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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감이 20년전 변선환을 집단살해한 이후 목도하고 있는 신학교육과 목회현실의 참담함에 관하여

작성자
박운양
작성일
2012-05-29 14:27
조회
4337
1. 필자가 감독의 지도력에 대한 기감역사의 모범적 전형으로 고 장기천 감독을 언급하게 되면서, 이 분의 가장 가까운 붕우셨던 고 변선환 학장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지점에 위치한 듯 하다

2. 흔히들~ 어설픈 감리교 부흥사들이 고 변선환 학장님의 이름을 언급하면서,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라는 기감내부의 이단세력이라느니, \"이런 신학자가 학장으로 있는 학교가 선교의 희망이 있겠느냐느니?\" 하는 말들은 그동안 계속해서 반복되었다.

3. 그러나, 필자는 고 변선환학장님이나 고 장기천 감독님의 손자세대뻘 되는 신학도임으로 조금은 다른 관점에서 조명해 보고자 한다. 그것은 과연 목회자로서, 구체적으로 명토박아서 감리교단에서 배출된 목사로서 반드시 갖춰야 하는 전문성에 대한 것이다.

4. 이미 당사자였던 고 변선환학장님 그분은 자신의 신학이 선교적 측면에서 받아들여지기까지 수없이 많은 논쟁과 이견이 있음을 먼저 밝히셨다. 그리고, 자신의 신학적 입장이 결코 기독교 대한 감리교회의 최종적인 대안은 아니며, 자신의 제자들은 자신을 밟고서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해 달라고 하셨다.

5. 그리고, 그 참혹한 종교재판에서 자신은 거세시켜도 자신을 거친 제자들은 건드리지 말아달라고 하셨다. 감신에는 40여명의 현직교수들이 있다. 이들의 80%이상은 변선환 학장님의 수업을 학부 대학원에서 직접 수강한 이들이다. 물론, 이 감신 현직 40명 정도의 교수들이 고 변선환 학장님의 신학적 입장을 모두 절대지지하거나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비율로 따져서 산정하기도 좀 애매할 수 밖에 없는 부분이 존재한다.

6. 그러나, 고 변선환 학장님의 신학적인 에네르기와 인싸이트와 그 성실성과 제자들에 대한 그 스승으로서의 역할에 대해서, 딴지를 거는 이들은 단 한명도 보지 못했다.

7. 종종 학부 대학원 수업에서, 교수들의 입에서 고 변선환 학장님의 이야기가 나오면, 그 분과 신학적인 입장이 다르다는 것이 이미 학생들에게 노출된 교수들은 이런 식으로 대부분 말해왔다.
\"물론, 저는 고 변선환 학장님과 신학적인 입장이 같지는 않지만, 이 분의 신학수업에 참여하면서 신학도로서 큰 발전과 성숙이 있었으며, 인격적으로 참으로 제자들을 사랑하셨던 분으로 기억한다.\" 이런 식으로 밝혀 왔다.

8. 지금 필자는 고 변환장님을 <종교다원주의적인 신학자>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고 강조했던 신학자>라는 측면에서 언급하는 것을 피하고자 한다. 그 분의 논문을 모두 꼼꼼하게 읽어 본 후학의 입장에서보자면, 고 변선환 학장님은 <신학교육이 철저하게 냉혹할 정도로 깊이있게 이뤄지지 못한 어설픈 상태에서 신학도들이 목회자로 접어들게 되면, 결국 기감의 미래는 희망이 없다>는 바로 이 전제에서 가르치신 분이라는 측면에서 조명되어졌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9. 암울한 독재시대 한 복판에서, 고 변선환 학장님의 제자그룹의 현직 감신 교수들은 87년 민주항쟁을 통해서 직선제가 쟁취되기 전에, 항상 양심의 실천을 감당한 감신의 신학도들과 함께 감신 정문에서 서대문로터리까지 함께 했다. 그러나, 당시 1991~1992년 감신 교수사회의 역량은 교리수호대책위원회 대부분 기감의 부흥단 그룹의 짝패를 이룬 목사들을 제대로 대응해 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10. 흔히들~ 지금도 이런 말들이 개교회에서 횡회하는 현실은 참 괴롭고 참담한다. 대략 이런 말이다. \"신학교에서 공부한 것과 목회현실은 전혀 다르다라는 것이다.\" 물론 신앙의 언어와 신학의 언어는 같을 수 없다. 제대로 성찰하자면 같아서도 안된다. 그러나, 목회자수업이 전문적인 과정인 이유는, 목회자 수업의 각 신학분과가 모두 중요하기 때문이다.

