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서드】선교역사(宣敎歷史)

작성자
함창석
작성일
2020-06-25 20:37
조회
265
남한강 삼도 물머리에서

- 6월 넷째 주 선교지 탐방하며

오늘은 6.25전쟁 70주년을 맞고 있다. 몽골선교사 일행과 남한강지역 초기선교역사를 알아보려고 삼도(강원, 충청, 경기)가 연결되어 있는 지역과 교회를 탐방하고자 원주를 출발하여 문막에 있는 박순필 목사가 시무하는 문호교회를 잠시 들렸다. 농촌교회인데 마늘 한 접씩 선물을 받았다. 그리고 옛 도로를 따라 삿갓 봉을 넘어 강천교회에 들렸다. 강천교회는 이호나루가 있던 지역에 세워진 교회주보에 126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는 교회이다. 강 건너편 점동 지역에 있는 처리교회가 강천교회와 비슷한 시기에 세워졌다고 한다. 강천지역에 신암교회를 들려 이강민 목사와 다과를 나누었다. 이강민 목사는 감리교신학대학교 이기춘 교수의 아들이다.

1888년 아펜젤러 일행은 강원감영이 있던 원주를 찾아 선교에 관한 협의를 관리들과 하고 간 것으로 원주제일교회사에는 기록되어 있다. 1894년 갑오경쟁 이후 당시 일본과의 협약으로 1896년 국가지방제도개혁법에 의해 도청소재지가 원주에서 춘천으로 이전하게 되었다. 추측하건대 원주역에서 춘천지역으로 선교사 팀은 정책방향을 변경하게 된 것으로 보여 진다. 왜냐하면 춘천중앙감리교회는 1898(혹은 1902)년에 창립되고 원주제일교회는 1905년에 창립된 것으로 볼 때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본다.
지금은 경기도지만 강천지역은 1900년대 이전에는 간매리, 이호리, 지내리, 당우리 등 강원도 원주군 서면에 속하였던 역사가 있다. 1898년 창립된 북내중앙감리교회가 있다. 한양에서 출발한 이들은 배를 이용하여 팔당을 거쳐 여주 이호나루에 도착하여 선교를 한 것으로 보여 지며 처리지역에 있는 성도 집에 머물렀다는 기록도 있다.
남한강 지류인 섬강을 따라 당시 서면과 인접지역이었던 문막에 도착하여 선교를 한 기록을 문막감리교회 역사관에서 확인할 수가 있다. 문막감리교회는 1905년 창립을 한 것으로 선교역사를 정리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 원주선교부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06년에는 횡성감리교회가 창립되고 1907년에는 제천제일감리교회가 창립되었다. 남한강을 따라 1898년 충주에 까지 이른 선교 팀은 1905년 충주제일감리교회를 창립하였다. 남한강과 가까운 장호원지역은 수원지역 선교부 의해 좀 더 일찍 1900년에 장호원감리교회가 창립된 것을 장호원감리회 100년사에서 확인할 수가 있다.
1892년 수원종로교회를 시작으로 수원선교부 지역인 1902년에는 이천중앙감리교회가 창립되고 1905(혹은 1902)년에는 여주중앙감리교회가 창립되었다. 광주지역은 1902년 궁평감리교회가 창립되고 광주감리교회는 그 후 1912년에 창립되었다. 구헌영 전도사가 헌신적으로 활동하였으며 순교한 것으로 감리교회사는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일행은 강천교회에서 기도를 하고 점봉초등학교에 잠간 들렸다. 점봉초등학교는 우리 봉산교회 박병욱 장로가 교장으로 근무하는 학교이다. 박병욱 장로는 현재 동부연회 교회학교 연합회장을 수행하고 있는 교회학교교육에도 정통한 교육자이다. 학교에 들어갈 때는 규정상 마스크를 하고 발열체크를 받았다. 차 한 잔을 대접 받고 선교비까지 전달받고 처리교회를 향하였다.

류광형 목사가 시무하는 처리교회에 들렸다. 처리지역은 아펜젤라 선교사 일행이 묵었던 교우 집이 있었다고 한다. 가까운 지역에 3000년 전 탄화미가 발견된 흔암리 선사유적지박물관을 견학하고 삼합지역인 최요섭 목사가 시무하는 삼동교회를 들렸다. 경기도 강원도 충청도 삼도가 만나는 곳이라 하여 삼합리라 한다고 하였다. 우리 일행은 충북연회에 소속한 앙성면 단비교회에 들렸다. 고진욱 목사가 시무하고 있엇으며 부론교회를 거쳐 류준호 목사가 시무하는 문막교회에 들려 김재구 장로로부터 안내를 받고 문막교회 115년 역사 영상을 관람 후 역사관을 들려 김재구 장로의 설명을 들었다. 문막교회는 선교사들이 아닌 평신도인 이계삼 전도사(당시는 권사)가 교회를 설립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문막교회로부터 저녁식사를 대접받고 원주로 돌아오는 길은 참 뜻 깊은 날이라고 선교사 일행은 말하였다.

이처럼 오늘 하루도 6.25 전쟁에 아픈 기억을 하며 1882년 민영익을 단장으로 하는 견미단이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고 시카고를 거쳐 워싱턴으로 행할 때 미국북감리회 가우처 목사는 견미단 일행과 만나 조선 선교를 타진한 것으로 추측된다. 가우처는 당시 일본 선교사로 파송 중이었던 맥클레이 목사와 편지로 조선 선교를 협의하였고 맥클레이는 1883년 인천에 도착하여 머물다가 일본으로 돌아갔고 다음해 1884년 3월 고종황제 알현으로 학교와 병원 그리고 선교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협의한 것으로 추측이 된다. 1885년 4월에는 아펜젤러 선교사를 파송하게 되었다. 이처럼 초기 감리교회 선교지역에서 피땀 눈물을 흘리시던 믿음의 선열들을 추모하고 기념하는 참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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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6-25 20:40
    부론 흥원창은 조선시대의 국가가 운영하던 물류창고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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