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10-16 나라와 민족을 위한 비상시국기도회
이 민족을 구원하소서
느헤미야 1:4-5
할렐루야!
하나님의 은혜와 평화가 오늘 우리 감리교회가 드리는 나라와 민족을 위한 시국기도회에 참석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축원합니다.
지난 주 월요일 오전에 참으로 당혹스런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저는 평신도단체가 연합으로 공주 변화산기도원에서 개최한 가정세미나 설교를 마치고 소식을 들었습니다.
북한의 핵실험은 있을 수 없는 일이 발생한 것으로 놀랍고 충격적이었습니다. 감리교 본부는 이에 대한 긴급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다음날 아침에 긴급히 임원회를 열고, 오늘 이 자리에서 ‘나라와 민족을 위한 비상 시국기도회’를 열기로 결정하였던 것입니다.
또 10분의 감독님들과 급히 감독회의 열고, 전국교회에 시급히 목회서신을 발송하였고, 성명서를 작성했으며, 전국의 모든 감리교회가 한반도에 닥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기도와 금식을 당부했던 것입니다.
갑작스런 모임이지만 이러한 비상시국을 공감하고 이 자리에 참석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이 애국자입니다. 이럴 때 일수록 기도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인 줄 믿습니다.
지난 주말에 교계기자들을 만나 간담회를 열었습니다. 그들이 말하길, 우리 감리교회가 북한 핵무기 실험을 맞아 가장 빠르게 비상시국을 선언하고, 능동적으로 대처했다고 들었습니다. 또 여러 일간신문들이 특히 우리 감리교회의 목회서신과 비상시국기도회 소식을 기사화하기도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분명히 믿습니다. 지금이야말로 기도할 때요, 하나님 앞에 눈물로 탄식할 때입니다.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을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 문제를 내놓고, 자녀된 심정으로 조를 수밖에 없습니다.
신학자 칼 바르트는 “기도하려고 두 손을 모으는 것은 세상 불의에 대한 항쟁의 시작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더 기도의 능력을 사용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본문은 눈물이 지도자 느헤미야의 기도입니다.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 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5).
느헤미야는 성경에 따르면 왕의 술관원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는 왕이 머물던 도성 수산성에 함께 머물렀고, 그 직책상 누구보다 쉽게 왕에게 나아갈 수 있는 측근 중의 측근이었습니다.
어느 날, 느헤미야는 그의 형제 하나니에게 예루살렘과 거기에 남은 유다민족의 형편을 들었습니다. “환난을 만나고 능욕을 받고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 찬란한 예루살렘성은 훼파되고 성문은 불타버렸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상할 만한 일이었지만 직접 들으니 충격적이었고, 그는 두렵고 가슴이 복받쳐 떨렸습니다. 그리고 슬픈 마음으로 하나님께 금식하며 기도하였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느헤미야는 왕과 대단히 가까운 존재였기에 바사제국에서 왕 다음 가는 권력자로 생각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무엇이든지 권력의 힘으로 해결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왕을 설득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런 권력자 중 하나인 느헤미야는 왜 슬퍼하고, 금식하며 기도하였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헤미야가 맨 처음 할 수 있는 일은, 그가 우선하여 선택한 일은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며 금식하는 일이었습니다.
첫째로 그 기도는 하나님께 이 민족을 맡기는 기도였습니다.
당시 정치지도자인 느헤미야나, 종교지도자인 에스라나 그들이 맨 처음 취한 태도는 기도하는 일이었습니다. 인간적으로 조치를 취하는 일과 하나님의 능력에 의존하는 일은 결코 양립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 무릎을 꿇는 일은 모든 행위에 앞서서 우선적으로 취해야 할 태도였습니다.
두 번째로 그 기도는 자신들이 현실에서 겪은 능욕이나 환난이 자신들의 죄의 결과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패망은 어쩌다 일어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긴 역사와 관련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멸망은 하나님께 대한 반역의 역사요, 배신의 결과였습니다. 느헤미야 자신도 하나님께 불순종한 그 백성의 죄악에서 결코 예외일 수 없었습니다.
