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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서드】유일신앙(唯一信仰)

작성자
함창석
작성일
2021-01-28 15:05
조회
318
유일신앙
唯一信仰

함창석

성경에 가르치기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고 했다. 그는 하나님의 큰 은혜를 입은 자였다. 노아는 경건한 조상들 밑에 태어난 믿음의 아들이다. 노아의 증조부는 유명한 믿음의 사람 에녹이었다. 에녹은 65세 때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또 그의 나이 252세 때에 손자 라멕을 보았다. 에녹이 승천할 때 손자 라멕의 연령은 113세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므두셀라와 라멕은 에녹이 어떻게 경건한 생활을 하며 하나님과 동행했던 가를 친히 자라난 아들과 손자였음이 분명하다. 바로 그러한 므두셀라는 노아의 할아버지였고 또 그러한 라멕은 근의 아버지임을 생각해 본다면 노아는 얼마나 경건한 가정의 아들이었는가를 알 수 있다.

우리가 창세기 5:29을 깊이 생각해 볼 때 노아의 아버지 라멕의 믿음을 넉넉히 알 수 있다." 라멕은 182세에 아들을 낳고 이름을 노아라 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로이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이 본문에서 우리는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첫째로는 그의 탄식이다. 우리가 이렇게 수고로이 일하며 고생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로 부터 저주를 받은 때문이라고 그는 탄식했다. 우리는 이러한 그의 탄식에서 그의 슬픔이 무엇이었던 가를 상상케 된다. 우리 인생들은 다 범죄를 한 때문에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자들이 되었다고 그는 탄식하며 슬퍼했던 것임을 본다. 이러한 탄식, 그러한 슬픔이야말로 곧 그의 믿음의 시발점이 되었다고 본다. 우리는 다 우리의 허물과 죄로 인하여 멸망할 수밖에 없다고 슬퍼하며 탄식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구원의 길에 가까운 사람이 아닐 수 없다. 지금 내가 이렇게 고생해야 하는 것은 나의 죄 값이라고 생각하는 그 양심이야말로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나 라멕이 그러한 슬픔과 탄식만으로 끝났다면 그것을 가리켜 참 믿음이라고 할 수 없겠다. 라멕은 그저 슬픔과 탄식만으로 끝난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저주 받은 인간들이라도 장차 하나님의 위로와 안식을 받을 길이 있다고 믿었던 사람이었다. 이러한 그의 믿음은 그가 지은 그의 아들 노아의 이름에 잘 나타나 있다.

구약시대에는 그 아들의 이름을 작명함에 있어서 그 아버지의 믿음과 소망이 그 아들의 이름에 표현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으므로 노아의 이름에서 그 아버지 라멕의 믿음을 생각한다는 것은 결코 무리한 일이 아니다. 창세기 5:29 "라멕은 아들을 낳고.......이름을 노아라 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로이 일하는 우리는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노아라는 히브리말의 원 뜻은 안식과 위로란 말이다.

라멕은 참 안식과 위로는 하나님께로 부터 오는 것을 믿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아들을 하나님의 선물로 받으며 그 아들을 통해 참 안식과 위로를 바라보고 기뻐하며 감사했다. 그런 의미에서 노아는 장차 나타날 그리스도의 예표로 보아도 좋다. 이러한 그 아버지의 믿음은 노아에게도 깊은 감화를 주었을 것이다.

노아시대는 심히 부패한 시대였다. 창6:2에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했음을 본다. 여기 하나님의 아들들이란 천사를 가리킨 것이 아니다. 하늘의 천사들을 결혼하지 않는다. 그것은 셋의 후손들을 의미한다. 아벨의 거룩한 계대를 이어줘야 할 셋의 후손들도 가인의 무리와 연합하여 어떻게 부패해진 것을 위의 성경은 보여준다. 이렇게 가인의 후손도 셋의 후손도 다 같이 타락하게 됐다. 창6:56에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 하셨는데 이처럼 노아시대는 죄악이 관영한 시대요, 사람의 마음이 악하여 하나님을 탄식케 하여 근심케 한 시대였다. 사람의 마음 악함과 세상의 죄악은 하나님을 그처럼 슬프게 했고 탄식케 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천지와 만물과 사람을 처음 창조하신 때는 "보시고 심히 좋았더라."고 하셨는데 그렇다.

