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인권센터 소장 취임예배 설교(2007.4.23)
자유케 하는 능력
갈 5:1-6
하나님의 은혜와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축원합니다.
먼저 한국교회 인권센터가 진일보하는 자리에 참석하신 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요즘은 이런 자리에 참석해 주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품앗이란 이야기들을 합니다. 기왕에 오셨으니 한국교회 인권센터의 발전과 후원, 그리고 지속적인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무엇보다 인권센터 소장으로 취임하시는 허원배 목사님께 축하를 드립니다. 요즘 저마다 자기 교회 일에 바쁘고, 자기 교단에서 중진역할을 하느라 분주한데, 보람보다는 힘이 많이 들고, 남는 장사가 되기보다 힘에 부치는 사역임에 틀림없는 인권센터의 소장직을 맡아 주셔서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인권센터가 이명남 이사장님을 중심으로, 또 허원배 소장님의 책임 아래, 자랑스러운 한국교회 인권운동 30년사를 밑거름으로 하여 다시 한번 불꽃을 피울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한국 교회는 지난 30여 년 동안 정의와 평화 운동의 가장 구체적인 증언자로서 인권운동을 펼쳐왔습니다. 불과 10년 전만 돌아보더라도 한국사회는 늘 사건과 사건의 연속이었습니다. 감사한 것은 지금은 민주화가 크게 진척되었고, 언제나 현재진행형일 것 같았던 야만적인 현실은 역사가 되었습니다.
민주화된 오늘 우리사회는 자유로운 인권을 보장하고, 선진국 수준의 시민적 권리를 담보해 주었습니다. 적어도 우리는 군사독재의 과거와 비교할 수 없는 행복한 시대를 살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인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마 25:40)에 대한 관심은 인권운동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분부셨으며, 말씀대로 살려는 제자 된 삶이었습니다.
지금은 기억조차 희미한 1970년대와 80년대의 험악했던 인권유린 상황을 돌아보면, 과연 ‘예수 사랑’ 없이 누가 억압과 박해의 현장을 함께 지키며, 누가 스스로 고난을 자처할 수 있었겠습니까? 돌아보면 모두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실은 고난당하는 사람과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고백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사는 변할 리가 없습니다. 거대담론에 취해있는 우리의 관심사로부터 소외되었을 뿐입니다. 돌아보십시오. 우리 안의 타자와 공동체의 소수자 그리고 사회적 약자들은 여전히 우리 곁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장애인, 외국인 노동자, 성적소수자, 가난한 이웃들은 성숙한 민주주의 울타리 밖에 있습니다. 딱한 것은 아직도 우리 사회와 한국교회 안에는 1950년대 식 냉전의식과 21세기의 시민의식이 병립하고 있습니다. 피해의식으로 가득한 과거와 자기만족적인 현재와 그리고 예언자 의식이 결여된 미래는 서로 아무런 반성과 성찰 없이 나란히 자기 영역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사실 어느 시대든 자유는 선택과 결단의 문제입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그리스도를 통한 자유냐, 율법 아래에서 종살이 할 것이냐’는 양자택일의 물음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미 그리스도인이 되었지만, 여전히 할례를 고집하는 유대인들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옛 종교의식에 종속되어, 여전히 굴레를 벗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율법의 멍에를 매고 사는 유대인들은 자신을 하나님의 은혜에 내맡기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 맡기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할례를 받은 사람은 율법 전체를 지켜야 하지만,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중요한 것은 오직 믿음뿐이라고 증거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은 하나님의 의, 곧 신실하심에 바탕을 둔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 믿음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사랑 안에서 작용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사랑으로써 역사 하는 믿음”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1장 6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하나님의 구원은 장성한 자녀들의 자유와 성숙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유와 율법 사이에는 오직 양자택일만이 있을 뿐입니다. 어떻게 율법으로부터의 자유를 바르게 사용할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율법의 완성인 사랑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마틴 루터는 종교개혁 3대 논문의 하나인 <그리스도인의 자유>에서 “기독교인의 두 가지 모습이란 서로 모순되는 두 사람이 한 사람 안에 있는 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는 내적이고 영적인 사람이고, 하나는 외적인 사람 즉 옛 사람입니다.
즉 그리스도인은 왕 같은 존엄성과 동시에 종 같은 섬김의 삶을 가진 존재라는 것입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갈 5:13).
한국교회 인권센터는 이러한 부르심에 응답한 것입니다. 저는 인권센터가 다시 ‘사람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형상’을 바로 회복하기 위해 새로운 시작을 하는 디딤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대의 어둠을 물리치고 희망을 밝혀내고자 했던 그 숨결과 그 함성을 지금, 여기에서, 다시 불러내야 합니다.
이전보다 덜 소란하고, 과거보다 덜 소중해 보일지라도 여전히 “지극히 작은 자 한 사람”의 눈물 곁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같이 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인권운동 30년을 통해 벅찬 감동과 보람을 채워주신 하나님의 은총이 인권센터에도 계속 함께 하실 것입니다. 그 사랑의 역사를 계속 써내려가는 한국교회가 되길 간절히 희망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권센터와 소장직을 맡은 허원배 목사님 그리고 같은 심정으로 인권센터의 성장과 성숙을 바라는 우리 모두를 통해 은혜를 베푸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