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리교 교역자 평신도 연합성회 개회예배 설교(2007.8.20)
희망을 투자하라
마 26:6-13
할렐루야!
이 시간 감리교 교역자 평신도 연합성회에 참석하여 여러분과 함께 은혜를 나누게 됨을 감사드립니다. 전국부흥단장이신 현인섭 목사님을 비롯하여 모든 임원들, 그리고 존경하는 동역자들과 장로님들 그리고 참석하신 여러분 모두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평화가 같이 하시길 축원드립니다.
여러분은 영남선교대회를 준비하느라 얼마나 분주하십니까? 제가 어제 부산의 길목인 왜관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그곳에서 지난주 월요일부터 우리나라 남북을 가로질러 달려 내려가는 희망 달리기팀과 만나 왜관교회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희망달리기팀은 감리교 영남선교대회의 성공을 기원하면서, 123년 전 아펜젤러 선교사가 이 땅에 첫 발을 내디딘 인천 제물포부터 부산 아시아드 주경기장까지 무려 755킬로 미터를 지금도 달리고 있습니다. 이 희망달리기는 우리 감리교회 유일한 무교회 시군지역인 군위군에 교회를 개척하려는 목적을 갖고 진행되고 있습니다.
제가 듣자니 이번에 40여명의 참가자들 중에서 절반은 노익장을 자랑하는 분들이라고 합니다. 왜달리냐고 하니까, 영적대각성 100주년을 맞아 뭔가 몸부림을 치긴 쳐야겠는데, 입으로만 할 수 없고 그래서 뛴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우리는 말로만 회개하고, 입술로만 부르짖었지 내 안의 참된 성화에 대해서는 소홀하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영적각성의 대장정을 출발해야 합니다. 그것은 하루아침에 될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존 웨슬리의 말씀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기 위한 평생동안 계속하는 희망의 달리기라고 믿습니다. 저는 이 자리가 성령의 뜨거운 은혜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영적으로 각성하고, 다시 부흥할 힘을 얻는 복된 자리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예전에는 은혜를 사모하는 자리도 많고, 성령을 고대하는 가슴도 뜨거웠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많이 변했습니다. 사실 시대가 달라지고, 세태가 바뀐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만, 교역자의 영적생활까지 변하는 것은 경계해야 할 일입니다. 안타까운 일은 은혜 받는 집회마다 규모가 점점 축소되고, 열기가 식어가고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께 바라는 것은 부흥단이 앞장서서 영적 리더십을 발휘하여 다시금 영적으로 뜨겁게 불붙고, 성령의 은사를 사모하는 사람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오늘의 한국교회는 기도와 전도, 헌신과 희생으로 성장하였습니다. 이 모든 것을 용광로처럼 불 싸안은 성령의 역사로서만이 가능했습니다. 저는 영적 리더십의 기본은 기도요, 리더십 중의 리더십은 기도의 본보기를 통해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위대한 신앙인 파스칼은 “온갖 좋은 것과 함께 있을 때 지옥을 경험한다. 다 버리고 홀로 있을 때 하나님과 동행한다”고 말했습니다. 마치 기도하는 사람의 고결한 자세를 듣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무리를 이탈하여 자주 홀로 남으시고, 철저히 자신을 겸비하게 비우셨듯이, 오늘 여기에서 하나님과 마주하는 복된 무릎을 꿇는 자리가 되길 축원합니다.
우리 한국교회는 대부흥 100주년을 맞이하였습니다. 사실 100주년, 200주년이란 기념일이 우리를 변화시키지는 않습니다. 100주년 대회를 열고, 체육관집회를 대규모로 개최한다고 해서 우리의 신앙의 내용이나 경건의 모양이 달라지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영적각성을 위한 행사는 많이 있지만, 영적각성의 실천에 대한 생활이 부족한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무엘 선지자는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 15:22) 라고 말하였습니다. 진정한 영적각성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일이고, 그리스도의 본받는 일입니다. 저는 ‘그리스도를 본받는 일’이야말로 이 시대에 우리가 추구해야할 의 최고의 영성임을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여러분 모두가 나 자신이 먼저 새로워져서, 나를 통해 새로운 역사, 새로운 시대를 열어 가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사실 날마다 외적인 모습은 낡아가지만, 이젠 내적인 모습은 점점 젊어지고, 푸르러지길 축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부흥단이 앞장서서 더욱 성숙하고, 열매를 맺으며,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겨내는 여러분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우리 감리교회는 한국선교 123년의 역사 속에서 영적각성을 주도한 자랑스런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1903년 8월, 원산의 감리교 선교사집회에서 로버트 하디 선교사가 시작한 회개와 기도운동은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마침내 1907년 평양에서 대부흥운동의 결과를 낳았습니다. 영적각성의 내용은 무엇이었습니까?
