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07-06 제42회 장로회연합회 여름수련회 설교
희망의 문을 열라
요 10:7-12
할렐루야!
장로회 전국연합회의 제42회 여름수련회를 축하드립니다. 전국 1만여 명의 장로님들을 대표하는 장로회 전국연합회가 이 여름수련회를 통해 성령충만함을 받고, 우리 자신과 감리교회가 새롭게 변화하고, 새로워지는 시발점으로 만들어 나가기를 축원합니다.
그동안 최규식 회장님을 비롯하여 모든 임원여러분들의 헌신과 수고로 연합회가 건강하게 성장하고, 감리교회 전도와 부흥을 위해 수고해 주시는 일에 대해 감독회장으로서 높이 치하를 드립니다. 특히 제19차 세계감리교대회를 앞두고 장로님들이 앞장서서 아시아지역 참가자들에게 재정지원을 하는 것은 물론 자원봉사자와 찬양대와 안내자로 섬기고 봉사하려는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장로회가 목표로 삼은 ‘건강하고 희망을 주는 장로회’가 어떤 모습일까 그림을 그려 봅니다. 여러분은 ‘가정에서 경건생활, 교회에서 예배생활, 사회에서 봉사생활’을 건강한 모습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것은 가장 감리교인 다운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계속하여 우리 감리교회의 명예로운 장로로서 교회와 세상 앞에서 베드로 사도의 말씀처럼 “양무리의 본”(벧전 5:3)이 되는 장로상을 구현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얼마 전에 통계청이 발표한 2005년도 인구센서스를 보면 우리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습니다. 한국교회의 성장둔화와 감소는 벌써 오래 전부터 감지된 일이었습니다. 한국사회의 발전과 함께 급성장을 자랑하던 개신교회가 성장률의 둔화와 더불어 사회적 영향력이 감소한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번에 나타난 쇠퇴의 배경은 우리 자신의 선교방식을 다시 되돌아보게 합니다.
특히 가톨릭교회는 무려 67%가 성장했다고 보고하고 있습니다. 개신교회의 4분 1에 불과하던 가톨릭교회가 이젠 3분의 2에 육박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가톨릭교회로 몰려든 새 교인 중에서 57%가 이전에 개신교인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밤낮 자나깨나 큰 목소리로 전도운동을 벌여왔고, 가톨릭교회는 늘 조용한 이미지선교에 주력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전도한 교인들이 줄줄이 가톨릭교회로 새나갔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가톨릭교회라고 가만히 앉아서 새 신자들을 주워 담은 것은 아닐 것입니다. 맛있는 음식점은 멀리서도 소문만 듣고 찾아오듯이, 그런 좋은 소문 때문에 사람들이 호감을 갖고 몰려든 것입니다.
저는 예수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마 5:14).
이 말씀은 오늘 우리가 놀라고 경악하는 그 결과는 바로 우리 자신이 이 세상에 비추어진 모습 때문이라는 것을 일깨워 줍니다. 한국개신교회가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별로 매력이 없었던 것입니다. 아니 한국개신교회가 세상에 비췬 모습은 폐쇄적이고, 비합리적이고, 사회에 별로 이익이 안 되는 부정적인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교회 안에 교회만이 간직한 거룩함이 있습니까? 우리 교회만이 지닌 정직함이 있습니까? 우리 교회 안에 이 세상에 자랑할 만한 이웃사랑과 사회봉사와 희생이 있었습니까? 오히려 교회 안의 문제를 세상에다 내놓고 호소하는 고소와 재판이 끊임이 없습니다. 남의 교단 신문에까지 자기들의 부끄러움을 소문내고, 내 얼굴에 침을 뱉는 일을 서슴없이 하는데 누가 우리에게 박수를 쳐주겠습니까?
우리 감독들이 회개하고 반성하고, 우리 목회자들이 회개하고 반성하고, 우리 장로들이 회개하고 반성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영광을 돌리기는커녕 욕되게 한 사실에 대해 무릎을 꿇고, 재를 쓰고, 옷을 찢으며, 가슴을 쳐야 합니다.
이제 한국 개신교회는, 아니 우리 감리교회가 먼저 다시 한번 역동성을 회복하고 교회부흥을 가져오기 위해 새로운 자기변화를 모색해야 합니다. 변화하지 않고는 위기를 극복할 수 없습니다. 큰 교회는 큰 교회대로, 작은 교회는 작은 교회대로, 목회자와 평신도 누구를 막론하고 다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돌아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처럼 더욱 낮아지고, 더욱 희생하고, 더욱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가 철저하게 예수님을 본받고 닮아나가야만 희망이 있습니다. 유일한 희망은 여기에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목자이신 주님을 바르게 순종하지 못한 채 제멋대로 행하였습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처럼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사 53:6)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선한 목자이신 하나님의 지팡이를 응시해야 합니다. 그분의 막대기 앞에 순종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있는 말씀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유일한 선한 목자가 되십니다.
사실 우리 인간들의 모습은 미래를 알지 못하는 양과 같은 존재입니다. 시편 23편은 양과 같은 존재인 우리를 모든 위험으로부터 안전하게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돌보심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이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바로 우리가 들어오고 나가며, 누울 자리까지 살피시는 분, 내 인생에 꼭 필요한 선한목자에 대해 말하기 때문입니다.