남의 탓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 자신의 잘못 때문에 환난과 능욕을 당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회개가 전제되었습니다.
셋째로 그 기도는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언제든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매달릴 수 밖에 없는 것은 하나님의 자비요, 사랑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언약백성이 기댈 수 있는 것은 강대국의 힘도 아니고, 외교수단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 앞에서 다시 바로 서는 일이요, 그 마음에 드는 일 밖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기도합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금식하였습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눈물로 탄식하였습니다.
“하늘의 하나님,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6)
오늘 우리가 개최한 비상시국기도회는 바로 하나님이 드러나는 자리여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을 향한 기도와 회개와 사랑을 간구하는 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 교회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이것은 우리 기독교인만이 할 수 있는 영적 파워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늘 체험해 온 신앙의 능력입니다.
이 기도회에서는 어떤 주장이나, 어떤 인물이나, 어떤 과시에 앞서서 먼저 하나님의 이름이 드러나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찢어지는 마음이 드러나야 합니다. 하나님께 상한 심령으로 매달리는 간절함이 드러나야 합니다.
여러분은 한반도에 닥친 위기와 이 민족을 향한 위협 앞에서 하나님 앞에 부르짖으며, 통회하고 금식하셨습니까?
우리는 느헤미야의 방법대로 민족의 환난과 앞으로 겪을지 모를 능욕 앞에서 먼저 하나님께 매달려야 합니다. 우리 자신의 죄악을 회개하고, 하나님의 개입과 사랑을 간구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쳐주고 있는 유일한 방법이고, 신앙의 선배들이 앞서서 행한 유일한 대안이었습니다.
벌써 5년이 되었습니다만, 저는 미국 뉴욕에서 9.11 테러가 발생하였을 때, 미국의 대통령과 정치지도자들이 교회에 모여 나라와 국가의 안위를 위해 하나님께 예배하고 기도하는 모습을 텔레비전에서 본 일이 있습니다. 그때 저것이 신앙의 전통이고, 믿음의 힘이구나 하는 부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문제에 대한 원인 추궁과 해결책 보다 먼저 하나님 앞에 그들이 겪은 국가의 재난과 국민의 절망 앞에서 기도하는 일이 우선이었습니다. 그 자리에는 여당과 야당이 나누지 않았고, 백인과 유색인종의 구별이 없었으며, 정부와 의회가 따로따로 있지 않았습니다. 자기 나라와 민족을 위해 울 수 있는 눈물의 지도자는 두 마음을 품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기도자의 눈물’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북한 핵무기 실험은 한반도의 평화를 사랑하고 기원하는 사람들에게 분노를 안겨다 주었습니다. 북한의 벼랑 끝 전술은 한반도와 국제사회는 물론 북한 자체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불행한 사건입니다. 핵실험은 북한을 더욱 고립시키고 말 것입니다.
핵무기는 그들이 그토록 주장하는 한민족과 한반도를 파멸시킬 엄청난 대량살상무기입니다.
북한의 김정일 정권은 정권안보가 아니라 이 땅 한반도에 함께 살고 있는 민족의 안보를 위해서라도 당장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고, 폐기해야 합니다.
그들이 입만 열면 구두선처럼 이야기하는 민족이 누구입니까? 서로 멸망을 자초할 수밖에 없는 핵무기를 개발하면서 민족을 운운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일입니다.
당장 겪을 위기가 불보듯 뻔한데 그들이 사랑하는 민족은 대체 누구란 말입니까?
사람을 살리고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요, 우리 기독교의 근본정신입니다. 이제 우리 기독인들은 앞장서서 생명을 죽이고 파괴하는 핵과 대량살상무기에 대해 반대해야 합니다.