이것은 억압받는 조선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새롭게 알고 이해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어느 교파에 국한되지 않고 한국교회를 새롭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한 민족과 교회를 향해 희망이 되었던 신앙운동이었습니다.
우리 감리교회가 8월 23일 부산에서 감리교 영남선교대회는 바로 영적대각성 100주년 실천대회입니다. 이를 통해 영남지역의 부흥과 감리교회가 하나되는 신령한 축제를 마련하려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도 이 일을 위해 많은 기도와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오늘날 너나없이 영적부흥이 필요하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진정한 부흥운동은 결코 구호에 그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려는 영적각성운동이고, 새로운 헌신운동입니다.
본문은 예수님의 사역에서 있었던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이 말씀은 헌신의 의미를 새롭게 이해시켜 주고 있습니다.
한 여인이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식사 중이던 예수님께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머리에 부어드렸습니다. 다른 복음서에 보면 이 옥합은 300데나리온이나 되는 값비싼 향유가 들어있었습니다. 그것은 장년 한사람이 일 년 동안 부지런히 노력해야 구할 수 있는 매우 값비싼 산 향유였습니다. 값비싼 향유값을 생각해 보면 이 여인의 행위는 결코 계산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여인이 행하는 모습을 보면서 계산이 빠른 가롯 유다는 “이 값비싼 향유를 팔아서 가난한 사람을 도우면 더 좋을 뻔 했다”라고 마음의 불평과 불만을 털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여인이 내게 잘 하였도다”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이 여인의 투자는 돌아올 이익을 계산한 투자가 아니었습니다. 이 여인이 한 일은 아름다운 섬김의 모습일 뿐인데, 세상 사람들은 투자가치가 없는 곳에 투자를 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값비싼 향유를 예수께 바친 것은 어찌 보면 낭비입니다. 신학자 폴 틸리히는 “이 여인의 행위는 거룩한 낭비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거룩한 낭비’야말로 참된 투자임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것이야말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지극한 사랑의 표현이고, 섬김의 모습이었습니다.
요즘 부모들의 열성적인 교육열로 사교육비가 엄청나게 지출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부모가 자식에게 투자를 하면서 본전을 뽑겠다는 생각을 하겠습니까? 내가 늙으면 몇 배로 상환 받아야 되겠다는 부모가 있습니까?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상거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직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연인관계에서 서로 간의 선물이나 데이트 비용에 어떤 타산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오히려 나누지 못해 안달입니다. 사랑을 하면 어떤 때는 낭비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사랑의 세계에서는 세상적 투자 기준으로 투자 할 수 없습니다. 세상적 기준에서 보면 투자가 아니요, 망하는 길이요, 낭비하는 길입니다. 그러나 그 투자가 그리스도 안에서는 진실한 투자일 때가 더 많습니다.
사실 어떤 분들은 영남선교대회에 대해 비판하기도 합니다. 그 많은 돈을 소비하면서 맘모스 대회를 꼭 해야 하느냐라는 항변입니다. 그러나 저는 선교는 투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긍정적인 생각, 사랑하는 마음으로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여러분이 피부로 가장 잘 접하는 당사자이겠지만, 영남지역은 복음의 사각지대처럼 느껴집니다. 전국에서 복음화율이 가장 낮은 지역입니다. 삼남연회에서 감독을 지내신 분이 이런 말씀을 하더군요. “서울에서 수 천 명 목회하는 목회자들도 영남에 내려오면 수 백 명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만큼 영남지역에서 감리교 목회가 어렵다는 이야기 일 테지만, 오랫동안 귓등에 여운으로 남았습니다.
심지어 우리 감리교회가 영남 어느 지역에서는 아직도 이단시비를 당한다고 들었습니다. 수도권과 중부권에서 차지하는 우리 감리교회의 높은 위상과 견주어 볼 때 비록 지역 텃세를 감안하더라도 현실은 너무 왜곡되어 있습니다. 이제 영남선교대회를 통해 우리 감리교회의 자랑스러운 전통과 복음을 위한 일치된 순종을 이 지역에 마음껏 보여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저는 영남선교대회는 300만 총력전도운동의 디딤돌이며, “희망을 주는 감리교회”의 주춧돌이라고 믿습니다.