"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그처럼 의롭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때문이었다. 그가 큰 믿음 을 지킨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그가 구원을 얻은 것도 하나님의 은혜였다. 죄악이 관영한 시대에 홀로 의롭게 산다는 것은 큰 고통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불의의 물결이 홍수 같이 밀려드는 그런 때에 홀로 그것을 경건히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노아는 그것을 감당했다. 그것이 결코 노아 자신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때문이었다. 노아가 마침내 심판을 이기고 구원을 얻은 것도 결국은 하나님의 은혜였다. 그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가 아니었더라면 그렇게 큰 믿음을 지킬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 창세기의 저자인 모세는 노아의 그 승리의 생애를 기록하려 할 때에 먼저 기록한 말씀은 창세기 6:8에 "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하신 그 말씀이었다.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창세기 12장에서 부터 시작된다. 창세기를 읽는 자는 누구나 그 안에서 인류의 3대 조상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인류의 첫 조상 아담이요, 둘째는 홍수의 심판후 새 시대의 첫 조상이 되는 노아요, 셋째는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들의 첫 조상이 되는 아브라함이다. 그런데 창세기에서 가장 세밀하게 기록된 사건들은 그 셋째 번 부분이다. 창세기는 전체가 50장으로 되어 있는데 그 전체의 3/4은(12장-50장) 아브라함과 그 가정 즉, 이삭과 야곱과 그 아들들에 관한 기록이다.

아브라함이 부름을 받은 것은 바벨탑이 무너진 후 인간의 언어가 혼잡하게 흩어진지 얼마 되지 않아서의 일이다. 성경의 연대를 살펴보면 노아의 연대가 주전 3,000년 전이요, 아브라함은 주전 2,000년대가 된다. 그런데 그 뒤 중간 시대에 바벨탑을 쌓았던 기록이 있다. 이미 바벨탑 시대에 벌써 달과 별을 숭배 하는 우상종교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지금 남아있는 고고학의 자료에 의하면 바벨탑이 무너진 후 가는 곳 마다 작은 탑들을 쌓고 그 정상에는 월신(NANNA신)을 섬기는 제단을 만들었다. 이러한 탑들을 찌그랄(Ziggrat)이라 불렀는데 그 뜻은 거룩한(혹은 높은) 제단이라는 말이다. 이런 것들을 미루어 생각해 본다 할지라도 아브라함 시대에는 벌써 우상 종교가 크게 성행했던 때였을 것임을 생각할 수 있다.

사실 성경 여호수아 24:2에 "여호수아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러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옛적에 너희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비 데라가 강 저편에 거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내가 너희 조상 아브라함을 강 저편에서 이끌어 내어......"하신 말씀에서 보듯이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와 그 가정들은 열심히 우상을 섬겼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또 고고학의 다른 자료에도 주전 2,000년 전 아브라함 시대의 문화와 더불어 그 때 벌써 우상 종교가 얼마나 성행하였던가를 보여주는 것들이 남아 있다. 그 중의 하나는 그 당시의 집터의 유적들이다. 아브라함 시대 이전에 벌써 높은 바벨탑을 쌓으리만큼 그 당시의 건축술이 얼마나 발달하였음을 알 수 있거니와 아브라함 시대에도 건축기술은 상당히 발달하여 있었다. 갈대아 우르 지방에서 발굴된 아브라함 시대(주전 2,000년 전) 집터들의 고고학적 자료에 의하면 그때의 집들은 벌써 구운 벽돌을 사용했었고 보통 집(가정)들은 2층이 없는데 10개 내지 20개의 크고 작은 방들이 있었다. 살림방들은 윗 층에 있었고 부엌과 빨래터 같은 것들은 하층에 있었는데 그 맨 뒷방에는 반드시 우상의 제단을 둔 골방이 있었다. 이만큼 그들은 우상숭배에 열심이었다. 또 그 밖에도 당시 아이들이 배우던 학교터에서는 기하학의 도형들과 토판에 새겨진 구구법과 그들의 상형문자들이 적혀 있었다. 이 모든 자료들을 감정한 그 결론은, 즉 아브라함의 고향인 갈대아 우르 지방의 문화는 그 시대에 벌써 상당한 수준에 있었고 그들의 물질생활의 수준도 유복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영적으로는, 우상 종교의 암흑시대요 크게 부패한 시대였던 것을 알게 된다. 사실 아브라함의 고향 땅의 이름 우르는 그 명칭 자체가 본래 빛 혹은 불이란 말로서 그것은 불을 숭배하는 우상종교의 의식에서 생겨진 말이라고 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그것은 어떠하든 간에 앞서 인용한 여호수아의 말만 보더라도 그 시대는 우상을 지극히 섬기던 타락한 시대였던 것이 분명하다. 그러한 환경에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다. 그렇다고 그 시대가 전혀 하나님을 모른 시대는 아니었다.

