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01-03 태화사회복지관 시무식 설교
희망의 새 시대
엡 4:20-24
새해, 새아침에 하나님의 은혜가 감리회 태화복지재단과 산하 모든 기관에 함께 하시길 축원합니다. 여러분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올해는 병술년입니다. 세월은 흐르는 물과 같다더니, 새 천년을 맞는다고 분주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006년입니다. 올해에도 하나님께서 이 민족과 한국 교회에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새해를 맞으며 시간의 의미를 생각해 봅니다. 우리 기독교의 시간은 목적이 있습니다. 세월은 쏜살같이 빠르게 날아가지만, 그 방향과 목적이 있음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시간은 우리를 변화 시킵니다. 우리 자신을 보더라도 흰머리가 늘어가고, 주름살이 늘고, 기력이 점점 쇠하여 갑니다. 자녀들은 성장하여 떠나가고, 내 주변 환경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 신앙의 변화는 외모와 외적 환경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것은 내면의 문제입니다. 회개, 세례, 중생, 성장, 부흥 이란 낱말들은 모두 내적 변화로부터 출발합니다. 성경 맨 처음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께서 무로부터 유를 창조하신 일이나, 마지막 요한계시록의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에 대한 말씀은 전적으로 변화에 대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변화했습니까? 기독교만이 아닙니다. 요즘 세상은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고 합니다. 변화가 시대의 트렌드가 되었습니다. 변화의 코드를 읽어야 시대를 리드하는 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스티븐과 숀 코비 부자가 쓴 <성공하는 사람을 위한 7가지 습관>이란 책이 있습니다. 특히 세 번째 책은 아들 숀 코비가 10대들을 위하여 쓴 것인데, 저자는 10대들을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수많은 도전 앞에서 선 10대들이여 그대들은 나침반이 필요하다. 여기 일곱 가지 습관을 몸에 배게 하라. 그러면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일곱 가지 중에 맨 마지막 7번째는 “끊임없이 쇄신하라. 규칙적으로 자신을 새롭게 하라” 입니다. 한마디로 변해야 산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누구나 변화를 추구합니다. 그러나 두 종류가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프로’이고, 또 하나는 ‘포로’입니다.
예를 들어 똑같이 청소를 하면서도 어떤 아줌마는 “이 빌딩을 깨끗하게 만든다” 생각하고, 어떤 아줌마는 “더러운 쓰레기를 치운다” 하고 생각합니다. 먼저 아줌마는 인생의 ‘프로’이고, 나중 아줌마는 인생의 ‘포로’입니다.
무엇을 하거나 마지못해 끌려가는 사람이나, 하나부터 열까지 투덜대며 억지로 하는 사람은 결코 인생의 ‘프로’가 될 수 없습니다. 다만 ‘포로’일 뿐입니다.
성경은 구구절절 변화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생활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하므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
우리는 교회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배운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사랑을 가르치셨고, 사랑을 위하여 고난 받으셨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안다는 것 보다 더욱 증요한 것은 달라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아는 것’(교리)과 그렇게 ‘사는 것’(행위)을 결코 분리하여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에베소서 4장 20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이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즉 그리스도로 인해 구원을 받아 새 사람이 된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진리 자체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그를 배울 뿐 만 아니라 그를 닮아 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멸망의 길로 가던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성령의 능력으로 새롭게 거듭나서 새 사람으로 재창조 되어야 합니다.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 개인이나, 국가나 우여곡절한 일들이 많았습니다. 고마운 것은 새해에 대한 전망이 조금씩 회복을 진단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경제전망이 지표상으로 호전되고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의 세상을 보는 눈은 매우 어둡습니다. 언론도 희망보다는 부정적인 면만을 부각시키고 있어 가뜩이나 추운 날씨에 어깨가 더욱 움츠러듭니다. 물론 우리는 현실에 민감해야겠지만 보다 더 멀리 역사의 흐름을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코앞에 닥친 현실은 결코 희망을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돌아보면 우리나라 경제는 얼마나 성큼 성장과 도약을 이루어 왔습니까? 