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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명

작성자
송승희
작성일
2016-12-26 17:13
조회
2187
지난 11월 27일 우리교회 당회가 있었습니다.
당회장님은 작년 당회 때 소란(?)을 피운 여자 권사님 제명과 올해에 소란(?)을 피운 남자 권사님 2명에 대한 권사연임 투표를 하겠다고 하며 소란을 피웠던 장면을 중앙의 화면에 띄우고 기표소를 설치하였습니다.
당연히 당사자들은 거칠게 항의하였고, 많은 교인들이 반대하며 교인을 내 쫓는 일은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에 맞지 않는다고 하며 반대 하며 투표를 하지 못하도록 하여 당회가 매우 소란스러워 졌습니다.

담임목사님은 여자 권사님에 대하여 헌금한 내역이 없다고 하면서 헌금사항까지 당회원 모두 앞에서 공개하였고, 해당 여자 권사님(미파된 장로의 부인)은 담임목사님이 시킨 대로 다른 미자립 교회와 선교사님 등에 헌금을 드렸다고 항변하며, 어떻게 개인 헌금사항을 당회원 모두에게 공개하느냐고 따졌고,
다른 남자권사님은 내가 소란을 피운 사실에 대하여 확실하게 짚을 것을 요구하며, 내가 소란을 피울 수 밖에 없었던 이유와 그때 함께 소란을 피웠던 담임목사님 쪽 사람들도 함께 제명을 하라고 요구 하며 따졌습니다.

한 미파된 장로님은 당회장과 교인들에게 고소, 고발은 이제 그만하시라고----
교인을 이단이라고 교회에서 재판하고, 장로들을 내 쫓으려고 지방회에 고소하고, 연회에 고소하고, 심지어 교회 돈을 횡령하였다고 경찰서에까지 고발하고------
또 경찰에 고발 달한 것이 검찰에서 무혐의, 고등검찰에서 무혐의, 고등법원에서 무혐의, 대법원에서도 무혐의 처분 되었으면 이제 그만 해야 하지 않느냐고-----
그 동안 이만큼 고통을 주었으면 그만 할 때도 되지 않았냐고----
그리고 교인들을 내 쫓는 일은 이제 정말 그만하시라고, 교인들을 “교회에서 내 쫓는다”는 것은 사도바울 선생님의 말씀을 빌린다면 “사탄에게 내어주는 것이다.” 라고 하면서 교인들을 설득 하였습니다.

계속된 소란으로 인하여 투표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당회장은 변변한 이유나 설명도 없이 언제나 그랬듯이 어물 쩡 넘어가 버렸습니다.

그리고 몇 일이 지난 날 교인들에게 내용증명이 날아 왔다고 합니다.
담임목사님으로부터-- 교회를 어지럽혔다고, 교회법과 사회법에 고소, 고발하겠다고-- "긍휼과 자비없이"란 문구와 함께 미파된 장로님들을 포함한 6명이 받았다고 합니다.

누가 하나님의 교회를 어지럽히는지....
담임목사님이 오시기 전에는 100년이 넘는 역사에 단 한번의 고소, 고발이 없었다는데---
담임목사님이 오신 후 2년 동안 교인과 교인이 서로를 지방회로 연회로 경찰서로 고소와 고발이 난무하게 되었고, 수시로 내용증명을 난발하게 되었는데, 거기다가 교회 재정을 재판비용으로 사용하겠다고 당당히 교인들에게 말하는 목사님....... 교인들의 귀한 헌금을 이런 곳에 써버리는 교회 운영자들은 또 어떤 짐을 감당하게 될까요?

우리 교회의 혼란은 누구 때문일까요?

"서로사랑하라 주가 말씀하셨네 우리 서로 사랑해" 라는 주일학교 찬양이 입가에 맴돕니다....



전체 6

  • 2016-12-26 19:07

    우리교회는 당회때가되면 불법을 행하려는자와 불법을 막을려는 자와의 싸움으로 항상 예민해집니다.
    금요예배때 목사님께서 설교말씀으로 "이번일로 인하여 알곡과 가라지가 구분 됏잖읍니까
    가라지는 뽑아버려야지요"라고
    말씀하시니 일부 성도들은 아멘으로 은혜받더군요
    .일년이 넘은 시간이 지나도 이말씀이 씁슬하게 잊혀지지 않네요...