성경 연대를 잘 살펴보면 아브라함이 어린 시절에 노아는 아직 살아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창세기 9:28에 기록된 대로 노아는 홍수 후에도 350년을 더 살았다고 했다. 노아시대도 여호와 하나님을 알기는 알았으나 그 하나님을 배반했던 것 같이 아브라함 시대도 그러했다. 로마서 1:21에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하신 말씀 그대로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배반한 시대였다. 그러한 환경 중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섬긴 사람이었다. 죄악이 관영했던 그 시대에 노아를 불러 방주를 짓게 하시던 하나님께서는 또한 아브라함을 불러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케 하셨던 것이다.

아브라함이 부르심을 받아 하란을 떠날 때의 그 나이는 75세였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기 전에 벌써 고향을 떠나서 가나안으로 갈 생각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성경에도 분명히 밝히지는 않았어도 그것은 하나님의 어떠한 감화가 있었을 것으로 본다. 창세기 11:31에 " 아브라함은 그 아버지 데라와 그 아내 사래가 조카 롯과 더불어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에 가고자 하더니 도중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하였으며......" 했다. 이처럼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을 향하여 가려 했으나 도중 하란에 머물고 만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그 아버지 데라 때문이었을 줄 안다. 그는 육신의 아버지 때문에 가나안 땅과 고향 땅 우르의 중간 지점인 하란에서 망설인 줄 안다. 늙은 아버지를 봉양할 것인가 버리고 갈 것인가. 이것은 그에게 큰 시험이 생겼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오직 고요히 기다리며 기도할 뿐이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께서는 이루어 주신다. 비록 더디더라도 참고 기다릴 필요가 있다.

아브라함은 자기의 가는 목적지가 가나안임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는 벌써 가나안으로 가려는 마음으로 하란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 아닌가. 그러나 목적지가 분명하다고 해서 가는 길을 아는 것은 아니다. 그는 가나안으로 가기 위해서는 어느 방향으로 어떤 길로 가야 할지 몰랐으나 히브리서의 말씀대로 믿음으로 그 길을 떠났던 것이다. 험준한 산을 넘어야 했고 깊은 강을 건너야 했다. 그러한 길을 그는 믿음으로 출발했다.

아브라함 계통 종교의 가장 독특한 특징은 유일신 신앙이다. 야훼, 하나님, 알라 등 계파별, 언어별로 부르는 명칭은 조금씩 다르지만 모두 동일한 신을 지칭하고 있다. 기독교든 이슬람교든 동일 인물인 아브라함의 신을 믿는 것이기 때문에 서로 다른 신을 믿는다는 주장은 자신들의 종교의 뿌리를 부정하는 것이 되어버린다. 현재 아브라함 계통 종교가 세계에서 가장 큰 종교로 성장하면서 간과되고 있는 사실이지만, 유일신 신앙은 아브라함 계통 종교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다. 아브라함에 그 기원을 두고 공통된 철학을 가진 종교로서 이에 해당하는 종교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드루즈교, 바하이 신앙 등이 있다.

(창 6:1)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창 6: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창 6:3) 여호와께서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창 6:4) 당시에 땅에는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은 용사라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더라.

