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선교회전국연합회 신년축복성회(2008.1.1)
다시 하나님께로
마 6:9-10
할렐루야!
하나님의 은혜가 남선교회전국연합회와 오늘 거룩한 성회에 참석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축원합니다.
2008년 새해를 맞아 남선교회가 먼저 하나님 앞에서 영적으로 각성하고, 새로워지기 위해 영성회복 신년성회를 연 것을 축하드립니다. 한 해의 첫날, 첫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려는 여러분의 소중한 마음을 하나님께서 귀하게 받으시고, 복을 주실 줄 믿습니다. 올해에도 조명동 회장님을 비롯하여 모든 임원들과 온 회원들이 한 마음으로 섬기고, 협력하며, 사랑함으로써 날마다 든든히 서가는 자랑스러운 우리 감리교회의 남선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우리는 지난 해 영적대각성의 100주년을 보내면서 한국감리교회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성숙과 부흥을 위한 방안을 모색하였습니다. 특히 8월 23일에 부산에서 열린 영남선교대회는 이를 실천하려는 감리교인들의 뜨거운 몸부림이었습니다. 전국에서 모인 8만여 명의 감리교인들은 기독교대한감리회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되었고, 영남선교대회를 통해 전도의 열심과 부흥의 소망을 이루어 갈 수 있게 되었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이날 비전선언문을 통해 이렇게 다짐하였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본을 보여주신 \\’섬김의 영성\\’을 통해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거룩함을 회복해야 합니다. ‘웨슬리 영성’에 기초한 감리교회의 신앙전통은 희망을 잃은 한국 사회와 능력을 상실한 교회를 부흥시킬 소중한 영적 유산입니다. 기독교대한감리회 5,825 교회, 153만 감리교인은 웨슬리영성을 계승하여 다시 “신실한 사람들”로 고백하고, “희망을 주는 감리교회”로 거듭나야 할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영남선교대회는 영남지역 감리교회 전도운동과 함께 감리교회의 영적대각성을 위한 자리였습니다. 영적각성은 한마디로 우리 자신이 신령한 공동체로 거듭나는 일입니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과분한 평가를 받아왔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본을 받아 앞장서서 십자가를 짊어져야 했음에도, 섬김의 도를 다하지 않았고, 책임의 짐을 짊어지지 못하였습니다.
요즘 교회를 향한 우려의 목소리를 자주 듣습니다. 물론 어제 오늘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언론이나 교회의 안팎에서 한국 개신교회를 걱정하고, 타박하는 소리가 수위를 높여가고 있습니다. 실은 우리 안에서도 일찍 부터 자성과 비판의 움직임이 있었으나 대부분 무시되거나 모른척해 온 것이 사실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러다가 예수님의 말씀처럼 돌들이 소리치는 엄청난 일이 벌어지지는 않을 지 염려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지난 해 우리가 일년 내내 목소리를 높여온 한국교회 영적대각성운동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십시다. 100년 전 한국교회 영적대각성운동의 출발점은 바로 회개의 사건 때문에 가능하였습니다. 로버트 하디 선교사 한 사람의 회개가 모든 사람의 회개를 가져왔고, 길선주 장로 한 사람의 영적 각성이 모든 사람의 영적각성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즉 한 사람이 하나님을 향해 바로 서고자 할 때 온 교회가 하나님을 향해 자복하고 가슴을 쳤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어떤 집단이나 모임은 결코 중요하지 않습니다. 바로 구체적인 한 사람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나 자신으로부터 회개와 나 자신으로부터 시작하는 영적각성입니다. 바로 나 한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 지 모릅니다.
이 세상과 만민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처럼, 마틴 루터 그 한 사람이 종교개혁의 불씨가 되었고, 한 사람 존 웨슬리의 회심을 통해 영국사회가 변화되고, 한 사람 로버트 하디와 한 사람 길선주를 통해 한국교회의 대부흥의 불이 붙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153만 감리교인 전체나 남선교회전국연합회 회원전부의 회개가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 라는 공동체도, ‘교단’이라는 단체도, 한국기독교라는 집단도 아닙니다. 바로 선지자 요나 한 사람의 회개처럼 한 사람의 불쏘시개가 필요하고,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회개와 영적 각성이 요청됩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하나님 앞에 바로 선 맑고 책임 있는 영혼이 필요합니다. 모든 사람을 부끄럽게 하고, 모든 사람의 가슴을 치게 하고, 우리 공동체를 탄식하게 할 그 한 사람은 과연 누구입니까?