우리 사회는 얼마나 비약적으로 민주화되고, 인권이 개선되었으며, 남북관계가 발전하였습니까? 지금 우리는 제자리걸음이나 퇴보가 아니라, 나날이 진보하고 있음을 분명히 바라보아야 합니다. 비관하는 백성들에게 희망이 있음을 일깨워 주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감사해야할 이유가 충분히 있음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지난 해 경향신문에 이런 기사가 실렸습니다. 직전 독일 대통령이었던 요하네스 라우는 ‘베를린 담화’를 발표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그 주제는 ‘독일에 대한 신뢰였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독일 사회의 진짜 위기는 이기주의, 탐욕, 그리고 특권적 사고에서 비롯된 신뢰 상실”이라면서,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협력하며, 나라에 대한 책임감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의 조국을 매일 조금씩 개선하는 것은 우리 각자에게 달려 있습니다“고 강조하였습니다. 제가 놀란 것은 그 현실이 끔찍할 정도로 현재의 우리 상황과 닮아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들에게 해답은 우리에게도 해답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과거를 자랑하는데 익숙할 뿐,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데 소홀합니다. 꿈을 희망으로 바꾸는데 게으릅니다. 덴마크 속담에 “오래된 착오는 새로운 진실보다 지지자가 많다”는 말이 있습니다. 때로 우리는 기득권을 가진 이들을 탓하면서 우리는 또 다른 의미의 기득권에 집착하지 않았는가 반성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새로운 모색을 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이 영적으로 새로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간다는 것은 자연스럽게 내 가정, 내 직장, 내 환경 자체의 변화를 가져옵니다. 바라기는 기독교 신앙과 이념으로 세워진 이 태화복지재단도 그 믿음의 사업답게, 그 신앙의 내용답게 분명한 변화가 새로움이 있는 새해가 되길 바랍니다.
1921년, 마이어스 선교사가 시작한 한국 최초의 사회복지관 태화는 우리나라 복지사업의 산역사와 다름없습니다. 그동안 태화기독교사회복지관은 감리교회의 사회선교와 사회복지의 중추를 이루어왔고, 복지시설의 모범을 보여왔습니다.
저는 태화(泰和)라는 이름 속에 이미 이 기관의 선교적 사명이 잘 담겨있다고 생각합니다. 태화의 뜻이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고 큰 평화를 이룩한다”가 아닙니까?
저는 지난 해 마지막 주간에 몽골에 다녀왔습니다. 그곳에서 감리교회가 설립한 후레정보대학도 방문하고, 몽골 대통령도 방문하여 환담하였으며, 선교사들과 만나 현황을 보고 받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태화복지재단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마이어스 선교사가 한국 민족을 사랑하여 꾼 그 꿈이 오늘 아름다운 복지재단 태화로 성장한 것처럼, 우리가 그 빚을 이제 몽골을 통해 갚을 방법을 찾아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무 국장과 동행하면서, 현장을 보게 한 것입니다. 우리는 몽골에 한국의 연세대학교와 같은 미션 대학을 세우고, 태화복지재단과 같은 복지 시설을 마련하고, 한국감리교회와 같은 공교회를 조직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은 희망의 새 사람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우리는 거룩한 꿈을 꾸는 사람들입니다. 믿음은 희망의 새날을 예비하는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입니다. 존 번연은 “믿음이 건강할 때는 희망도 결코 병들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올해에 감리교회의 영적각성운동 차원에서 ‘메도디스트 운동’을 전개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감리교인다운 감리교인이 되려는 운동입니다. 그것은 영국 사회를 변화시켰던 처음 메도디스트들의 모습, 그 뜨거움, 그 정직함, 그 복음에 대한 열정, 그 사회의 병을 고치려는 의지, 그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헌신을 닮으려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가슴이 뜨거워지고, 사회봉사를 통해 세상을 섬기며, 하나님 앞에서 새로운 사람,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 가는 일입니다. 무엇보다 세계감리교인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제19차 세계감리교대회 개최가 계기가 되어, 먼저 우리 한국감리교인 부터 ‘메도디스트 운동’을 벌여 나간다면 거기에서부터 희망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 태화복지재단이 우리 감리교회가 수행하는 사회봉사와 복지분야에서 아름다운 손발이 되어 이웃을 섬기고, 우리 사회를 아름답게 만들어 나가는데 귀히 쓰임 받게 될 것을 믿습니다. 특히 선교와 봉사의 비전을 나날이 확대하여, 무엇보다 사람들에게 칭찬을 듣고 인정을 받는 선교기관으로 거듭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올해도 태화복지재단 위에 복에 복을 더하고, 은혜에 은혜를 더 하셔서 언제나 “희망을 주는 태화복지재단”이 되기를 간절히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