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10-09 평신도단체연합 가정세미나 설교
복 받은 가정
시편 128:1-6
할렐루야!
하나님의 은혜와 평화가 평신도단체가 연합으로 주관하는 가정세미나와 여기에 참석한 모든 분들과 함께 하시길 축원합니다.
오늘 열리는 가정세미나는 우리 사회가 직면한 가정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을 마련하기 위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누구나 가정의 행복을 가장 소원하고 있습니다만, 40년 이상 가정을 꾸리고, 생활을 한 저 자신도 내 뜻대로 할 수 없는 일이 참 많이 있음을 솔직히 고백합니다. 많은 가정이 겪는 가정의 위기가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그 해결 노력은 아무리 노력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최근 우리나라 가정 통계에 대한 보고서를 살펴보면 참으로 놀랍습니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보고를 보면 두 쌍이 결혼하면 한 쌍이 이혼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혼인하는 부부 대비 이혼하는 부부의 비율은 1995년의 경우 18.14%에서 2004년에는 44.47%로 10년 만에 두 배 이상 늘었다는 보도를 보았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이혼율은 세계적으로도 1, 2위를 다툴 정도 높습니다. 두 커플이 결혼식을 올리는 사이 한편에선 한 커플이 이혼도장을 찍는 이 시대의 가정문제는 이미 국가적 과제가 되었습니다.
특히 혼인율은 1970년 이후 사상 최저수준이고, 이혼율은 크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부모들의 근심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처녀, 총각들은 혼기를 넘겨 30대 이후에 결혼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최근 20년 이상 함께 살아 온 부부가 갈라서는 ‘황혼 이혼’이 젊은 부부의 이혼보다 더 많아졌다는 뉴스는 가히 충격적입니다. 이렇듯 가정의 문제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가정은 하나님의 선물이고, 가장 아름다운 창조물입니다. 에디 쉐이퍼는 가정의 특징을 이렇게 일곱 가지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인간 존재의 성장 장소이고, 둘째는 피난처이자 보금자리이며, 셋째는 경제적 단위, 넷째는 문화 창조의 중심이며, 다섯째는 기억의 박물관, 여섯째는 인간관계가 출발하고 형성되는 장소이며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앙의 출발지이며 완성지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따르면 가정은 한 마디로 낙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정원은 파라다이스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섯째 날에 사람을 만들되, 곧 남, 녀 한 짝을 지으시고는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 1:31)고 하셨습니다. 바로 가정은 최초의 공동체이고, 하나님의 즐거움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가정은 달라졌습니다. 목사는 주례사에서 백년가약(百年佳約)이란 말을 신중하게 해야 할 만큼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검은머리가 파뿌리 되도록 서로 사랑하라”는 축사는 옛말이 되고 있습니다.
사회학자들은 이러한 가정의 붕괴를 가리켜 자기중심적인 삶의 지향 등 가치관의 변화와 경제적 요인 때문이라고 지적하였습니다. 물론 가정의 위기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따라서 가정의 위기가 커지면 커질수록 앞으로 더욱 많은 사람들은 상처와 고통 그리고 증오 속에서 살아갈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또 교회는 가정 때문에 상처를 겪은 사람들에 대해 더 많은 돌봄과 배려와 손길을 필요로 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두 가지 가정이 있습니다. 하나는 과거에 속한 가정이고, 다른 하나는 미래에 속한 가정입니다.
과거에 속한 가정은 내가 태어난 가정을 말합니다. 출생은 내 의지와 계획대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어서 원하든, 원하지 않든 지금의 부모와 형제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를 과거에 속한 가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엊그제 추석을 지내면서 알 수 있듯이 부모와 형제들과 어울려 추억과 그리움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미래에 속한 가정은 내가 선택한 가정을 말합니다. 이 가정은 전적으로 내 책임과 내 계획에 따라 만들어진 가정입니다. 그러기에 내 미래에 속한 가정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요즘 젊은이들은 결혼이나 양육과 같은 가정생활이 자신의 생활에 불편을 끼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신세대의 사고방식에 따르면 가정은 무거운 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실 누구나 가정문제가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흔히 사람들이 경험하는 가장 큰 행복도, 가장 근원적인 상처도 그 뿌리는 가정에서 비롯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입버릇처럼 말하듯 자식 입장에서 보면 ‘부모 잘못 만난 죄’라고 하고, 부모 입장에서 보면 ‘자식 복이 지지리도 없는 탓’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시편 128편은 가정의 행복을 일깨워주는 지혜시입니다. 그래서 마틴 루터는 시편 128편을 ‘결혼시’라는 별명을 붙였습니다. 성경의 메시지는 단순합니다. 행복은 어떤 주어진 조건이나 결과가 아니며, 모든 조건이 잘 갖추어져야만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만이 행복에 대한 눈이 바르게 뜨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편 128편은 가정이야말로 포도나무와 감람나무로 풍성한 낙원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가정을 통해 물려줄 수 있는 가장 큰 유산은 재산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입니다. 말씀에 따르면 경건한 자들은 분명히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약속하신 복을 차지할 것입니다.
사람들이 추구하는 행복은 여호와 앞에서 올바른 삶을 사느냐, 그렇지 않으냐에 달려있습니다. 신명기 10장 12-13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신 10:12-13).
우리 한국 사람들은 성경도 열심히 읽고, 신앙생활도 부지런히 하지만 그러나 그리 행복해 하지 않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을 대상으로 행복도를 측정하면 우리나라 사람이 유난히 낮다고 합니다. 국제가치회의의 평가에 따르면 점점 더 하락하고 있습니다. 먹고 사는 일이 훨씬 나아졌고, 생활수준이 선진국 수준으로 나아졌음에도 10년 만에 39 퍼센트에서 28 퍼센트로 낮아진 까닭은 무엇일까요? 제 생각에 사람들은 행복과 행운을 혼동한 까닭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입으로는 감사하면서도 진정으로 일상생활에서는 감사의 마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유명한 소설가 오 헨리는 그의 단편에서 행복을 이루는데 돈이 차지하는 비중은 겨우 1/12 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가정의 행복은 작은 행복 만들기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시편 128편의 말씀처럼 행복을 계획해야 합니다. 자신과 가정의 행복을 위해 프로그램을 짜야하고, 그리고 손 가까이에 있는 것부터 거룩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 그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가정의 행복은 내 마음과 삶 속에서 기쁨과 평화를 얻음으로써 더욱 커갈 수 있습니다. 오늘 이 가정세미나가 여러분의 가정을 화목하게 하고, 우리 사회의 평화를 만들어 나가는데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또 우리 감리교회의 가정사역에 좋은 모범을 제시하기를 부탁드립니다. 그것은 사람마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이룸으로써 가능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삶을 통해 여러분의 가정마다 참 행복을 얻으시길 간절히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