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라회 총회 설교(2007.2.8)
“내가 원하노니”
마가복음 1:40-45
하나님의 은혜와 평화가 한국기독교구라회와 함께 하시길 축원합니다. 오늘 여기까지 이르도록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그동안 한국기독교구라회가 자기 헌신과 희생을 통해 선한 사마리아인의 손길이 되었음을 감사드립니다. “나병환자를 구한다”는 의미의 구라회는 지난 37년 동안 흔히 나병으로 알려진 한센병이 천형이요, 불치병이라는 편견을 없애는데 크게 기여해 왔습니다. 이것은 이미 복음서를 통해 예수님께서 증거 하신 일입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병환자에 대해 특별한 관심과 사랑을 베푸시고 계십니다.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고쳐 주셨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나환자는 불행한 이웃 중에서도 가장 불행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1장 첫머리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사역은 치유와 귀신축출 등 초인간적인 능력이었습니다. 어떤 고난과 박해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명백하게 드러낸 예수님의 기적사건은 사실은 가장 인간적인 동정심과 연민에서 비롯되었음을 성경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1장 41절은 한 문둥병자가 예수님께 찾아와 치유를 간구할 때에 “예수께서 민망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는 문둥병자의 고통의 깊이를 알고 계셨고, 그들도 공동체의 일원으로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회복시켜 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고 네 깨끗케 됨을 인하여”라는 말씀에서 보듯이 문둥병자들의 존엄성을 회복시켜주기 위해 일해 왔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나병의 치료는 불가능에 가까운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대교의 선생들에 의하면 나병의 치료는 죽은 사람을 살리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찾아온 문둥병자는 율법에 규정된 격리 의무를 깨뜨리는 모험을 감행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전권에 모든 것을 의지하였고, 자기 자신을 그에게 전적으로 맡겼습니다. 구원은 예수님의 한 말씀, \”내가 원하노니\”에 달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야말로 전권을 행사함으로써 나병환자의 죽을병을 구원하셨습니다.
그 후 무려 2천년 가까이 흘러서야 현대의학의 발달로 나병을 고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나병은 불치병이요, 유전병이며, 저주받는 천형병이라는 그릇된 관념 때문에 이 병에 걸린 사람은 인간으로서 존엄성과 자유, 심지어는 생존권마저 박탈당한 채 사회의 혐오와 학대의 대상이 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비록 병을 고치는 의학은 발달했으나, 여전히 그러한 편견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구라운동은 앞으로 육체의 질병과 마음의 질병 그리고 사회적 질병을 치유하는데 계속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저는 구라운동이야말로 진정한 화해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강권하셔서 감당한 일이라고 믿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4-15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고후 5:14-15)
그렇습니다. 우리가 구라회를 통해 이웃을 섬기고 사랑하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큰 사랑 때문입니다. 교회가 남을 위해 봉사하고, 섬김의 직분을 담당하려는 것은 신앙적 응답이며, 윤리의 기본입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를 향해 “내가 원하노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공생애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나눔과 섬김’의 실천이었습니다. 우리가 고백하는 주님은 지배자나 섬김을 받는 자로 이 땅에 오지 않았으며, 억압당하는 사람들의 고통과 소외, 그리고 약함에 동참하셨습니다. 바로‘섬기는 자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리하여 갈릴리의 가난하고 힘없고 병든 사람들, 귀신들리고 천대받은 사람들은 예수의 복음 선포로 하나님 나라의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감리교회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는 복음의 열정을 품었던 위대한 전도자였습니다. 그는 영국사회의 죄악과 도덕적 타락으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의 비참한 모습을 보면서 사회의 죄악들을 치유하지 않고는 사람들을 고통에서 구원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각 개인이 거듭남을 체험하고, 이웃사랑을 실천할 때 사회문제도 동시에 해결된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존 웨슬리가 가르치고 모범을 보였던 경건한 삶과 감리교인의 박애운동은 다름 아닌 예수님의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의 계명 실천이었습니다.
이제 한국 기독교는 앞으로 더욱 복음의 능력을 회복하고 경건한 생활과 사회적 성결을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그래야만 이 시대를 향해 희망을 증거하고, 이웃과 사회에 희망을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구라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것은 예외 없이 크리스찬들입니다. 우리는 구라운동이 하나님께서 교회와 성도들에게 맡겨주신 숭고한 사명인 줄 믿습니다. 한국교회는 구라운동을 통하여 나환자의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을 심어 주어주어야 합니다. 저는 구라운동이야말로 국가와 민족에 봉사하는 기회이며, 나아가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업이라고 확신합니다.
물론 궁극적인 희망은 봉사를 가능케 하고, 섬김을 불러일으키신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오늘 총회를 통해 한국기독교구라회가 계획하는 모든 선교와 봉사가 주님의 능력으로 가능하게 되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구라회가 더욱 발전하고, 많은 나병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희망을 전하시길 간절히 소원드립니다.
하나님께서 한국기독교구라회와 주님의 손길을 대신하여 거룩한 사역을 위해 헌신하는 모든 분들 위에 함께 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