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08-01 이준 열사 추모예배 설교(헤이그)
민족의 등불로 피어난 사람
시 18:28
하나님께서 이준 열사를 추모하는 이 자리에 함께 하시길 축원합니다.
지난 99년 동안 존경하는 이준 열사의 자취를 기억하고, 역사적으로 기념하려고 애써 오신 모든 분들께도 하나님께서 은혜와 평화를 베푸시길 빕니다. 오늘 순국 99주년을 맞이하여 그동안 말로만 듣던 네덜란드 헤이그 땅에서 이준 열사를 추모하며, 그 분의 나라 사랑과 겨레를 향한 헌신을 기억하는 예배를 드리게 됨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얼마 전에 우리 감리교회 신문인 <기독교 타임즈>에 헤이그에서 열린 평화회담 당시의 신문 삽화가 크게 소개된 일이 있었습니다. 그 때 이준 열사를 비롯한 한국 대표단은 멀리 헤이그까지 왔으나 결국 회의장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사무국에 가서 회의참석을 할 수 있도록 입장을 요구했으나 의장이 주최국의 초청장이 없다는 이유로 단호히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유명한 삽화가인 루이스 레메커스는 이러한 소식을 듣고 1907년 7월 16일 자 <평화회의보> 제1면에 이런 내용의 삽화를 그렸습니다. 각국 대표들이 흥겨운 모습으로 평화회담장으로 입장하는 데, 그러나 평화의 왕 예수께서는 초청장을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입장을 거절당한 채 쓸쓸히 서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바로 한국 대표들의 문전 박대를 비유한 것입니다.
이준 열사와 대표들이 겪었던 푸대접과 수치는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 민족을 대신하여 약소국의 설움과 울분을 참아내야 했던 것입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산상설교에서 하신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 5:9)라는 말씀을 기억합니다. 이런 말씀의 등불에 비추어 볼 때 이준 열사는 참 평화의 사람이요, 참 하나님의 백성이었습니다.
우리 감리교회는 근대의 여명기에 많은 인물을 배출해 낸 역사적인 교회입니다. 민족이 겪었던 어둠과 수난 속에서도 우리 안에 등불을 켜는 신앙인들이 많이 있었다는 것은 우리 교회가 지녔던 건강함이며, 충실함 때문일 것입니다. 그 등불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구원의 빛으로 인도하였고, 낙심한 사람들에게 영원한 소망이 되었습니다.
이준 열사는 상동감리교회의 엡웟 청년회 회장으로, 또 속장으로서 이제 막 싹을 틔웠던 조선 감리교회의 든든한 일군이었습니다. 그는 전덕기 목사님으로부터 믿음을 배웠고, 신앙인으로서 나라 사랑의 정신을 몸에 익혔습니다. 고종의 신임장을 들고 네덜란드 헤이그의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한 것은 그가 얼마나 미더운 존재이며, 애국충절로 가득한 사람인가를 짐작하게 합니다. 이준을 열사로 부르는 까닭은 그가 이국땅에서 자기 민족의 독립을 절규하다가 순국했기 때문입니다.
듣자니 이준 열사는 역사의 과거와 현재에서, 우리 민족 남과 북에서, 또 민족의 경계를 넘어 네덜란드에 이르기까지 골고루 존경받는 분이라고 합니다. 이미 헤이그에서 뜻있는 분들에 의해 이준열사를 기념하는 사업이 오래 전부터 계속되었고, 아마 정부차원에서도 큰 관심을 갖고 내년도 100주년을 지원한다고 합니다.
이제 우리 감리교회가 이준 열사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일이 필요해 우리는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무엇보다 헤이그 현지에 순국 100주년을 맞아 기념예배당을 짓고, 그 분의 신앙유산을 기억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내길 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럽지방을 관장하는 중앙연회와 권혁구 감독님을 앞장 세우시고, 또 이준 열사의 모교회인 상동감리교회로 협력하게 하셔서 우리 감리교회로 하여금 아름다운 꿈을 꾸게 하셨습니다. 지난 99년 동안 역사적 공백이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음으로 양으로 기도하며, 준비해 온 성도들이 있었으며, 우리 감리교회의 역사의식과 시대정신이 반영된 것임을 믿습니다.
저는 기념예배당 마련은 우리 감리교회의 애국애족의 전통을 드러내고, 순교와 순국의 교회로서 신앙의 귀감을 바로 세울 것임을 믿습니다. 더 나아가 이 일은 무엇보다 많은 영혼을 구원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귀한 성전을 세워내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성경은 예수 믿는 사람은 등불을 밝히는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편 18편 28절에는 “주께서 나의 등불을 켜심이여 여호와 내 하나님이 내 흑암을 밝히시리이다”(시 18:28)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등불의 주인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다윗은 사무엘하 22장 29절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등불이시니 여호와께서 나의 흑암을 밝히시리이다”. 자기 안에 간직한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희망을 세상에 드러내는 일, 그것은 바로 등불을 높이 드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높이는 자들이 그 등불을 밝힐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이준 열사야 말로 시대의 등불이 된 분이라고 믿습니다. 성경은 그런 등불의 존재에 대해 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5장 35절에서 “요한은 켜서 비취는 등불”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이나, 잠언 20장 27절에서 “사람의 영혼은 여호와의 등불”이란 말씀은 등불 켜기의 중요성을 되새기게 하는 말씀입니다. 얼마나 소중한 말씀입니까?
저는 여러분 모두 등불 같은 존재가 되시길 바랍니다. 먼저 육적인 삶과 마찬가지로 영적인 삶이 있음을 믿고 신령한 삶을 살도록 애쓰십시오. 더 나아가 희망의 등불이 꺼진 이들에 대한 구원의 사명에 최선을 다 하십시오. 지금 내 영혼에 불이 꺼져 있지는 않은가, 희미하게 가물거리지 않는가, 늘 심령이 깨어 있어 하나님을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밝히실 등불의 사명을 잘 감당하시길 부탁드립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우리가 벌이려는 기념사업 위에 능력으로 지혜로 함께 하시고 도우셔서, 모든 계획한 일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선한 역사를 이루시기를 소망합니다. 특히 이 일을 통해 저와 여러분이, 또 벽돌 한 장이라도 참여하는 모든 분들이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평화를 만들어 나가는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평화가 다시 등불을 피어 올려 이 민족의 구원을 위해 힘쓰려는 우리 기독교대한감리회 위에와 또 중앙연회와 상동교회, 헤이그감리교회 위에 함께 하시길 간절히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