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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데스다의 예수

작성자
최세창
작성일
2017-03-07 11:04
조회
1077
1. 시작하는 말

깊은 밤에 저층 아파트 초인종이 요란하게 울렸습니다. 깊은 밤에 올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머뭇거리는데, 느닷없이 거나하게 취한 목소리로 “여보! 빨리 문 열어! 문 못 열어!” 하는 큰소리가 들렸습니다. 집사람에게 애인이 있을 리가 없는데 무슨 날벼락인가 하는 생각을 하며 문을 열었습니다. 이게 웬일입니까? 생전 처음 보는 남자가 깜짝 놀라며 눈을 둥그렇게 뜨더니, 잠옷 바람으로 문을 열어 준 내게 “당신, 누구요?” 하는 겁니다. “여기 사는 사람인데요.”라고 했더니, “아, 옆 동으로 잘못 왔네요. 아이구 정말 미안합니다.”라고 하고는 허둥지둥 달아나듯 층계를 내려갔습니다.

엉뚱한 데서 예수님을 찾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 영생의 주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고, 인간 예수를 만난 교인들도 있습니다.

2. 예수님이 찾아가신 베데스다

명절이 있어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예수님은 동북편의 양문 곁에 히브리어로 베데스다라고 하는 못을 방문하셨습니다. 거기에 행각 다섯이 있었는데 많은 환자와 장애인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동하게 하는데, 동한 후에 그 물 속에 먼저 들어가는 환자는 무슨 병이든지 낫기 때문이었습니다.

‘자비의 집’이라는 뜻인 베데스다의 행각에 기거하는 환자들은 정말 불쌍했습니다. 그들은 용한 의사들을 만나고, 온갖 좋다는 약을 쓰고도 못 고친 병으로 고통스러워했습니다. 그들은 사람과 세상에 걸 수 있는 모든 소망을 잃어버린 채, 천사가 내려와서 물을 동하게 할 날을 기다리며 죽지 못해 살고 있었습니다. 더욱 기막힌 일은 물이 동한 후에는 치유된 단 한 사람만 기뻐했고, 모두가 더 큰 실망과 더 큰 아픔을 겪곤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환자들을 찾아오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찌든 몰골, 더럽고, 지저분하고, 악취가 나는 환자들이 기거하는 베데스다를 찾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전염의 위험과 부정한 환자와의 접촉을 금하는 율법을 무릅쓰면서까지 그들을 방문하여 위로하고 도와줄 종교인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주 예수님은 그 베데스다, 그 소외된 불행한 사람들을 찾아가셨습니다.

주 예수님은 사랑이 절실한 곳을 먼저 찾아가십니다. 사랑이 절실한 불행의 때란 우선적으로 찾아오시는 주님을 만날 호기회입니다. 인간의 지각을 뛰어넘는 사랑의 주님의 능력과 지혜를 체득할 호기회입니다. 그 주 예수님을 만나 붙잡고 호소하면 반드시 문제 해결의 은혜를 체험할 것이고, 믿음이 더욱 심화될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호기회를 투덜대며 원망하고, 신이 있는 것이냐 없는 것이냐 타령하느라 날려 버리는 교인들도 있습니다.

처음 담임 목회를 하던 교회에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교인이 있었습니다. 장교 출신인 남편도 어떤 병을 치른 후유증으로 똑똑하지 못했습니다. 그 교인은 세수도 목욕도 빨래도 하지 않았습니다. 늘 머리카락은 헝클어져 있고, 얼굴엔 때가 딱지처럼 붙어 있고, 겉옷이건 속옷이건 갈아입을 줄을 모르고, 냄새는 옆에서 숨을 못 쉴 정도였습니다. 누가 옷을 주면 속옷도 겉에다 입었습니다. 그 교인의 움막집에는 동네 사람들이 얼씬도 하지 않았습니다. 심방을 가면, 역한 냄새 때문에 앉아 있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교인들이 착해서 심방 가자고 하면 순종하곤 했습니다.

그녀의 남편이 죽을병이 들었을 때, 아내와 함께 심방했습니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그 남편이 “저것들이 다 나가네!”라고 하고는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앉으면서 “나가는 게 뭐예요?”했더니, “뭐긴 뭐예요. 저승사자들이죠.”라고 했습니다. 평소에 환자들에게 하던 대로 안수기도를 하고, 주님이 아내의 몸 곳곳에 계시하시는 대로 환자의 똑같은 부위들에 통증이 없어질 때까지 손가락을 댔다가 떼는 일을 반복했고, 마침내 주님이 고쳐 주셨습니다.

성령의 은사인 치유와 축귀는 40여 년간 해 오고 있습니다.

베데스다의 불쌍한 군상이 더욱 불쌍한 이유가 또 있었습니다. 그 환자들은 육신의 병뿐만 아니라, 정신적이며 영적인 병까지 앓고 있었지만, 그런 병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심각한 상태였습니다. 그들은 천사가 내려와서 동하게 한 물에 남들보다 먼저 들어가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일단 못의 물이 동하면, 그 물속에 먼저 들어가기 위해서 서로 밀고, 당기고, 넘어뜨리고, 욕하고, 짓밟았습니다. 그 은혜의 못에 남보다 먼저 들어가기 위해서 결사적으로 싸우곤 했습니다. 자기보다 더 중한 환자, 더 고통스러워하는 환자, 더 오래 기다린 환자, 더 오랜 세월을 불편하게 산 장애자 등등을 위한 사랑이나 양보는 없었습니다. 충격적인 것은 그 환자들은 하나님의 선민의식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기복신앙으로만 다져진 교인들도 별로 나을 게 없습니다.