우리 인류는 핵은 물론, 화학 무기와 생물학 무기 등 모든 대량살상용 무기는 결코 허용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핵무기는 일주일 만에 창조된 이 세상을 단 몇 시간 만에 파괴할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그동안 한반도 평화를 위해 힘써왔고, 북한 동포들에게 사랑의 나눔을 지속해왔습니다. 저는 이번 핵무기 실험 때문에 이러한 정신이 훼손될까 대단히 염려스럽습니다. 물론 우리는 교류협력과 인도주의적 지원이 지속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평화의 불씨를 살리고,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기도하고 준비해 온 민족복음화의 길이 열립니다. 그것만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입입니다. 그래야 온 민족이 구원을 받습니다. 그것만이 하나님의 계획인 줄 믿습니다.
눈물의 예언자 예레미야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
저는 감독회장이 되고, 기도의 제목도 커졌습니다. 늘 우리 민족의 안위를 위해 기도하고, 또 우리 감리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는 기도의 내용이 그 사람의 삶의 내용과 직결된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기도하면서 때로는 감독회장으로서 감내하지 못할 딱한 사정을 하나님께 내려놓고 눈물로 기도합니다. 보람도 많지만, 참 속상한 일도 있습니다. 때로는 감독회장만의 ‘가시’가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심정으로 하나님께 모두 맡기고자 하지만, 때로는 사람의 심정으로 가슴을 치고 답답해합니다.
우리 감리교회가 크긴 큰 모양입니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이 없기 때문입니다. (…..)
우리 교단의 지도자요, 어른 되시는 여러분께서 이 민족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시면서, 또 우리 감리교회를 위해 기도하시면서, 부탁드리는 것은 저와 같이 부족한 감독회장을 위해서도 기도해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저는 우리 민족의 위기를 겪으면서 우리 감리교회 감독회장을 지내신 김유순 감독님을 생각하였습니다. 이분은 6.25 당시 순교자의 한분이십니다.
김유순 감독님은 아현교회 담임목사로 시무하시다가 해방 후 복흥파와 재건파로 나뉘어 분열되었던 감리교회가 통합하면서 감독이 되신 분입니다. 해방 후에, 더군다나 두 파로 나뉘어 정치적으로 다투는 와중에, 게다가 6.25까지 일어났으니 얼마나 무겁고 힘든 십자가를 지신 분입니까?
6.25가 터지자 당시 교계는 크게 양분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는 사수론이고, 또 하나는 현실론입니다. 사수론은 한마디로 “총을 들고 싸워야 한다”는 것이고, 현실론은 “국가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난리를 당해 옥신각신하던 끝에 결국 사수론이 채택되었습니다. 그 과정에는 김유순 감독님이 큰 역할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김 감독님이 선택한 사수론은 총과 수류탄이 아니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린다”는 지극히 단순하고 당연한 목회 원리였습니다.
그러나 목소리를 높이면서 서울 사수를 외쳤던 사람들이나, 현실론을 내세웠던 사람들도 모두 서울을 빠져나가 피난하였습니다. 그럼에도 김유순 감독님을 비롯한 소수의 목회자는 끝까지 남아 불안해하는 양과 교회를 지키다가 결국 체포되었습니다. 그리고 납북되었으며, 마침내 순교의 피를 흘리시게 된 것입니다.
우리 감리교 선배들이 이렇게 미련하였습니다. 우리 감리교 지도자들이 이렇게 순수하였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이런 삶을 본받아야 합니다.
이분들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북행길을 떠났고, 돌아오지 못하였습니다. 이것이 참 순교자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순교의 정신과 희생을 기념하고, 그 신앙의 모습을 본보기로 삼으려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이 민족과 교회를 죽기까지 사랑하는 믿음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십시다. 구원의 복음을 증거하다가 민족과 역사의 거룩한 희생제물이 되게 해달라고 다 같이 기도합시다.
다같이 하나님께서 이 나라와 민족 위에 함께 하시기를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모두 일어나십시오. 이제 두 손을 높이 들고 “주여” 삼창하신 후에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주여! 주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