(창 6: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창 6:6)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창 6:7)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창 6:8)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창 6:9)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창 6:10) 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 (창 6:11) 그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 (창 6:12)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 (창 6:13)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창 6:14)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창 6:15) 네가 만들 방주는 이러하니 그 길이는 삼백 규빗, 너비는 오십 규빗, 높이는 삼십 규빗이라. (창 6:16) 거기에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 (창 6:17)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모든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것들이 다 죽으리라. (창 6:18)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며느리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창 6:19)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수 한 쌍씩 방주로 이끌어 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하게 하되 (창 6:20) 새가 그 종류대로, 가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하게 하라. (창 6:21) 너는 먹을 모든 양식을 네게로 가져다가 저축하라. 이것이 너와 그들의 먹을 것이 되리라. (창 6:22)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韓민족의 역사와 중화민족의 역사가 같다.’ 라고 하면 얼른 가슴에 다가 오지 않을지 모르나 진솔하게 냉정한 歷史觀으로 신화 부분을 제외 하고 본다면 누구나 다 인정 할 수밖에 없는 진실임을 알 수 있다. 한민족의 건국신화는 단기 4345년 전에 하나님의 아들 환웅으로부터 곰과 호랑이......마늘 쑥 등.......신화부분이 가미 되어 있지만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단기연대 4345년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 단군 년대가 전혀 근거 없는 허구로 만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 단군연대가 알려 주는 진실은 무엇일까? 그것은 한반도에 처음 인간이 발을 디딘 때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가장 이치적인 추리일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우리가 그렇게도 지구상에서 가장 유구한 역사라고 말하는 중국의 역사를 살펴본다면 흥미진진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춘추 전국시대 이전의 하,은,주 시대도 거슬러 올라가면 삼황 오제 시대를 만나게 된다. 중국 고대의 전설적 제왕을 말하며 이들로 부터 중국역사가 시작되었다는 설화속의 인물 3황은 일반적으로 복희씨 ·신농씨 ·여와씨를 말하며 천황 ·지황 ·인황으로 기록하기도 한다. 또한 삼황 가운데 여신인 여와씨 대신 수인씨와 축융씨라는 이름으로 기록된 경우도 있다. 복희씨는 사람들에게 물고기 잡는 법을 전수해 주었으며, 신농씨는 농사법을 전해주었다. 여와씨는 인간을 창조하였다고 한다. 사마 천은 3황의 전설을 믿을 수 없는 것으로 생각했는지, 《사기》의 기술을 오제본기에서부터 시작한다. 사마 천이 5제로 든 것은 황제헌원 ·전욱고양 ·제곡고신 ·제요방훈 ·제순중화이며, 별도로 소호 등을 드는 경우도 있어 일정하지 않다. 원래 이 전설은 다양한 신화 ·전설이 혼입된 것이며, 도덕적 · 정치적으로 억지로 끌어들인 것이어서 그 기원은 애매하다. 오행설이 일반화된 전국시대 말 이후 이야기 경향을 띠게 되었다. 진나라를 세워 중국을 통일한 시황제의 황제라는 호칭은 여기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삼황오제의 기운과 그들 이후 최초의 황제를 의미하는 시를 넣어 작명하였다.

그런데 이 시기도 연대로 본다면 한민족의 건국 신화인 단군 연대와 같은 시기임을 우리는 다 알고 있다, 다시말 하자면 중화 민족이나 한민족이나 거의 동시에 출발하였다는 사실을 확인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말은 두 민족의 시조가 동일한 형제나 친족으로서 같은 혈연관계였으며 언어 역시 같은 언어를 구사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근거로도 삼을 수 있는 것이다. 우랄 알타이어 계통이 한민족의 언어라고 하는 것도 어디선가 사람들이 강물이나 산맥을 따라 흘러 이동 해 와음을 시사하고 있는 말이 아닌가? 러시아에 우랄산맥을 거쳐서 이동해 온 언어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우선 외형적으로도 중화민족이나 한민족이나 더 넓게 보면 일본족이나 몽골 민족까지 비슷하여 얼른 육안으로 보더라도 한 핏줄임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네 민족의 역사는 상당부분이 겹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4국의 고대사를 보면 그 어느 민족도 나라도 모두다 4,400년을 넘는 역사는 전무하다는 것은 무엇을 말 하는 것일까? 그것은 서쪽 지방에서 동쪽으로 함께 이동해 오다가 일부는 우랄 산맥 쪽에 남고 또 일부는 중국의 넓은 중원을 차지하고 눌러 앉았으며 또 일부는 한반도로 이동해서 또 하나의 민족을 이루었으며 이 곳에서 삼국 시대 때 백제에서 일본으로 흘러 간 것이 일본족과 합쳐진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백제에서 넘어가기 전에 이미 일본 본토에는 인간이 살고 있었는데 이들은 지리학 적으로 상하이 쪽에서 배를 타고 이동해 들어 간 사람들로 추정 할 수도 있지만 확실히 알 수 있는 근거는 없다. 그러면 왜 이렇게 4,000년 전 후에서 이 네 민족들의 역사가 겹칠 수밖에 없는가? 그것은 누와[중국명]의 홍수 시대와 정확히 겹치고 있다. 누와의 후손이 올해까지 정확히 4383년 만에 과연 70억의 인류를 번성 시킬 수 있을까?

