이런 저런 교회의 불화와 궂은 소식을 들으면서 밤잠을 못 이루던 일, 교단장 회의나 연합사업에서 감리교회의 위상을 높이고 중심을 잡던 일…
사실 잘난 자식에 대한 자랑보다 못난 자식의 아픔이 더 부모의 가슴에 새겨지는 것처럼, 저는 우리 감리교회의 희망을 말하면서도 사실 우리 교회가 앓고 있는 갈등과 상처와 비난과 다툼 때문에 괴로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모두 제 기도의 제목이 되었고, 무릎을 꿇어야만 했으며, 또 기도의 응답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다시 새해를 맞았다는 것은 얼마나 크신 하나님의 선물인지, 늘 과분한 마음을 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새해를 맞는다는 것은 우리에게 새로운 꿈을 꾸게 하고, 방향과 목표를 바르게 향하도록 일깨워 준다는 고마움이 있습니다. 오늘 저는 ‘희망과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란 주제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본문 갈라디아서 5장 1절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강하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인이 된다는 것은 바로 첫째 ‘성령을 따라 사는 일’이며, 둘째 ‘하나님과 관계 안에서 희망을 갖는 일’이며, 셋째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참 자유란 무엇입니까?
자나 깨나 돈 생각만 하는 사람은 돈에 끌려 사는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은 놀음에 끌려 패가망신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가정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여기에서 헤어나지를 못합니다. 그런가 하면 술에 끌려 사는 사람, 출세에 매여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영원히 해결할 수 없는 무서운 한에 맺혀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요즘은 새 정부가 들어선다는 소식에 이래저래 불러주는 사람을 찾는 분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무엇인가에 매여살고, 끌려 다니는 사람이라면 참 불행한 삶이요, 비참한 인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디엔가 매여서 헤어날 수 없는 빠져 나올래야 빠져나올 수 없는 부자유한 존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궁극적인 삶의 목표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얻는 일입니다.
올해는 무자년, 쥐띠해입니다. 이솝 우화에 ‘요술장이와 생쥐’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생쥐 한 마리가 요술쟁이의 집에 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집에 고양이가 살았기 때문에 무서워서 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요술쟁이는 불쌍하게 생각해서 생쥐를 고양이의 모양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생쥐가 개를 무서워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개의 모양으로 다시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호랑이가 무섭다는 것이었습니다. 실망한 요술쟁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겉모양만 바뀌었지 속은 계속 생쥐의 마음이니 가망이 없다. 다시 생쥐가 되어라.”
믿음은 무엇입니까? 믿음생활은 단지 겉모습의 변화에 그치지 않습니다. 믿음은 속사람의 변화를 뜻합니다. 겉모양이야 어떻게 보이든, 외형적인 조건이 어떻게 변화하든 그것들은 문제의 해결점이 되지 못합니다. 해결은 생쥐의 겉모습이 아니라, 마음이 거듭 나는 부활에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통한 자유냐, 율법아래서 종살이냐 라는 양자택일의 물음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사실 자유는 방종이 아닙니다. 무슨 권한과 의무의 문제가 압니다. 바로 선택과 결단의 문제입니다. 일찍이 여호수아도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 24:15)고 선언했던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종이 됨으로서 얻는 자유“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먼저 섬김으로써 얻게 되는 무한한 자유, 그것이 바로 가장 위대한 자유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자유입니다. 그것은 자신을 자기 자신에게 맡기는 것이 아니라, 무엇에 매이거나 끌려다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내맡기는 것입니다. 이 믿음은 오직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바로 이것을 ‘사랑으로써 역사 하는 믿음’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틴 루터는 종교개혁 3대 논문의 하나인 <그리스도인의 자유>에서 “기독교인의 두 가지 모습이란 서로 모순되는 두 사람이 한 사람 안에 있는 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은 왕 같은 존엄성을 가진 존재요, 동시에 종 같은 섬김의 삶을 가진 존재라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13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갈 5:13).
사랑하는 여러분!
한해 한 살을 더 먹음으로써 저나 여러분 모두 우리의 생물학적 인생의 길이는 더욱 짧아졌습니다. 바라기는 내 삶을 통해 어떤 인생의 본보기가 마련되었고, 또 어떤 신앙의 유산을 물려줄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기도할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유를 방종하고, 내 사사로운 유익을 구하고, 남을 부리고 비난하는 수단으로 삼았다면 그것은 신실한 종의 모습이 아닐 것입니다.
이제 저와 여러분은 한국감리교회의 희망을 위해, 그 신실함을 위해 올해 2008년에도 불덩이처럼 뜨겁게 살아갈 줄로 믿습니다.
이제 저와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 자유인으로서, 섬김의 영성을 가지고 하나님 안에서는 어린 아이가 되고, 세상을 향해서는 성숙한 어른이 될 수 있을 줄로 믿습니다.
이제 저와 여러분은 존 웨슬리 회심 270주년을 맞은 올해에 더욱 신실한 감리교인으로서, 우리 감리교회가 제2의 회심, 제3의 부흥의 시대를 열어갈 수 있을 줄로 믿습니다.
그리하여 2008년 한 해도 나날이 새로워지고, 든든히 서 가며, 세계와 세상으로 나아가는 “희망을 주는 감리교회”, “희망을 주는 평신도단체연합회”가 되시길 간절히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