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감리교생명농업인대회 개회예배 설교(2007.12.6)
희망의 씨앗을 뿌려라
시편 126:5-6
하나님의 은혜와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축원합니다.
먼저 제1회 감리교생명농업인대회를 열게 된 것을 축하드립니다. 1984년 감리교농촌선교목회자협의회가 생겨난 지 20년이 넘어서야 비로소 생산자 중심의 농촌선교운동이 벌어지게 된 것은 때늦은 일이지만 축하할 만한 사건입니다.
제가 알기로 여러분은 선구적인 생명농법으로 농사를 짓는 분들이라고 들었습니다. 오늘 “살려느냐, 생명을 택하라”를 주제로 드리는 이 대회가 사람의 생명을 살리고, 민족의 생명을 살리고,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농업과 농민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기회요, 자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저도 우리 감리교회의 생명농업인들이 기도와 노동으로 연대하고, 함께 희망을 열어가려는 노력에 대해 크게 격려와 지지를 보내드립니다.
요즘 한국에서 가장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은 농민들입니다. 그렇다고 사정이 곧 나아질 것 같지도 않습니다. 현재 완결된 한미 FTA를 보면 한국 농업이 겪게 될 불이익이 예고되어 있는 실정입니다. 앞으로 한국 농촌을 살릴 방안과 대책이 시급히 마련되어야 합니다. 정부 당국자들에게는 책상 위에서 논의되는 수많은 정책들 중에서 하나겠지만, 농촌에 있는 당사자들에게는 생명이 걸린 가장 중대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 교회도 농촌의 어려운 사정과 농민들의 희망을 위해 내 일처럼 관심을 갖고 협력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이 시간 “희망의 씨앗을 뿌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으면 팥 난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입니다. 또 많이 심으면 많이 나고,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두는 것은 인류의 경험입니다. 그러나 이 진리는 희망 사항 일뿐, 모든 씨앗이 기대한 만큼 풍성한 열매를 거두는 것은 아닙니다. 황무지에서 풍성한 수확을 기대할 수 없고, 요즘 시절에는 개천에서 용이 나는 일도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농부는 자연재난 때문에 곤경에 처하더라도, 하늘을 잠시 원망할 뿐 농사를 포기하는 법은 없습니다. 지난 가을 소출에 대해 제 값을 받지 못했다고 해서 새봄에 땅을 묵히는 농부들은 없습니다. 종종 사람들에게 속임을 당하고, 때로 법과 제도를 탓하지만 그렇다고 씨 뿌리는 일을 주저하지는 않습니다.
농부들은 하늘이 절대로 그들을 속이지 않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주의 법칙에는 부도가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농부들은 이러한 하늘의 정직과 성실을 믿음으로 농사를 짓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속담에 ‘벼는 주인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이 있습니다. ‘농사꾼은 죽어도 씨앗을 베고 죽는다’는 말도 생긴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씨 뿌리는 농부의 비유’(마 13:1-9)를 말씀하신 까닭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 말씀은 비록 농부가 씨앗을 뿌릴 때에 길가와 돌밭과 가시덤불에 떨어져 낭비가 있었지만, 좋은 땅에 뿌려진 씨앗을 통해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거두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 나라는 절망적인 시작에서 출발하나 영광스런 결실을 가져올 것임을 일깨워 주시려는 것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 126:5-6).
본문은 우리에게 희망은 기쁨으로 거두는 날이 아니라, 눈물을 흘리며 씨앗을 뿌리는 날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희망은 마침표가 아니라 출발점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희망은 시작을 가능케 하는 힘입니다. 그 힘은 마침내 아름다운 귀결을 가져올 것이라는 의미에서 희망입니다. 그런 뜻에서 오늘 제1회 감리교생명농업인대회를 여는 것은 바로 희망을 시작하는 일이요, 희망의 씨앗을 뿌리는 일입니다. 사도 바울은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빌 1:6)고 하였습니다. 시작하게 하신 주님께서 열매 맺게 하실 줄 믿습니다.
유감스러운 것은 예나 지금이나 농부들이 뿌리는 씨앗은 변질의 위험을 맞고 있습니다. 우리는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말을 더 이상 신뢰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농사를 가리켜 ‘섯다 농업’이라고도 부른다고 들었습니다. 아마 여러분도 모두 경험하셨을 것입니다. 내가 고추를 심었더니 남들도 다 고추를 심어서 값이 폭락하고, 이듬해에는 마늘을 심었는데 남들도 다 마늘을 심어서 또 망하게 되었습니다. 이젠 농사짓는 일도 노름하듯 해야 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제값을 받지 못했다고 씨앗을 뿌리는 일을 포기한 채 땅을 묵히는 농부는 아무도 없습니다. 여전히 씨앗을 뿌리는 농부는 늘 많은 수확을 기대하면서 한 알 한 알 정성껏 씨앗을 뿌릴 것입니다. 만약 농부에게 수확에 대한 희망이 없다면 그는 농사지을 이유가 없습니다. 저는 여러분이야말로 좋은 땅에 뿌려져 30배, 60배, 100배 귀한 열매를 맺는 존재가 되길 축원합니다.