집짐승인 소, 말, 양은 모두 집에서 기르는 가축이지만, 이 짐승들을 다루는 방법은 저마다 서로 다릅니다. 소는 뒤에서 몰고 가야하고, 말은 옆에서 다루어야 하며, 양은 앞에서 이끌어야 합니다.
그 이유를 모두 아시겠지요? 소는 뿔로 사람을 박을 수 있기 때문에 뒤에서 몰아야 하고, 말은 뒷발질할 염려가 있으니 옆에서 붙잡고 가야하며, 그리고 양은 머리가 나빠서 어디로 가야 할 지 모르기 때문에 앞에서 인도해야 하는 법입니다.
신약성경 요한복음 10장에 보면 선한 목자의 존재에 대해 보다 자세히 소개합니다. 한마디로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요 10:11)고 말하고 있습니다.
선한 목자는 누구입니까? 우리가 잘 알고, 고백하듯이 선한 목자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누구든지 선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 풍성한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삶에 지친 이들이나, 불안에 떠는 자들이나, 위로와 격려가 필요한 이들과, 고난당하는 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선한 목자처럼 우리 곁에서 힘이 되어 주시고, 보호자가 되어 주십니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9-10)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희망의 문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영원한 문이십니다.
오늘의 시대를 가리켜 탈중심, 해체의 시대라고 합니다. 중심의 해체가 선언되어 버린 탈중심의 시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내 삶의 심장부에다 튼튼한 중심으로 예수를 그리스도로 모시기를 주저하지 않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스스로 중심을 해체하고, 변두리로, 낮은 곳으로, 그 소외와 곤궁과 비참의 자리로 자신을 이동해 온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 자신이 ‘희망의 문’이 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에로스는 올라가는 사랑이지만, 아가페는 내려오는 사랑입니다.
에로스는 자신을 격상시키려는 욕망이지만, 아가페는 자신을 내어 던지려는 의지입니다.
예수를 아가페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그가 내려오는 사랑이고,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내어 던지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구세주가 되셨습니다.
이 일은 희망의 문을 여는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의로우신 하나님과 죄인인 인간을 연결하는 구원의 문이었다면, 이제 복음증거자로서 세상을 향해 화해의 증인으로 살아가려는 여러분은 희망의 문을 활짝 여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보내셨듯이 우리는 세상과 교회를 연결하는 희망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의 본질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고, 우리의 희망은 하나님을 향할 때만 진실합니다. 믿음 없이 우리가 건강하다면 그것은 불완전한 것이고, 믿음 없이 우리가 희망공동체가 된다면 우리의 희망은 거짓입니다. 사실 목회자와 장로들이 먼저 건강해야 든든한 감리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먼저 희망의 공동체가 되어야, 희망을 주는 감리교회를 이루어 갈 수 있습니다.
우리 기성세대는 젊은이들에게 이미 문이 된 존재들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문으로 들어오지 않았다면 교회 안에서 성장해가는 다음 세대는 어느 문으로 들어가겠습니까? 우리는 이미 문이 되시고, 길이 되시고, 푯대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하게 따라가야 합니다.
우리는 거룩한 직책을 위해 부름 받은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은 우리 감리교회의 희망으로 세움 받은 분들입니다. 무엇보다 내 교회 안에서, 우리 지역 사회 안에서 존경받는 어른이 되어야 합니다. 저는 장로회를 통해 우리 감리교회가 점점 변화의 문을 열어가고, 부흥의 집을 새롭게 지어 가기를 소망합니다.
그동안 우리가 기도하고, 준비하던 제19차 세계감리교대회가 몇 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저는 밤잠이 안 옵니다. 새벽에 벌떡 깨어나서 기도합니다. “주님께서 이 대회의 주인공이 되어 주시고, 주님께서 이 대회의 강연자가 되어 주시고, 주님께서 이 대회의 인도자가 되어 주십시오.” 사실 우리가 세계적 규모의 대회를 치루면서 내 힘, 내 능력, 내 의지로만 감당하려고 한다면 역부족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없이 성공한 대회보다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실패가 더욱 신앙적입니다. 이제 주님만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제19차 세계감리교대회를 계기로 철저하게 감리교인다운 감리교인으로, 감리교회다운 감리교회로 변화되는 체험을 나누어 보십시다. 그것은 영국 사회를 변화시켰던 처음 메도디스트들의 모습을 닮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가슴이 뜨거워지는 일이고, 뜨거운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감리교회를 도우셔서 세계감리교대회를 통해 희망으로 거듭나고, 또 세상에 희망을 비추는 교회가 되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대회를 남보란 듯 성공적으로 치뤄내 한국감리교회의 이미지를 확 바꾸고, 브랜드 가치를 높여봅시다. 그래서 감리교회 이름으로 저절로 전도가 되는 풍토를 만들어 봅시다.
하나님께서 장로회 전국연합회 여름 수련회와 함께 하셔서 성령의 감동과 감격이 넘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