  • 2016-12-27 17:04

    부모는 자식이 아무리 잘못을 하여도 잘못한 자식몰래 눈물흘리며 기도하는것이며 자식의 잘못을 백번천번 용서하며 내 탓이라고
    하는것이 부모의 심정이요 자식에대한 사랑일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생명까지 우리죄를 위하여 버리시며 십자가를 지신 사랑을 아마도 그목사님은 모르시나봅니다.
    겉모습은 거룩한 성자의 모습이나 그 솎엔 악한령으로 가득한 처세술에 능통한 사람이 아닌가 생각이됩니다.
    거기까지 이르기까지는 무슨이유가 있었겠지요 왜? 거기까지 갔는지 알수는 없지만 그속내를 믿지않는사람들이
    알게된다면 누가 예수를 믿을수 있을 까 염려가 됩니다
    사명자가아니고 삯군만 되더라도 밥통떨어질까바 그러진 못할터인데 퍽 안타깝습니다
    자고로 목회자는 언제든지 가방들고 나갈준비와 언제든지 설교할준비를 갖추고 목회하라는 교훈과 장로는 언제든지
    기도할준비가 되어있어야하고 언제든지 교회를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감내 해야 한다는 교훈은 동서고금을 막론
    하고 어느교단이든 이 교훈은 통일시된 종교철학이라고 한다네요
    큰 위로되시길 기도합니다


    • 2016-12-27 18:46

      사랑과 위로의 말을 들은게 몇년만인지 모르겠네요
      .조그만 마을에 친하게 지내던 형제 자매들이 영적으로 갈라지고
      하나님께 드려야할 예배가 정죄와 비판과 강팍함으로
      보낸 세월이 연단으로 감당하기에 힘들때가 많았읍니다
      작년 당회때 서로가 소란스럽게 진행될때 여성집사님이
      목사님이 오시기 전에는 이런일이 없었읍니다 라고 하였더니
      목사님께서 그전에 곪아 있었겟지요 라면서 응답 하시더군요
      곪은 상처가 있으면 목사님께서 그상처를 들고 하나님께 나아가서
      무릎끊고 치료를 받아서 서로가 하나가되게 하는것이 목사님이 할일인데
      곪은 상처를 떠트려서 성도를이 서로 피비린내 나게 싸우게 만드는것은
      성령으로 시작해서 육체로 마치는 책망받는 모습일수밖에 없겠지요
      강팍한 마음이 들때마다 다윗의 고백처럼 성신만을 거두지 말아달라고 부르짗읍니다
      성령의 충만함과 기도의 분량을 간구하기에도 바뿐 인생인데
      교회 문제로 인하여 마음과 몸들이 너무나 지쳐 있읍니다
      위로해 주셔서 다시한번 감사하고 찡한 마음을 느끼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2016-12-27 19:44

        주문진교회를 한 때 섬겼던 목사로서 참 조심스럽습니다만, 주문진교회의 어려움은 어느날 갑지가 터진 일이라고 저는 보지 않습니다. 그동안 그 안에 곪은 상처가 있었던 셈입니다. 그 중에 제일 큰 것은 "목회자를 향한 불신"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현 담임목사님의 강경한 태도를 나름 이해할 수 있는 측면도 있지만, 상대방을 죽여야 내가 혹은 우리가 산다는 식의 대결 구조 속에서 장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대처하는 것에 대해 결코 동감할 수 없기도 합니다.


