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임원대회 개회예배 설교(2007.5.16)
신실한 청지기
마 21:1-9
할렐루야!
하나님의 은혜와 평화가 감리교회의 희망을 열어갈 이 자리와 여러분 위에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멀리 경주까지 마다하지 않고 찾아와 주신 여러분 모두를 진심으로 환영하고 감사드립니다.
영적대각성 100주년의 해에 개최하는 ‘2007 임원대회는 매우 큰 의미가 있습니다. 특별히 저는 신실한 사람들, 희망의 청지기로 부름 받은 여러분 모두에게 하나님께서 좋은 리더십을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번 임원대회를 통해 우리 모두 성령으로 뜨거워지고, 믿음으로 거룩해지며, 사랑으로 하나 되는 특별한 은혜를 받는 기회요, 소중한 은총을 경험하는 자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감리교회는 다시 영적으로 각성함으로써, 나날이 새로워지고, 든든히 서 가며, 세계와 세상으로 나아가는 희망을 주는 공동체로 거듭나야할 시대적 소명을 갖고 있습니다.
영적각성이란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 죄로 벌거벗었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허물을 뉘우치기보다 자랑하는 일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닮기보다, 멀리해야할 세상의 습속에 더욱 편안해 합니다. 우리는 겉으로는 의로움을 내세웠지만 속으로는 죄인 중의 죄인이며, 말로는 섬김을 강조해왔으나 늘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한 오만한 존재였음을 자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의 교회가 왜 사회로부터 비난을 듣고,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고 있습니까? 누구의 책임이고, 잘못입니까? 경건의 모양만 있고, 경건한 생활을 게을리 한 부끄러운 우리 자신 때문입니다. 오늘의 교회가 성장이 중단되고 쇠퇴하기 시작했다는 데 대해 누가 책임을 져야 합니까? 행여 우리 자신은 진실함이 없는 거짓 열심에 들떠 내 교회만 키우고, 내 사람만 차지하려고 경쟁심을 부리지는 않았습니까? 오늘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가 신뢰를 잃고, 존엄을 상실한 것은 먼저 교회의 책임자요, 임원 된 우리들의 잘못 때문입니다.
우리가 “신실한 사람들, 희망을 주는 감리교회”를 부르짖는 것은 시간이 지나가면 폐기처분될 한낱 구호를 외치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우리 교회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경건한 신앙의 유산을 계승하려는 것입니다. 웨슬리의 뜨거운 가슴을 본받고, 로버트 하디의 통회하는 눈물을 배우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녀들에게 어떠한 신앙의 유산을 물려줄 것입니다.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어떤 모습의 기독교대한감리회를 계승할 것입니까?
저는 이 시간에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 24:15)는 여호수아의 결단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고 충성을 다하는 신실한 청지기의 모습을 결단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을 입성하실 때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통해 신실한 제자의 모습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먼저 주님께서는 제자 두 사람에게 나귀를 예비해 오도록 하셨는데, 제자들은 “주가 쓰시겠다 하라”(3)는 말씀에 순종하여 예수님의 거룩한 행진에 필요한 나귀를 준비해 왔습니다. 얼마나 신실한 제자의 모습입니까?
더욱 신실한 것은 나귀의 모습입니다. 나귀의 등장은 선지자 스가랴가 말씀한 예언의 실현입니다. 보십시오. 나귀의 등장은 수 세기 전부터 예비 된 것입니다.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5).
성경을 보십시오. 신실한 성품의 나귀는 중요한 사건이 있을 때마다 예비된 종으로, 신실한 모습으로 그 부르심에 충성을 다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22장에서 아브라함의 나귀로, 민수기 22장에서 예언자 발람의 나귀로, 누가복음 10장에서 선한 사마리아인의 나귀로 하나님의 길을 걷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당나귀에 대해서 평가를 인색하게 합니다만 나귀의 가치를 인정할 만한 훌륭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서부 개척시대에 멋진 말들이 많이 등장합니다만, 사실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말이 아니라 나귀였다고 합니다. 금을 캐는 광부는 언제나 신실한 동반자로 당나귀를 선택하였습니다. 왜 말이 아니고 나귀이어야 하는 까닭이 있습니다. 구부러진 황야길, 미끄러운 강가의 돌들을 가로지르기에 말의 발굽은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광부들은 말이 아니라 당나귀를 사용했습니다. 결국,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짐인 금가루와 금괴를 나를 수 있는 짐승은 당나귀였습니다.
이 보물은 오직 신실한 당나귀에게만 맡길 수 있었습니다.
서양교회는 오랫동안 당나귀들의 건장한 어깨 사이에 있는 독특한 검은 십자가 모양이 예수님을 겸손하게 섬겼던 수고에 대한 명예로운 보상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것은 영원한 ‘십자가 징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나귀는 남을 위한 봉사자로 비유되었습니다. 많은 기독교 봉사단체들은 나귀를 자신의 상징 동물로 삼았습니다. 유명한 ‘세계를 위한 빵’ 운동의 상징 역시 나귀 모양의 저금통입니다. 교회의 봉사자들, 즉 교회학교 교사들, 성가대원들, 교회 임원들, 모두 신실한 청지기들을 ‘나귀’임에 틀림없습니다.
우리가 신실함을 배울 수 있는 성경의 가장 큰 모범이 있다면 바로 나귀의 존재일 것입니다. 더 나아가 보잘것없은 나귀 등에 타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겸손한 짐승 위에 타신 예수님의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는 왕 중의 왕이며, 주의 주(主)이심을 뜻하고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종 중의 종이며 돕는 이 중의 돕는 이였습니다.