박제상의 부도지는 선천의 시대가 열리기 이전에 짐세라는 시대가 있었으며, 후천의 말기에 임검씨(단군)가 등장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각 지방의 전설로 남아 있는 ‘마고’가 민족의 시조로서 등장하고 있으며, 소리에 의해 세상이 창조되고, “오미의 화”로 말미암아 12부족이 나뉘게 되는 과정, 대홍수, 황궁·유인·환인·환웅씨의 계승과, 요와 순 임금에 의해 동방(단군조선)과 화하(하나라)가 분리되는 과정이 자세하게 서술되었다. 단군조선의 치세는 1천 년 간이며, 1천 년에 걸쳐 각 부족이 자리 잡은 이후로 ‘단군조선을 포함한 치세’가 7천년으로 기록하고 있다. 즉, 《부도지》에 기록된 한민족의 기원은 1만 1천 년보다 이전이 된다.

지금까지 구석기 유물이 출토되었지만 흥수아이는 충청북도 청주시의 흥수굴에서 발견된 선사 시대 인류의 화석이다. 발견한 사람의 이름을 따서 흥수아이라고 부르며,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화석 인류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다. 흥수아이는 동아시아에서 발견된 사람 뼈 가운데 유일하게 온몸이 온전하게 남아 있는 화석이다. 약 4만 년 전에 살았던 구석기인으로 추측되고 있으며, 아이가 죽은 당시의 나이는 5~6세 정도일 것으로 짐작된다. 흥수아이의 키는 대략 110~120센티미터 정도이고, 뼈의 모습으로 볼 때 지금의 인류와 매우 비슷하다. 한편 흥수아이를 처음 발굴할 때 국화꽃 화석이 나왔는데, 이는 선사 시대의 장례 풍습을 보여 주는 흔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과학의 발전이 가로막혔던 과거 기독교 문화권 등에서 세상의 창조(천지창조)가 신학뿐만 아니라 과학적 사실로도 받아들여졌으나, 인본주의 철학이 등장하면서 도전받기 시작하였고, 현대에는 과학의 발달로 입자물리학, 지질학, 고고학, 고생물학, 진화학, 유전학, 분자진화와 합성생물학(인공 합성 아미노산, 인공 효소, 인공 DNA, 광합성 인공 세포, 인공 세균 등), 인공생명, 그리고 빅뱅이론을 위시한 천체물리학, 기타 자연의 기원 및 역사와 관련이 있는 과학 등과 모순되는 점이 많고 분명한 실증이 없으나 대다수 종교에서 창조에 관한 표현은 해당 종교의 핵심적인 교리에 연관되는 경우가 많다. 현대에는 교리 중 창조에 대한 해석을 과학적 사실과 비교하는 것이 아닌 신학적, 철학적으로 비교하는 시각이 본바탕인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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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1-28 15:09

    너울에 밀려온 고래

    함창석

    늙을 때까지
    긴 세월 동안이나
    사래밭을 가리키고 있으니

    빗방울이 떨어지며
    시냇물 위로
    구슬비가 내리는 모습이라

    가르침은 어떤 길이고
    숨은 무슨 기력이며
    삶은 참다운 이치이라더냐

    손칼로 벗겨낸
    털가죽으로 안을 댄
    갖옷을 투박하게 입었으나

    주름진 얼굴에도 불구하고
    따사로운 눈빛으로
    눈길을 건네기도 하니

    노옹의 눈빛과 어울려
    바다 너울 속에
    일어나는 하얀 거품이더냐

    모래 바닷가에는
    귀신고래 한 마리가
    너울에 밀려와 죽어버리고

    동네어부들은 칼질을 하니
    바다가 베풀어 준
    수수께끼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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