      • 2016-12-28 11:31

        세상 사람들은 다투다가도 어느날 막걸리 한잔에 얼어붙었던 마음들이 녹아 다투던 때보다 더 친밀하게 지내는 모습들이 참
        정겹고 살갑게 살아가는 모습들을 우리들은 많이 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독 그리스도인들이라 칭함을 받는 우리들은 좀 처럼 풀어지지 않는 습성들을 가지고 있지요.
        기독교는 초대교회때부터 평탄하게만 성장해온것이 아니라 때로는 극렬하게 다툼들이 있었던것으로
        신약성서속에 남아 있더군요.
        유대적 기독교 를 표방하는 대부분의 초대교회 지도자들과 헬라적 기독교를 표방하는 바울사도와 갈등이 대표적이라
        할수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도자들과 다툼은 있었지만 목회자와 성도들의 갈들은 별로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면을 생각해보면 초대교회 목회자들의 성품은 말 그대로 그리스도예수의 사랑정신을 실천하셨던 참 그리스도
        인들이 아니었나 생각이 됩니다.
        우리 한국의 첫 기독교 역사에서도 보면 당시 선교사님들이 얼마나 희생정신으로 헌신적인 삶을 살아왔는지 기록에서 보이듯이 고당 조만식 장로님처럼 좀 늦은 시간에 예배에 참석했다가 담임목사님으로부터 현장에서 핀잔을 들어 민망했을 법도 한데
        담임 목사님의 인품이 얼마나 존경스러웠으면 순종으로 섬겼겠습니까?
        이시대 특히 감리회에 존경받을 목회자들이 참 많으신데 몇몇분들이 사명자를 벗어나 삯군만도 못한 분들이 몇몇이 있기에
        감리회가 좀 시끄러운것이 아닌지 좀 깊은 생각이 듭니다
        스크랜턴 선교사님이 얼마나 많은 헌신과 희생을 하면서 희망이없어 보이던 당시 조선의 상황을 희망의 나라로 바꿨는지
        우리들은 잘 알고 있지만 당시 감독과 갈등때문에 감리회를 떠나는 안타까운 사건을 특히 평신도들은 잊어서는 안될
        교훈일것입니다
        하루속히 교회가 안정되길 기도하겠습니다.
        또한 홍목사님의 말씀대로 예전부터 목회자를 불신하는 경향이 있어
        곪은것이 아닌가 하는 말씀이신것 같은 데 상처가 있고 곪은곳이 있다면 잘 치료하는것이 명의가 아닐까요.
        그런면에서 보면 사명이 없으면서 한때 잠깐 받은 은혜로 신학을 하여
        목회자가 되다보니 사명은 온데간데 없고 직업적 목사로써 목회아닌 목회를 하다보니 거침돌처럼 보이는 몇몇만 제거하면 편하게 월급생활 할거라는 비 사명적 목회자의 태도는 마치 치료가 좀어려운 중환자
        를 거절하는 히포크라데스의 정신을 저버린 의사처럼 예수그리스도의 사랑과 사명을 저버린것과 같은것이라고 사료됩니다
        명의는 어떤 상황에서든지 성심을 다해서 환자를 치료하듯이 예수님
        처럼 참 목회자는 병든교회 병든성도들을 잘 신앙으로 돌보며 회복시키는것이 참 목자가 아닐까 합니다.


        • 2016-12-28 14:47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목회자를 향한 불신"이 "목회자를 불신하는 경향"으로 달리 표현되면 이해가 달라지는 문제가 있습니다.
          주문진교회 지난 모든 일을 다 말씀 드릴 수 없지만, 제가 표현현 목회자를 향한 불신은 목회자 스스로에게도 문제가 있고 그런 목회자를 바라보는 성도에게도 문제가 있다는 쌍방의 성질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목회자를 향한 불신의 경향이란 표현은 아무 문제없는 목회자를 불신하는 성도들의 문제만으로 느껴지게 합니다.
          그리고 곪은 곳을 찰 치료하는 것이 명의가 아닐까 말씀하셨는데요, 이 곪은 곳에 대한 이해가 주문진교회 내에서는 다른 듯 합니다. 곪은 곳을 사정없이 짜고 피가 주변에 흥건히 날지라도 도려내야 잘 치료하는 것이라고 믿고 행동하는 분들이 있는 반면, 가능한 상처 부위를 좁하고 아픔을 최소화하여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 잘 하는 것이라고 믿고 행동하는 분들이 있다고 봅니다. 문제는 그 곪은 부분, 상처를 얼마나 정확히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지만 몸 전체를 아끼고 사랑하느냐에 따라 치료법도 달라지는 법입니다. 분초를 다투는 응급실 상황인지, 신청하고 순번을 기다려도 되는 외래 진료 상황인지 분별하는 것에 따라 치료법도 달라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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