초대교회는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6-8).
이번에 한국을 방문하는 뜨루대학교 영성신학자인 레너드 스위트 목사는 “당나귀가 되실 의향이 있으십니까?”라는 설교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당나귀가 되시렵니까?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싣고 가시길 원합니까? 그가 어디를 갈지라도 말입니까? 예수님은 그분의 길을 가십니다. 여러분은 그분의 당나귀가 되시렵니까? 벼랑으로 걸으시겠습니까? 여러분은 낭떠러지와 극한 상황에도 두려워하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까? 여러분은 현세와 내세 사이의, 미움과 사랑 사이의, 전쟁과 평화 사이의 벼랑을 걸을 자신이 있습니까?”
저는 우리 임원들 먼저 신실한 사람들의 리더십을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유명한 신학자 칼 바르트는 80번째 생일잔치 때 이러한 간증을 하였습니다. “당나귀는 예수님을 예루살렘으로 싣고 가도록 허락받았습니다. 제가 이 세상에서 무언가를 이루었다면, 당시의 중요한 짐을 싣도록 부름을 받은 당나귀와 같은 일을 한 것입니다. ”
다시 본문을 보십시오. 명령을 받은 두 제자는 나귀의 주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님께서 당신의 나귀를 쓰시고자 합니다”.
사랑하는 임원 여러분!
주님께서 당신을 쓰시고자 합니다. 그래서 지금 하나님께서 나를 사용하시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옮기도록 허락받은 당나귀처럼 주님의 일에 쓰임 받도록 부름 받은 신실한 청지기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우리 감리교회가 주님의 구원의 사역을 위해, 봉사의 사역을 위해, 평화의 사역을 위해 부름 받은 나귀들임을 고백하시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영남선교대회든, 희망봉사단이든, 희망프로젝트든 나를 위한 계획이 아니라 주님을 옮겨 드리는 일이며, 감리교회를 드러내는 일을 넘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지난해 여름, 제19차 세계감리교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루었던 저력을 지녔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이 일을 계기로 한국감리교회는 세계적으로 위상이 높아졌습니다. 무엇보다 존 웨슬리의 ‘칭의와 성화’ 교리가 전 세계적으로 루터교회와 로마 가톨릭까지 공감하고, 일치할 만한 최고의 신학임을 보여줬다는 것은 우리 감리교회의 자랑이고, 대단한 자부심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웨슬리 영성의 핵심이었습니다. 우리 감리교회의 정체성을 확인했던 사건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희망을 주는 감리교회”를 주장하면서, 그 안에 담겨야 할 주인공으로서 “신실한 사람들”을 찾아냈습니다. 그것은 ‘믿음(信)과 삶(實)’이 일치하는 감리교인, ‘메도디스트’를 의미합니다. “신실한 사람“이 되는 일은 영적으로 가슴이 뜨거워지는 일이고, 언제나 신실하신 하나님 앞에서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는 일입니다.
저는 임원 여러분께 부탁드립니다. 이 자리에 모인 모든 심령들이 존 웨슬리처럼 성령의 불쏘시개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또 뜨거운 성령체험으로 여러분 자신과 우리가 사랑하는 교회를 새롭게 하여 주님께 칭찬 듣는 신실한 지도자가 되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영적인 능력을 회복함으로써 전체 기독교의 이미지를 갱신하고 민족과 사회를 향해 강력한 희망을 제시해 나갈 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마지막으로 당부드릴 것이 있습니다. 이제 꼭 100일 남았습니다만, 올해 8월 23일 부산에서 영남선교대회가 열리게 됩니다. 약 10만 명이 들어가는 부산에서 가장 큰 아시아드 경기장에서 열리는 영남선교대회는 바로 여러분이 주인공이 되는 감리교회의 대축제입니다. 그 의미는 여러분께서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실 줄 믿습니다.
저는 지난 호남선교대회의 성공을 디딤돌 삼아, 이번 영남선교대회가 커다란 성취를 이룰 수 있도록 여러분 모두의 뜨거운 기도와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영남선교대회는 한마디로 영적각성을 실천하는 대회입니다. 선교적으로는 영남지역의 부흥운동에 불을 붙이고, 사회적으로는 감리교희망봉사단을 전국적으로 출범시키며, 교회적으로는 서로 나누고 섬김으로써 상생하는 희망목회운동을 전개하는 일입니다. 그 출발점이 부산입니다. 그 씨앗은 바로 여러분입니다. 희망프로젝트는 5,800여 교회 153만 감리교인의 가슴마다 희망의 나무를 심는 일입니다.
우리 모두는 내일 오후에 영남선교대회가 열릴 부산아시아드 경기장을 방문할 것입니다. 우리는 아시아드 경기장이 얼마나 큰가를 구경하러 가는 것이 아닙니다. 이 경기장이 얼마나 작은가를 보려고 찾아가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내일 여호수아와 갈렙 같은 마음을 품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리하여 감리교회 공동체의 하나됨과 성숙함을 위해, 영남지역의 영혼구원과 민족의 영적각성을 위해 모든 연회와 지방들, 모든 교회들이 한마음으로 협력하고, 참여해 주시길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그리하여 이 민족을 구원하는 일에 헌신하고, 이 사회를 성결케 하는 일에 앞장서며, 영적대각성과 “희망을 주는 감리교회”를 위해 선봉이 되는 희망을 주는 청지기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