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 기념사업회 2005년 제2차 추모예배 설교
천국을 소유한 사람
마태복음 5:9-10
하나님의 은혜와 평화가 오늘 최인규 권사님과 서기훈 목사님의 순교자 추서예배에 함께 하시길 기원드립니다.
먼저 지난 120년 동안 고난과 역경으로 가득했던 이 땅을 지켜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립니다.
일제시대와 분단시대 우리 민족의 삶은 골고다와 같았고, 십자가와 다름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십자가를 넘어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듯이, 이 민족에게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은총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고통 속에서, 아픔 가운데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신앙과 용기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오늘의 평화와 행복이 있기까지 우리 민족과 교회를 위해 눈물과 피를 흘렸던 선구자들이 계셨음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고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지라는 말씀을 들을 때는 “아멘”할 수 있지만, 실제로 그 십자가를 짊어지고 산다는 것은 자신의 목숨을 거는 희생이 필요하기에, 우리에게는 수없이 많은 겟세마네의 밤이 필요할 것입니다. 오늘 한국교회의 이름으로 순교자로 추서 받으시는 최인규 권사님과 서기훈 목사님의 영광과 명예는 바로 십자가를 짊어지기를 주저하지 않았기에 얻은 상급이요, 면류관인 것입니다.
서기훈 목사님과 최인규 권사님은 주님의 십자가를 짊어지기를 주저하는 시대와 세태에서 진정한 제자의 길, 십자가의 길이 무엇인가를 몸으로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저는 이 두 분이 기독교대한감리회의 모범이요, 한국 기독교의 영광이 되신 것에 앞서서 먼저 ‘천국을 소유한 분’이 되셨음을 크게 찬하드립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산상수훈에서 주님은 팔복에 대한 말씀을 하시면서 가장 큰 행복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일이요, 천국을 차지하는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특권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시고, 기뻐하시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것은 화평케 하는 일이요, 하나님의 의를 위해서라면 핍박까지도 견뎌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두 분은 죽어서, 이러한 특권을 지닌 대표적인 분이요, 다시 생명을 얻어 천국을 소유한 분들입니다.
최인규 권사님은 위대한 민족혼을 지닌 분이요, 서기훈 목사님은 남과 북의 갈등 속에서 아름다운 화해자의 삶을 사신 분입니다. 두 분은 1881년과 1882년에 생으로 어깨동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제의 침략으로 국권이 상실되고, 오랜 식민지와 또한 분단과 전쟁을 겪어야 했던 우리 민족의 가장 암울한 시대를 사셨던 분들입니다.
서기훈 목사님은 23세이던 1914년 6월, 남 감리회에서 전도사로 임명받아 전도생활을 시작한 후 평생 감리교회를 위해 헌신하시던 중 마지막 임지인 철원지방 장흥교회에서 나이 70세에 그 마지막 생명의 불꽃을 주님을 위해 바쳤습니다. 일제시대인 1940년에는 7개월간 고성경찰서에 구금되어, 일제의 박해를 감내하기도 한 애국자셨습니다.
그러다가 전쟁 중이던 1950년 12월 31일 공산당 정치보위부에 잡혀가 총살당함으로 순교하셨습니다. 당시 증언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서 목사님은 공산군과 마을 청년들 사이에서 일어난 살상과 분쟁 속에서 거짓 증언을 하지 않으셨고, 오히려 둘 사이를 화해시키기 위해 애쓰셨는데, 그것은 목숨을 건 일이었고, 그 댓가는 십자가였습니다. 당시 철원은 3.8선 이북지역이었고, 전쟁 후에 수복되었는데 여기에서 당당히 복음을 증언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의 위대함은 증명될 수 있습니다.
최인규 권사님은 45세 되던 1925년 12월에 북평감리교회에서 세례를 받아 속장과 유사로 충성을 하다가, 예수 믿은 지 8년 만인 1932년 9월에는 삼척구역회의 천거로 권사직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 권사는 본처사역자로서 감리사의 파송을 받아 교회를 맡아 이끌던 중요한 직책이었습니다. 얼마나 열심이었는지 재산을 바치고, 헌신적으로 봉사함으로써 그 신앙과 생활이 전 감리교인의 모범이 되어, 1938년 10월 총회에서 상장과 은제 상패를 표창받기도 하였습니다.
최 권사님은 1938년 이후 더욱 가중되는 일제의 탄압을 견디면서도 교회를 지켰습니다. 그러나 결국 신사참배를 거부하여 1940년 5월 체포되었고, 형무소에서도 신앙을 지키다가 1942년 12월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는 “너희 선생인 전도사와 목사도 신사참배를 하는데 공연히 고집을 부리느냐”고 회유를 당하였으나 결코 꺾이지 않았고, 십자가의 길을 자처하였습니다. 최권사님은 오히려 주님의 십자가 고난에 동참한다는 감격스러운 마음으로 살았다고 합니다.
올해는 광복 60주년입니다. 이 민족과 교회가 일제 강점기에 겪은 수난의 고통과 순교의 상처는 민족의 십자가와 비견될 만큼 참혹한 일이었습니다. 이민족의 침략, 일제 식민지 지배, 분단의 고통 속에서도 한국기독교가 민족의 고난에 함께 한 역사적인 교회라는 평가를 듣는 것은 민족의 역사를 외면하지 않고 평화를 위해 존재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선교 12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것과 함께, 우리가 지금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에 충성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이 시대의 등불로서 민족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참되게 헌신하고 있는지, 화해와 평화를 위해 십자가를 부인하지는 않았는지, 우리는 날마다 결단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분단 60년이란 뼈아픈 세월을 청산하고, 민족의 화해와 평화로운 통일을 위해 더욱 신실하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평화의 왕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따라서 평화를 위해 일하는 것은 하늘나라, 즉 하나님의 새 세계에 참여하는 것이며, 이 민족의 구원과 화해, 더 나아가 통일에 참여하는 일입니다. 평화는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며, 구원받은 백성을 향한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 서기훈 목사님과 최인규 권사님의 희생과 사랑과 순교로 거름이 된 이 땅의 평화와 한국교회의 성장을 기억하셔서, 우리 민족의 눈물을 씻어주시고, 희망을 주시어, 진정한 평화와 기쁨을 허락하시길 간절히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