저는 농사일, 즉 생명을 뿌리고 거두는 생명농업은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씨앗을 뿌리는 농부의 비유를 말씀하신 것은 농부가 씨앗을 뿌리듯이, 하나님 나라 운동을 열심히 하라는 것입니다. 낙심치 말고 희망을 지닌 농부가 되라는 것입니다. 씨 뿌리는 농부가 자기 혼자 먹고 살려고 씨앗을 뿌리는 것이 아니듯이,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역사의 땅에 씨를 뿌리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변에서 씨를 뿌리기도 전에 열매부터 기대하는 허망한 사람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한 여인이 꿈을 꾸었습니다. 그 여인은 새로 문을 연 가게에 들어가 구경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가게의 주인은 그녀가 믿고 있던 종교의 신이었습니다. 신은 그녀를 보며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여인이 무엇을 파는 가게냐고 묻었는데, 신은 “그야 무엇이든 당신이 원하는 것은 다 있다” 라고 말했습니다. 여인은 너무 기뻐 가슴을 진정시키며 외쳤습니다. “제게 평화와 행복, 부유함, 아름다움과 지혜를 주세요.”
그러자 신은 조용히 웃으며 “미안하네. 여기서는 열매를 팔지 않고, 다만 씨앗을 팔 뿐이네”라고 대답했습니다.
사실 모든 열매는 씨앗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씨앗에 별로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씨앗은 조그맣고 사소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씨눈은 작고, 주름지고 못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씨앗 속에는 생명이 담겨 있습니다. 환경과 조건이 주어질 때 생명은 자라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때때로 우리 자신은 우리의 씨앗이 변질되는 위기를 맞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합니다. 사실 오늘의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멀어져 가고 사회는 하나님의 법을 외면한지 오래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파괴되었고 가족은 점점 해체되어 가며 많은 이들이 소외된 가운데 인간다움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위기는 우리가 더욱 복음 가운데 뿌리를 내림으로써 극복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과 가정은 물론 일터와 교회 그리고 세계는 하나님의 밭이며 열매 맺게 하는 분은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톨스토이의 민화 중 ‘달걀 만한 씨앗’을 소개하겠습니다.
어느 날 산골짜기에서 한 농부가 달걀만한 큰 씨앗을 발견했습니다. 허리가 굽은 농부는 지팡이를 짚고 왕궁으로 가서 그것을 황제에게 바쳤습니다. 황제는 어디에서 어떻게 구했느냐고 묻고 어떻게 씨앗이 이렇게 큰가를 물었습니다. 농부는 자기는 모른다고 아버지에게 여쭈었고 그 아버지 역시 본적이 없는지라 또 자기의 아버지에게 의뢰했습니다.
할아버지 농부는 꼿꼿하게 황제 앞에 걸어가서 말했습니다. “이것은 제가 농사짓던 시절의 씨앗과 같습니다. 제가 살던 시절에는 곡식을 팔고 사는 그런 죄악을 궁리해 낸 사람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돈이란 것을 몰랐습니다. 밭은 하나님의 땅이었습니다. 제가 쟁기질하는 곳은 곧 제 밭이었습니다. 땅은 자유였습니다. 제가 일하는 땅이 제 것이 되었습니다.”
황제는 또 물었습니다. “옛날에는 이렇게 큰 씨앗이 생겼는데 지금은 왜 생기지 않느냐? 그리고 네 손자나 아들은 허리도 굽고 지팡이를 의지하며 걸어 다니는데 어떻게 가장 늙은 너는 눈도 밟고 이도 실하며 말도 또렷하게 하느냐?” 그 노인은 “옛날에는 세상사람들이 제 품으로 살았고 남의 것을 넘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를테면 옛날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았다는 말입니다.
저는 여러분께 당부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라는 속담을 언제나 진리로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그동안 세상이 여러분을 속이고, 제도와 시장이 여러분을 실망시키더라도 생명농법을 지키고, 그 생명을 키워나가기를 바랍니다.
시편 85편은 이렇게 찬양합니다.
사랑과 진실이 눈을 맞추고 정의와 평화가 입을 맞추리라.
땅에서는 진실이 돋아 나오고 하늘에선 정의가 굽어보리라.
야훼께서 복을 내리시리니 우리 땅이 열매를 맺어 주리라”(시 85:10-12)
앞으로 여러분이 이 땅에 뿌릴 수많은 씨앗들이 희망의 씨앗, 복음의 씨앗, 사랑의 씨앗, 섬김의 씨앗, 화해의 씨앗, 평화의 씨앗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여러분 모두 희망을 열어가는 농부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