베데스다의 환자들은 내려오는 천사를 영접하며 감사할 마음이 없었습니다. 천사를 통해 물을 동하게 해서 치유하시는 하나님께도 감사할 줄 몰랐습니다. 심지어 찾아오신 예수님에 대해서도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들의 모든 관심은 물이 동한 직후에 누구보다도 먼저 물속에 들어가 병을 고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 중 한 사람이라도 “하나님, 환자가 많은데, 천사가 내려와 물을 동하게 한 후에 한 사람만 낫게 하시면 어떻게 합니까?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당신의 능력이라면 얼마든지 다 고쳐 주실 수 있지 않습니까? 만일 하나님의 뜻이 한 사람씩만 고치셔야 한다면, 저보다 더 심한 환자가 많으니 저는 나중에 고쳐 주십시오.”라고 하는 간절한 기도를 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겁니다. 같은 환자들이니 더 서로 사랑하고 돌봐야 하지 않습니까? 남이라도 치유되면 감사해야 하지 않습니까? 바울 사도는 로마서 9:3에,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라고 동포애를 나타냈습니다.

그러나 베데스다의 군상은 천사와 물과는 비교도 안 되는 사랑의 주님을 만날 그릇도, 능력의 주님을 만날 그릇도, 은혜를 받을 그릇도 되지 못했습니다. 첨단 과학 문명을 자랑하는 현대인들 중에 이런 정신적이며 영적인 환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실하게 열심히 일하기보다는, 오로지 진급이나 승진이나 출세나 권력 쟁취를 위해 동료를 적으로 여겨 밀고, 당기고, 넘어뜨리고, 짓밟고, 제거하는 등의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들이 있습니다.

같은 노동자이면서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에 갑질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세계적인 기업인 삼성을 날려 버려야 한다는 이들이 있는데, 날려 버리면 엄청난 수의, 그 직장인들과 대리점들과 하청 업체들과 하청 업체들의 하청업체들의 직장인들과 주변 상인들과 가족들이 먹고 살 길이 막막해지는데, 도대체 누가 책임을 질 능력이나 있습니까?

전제주의 국가나 공산주의 국가의 통치자 및 기타 독재자와 그 추종자들이 사랑하고 도와야 할 같은 국민, 한겨레를 무참하게 살상한 수가 각각 수백만 명, 수천만 명이 넘습니다. 그러므로 가정이나 직장이나 국가에 예배드리며 말씀을 듣고, 기도하며 순종하는 교인들이 있는 것은 큰 복입니다.

베데스다를 방문하신 예수님은 그 환자들 중 한 사람을 만나 주셨습니다. 그 환자는 38 년간이나 앓아누워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병이 오랜 줄을 아시고, “네가 낫고자 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다른 환자들은 천사가 물을 동하면 동병상련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그를 넘어가기도 하고, 밀치기도 하는 등 외면했지만, 주 예수님은 바로 그 환자를 만나 주시고 질문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뭡니까? 그 환자는 수없이 절망을 맛보았지만, 결코 소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 환자는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잘 움직이지 못하는 그의 병은 그런 상황에서는 도저히 치유될 소망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환자는 치유될 소망을 가지고 집요하게 도전하곤 했습니다.

그 환자는 놀라운 집념과 인내의 사람이었습니다. 38년 동안이나 앓던 병에 대해 포기하거나 좌절하는 대신에, 무서운 집념으로 끈질기게 도전하고 도전했습니다. 목숨이 붙어 있는 한, 끝까지 견뎌내는 사람은 반드시 좋은 시절을 보게 됩니다. 목숨이 끊어져도 주님을 믿는 우리는 영원한 천국 시절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38년 된 환자는 예수님을 본 순간, 자기를 구원하실 분으로 믿고, “주여”라고 고백했습니다. 바로 이 점이 결정적인 것입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었겠지만, 다른 환자들도 소망과 인내심을 가지고 물이 동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환자와 달리, 예수님이 주이심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3. 맺음말

가끔 천사가 내려와 못의 물을 동하게 할 때, 먼저 들어가는 사람의 병이 낫게 되는 베데스다에, 온갖 육체와 정신과 영적인 문제가 있는 환자들이 기거했습니다. 그 베데스다를 방문하신 주 예수님이 만난 주신 한 사람은,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소망과 인내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고백한 사람이었습니다. 주 예수님은 그 환자에게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라고 하셨고, 그 순간에 그가 완전히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갔습니다. 주님께는 병이 얼마나 오래 되었는가는 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병이 얼마나 중한가도 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주님의 말씀 한 마디면 됩니다. 그 주님을 제대로 만나야 합니다. 그 주님을 제대로 만나게 해 주어야 합니다.

필자의 newrema.com의 저서들: 신약 주석(마-계 8610쪽)/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설교집 25권/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다수의 논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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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3-07 11:05

    (설교의 성경 본문: 요한복음 5:1-9)

    1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있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2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3그 안에 많은 병자 소경 절뚝발이 혈기 마른 자들이 누워 (물의 동함을 기다리니 4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동하게 하는데 동한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5거기 삼십팔 년 된 병자가 있더라 6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7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8예수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9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 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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