본문은 우리가 잘 아는 주기도문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마칠 때 폐회사용으로 또는 아무 생각없이 주기도문을 암송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동방정교회에서는 주기도문을 드릴 때마다 사제가 이렇게 거룩하게 성별하여 회중들에게 선언한다고 합니다.
“오 주님, 우리를 용납하옵소서. 우리가 기쁘고 담대하게 하늘에 계신 주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주기도를 암송하는 것을 받아 주옵소서”.
사실 주기도문은 얼마나 소중한 기도입니까? 예수님께서 직접 가르쳐 주신 기도 중의 기도요, 고백 중의 고백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날마다 반복하여 고백하고, 암송하기 때문에 마치 우리가 가장 명심하고 잘 지키는 계명인 것 같지만, 실은 우리는 늘 그 기도를 배신하고 소홀히 취급하며 살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우리는 주기도문을 마치 감기 걸렸을 때 항생제 쓰듯이 그 의미를 남용하고 또 오용해 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기도문을 가르쳐 주시기 전에 주의해야 할 자선과 기도의 태도에 말씀하셨습니다만, 우리는 2천년이 되도록 여전히 그 잘못을 범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외식하는 자가 되지 말라고 하셨는데 우리는 늘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하였고, 자기 의를 자랑하면서 살아갑니다.
주님은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우리는 두 개의 오른손을 높이 들고 자랑하면서 살아갑니다.
주님은 골방에서 기도하라고 하셨는데, 우리의 기도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였고, 중언부언 하였으며, 온갖 세상욕심에 오염되었습니다.
남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로 저 자신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9-10).
우리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대신 우리 자신이 교단장이란 이름으로, 담임목사란 이름으로, 회장이요 장로란 이름으로 그 거룩함을 차지하려고 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간구하는 대신, 내 영광과 내 욕심의 실현을 위해 하나님의 나라를 거부하고 있지는 않았습니까?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보다 내가 주인이 된 이 체제가 계속 유지되고, 내 맘대로 떵떵거리는 방식이 평생 계속될 거라고 착각한 적은 없습니까?
오늘의 위기는 교회가 거룩함의 형식만을 유지할 뿐, 하나님의 이름에서 비롯한 그 거룩함에 대해 경외심을 잃어가고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하늘의 뜻과 사람의 뜻을 혼돈 하고, 하나님의 영광과 사람의 영광을 헷갈리고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오늘의 교회에서 하늘의 향기가 사라지고 성도들의 모습에서 신실함이 떠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2008년 새해를 맞아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오늘의 예배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오용되었고, 오늘의 나라와 권세 앞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평가절하 되었으며, 오늘의 도덕과 윤리와 풍습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남용되었습니다. 지금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있는 사람은 그 자리에서 다 내려와야 합니다. 사람의 뜻보다 하늘의 뜻을 두려워 할 줄 알아야합니다. 사람의 주장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무서워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지난 몇 년간 우리는 감리교회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였습니다. 이를 요약하는 한 단어를 찾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 자신의 본질과 관련된 문제이기에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 결과 감리교인들은 ‘신실한 사람들(Faithful Members)’이란 결론을 내렸습니다. 한마디로 ‘신실한 사람’은 ‘믿음(信)과 삶(實)’이 일치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가 신실한 감리교인이 된다는 것은 바로 그 거룩함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본받는 사람의 모습이고, 존 웨슬리의 영성을 따라 살아가는 감리교인의 모습이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지난 해 연회에서 ‘신실한 사람들- 감리교회의 세 가지 약속’을 선포하고, ‘목회자 윤리강령’, ‘감리교인 생활지침’, ‘사회규약’을 지킬 것을 다짐 한 바 있습니다. 이것은 일과성 통과의례로 치룬 의식이 아닙니다. 바로 감리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신실한 사람들”로 거듭나고 영적인 능력을 회복함으로써 민족과 사회를 향해 강력한 희망을 제시해 나가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섬김의 영성’을 안팎으로 전염시켜 세상을 더욱 바르게 섬기기 위한 복음적 방안을 생활화해야합니다. 그것은 분명히 희망의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올해는 존 웨슬리 회심 270주년의 해입니다. 우리 감리교회는 영적각성의 결과로 생겨난 회심의 종교요, 부흥운동으로 시작한 능력의 교회입니다.
