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09-24 상동교회 청년주일예배 설교
푸른 교회
행 9:26-31
할렐루야!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1년 만에 여러분을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벌써 가을바람이 붑니다만, 얼마 전에 우리 감리교회는 국제대회를 치루느라고 여름의 무더위도 잊고 지냈습니다. 감사드리는 것은 여러분께서 기도해주시고, 염려해 주신 덕분으로 제19차 세계감리교대회를 성공적으로 잘 마쳤습니다. 많은 해외교회 지도자들이 귀국하여 편지를 보내주셨는데, 한국에서 열린 대회가 그동안 모인 대회 중에서 참가자도 가장 많았고, 또 프로그램도 풍성한 대회였다고 극찬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셨다면 감당치 못할 일이었습니다. 또 우리가 합심하여 기도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상동교회의 협조에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저는 세계감리교대회를 통해 한국감리교회가 세계적으로 위상이 높아진 것은 물론이고, “그리스도 안에서 화해케 하시는 하나님”이란 대회 주제에 맞게 우리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믿습니다. 무엇보다 이번 기회에 우리 감리교회가 지닌 존 웨슬리의 ‘칭의와 성화’ 교리가 전세계적으로 루터교회와 로마 가톨릭까지 공감하고, 일치할 만한 최고의 신학임을 보여줬다는 것은 우리 감리교회의 자랑이고, 대단한 자부심이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 감리교회는 정체성문제에 관심을 갖고 정책을 세우고, 영적각성운동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웨슬리 영성입니다.
웨슬리영성은 무엇입니까? 언젠가 우리 감리교와 장로교는 서로 어떤 차이가 있느냐라는 이야기를 나눈 일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장로교는 ‘지키는’ 교회이고, 감리교는 ‘바꾸는’ 교회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장 칼뱅과 존 웨슬리의 차이이기도 합니다. 교리를 지키고, 제도를 지키고, 질서를 지키는 교회가 바로 장로교회입니다. 따라서 변화를 싫어하고, 보수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감리교회는 늘 새로워지는 교회입니다. 존 웨슬리는 영적으로 회심을 하였고, 성공회가 금지하는 옥외집회를 열었으며,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 하기 위해 낮아졌으며, 섬김의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감리교회는 생명력이 있는 교회요, 가슴이 뜨거운 교회였습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희망의 공동체였고, 이제 이러한 웨슬리의 영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오늘 제7회 청년주일 예배를 상동교회에서 드리게 된 것도 이러한 감리교회다운 영성을 회복하자는 취지입니다.
청년주일은 새천년을 맞으면서 기독교대한감리회가 제정한 것입니다.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는데 위기의식을 느끼면서 다시 열심을 내어 청년세대에게 복음을 전하고, 우리 시대에 청년부흥을 꿈꾸기 위해 시작한 일입니다. 우리 감리교회는 선교 초기부터 엡웟청년회를 조직하였고, 뜨거운 신앙으로 교회와 민족의 내일과 희망을 가꾸어 왔습니다. 청년주일을 지키는 일은 바로 청년처럼 건강한 몸과 뜨거운 가슴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 섬기려는 고백인 것입니다.
오늘 제7회 청년주일을 상동교회에서 지키게 된 것 역시 하나님께서 이 교회를 더욱 젊고, 푸르게 하시려고 계획하신 일이라고 믿습니다. 상동교회는 우리 감리교회사는 물론 한국근대사에서 큰 역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교회입니다. 무엇보다 일제의 침략기에 신앙의 힘으로 민족의 정기를 바로 세우고, 엡윗청년회를 통해 젊은 지도자들을 양성한 것은 자랑스러운 역사의 발자취입니다. 이러한 신앙유산이 감리교 청년들에게도 계승되기를 축원합니다.
저는 모든 감리교회가 언제나 초대교회와 같이 순수하고 열정적인 마음으로 돌아가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첫사랑을 품은 청년과 같은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나가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언제나 푸른 신앙의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 섬기려는 고백인 것입니다.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사실 건물도, 조직도, 사회봉사기관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중요합니다. 특히 요셉 같고, 디모데 같은 젊은이가 필요합니다. 그런 청년들의 순수하고, 열정적인 헌신이 교회에는 꼭 필요합니다.
초대교회는 바로 청년의 모습과 같은 교회입니다. 용광로와 같은 성령의 역사로 교회는 고난 중에도 생기가 넘쳤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성령강림 사건 직후에 놀라워하는 사람들을 향해 선지자 요엘의 예언을 인용하여 설교를 합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행 2:17).
하나님의 영을 받은 사람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예언을 하고, 젊은이들이 환상을 보고, 비록 세상에서는 아무런 소망도 둘 수 없는 노인일지라도 꿈을 꿀 것이라고 합니다.
기성세대는 늘 따지고 판단해가면서도 정작 주저하기 일쑤이지만, 젊은 세대는 비전과 환상을 보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먼저 덤벼듭니다. 젊은이들은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합니다. 환상을 보고, 비전을 품고, 꿈은 이루어진다고 노래하는 사람들입니다. 사실 교회는 이런 두 부류의 기성세대와 신세대가 어우러지고, 조화를 이루어야 건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교회 안에서 청년을 찾아보기 힘들고, 청년들이 교회를 외면하는 현실은 교회의 위기증세를 반영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청년 없는 교회는 내일이 없습니다. 젊은이가 없는 교회는 희망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젊은이들을 신앙으로 키우고, 청년들을 우리 교회의 희망으로 받아들이며, 다음 세대에게 크게 투자해야 합니다.
