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고데모의 피에타와 'Ancora Imparo'

작성자
임재학
작성일
2020-06-02 15:18
조회
364

피에타 반디니Pieta Bandini)
1550년, 피렌체 두오모 박물관
75세 때 조각한 두번째 피에타

미켈란젤로는 설명이 필요 없는 르네상스의 대표적인 작가입니다. 그의 작품이 끊임없이 발전하기도 했지만 그의 내면의 성숙도 세월과 함께 더욱 깊어졌기 때문입니다.
그 것을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피에타입니다.
바티칸에 있는 젤 유명한 피에타는 그가 24세란 젊은 시절에 조각한 작품으로(1496년) 세상을 놀라케 한 천재의 등장을 알린 작품입니다. 작품 자체만의 완성도는 부족하지 않지만, 무명의 젊은 작가였기에 시대가 요구하는(중세 가톨릭) 정신에 충실할 수 밖에 없는 한계가 있습니다. 초기 피에타상은 종교개혁을 앞둔 어둠이 가장 짙었던 혼돈기와 극에 달했던 교황청의 타락과는 전혀 무관한 평화로운 이상의 세계가 펼쳐집니다. 피에타만 바라보고 있으면 세상은 아무 문제도 없고 안정적이고 평화롭습니다.
지상에 구현된 천국의 모습.
당시 바티칸의 교황과 종교권력이 그토록 원하던 거짓 평화와 안정.
이건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월이 흘러도 교단과 종교권력이 동일하게 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선지 그리스도(구원자)가 성모(인간)상 위에 놓여 있고
이를 위해 마리아의 다리가 인체구조상 안 맞게 기형적으로 크게 벌어져 있고 이를 감추려고 성모 옷자락으로 가리고 있습니다.
당시의 교황청이 그토록 바라던 거짓 평화와 침묵의 세계입니다.

오늘 피에타 반디니는 그의 두번째 작품입니다. 바티칸이 아닌 자유와 르네상스를 상징하는 피렌체에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점입니다. 마치 부활하신 예수님이 예루살렘이 아닌 갈릴리로 먼저 가신 것과 같습니다.
또 니고데모의 피에타라고도 불립니다. 이 작품은 니고데모와 여인들을 조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가 반쯤 올라서 있고 서로가 기대고 있는 형상입니다.
마지막 세번째 론다니의 피에타는 그리스도 위에 성모가 업혀 있는 형상입니다. 이는 나중에 기회고 되면 다시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피에타 상이 변화되는 것은 나이가 들면서 미켈란젤로가 신앙과 인생에 새롭게 눈뜨며 내면이 더욱 깊어지기 때문입니다.
유명한 '미켈란젤로 동기'
(Michelangelo Motive) 란
말이 있습니다.
또 87세 때 그가 자기노트에 적은
'Ancora Imparo'(안코라 임파로)
'나는 아직도 배우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타고난 천재조각가인 그는 죽기 3일 전까지 손에서 정과 끌을 놓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유를 향한 구도의 길을 걸었갔고 자기만의 작품세계를 조각하고 완성합니다.
이것이 그의 작품보다
더 위대한 그의 정신이며 르네상스 자유혼입니다.

저는 이 두번째 작품이 제일 와 닿습니다. 깊은 슬픔과 분노를 새기며 입을 굳게 다문 니고데모의 모습과 예수님을 사랑했던 두 여인이 안타깝게 떠받치는 모습이 깊은 슬픔으로 전달되며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상에서 죽으시고 성경은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니고데모가(요19:39) 빌라도에게 가서 주님의 시체를 요구하고 장례 지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숨어 있던 의인, 드러나지 않았지만 가장 중요한 순간, 자신이 해야만 할 일이 있는 절대절명의 순간에 나타난 제자가 바로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빌라도입니다.
한없이 슬프지만 어찌할 수 없어 당황하고 더 비통해하는 여인들 앞에 나타난 사람들이지요.
마치 드러나지 않지만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7천 명의 그루터기와(왕상19:18) 같은 경건한 의인들입니다.

지금 감리교단이 혼돈되고 어렵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하나님의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잘려진 나무에 그루터기와 같이
새 생명을 잉태하고 싹이 나게 하고 마침내 열매 맺게 하는 사람들.
악한 왕 므나세가 위협해도 굴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인 시온을 꿈꾸는 이사야 같은 선지자입니다.
평소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꼭 필요할 때 나타나는 부자인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관원인 니고데모가 필요합니다.
자신의 이해타산보단 주님에 대한 사랑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숨어 있는 실력있는 제자들입니다.


당신은 주님이 요청하면
니고데모와 같이 용기있게 나와서 예수님을 일으킬 수 있습니까?
이 그림은 준엄하게 묻습니다.
쓰러져 있는 교회와 주님을 일으켜 세워 달라고.
슬퍼하는 마리아와 피해 입은 여성들을 위해서 함께 울고 연대해 달라고.
그래서 이 니고데모의 피에타는
슬프지만 절망스럽지 않고
무겁지만 결연합니다.
어떤 역경과 시련 속에서도
하나님 나라를 향해 걸어가려는 미켈란젤로의 결단이며, 오늘 우리의 결단이기 때문입니다.

'Ancora Imparo'
살아 있는 날은 영원한 시작입니다.
포기하지 않는 싸움은 계속됩니다.

감사합니다.

전체 5

  • 2020-06-02 15:35
    지금 우리에게도 이 시대의 여인들과 니고데모가 필요하지요.
    포기하지 않는 싸움은 계속됩니다.

    • 2020-06-02 16:02
      맞습니다.
      선을 행할 때 포기하지 않으면
      때가 이루면 반드시 거두리라

  • 2020-06-02 16:39
    채근담 하룻말...

    귀한 인격을 얻으려면
    불꽃으로 단련하고

    세상을 뒤집으려면
    살얼음 위를 걸어야한다.

    - 과유불급(過猶不及)...

  • 2020-06-02 23:20
    어떠한 시련과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해 걸어 가려는 우리의 결단은 반드시 기쁨의 단을 거두게 될것이라 믿습니다

  • 2020-06-03 10:47
    두 종류의 피에타... 마리아가 모성애로 죽은 신을 품고 있으며, 무기력한 신, 즉, 모성애가 없으면 보호 받지 못하는 신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나이를 고려하면 중년 혹은 노년의 여성이어야 마땅하나 새파랗게 젋은 나이로 묘사되어 있다. 그래서 로마 카톨릭은 마리아가 영원히 동정녀?로 살다가 몽소?라는데서 승천?을 해서, 성모 승천 기념교회가 있다하며, 하늘에서? 죽지도? 않고 예수님의 옆에서 중보?를 하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 성당에 베드로의 의자가 있는데, 사도 베드로가 단 한 차례도 앉은 적은 없을 겁니다. 그렇게 좋은 의자를 가난한 어부가 어찌?

    종교적 정통성을 베드로의 유골과 마리아에게 의존하면 곤란합니다.

    로마 카톨릭이 내 세우는 그 '평화'는 수 많은 기독교인을 마녀사냥으로 죽인 같은 입에서 나오는 구호이고, 계시록에서 마지막 때에 '평화'와 '연합'을 구호로 등장하는 적그리스도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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