우리는 단지 270주년이라는 시간에만 의미를 부여하여 존 웨슬리의 회심을 단지 기억하고, 기념하는데 머물러서는 안될 것입니다. 분명히 명심해야 할 것은 우리 안에서 제2의 회심, 제3의 부흥을 이루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웨슬리는 1789년 감리교 설교자 총회에서 감리교의 목적에 대해 이렇게 선언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감리교인을 불러일으키신 목적은 어떤 새로운 교파를 세움이 아니요 먼저 교회를 개혁하고, 민족을 개혁하고, 성서적 성결을 온 땅에 전파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목적에 합당한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예수 정신으로 무장하고, 복음의 능력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탈무드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율법학교 학생이 스승에게 와서 스스로 랍비가 될 자격을 갖추었다고 자랑하면서 이야기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스승은 “네가 말하는 자격이 무엇이냐?” 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저는 제 몸을 단련해서 맨땅 위에서도 잠을 잘 수 있고, 들판의 풀을 먹을 수 있으며, 날마다 채찍으로 세 번씩 제 몸을 때리며 훈련하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그 스승은 멀리 떨어져 있는 나귀를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저 나귀를 보아라. 저 나귀는 맨땅 위에서 자며, 들판의 풀을 먹고, 날마다 세 번 이상 채찍으로 맞는다. 지금까지 너는 나귀가 될 자격을 갖춘 것이지 랍비가 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겉만 반짝이는 형식과 자격이 아닙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께서 12명의 제자를 뽑으시고, 훈련하셨듯이 예수의 복음으로 훈련하고, 그리스도의 영으로 거듭나야 할 것입니다. 그리할 때 우리 주님께서는 여러분을 2008년 새로운 세상으로, 2008년 새로운 삶의 현장으로 여러분을 파송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감리교 선배들은 영적으로 부요한 삶을 살았습니다. 대표적으로 1903년 원산에서 감리교를 중심으로 일어난 회개와 기도운동은 전국으로 확산되어 마침내 1907년에 평양에서 대부흥운동으로 발전하였던 것입니다.
저는 올해 우리 한국감리교회가 철저하게 감리교인다운 감리교인으로 변화되는 경험을 해보고 싶습니다. 그것은 영국 사회를 변화시켰던 처음 메도디스트들의 모습을 닮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가슴이 뜨거워지는 일이고, 뜨거운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는 일입니다.
이를 위해 먼저 우리 감리교회 남선교회가 영적으로 각성하고, 여러분이 앞장 서서 말씀으로 더욱 깊어지고, 새로워짐으로써 존 웨슬리처럼 뜨거운 가슴으로 세계를 품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 자리에 모인 모든 심령들 존 웨슬리처럼 성령의 불쏘시개가 되시길 바랍니다. 또 뜨거운 성령체험으로 여러분 자신과 우리가 사랑하는 교회를 새롭게 하는데 헌신하시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 남선교회가 민족을 구원하는 일에 헌신하고, 이 사회를 성결케 하는 일에 앞장서고, 우리 감리교회의 영적 대각성과 희망을 주는 일에 선봉이 되어 주시길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하나님께서 2008년 새해에도 우리 감리교회에 은혜를 베푸셔서 나날이 새로워지고, 든든히 서가며, 세계와 세상으로 나아가는 교회가 되게 하시고, 또 우리 남선교회가 그리스도를 본받아 섬김의 영성으로 무장함으로써 “신실한 사람들, 희망을 주는 남선교회”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