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암교회 창립 100주년 기념예배 설교(8월 5일)
참된 해방의 길
누가복음 9:28-36
할렐루야!
오늘 제암교회 창립 100주년 기념예배에 참석하신 여러분께 하나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길 빕니다.
일찍이 독립만세 운동의 상징적 장소로서 제암교회가 지닌 역사적 의미는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무려 23명의 순교자를 낸 제암교회가 이제 100주년 기념예배를 드리면서 역사적 아픔을 치유하고, 희망을 주는 교회로서 더욱 든든히 서 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지난 25년 전, 강신범 목사님이 이곳에 부임하셔서 제암교회의 역사를 바르게 세우신 일을 먼저 치하하고 싶습니다. 역사현장에 걸맞게 기념탑을 세우고, 전시관을 지어 많은 순례자들을 부러 모으며, 또 기념예배당을 봉헌한 일은 아름다운 치적입니다. 그 수고에 감사를 드립니다.
감리교회는 올해 선교 120주년을 맞았습니다. 우리 교회의 부흥과 발전은 아펜젤러를 비롯한 초기 선교사들과 같은 씨앗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믿는 신앙으로 우리 민족을 위해 땀과 눈물로 희망의 씨앗을 뿌린 선배들이 존재했기에 지금 우리가 열매를 거둘 수 있는 것입니다.
올해는 광복 60주년입니다. 우리는 일제 강점시기에 민족과 교회가 겪은 고난과 아픔을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여전히 반복되는 과거사 반성을 둘러싼 시비를 보면 아직 일제의 우산을 완전히 벗겨버리지 못했다는 느낌입니다. 과거의 짐을 벗고, 온전한 해방을 이루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과제인가를 깨닫게 합니다.
우리가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을 반복하여 고백하듯, 민족의 수난과 광복을 기억하고 감사함으로써 제2, 제3의 8.15 해방의 감격을 불러일으켜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위해 오늘 이 예배에 참석한 여러분은 새로운 독립운동을 꿈꾸시기를 바랍니다. 또 여러분 각자가, 또 교회마다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모든 사슬로부터 자유와 해방을 계획하고, 경험하시길 바랍니다. 그것은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진정한 평화이며, 영적인 해방일 것입니다.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변화산 사건입니다. 누가복음에 따르면 변화산 사건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고난과 부활에 대한 첫 번 째 예고를 한 다음에 일어난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변화산 사건이 있기 8일 전에 주님께서는 무리를 향해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변화산 사건이지만, 다시 본문을 자세히 살펴봅시다. 예수님께서 제자 베드로,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산에 올라가서 기도하시던 중에 갑자기 신비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기도하시던 주님의 용모는 변화되었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난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일은 문득 두 사람이 나타나 예수님과 대화하는 장면입니다. 그들은 히브리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와 예언자인 모세와 엘리야였습니다.
흥미를 끄는 것은 예수님과 두 사람이 나눈 말씀의 내용입니다. 누가복음 9장 31절은 세 분의 대화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영광 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씀할 쌔”.
여기에서 ‘별세’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이 낱말을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당할 죽음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물론 십자가 사건을 가리키지만, 단지 죽음이란 의미는 아닙니다.
누가복음은 이 낱말을 분명하게 사용하는데 원어로는 바로 ‘엑소더스’입니다. 엑소더스란 무엇입니까?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종살이로부터 해방된 사건, 즉 출애굽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새로운 ‘출애굽’을 계획하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에 국한하지 않고, 온 인류에게 해당하는 ‘엑소더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당신의 죽으심을 통해 새로운 엑소더스를 이끌고 계심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베드로가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라고 말한 것은, 변화산의 황홀경에 빠진 탓이겠지만, 바로 주님이 이끄시는 해방 사건에 대한 몰이해 대문이었을 것입니다.
물론 아직 베드로는 십자가의 의미도, 주님이 이끄시는 엑서도스의 의미도 모른 채 하는 말이었습니다.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편안한 삶에 자주 주저하고, 자주 머물고 싶고, 자주 안주하고 싶은 것이 우리들의 마음입니다.
성경은 위대한 하나님의 해방을 기록합니다. 첫 번 째 엑소더스는 애굽에서 종살이하고, 억압받던 히브리인들이 가나안으로 출애굽 한 것입니다.
두 번 째 엑소더스는 바벨론 포로귀환 사건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세 번 째 엑소더스는 바로 하나님의 엑소더스, 즉 십자가 사건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우리로 하여금 끊임없이 너희의 속박을 벗어나라, 너희를 옥죄는 죄의 올가미로부터 자유로워지라고 명령하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엑소더스에 대해 빌립보서 2장 6-8절에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어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서 죽으심이라”.
하나님의 엑소더스 사건은 바로 주님의 자기 비움이었고, 십자가 사건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제암교회 100주년 기념예배를 드리면서, 여러분은 어떤 엑소더스를 계획하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슬픔으로부터 탈출, 가난으로부터 탈출, 고난으로부터 탈출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자신의 엑소더스를 계획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진실하고 아름답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도 주위 강대국에게 끊임없이 시달렸고, 결국 식민지 상황을 겪기도 했습니다. 수난과 핍박을 당했으나 그럼에도 하나님께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강렬한 사명감으로 가득하였습니다. 고난을 뛰어 넘은 희망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엑소더스를 노래합니다.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로다”.
우리 민족도 오랜 세월동안 고난과 핍박을 받았습니다. 이민족의 침략, 일제 식민지 지배, 분단과 군사독재의 폭력성은 쉴 날 없이 계속되었습니다. 함석헌 선생은 <뜻으로 본 한국역사>라는 역사책에서 우리 민족을 가리켜 수난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붙였습니다. 그는 고난의 민족인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우리가 물어야 함을 일깨우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감리교회가 민족의 고난에 함께 한 역사적인 교회라는 평가를 듣는 것은 제암교회의 순교와 자기 희생의 사랑 덕분이라고 믿습니다. 우리 감리교회가 희망을 주는 교회로 제 2, 제 3의 엑소더스를 꿈꾸며 거듭나려고 준비하는 것도 이미 희망의 씨앗을 뿌렸던 선배 감리교인의 수고 때문임을 믿습니다.
우리의 신앙의 근거인 십자가와 부활의 믿음은 영원히 변치 않는 희망의 근거입니다. 제암교회의 순교의 피는 예수를 사랑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이 나라의 해방을 이끌어낸 나라사랑이었습니다. 이제 미완의 광복을 극복하고 화해케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이 민족이 완전한 해방을 누릴 수 있도록 주님과 함께 새로운 엑소더스로 나아가기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제암교회의 눈물을 씻어주시고, 희망을 주는 교회가 되도록 인도하시길 간절히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