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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회 족보(族譜)

작성자
함창석
작성일
2017-08-05 13:42
조회
621
족보의 역사

아담, 셋, 에노스, 게난, 마할랄렐, 야렛, 에녹, 므두셀라, 라멕, 노아, 셈, 함과 야벳은 조상들이라.(대상1:1-4) 아브라함의 자손은 이삭과 이스마엘이라.(대상1:28)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마1:1-6)

족보는 동족의 세계(世系)를 기록한 역사이기 때문에 족보를 통하여 종적으로는 시조로부터 현재의 동족원까지의 세계와 관계를 알 수 있고, 횡적으로는 현재의 동족 및 상호의 혈연적 친소원근(親疎遠近)의 관계를 알 수 있다. 가계(家系)의 영속과 씨족의 유대를 존중하는 사회에 있어서는 족보가 중요하게 여겨진다. 족보는 이처럼 동족결합의 물적 표현이기 때문에 이를 통하여 동족조직의 성격을 알 수 있다.

17세기 이전까지는 사위와 딸이 아들과 같은 집에서 오랫동안 생활하였다고 생각되며 적어도 16세기까지의 족보에 외손도 무간하게 기재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선남후녀의 서열사상, 장남에게 더 많은 재산을 상속하는 사회적 환경, 제사를 장자에게만 한정·고정시키는 사회적 상황, 대동항렬의 제정 등으로 조선 후기의 동족은 집단성과 통제성을 지닌 성격을 띠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족보는 세계에서 부러워 할 정도로 잘 발달된 족보로 정평이 나있으며, 계보학의 종주국으로 꼽힌다. 외국에도 '족보학회'나, 심지어는 족보전문 도서관이 있는 곳이 있는 등 가계(家系)에 대한 관심이 많지만 우리처럼 각 가문마다 족보를 문헌으로까지 만들어 2천년 가까이 기록 해온 나라는 없다. 현재 국립중앙도서관의 계보학 자료실에는 600여종에 13,000여권의 족보가 소장되어 있다.

성씨 관계의 가장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는 족보는 원래 중국의 6조(六朝)시대에 시작되었는데 이는 왕실의 계통을 기록한 것이었으며, 개인의 족보를 갖게 된 것은 한(漢) 나라 때 관직등용을 위한 현량과(賢良科)제도를 만들어 과거 응시생의 내력과 조상의 업적 등을 기록한 것이 시초이다. 특히 중국 북송(北宋)의 문장가인 소순(蘇洵), 소식(蘇軾), 소철(蘇轍)에 의해서 편찬된 족보는 그후 모든 족보의 표본이 되었다.

우리나라의 족보는 고려왕실의 계통을 기록한 것으로 고려 의종(18대, 1146~1170)때 김관의(金寬毅)가 지은 『왕대종록(王代宗錄)』이 처음이다. 그러나『고려사』를 보면 고려 때에도 양반 귀족은 그 씨족계보를 기록하는 것을 중요시하였고, 관제(官制)로서도 종부시(宗簿寺)에서 족속보첩을 관장했다는 것으로 보아 당시의 귀족 사이에는 보계를 기록 보존하는 일이 실제로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에는 사대부 집안에서 사적으로 간행되기 시작하였으나, 1476년(조선 성종7년)의 『안동권씨 성화보(安東權氏 成化譜)』가 체계적인 족보 형태를 갖춘 최초의 족보이다. 이후 1565년(조선 명종20년)에는 『문화유씨 가정보(文化柳氏 嘉靖譜)』가 혈족 전부를 망라하여 간행되면서 이를 표본으로 하여 명문세족에서 앞을 다투어 족보를 간행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17세기 이후 여러 가문으로부터 족보가 쏟아져 나오게 되었다.

조선 초기에 간행된 족보의 대부분은 족보간행을 위해 초안을 하고 관계 자료를 충실히 보완한 뒤 간행에 착수하여 내용에 하자가 없었다. 그러나 이후의 족보들은 초안이나 관계 자료의 검토, 고증도 없이 자의적으로 간행된 것이 많았다. 그리하여 자의적인 수식이 가하여 졌음은 물론이며 조상을 극단적으로 미화하고, 선대의 벼슬을 지나치게 과장하거나 조작하고, 심지어 명문 집안의 족보를 사고팔거나 훔치는 경우도 있었다.

이뿐 만 아니라 상류층계급의 양반들이 사대주의 사상에 젖어 시조의 유래를 중국에 두어 기자(기원전 1122년 우리나라에 왔다고 함)를 따라 우리나라에 왔다고 하거나, 중국의 인물을 고증도 없이 조상 이라고 하는 식으로 족보를 꾸미기도 하였다. 그 이유는 당시 중화사상에 물이 들은 일반적인 관념에서 비롯된 것이며 족보를 간행함으로써 자신의 가문의 격을 높이려는 마음에서 야기된 것이었다.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몰두하지 말게 하려 함이라.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 이 교훈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거늘 사람들이 이에서 벗어나 헛된 말에 빠져 율법의 선생이 되려 하나 자기가 말하는 것이나 자기가 확증하는 것도 깨닫지 못하나 율법은 사람이 그것을 적법하게만 쓰면 선한 것임을 우리는 아노라.(딤전1:4-8)



전체 6

  • 2017-08-05 13:44

    종친회에 초청을 받고 족보의 역사를 보니.....
    디모데를 기억하게 된다.


  • 2017-08-07 11:17

    감리회 족보는 아니네요.;;
    https://kmc.or.kr/combination-resources/resources-of-kmc?mod=document&uid=63420&pageid=1


  • 2017-08-07 21:41

    관리자님!
    '감리회 족보'를 올려주세요. 잘 배울테니......ㅎㅎㅎ


  • 2017-08-08 09:22

    위에 올려놓았으니 참고하세요. 주소복사해서 이동하시면 됩니다.^^


  • 2017-08-08 22:33

    관리자님
    감리회 소개(紹介)를 말합니까?


  • 2017-08-09 19:42

    '감리회 소개'를 '감리회 족보'로 고치기에는 좀 그렇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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