예수님도 청년이셨습니다. 우리 교회는 청년들의 존재를 예수님처럼 존중하며 인정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청년은 내일의 주역이 아니라, 바로 오늘의 주역이기 때문입니다. 청년들의 눈으로 오늘 우리 교회의 모습을 들여다보고, 청년들의 관점에서 교회가 세상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당장 내 자식 같은 청년들을 교회의 일원으로 권리를 행사하고, 의무를 감당하도록 책임의식을 심어 주는데 결코 인색 말아야 합니다.
오늘 사도행전 본문에는 바나바란 인물이 등장합니다. 초대교회에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불러 사용하시는 일은 참으로 신비합니다. 바나바는 초대교회를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특별한 손에 붙잡혀 살았던 사람입니다. 제 생각에 그는 청년은 아니었지만, 평생 젊은이처럼 살았던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나바는 믿음과 성령이 충만했고, 교회 일이라면 결코 인색하지 않았습니다. 바나바의 위대성은 그가 적대자 사울을 신앙공동체 안에 형제로서 받아들였다는 데 있습니다. 그는 믿어주는 사람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바나바는 희망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바나바는 이방선교에 있어 중요한 사역자였습니다. 물론 바울이나 베드로처럼 무대의 전면에 나섰던 이른바 주인공은 못되었지만, 바나바가 없는 초대교회와 이방선교는 매우 힘들었을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부흥은 바나바와 같은 사람들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본문은 ‘든든히 서 가는 교회’의 모습을 들려줍니다.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행 9:31).
저는 하나님께서 상동교회를 비롯하여 모든 감리교회를 희망을 주는 든든한 교회로 만드시기 위해 이러한 바나바들을 예비해 두셨음을 믿습니다.
나는 청년 여러분이 이런 바나바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상동교회 안에도 바나바처럼 교회를 위해 헌신하는 분들이 많이 일어가기를 바랍니다.
우리 한국감리교회에 바나바처럼 화해자로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기원합니다.
이럴 때 우리 감리교회는 희망을 주는 교회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교회가 든든해지려면 제도적인 골격이 중요하고, 경제적인 뒷받침도 튼튼해야 하지만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교회 안에 신앙적으로 화목하고, 협력하며, 서로를 섬기려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바로 바나바와 같은 사람들이 모인 신앙공동체의 모습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그것은 푸른 교회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시편 110편 3절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나는 청년들에게 부탁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하나님의 나라 확장을 위해 부르셨습니다. 요즘 청년들에게 선교의식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외 선교사와 같이 전적인 삶을 투자해서 일해야만 하는 선교사의 사명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도 중요하지만 지금부터라도 자기 생활 속에서도 얼마든지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생은 학원선교사, 군인은 군대선교사, 자기 직장과 일터에서 직장선교사, 심지어 길을 다닐 때는 거리선교사처럼, 언제든지 생활선교사라는 의식을 갖고 우리 사회를 변화 시키고, 새롭게 해야 할 소명의식을 지녀야 합니다. 청년들이 이러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책임감과 신실한 선교의식을 갖고 산다면 여러분이 바라보는 비전과 환상은 아름다운 성취를 이루어 갈 줄로 믿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른 역사의식을 지녀야 합니다. 우리 감리교회는 어느 종단이나 교파보다 앞장서서 민족의 해방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한 자랑스런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지난 역사를 기억하고, 기념할 뿐 아니라 계승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입니다.
특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은 화해와 평화를 위해 일해야 합니다. 삼천리 방방곡곡에 평화의 복음을 증거하고, 민족의 영적각성을 위해 힘써야 합니다. 그리고 무대를 넓혀 동북아시아와 세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일찍이 상동교회와 여기에 모인 청년들은 이러한 일에 앞장섰던 선구자들이었습니다. 일제의 침략에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해있을 때 많은 지식인 젊은이들이 이 교회에 몰려들었습니다. 경술국치를 당해 가장 먼저 분노하고, 나라의 주권을 회복시키겠다고 상소운동을 주도한 장본인이 바로 상동교회 엡윗 청년회였습니다.
당시 상동교회는 전덕기 목사님이 담임하고 있었고 교회 안에는 공옥학교, 상동청년학원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지도자와 학교를 배경으로 인재들이 모여들었는데, 주시경, 이동녕, 안태국, 김구, 노백린, 이준. 이상설, 남궁억, 이회영, 이시영, 최재학, 양기탁, 정순만, 박용만, 이승만, 우덕순, 구연영 등 훗날 ‘상동파’라 불리는 민족운동가들이었습니다.
나라를 찾기 위한 운동은 계속되어 상소문을 지은 적이 있던 평리원 검사 출신 이준은 고종의 신임장을 갖고 네덜란드 헤이그로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였는데, 이 때 출국하기에 앞서 전덕기 목사 집에서 기도를 받았습니다.
이제 내년 7월이면 이준열사 순국 100주년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 일을 위해 상동교회가 애쓰고 수고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이준열사 기념예배당이 상동교회와 감리교회의 위대한 역사유산이 되도록 더욱 정성껏 협력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저는 우리 감리교회가 영적으로 각성함으로써 ‘감리교회다운 감리교회, 감리교인다운 감리교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것은 영국 사회를 변화시켰던 처음 감리교인들의 모습, 그 뜨거움, 그 정직함, 그 복음에 대한 열정, 그 사회의 병을 고치려는 의지, 그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헌신을 닮으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존 웨슬리의 “세상은 나의 교구”라는 선교열정이 청년들에게 전염되고, 전파되기를 바랍니다. 더 나아가 “그리스도 안에서 화해케 하시는 하나님”께서 삼천리 방방곡곡에 복음을 전하는 놀라운 꿈을 품게 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모두가 첫사랑을 잃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날마다 새로워지고, 든든히 서 가며,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나가는 그런 아름다운 상동교회, 아름다운 감리교청년회가 되시길 간절히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