며칠 전에 부산지역을 가보니 부산은 불이 붙었습니다. 이단소리를 들으면서 어려움과 무시를 겪었던 부산지역 감리교인들은 전국의 감리교회가 함께 하는 영남선교대회를 위해 얼마나 기대하며, 준비하는지 모릅니다. 이것은 결코 값으로 계산할 수 없습니다. 3년 전에는 비록 광주에 감리교회가 10개 밖에 없었지만, 호남선교대회의 성공으로 광주에서 감리교회는 더 이상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위상이 크게 올라갔다고 합니다. 그 때 훈련된 전도대가 제주로, 부산으로 열심히 그 사랑의 빚을 갚으려고 다니고 있습니다.
서울연회에서는 KTX 차량을 통째로 이미 전세 내었습니다. 가장 많이 오는 것으로 파악된 인천남지방은 버스를 27대나 예약했습니다. 성동지방은 900여명이 함께 KTX를 타고 방문합니다. 또 감리교회 모교회인 정동제일교회는 전도대 300명을 하루 전날 먼저 보내고, 또 강원도 화천지방은 수요일 밤에 미리 출발한다고 하고, 또 인천의 어느 교회는 아예 전 교회 수련회를 부산에 와서 한다고 들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부산의 조장로님은 영남선교대회 기념으로 예배당 건축과 원로 목사님들의 쉼터를 위해서 금싸라기땅을 기증하셨습니다. 심지어 미주특별연회에서 100명의 대표단을 파견합니다. 이것이야말로 ‘거룩한 낭비’요, ‘일치된 순종’입니다. 저는 앞으로 계속 이루 말할 수 없는 수많은 감동과 감사가 연출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낭비처럼 보이는 여인의 투자에 대해서 “내 장사를 위하여 행하였느니라”고 칭찬하셨습니다. 이 여인의 투자가 예수님의 장례식을 미리 행하는 행위 속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굉장한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내 복음이 전파되는 곳 어디서든지 이 일을 말하여 저를 기념하라”고 하셨습니다. 여인의 투자야 말로 성공적 투자였습니다. 참된 만족의 투자요, 행복의 투자였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붙드는 영원한 투자였습니다.
희망의 투자란 무엇입니까. 투자가 아닌 것을 투자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볼 때는 헛된 것이요, 낭비요, 실패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볼 때 그것이야말로 참된 투자입니다. 가룟 유다가 보는 것은 세상이 우리를 보는 눈초리와 같습니다. 낭비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도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모두 어떤 모습으로든지 투자를 하십시다. 기도로 투자하십시다. 시간을 투자하고, 노력을, 봉사를 투자하십시다.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슬기로운 투자가 많을수록 성숙한 열매를 얻는 기쁨이 있을 것을 확신합니다.
바울은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롬12:1)고 말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무엇보다 바라는 것은 우리들의 마음으로부터의 사랑과 생활에 의한 봉사인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감동과 충만함으로, 하나님 앞에서 영적인 교제를 나누며, 거룩한 제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영적각성운동 100년의 해를 맞아 우리가 먼저 변화하고, 새로워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 감리교회는 “신실한 사람들, 희망을 주는 감리교회”라는 슬로건을 만들었습니다.
처음부터 감리교회는 이러한 영적각성에서 출발한 교회였습니다. 우리 감리교회는 영적각성의 결과로 생겨난 회심의 종교인 것입니다. 특히 성령의 뜨거운 은혜를 사모하고, 성도들의 영적 생활을 돌아보는 일을 중요시하는 신령한 교회입니다. 그래서 메도디스트(methodist)라는 칭호가 붙여진 것입니다.
처음 감리교인은 세속 속의 성자로 불려졌습니다. 초기 감리교회의 슬로건은 “칭의, 성화, 일주일에 일페니”였습니다. 이처럼 믿음으로 의롭고, 거룩한 삶으로 성화되며, 이웃과 사회를 섬기고 봉사하는 특징을 지닌 신령한 공동체였던 것입니다.
저는 우리 감리교회부터 먼저 “신실한 사람들”로 거듭나고, 영적인 능력을 회복함으로써 민족과 사회를 향해 강력한 희망을 제시해 나가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희망의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이제 존 웨슬리의 부흥운동이 18세기 영국을 변화시켰듯이, 20세기 초에는 하디 선교사가 영적 새바람을 통해 부흥의 기초를 쌓았듯이, 21세기 벽두에는 우리 감리교회가 앞장서서 새로운 부흥운동을 주도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감리교 교역자 평신도 연합성회에 참석하신 여러분을 사랑하셔서, 희망의 선물을 허락하시고, 하나님을 향해 온전한 희망을 투자하게 하시며, 더 나아가 이 민족을 위한 희망의 도구로 사용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하여 “희망을 주는 감리교회”, “부흥을 이루어 가는 감리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