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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장선거] 총장후보추천위원회를 속인 과두제의 철칙

작성자
박근조
작성일
2016-06-29 23:39
조회
879

총장후보추천위원회를 속인 과두제의 철칙

민주적이든 독재적이든 모든 정치조직의 의사결정 과정에는 ‘과두제(Oligarchy)’가 작동함을 간파한 학자가 있다. 막스 베버(M. Weber)의 직계 제자인 미헬스(Michels)는 “조직을 말하는 자는 누구나 과두제를 이야기한다”며 과두제의 보편성을 주장했다. 그는 1900년대 초반 독일을 휩쓸던 사회주의 정당과 노동조합, 교회가 겉으로는 혁명을 내세우고 실상은 소수 지배 엘리트들의 권력 유지에 혈안이라는 이율배반적 현상을 ‘과두제의 철칙’(Iron Law of Oligarchy)으로 개념화했다.

굳이 '철칙(鐵則)'이라고 명명한 까닭이 있으니 보편적 규범으로써의 법칙도 아니고 체제의 근본원리나 원칙도 아님에도 현실정치에서 예외가 없다는 비판과 냉소가 담겼다. 조직된 소수 엘리트들이 권력을 장악하고 나머지를 지배하는 것은 권력을 탐하는 인간의 본능이라는 통찰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과두제의 철칙’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가? 간단한 예를 들 수 있다.

9명의 심사위원이 4명의 후보 중 3명을 추천하는(즉, 한 명만 떨어뜨리는) 투표를 한다고 가정해보자. 9명은 각각 한 장의 투표용지에 3명의 이름을 한번에 써내기로 한다. 여기까지는 정상적으로 보인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 문제가 숨어있다. 소수의 담합이 작동한다. 4명만 손 잡으면 표적으로 삼은 1명을 떨어뜨리는 것은 아주 쉽다. 그 4인은 ‘그 한 사람’만 투표용지에 쓰지 않으면 된다. 그 결과 그 1인이 최대 얻을 수 있는 표는 다섯 장을 넘을 수 없다. 더구나 3명을 한번에 의무적으로 표기하는 방식은 무자격자가 무임승차하는 묘책이다. 이런 나쁜 정치적 야합을 예방하기 위해선 각 후보자 한 명에 대해 심사위원 전원이 가부(可否)를 정하는 개별투표를 후보숫자만큼 진행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올바르다.

위 사례가 바로 현재 감신 총장후보추천위원회가 자행한 방식이다. 모르고 그랬다면 정치에 무지한 것이고 알고 그랬다면 조작이다. 효율과 민주적 방식을 표방하여 자신들의 정적을 제거하는 고도의 정치적 술수. 4인의 담합은 절묘하다.

총 9인의 총추위원 중 이사회가 재단 이사 4명을 당연직 총추위원이 되게 한 규정 자체가 이사회가 총추위를 지배하도록 사전에 판을 짜놓은 것이나 다름없다. 미헬스는 이런 지배 방식이 바로 ‘과두제의 철칙’이라고 100년 전에 간파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교묘한 결정방식의 결과는 어디까지 유효하고 적법한 것일까? 모르고 지나갔다면 여전히 무지의 소치겠지만 알고도 침묵한다면 비겁한 무능일 뿐이다. 4인의 담합이 “없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길”은 방법을 바꾸어 심사를 다시 하는 것 밖에 없다.

어리석게도 총추위의 검증위원회는 후보 4인을 동일하게 조사하지도 않았다. 의도적인 표적검증일 뿐이라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비난과 오해를 불식시키고 차후 불필요한 권위의 치명적 손상을 막기 위해서라도 재심밖에 대안이 없다. 제도적으로는 이사회가 4명의 이사를 당연직 총추위원으로 삼는 규정 자체를 개정해야 함은 물론이다. 마땅히 총추위 자체를 다시 구성하여 진행하는 것이 문제의 소지를 발본색원(拔本塞源)하는 최선의 방법이긴 하다.

고전적 민주주의 이론은 조직이 소수 엘리트에 의해 보수화되고 사유화되는 현상을 막기 위해서 깨어있는 ‘성숙한 개인’의 역할에 주목했다. 대중의 시대가 도래하며 계몽시대의 ‘시민’은 ‘무비판적 동조’에 길들여진 중우(衆愚)로 전락했지만 다시 깨어날 수 있다.

세상의 정치세계는 사술(詐術)과 암수(暗數)를 통해 권력에 다가간다. ‘과두제의 철칙’은 그 비밀 중 하나일 뿐이다. 총장선거가 속세를 따라간다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 하늘의 정치학 교과서(잠언 16:33)대로 차라리 제비뽑기를 하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초월적 계시를 믿고 제비뽑기를 하였다면 ‘과두제의 철칙’쯤이야 문제될 리 없다.

아직 늦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잘못된 그 지점으로 되돌아가 다시 시작하는 것이 하늘의 정치를 이 땅에 실현하는 지름길이다. 그것만이 총장선거가 한낱 풍진(風塵)뿐인 세속의 이전투구(泥田鬪狗)로 전락하는 것을 막고 하늘나라의 선(善)을 이루는 축복의 길이다. 이제라도 돌이키지 않는다면 피할 수 있는 지리멸렬한 투쟁과 저잣거리의 싸움판이 열릴 것이다. 분열과 저주의 영(靈)이 이 사회와 총추위를 어른거리고 있다. 문제의 본질을 안 이상, 더 이상의 침묵은 없다. 조직된 소수는 조직화된 다수를 절대 이길 수 없다.

출처 :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6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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