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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회 아등(我等)

작성자
함창석
작성일
2015-09-29 15:00
조회
908
나 - 너

나 : 予(나 여)는 직기(織機)의 횡사(橫絲)를 끼는 북을 오른편으로 왼편으로 보내는 것을 나타내며 좌우(左右)로 건네므로 주다의 뜻이 되고 음(音)을 빌어 나의 뜻으로 쓰이며 吾(나 오)는 뜻을 나타내는 입구(口☞입, 먹다, 말하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五(오)가 합(合)하여 이루어지고 我(나 아)는 手(수)와 창과(戈☞창, 무기)部를 합(合)한 글자라고 생각하였으나 옛 모양은 톱니 모양의 날이 붙은 무기(武器)인 듯하며 나중에 발음(發音)이 같으므로 나, 자기의 뜻으로 쓰게 되었으며 朕(나 짐)은 뜻을 나타내는 달월(月☞초승달)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关(소→짐)이 합(合)하여 이루어지고 옛날에는 일반적으로 나의 뜻으로 쓰였지만 秦始皇(진시황) 이래 천자(天子)의 자칭이 됩니다.

너 : 爾(너 이)는 실을 가락옷에 잘 감을 때 쓰는 물레를 본뜬 것이며 伱(너 이, 니) 뜻을 나타내는 사람인변(亻(=人)☞사람)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尔(이)가 합(合)하여 이루어지고 恁( 너 님, 임)은 뜻을 나타내는 마음심(心(=忄, 㣺)☞마음, 심장)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任(임)이 합(合)하여 이루어지며 汝(너 여)는 뜻을 나타내는 삼수변(氵(=水, 氺)☞물)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女(여)로 이루어지며 음(音)을 빌어 二人稱(이인칭)의 대명사(代名詞)로 씁니다.

나-너[Ich-Du]

부버(Martin Buber 1878-1965)에 의하면 인간과 세계의 관계는 이중적입니다. 하나는 '나-너' 관계라고 불리는데, 나는 그 존재(Wesen) 전체를 가지고서만 그 속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나-그것' 관계라고 불리는데, 나는 그 존재 전체를 가지고서는 그 속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 경우 '그것'은 '그' 또는 '그녀'를 가지고서 치환될 수 있습니다. 너에게 대향하는 나는 인격(Person)이라고 불리며 만남과 대화의 주체이고, '그것'에 대향하는 나는 개아個我(Eigenwesen, 개적 존재)라고 불리며 인식과 경험의 주체이다. 그 두 나는 동일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인식과 경험의 대상이며, 객관적 공간 속에서 서로 인접하여 존재하나 너는 어떠한 대상도 아니며, 다른 너나 '그것'에 의해 한계 지어져 있지도 않습니다. 너는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으며, 독자적인 배타성(Ausschließlichkeit)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모든 것을 스스로의 빛에 의해 비추어 떠오르게 합니다.

이렇게 하여 만나게 되는 너도 시간의 경과 속에서 머지않아 '그것'으로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유한한 너의 운명인바, 부버는 너를 나비에, '그것'을 번데기에 비유하나 이러한 '그것'도 다시 너로 변할 가능성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대향하는 나도 인격과 개아 사이를 동요합니다.

부버의 '나-너' 관계는 세 개의 영역을 포함합니다. 언어에 의한 대화의 영역. 동식물이나 자연과의 전-언어적 관계의 영역. 정신에 의한 창조활동의 영역. 예술적 창작도 '나-너' 관계에 속하며, 그 원동력은 작자(나)에 대한 소재(너)의 '형태를 주어라'라는 호소인바, 작자의 그것에 대한 응답으로서의 창작활동에 의해 작품이 생겨납니다.

언어와 사랑도 '나-너' 관계의 가장 중요한 결실인데, 이때 언어나 사랑은 나의 내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너와 너 '사이'에서 발생합니다.

만년에 이르러 부버는 점점 더 이 '사이'의 영역에 중점을 두게 되어 '나-너' 관계의 중심을 거기서 보게 되었지만, 이 '사이'와 너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여전히 해명해야 할 점이 남겨져 있습니다.

마르셀의 '나-너' 관계도 기본적으로는 부버의 그것과 거의 다르지 않지만, 다만 '나-너'와 '나-그것'의 중간이라고 말해야 할 불순한 '나-너' 관계(예를 들면 사회적 역할 관계)를 인정하는 점이 다릅니다.

‘나 아니면 남이요, 남 아니면 나다’는 자기 자신 외에는 아무도 마음 놓고 믿을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이지만 중요한 친구나 사람으로부터 자신이 중요한 존재로 인정받거나 칭찬을 받게 되면 나라는 존재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되고 긍정적 자아존재감으로 연결되면서 자기가 하는 모든 일에 자신감을 갖게 되고 건강한 사회일원으로 자리 잡게 되는 것입니다.

주 하나님 아버지!

우는 사자같이 사탄이 우리를 삼키려 하는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 주의 천군천사가 함께 하여 지켜 보호하시고 보혜사 성령께서 안전한 길로 항해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소서. 예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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