11. 흔히들, 신학수업을 이론신학과 실천신학으로 분류하고 하는 데, 시대를 향해서, 개교회 공동체를 향해서 제대로된 케리그마의 말씀선포를 하려면, 실천신학뿐만이 아니라, 이론신학도 매우중요하다. 감신의 신학적인 전통속에서, 조직신학과 성서신학이 탁월성을 유지했던 것은 그만큼 감신의 학문성을 인정받는 지점에서 타당성을 얻기도 했다.

12. 지금 2012년 5월 작금의 대한민국 개신교회의 현실에서는 다시 <이론신학의 중요성>이 대두될 수 밖에 없다. 이 부분의 적지않은 지점을 인문학적 지평일 전제한다고 할 때, 스티븐 잡스의 전기를 통해서도 알수 있듯이, 자금의 전세계적 학문의 지형도는 인문학과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의 통섭에 있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이론신학적 특히, 조직신학과 성서신학에 충실한 훈련을 신학도로서 이수한다는 것은 매우 긴요할 뿐만이 아니라, 목회자로서의 역량을 최대치로 끌어 내는 데에 있어서, 절차절명의 과제이다.

13. 사실, 칼바르트전까지, 신학과 인문학은 분리되지 않았다. 대한민국현실에서도, 윤성범, 유동식 변선환에 의한 토착화신학의 담론은 당시, 19,60,70,80년대 초반까지 토착화론을 주도했다. 유수의 신문사에서는 이 감신의 신학자들의 칼럼을 받기 위해서, 감신 캠퍼스 앞에서 자건거를 타고 원고지를 챙기기 위해서 적지 않은 수고로움을 감당했다는 일화들은 아직까지도 전해지고 있다.

14. 신학적인 통찰력을 신학교육이 담지하지 못하게 되면서, 기감은 시나브로 교단 전체가 나사가 풀리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90년대 초반부터, 세습에 대한 이야기들이 난무하기 시작하고, 세습을 대세추수주의처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15. 따라서 목회자로서의 청운의 꿈을 품고서, 최선을 다한 이들은 세습의 장벽에 의해서 계속해서 블로킹을 당할 수 밖에 없었으며, 그 폐해를 우리는 지난 5년의 기감사태를 통해서 절절하게 목격하고 있다.
따라서, 종교재판 20년만에 고 변선환 학장님의 복권은 매우 상징적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앞으로 협성 감신 목원의 신학대 교수들부터 수고로움의 땀방울을 흘려야 겠지만, 기감교단의 미래의 선교적 지평이 목회자들의 수준에 의해서 절대적으로 영향을 받는 다는 것을 전제할 때, 고 변선환 학장님의 복권은 기감의 무너진 신학교육의 회복을 통한 참담한 목회현실의 올곶은 방향타를 제시하는 데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겠다.
* 관리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2-05-30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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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1

  • 1970-01-01 00:00

    교권을 아버지로 부터 세습한 당사자들이 변선환교수를 복권시킬 수 있겠습니까?
    아니면 교권을 선배들로부터 세습한 당사자들이 복권시킬 수 있겠습니까?
    권력과 물질 세습을 바라는 신학생들이?
    세습앞에 입다물고 안위를 구하는 교수들이?

    변선환교수의 복권이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단 말입니까? 이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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