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부 주요 일정과 기도제목

아이티 보고서

작성자
선철규
작성일
2010-10-25 13:40
조회
619
자랑스런 감리교 선교사들

  2010년 10월 15일 19시 30분 인천공항을 출발해서 같은 날 20시 10분 뉴욕 케네디 공항에 도착하여 공항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고 16일 오전 9시 케네디 공항을 출발하여 오후 12시 10분 아이티 포르토 프랭스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 도착하니 섭씨 40도나 되는 찌는 무더위에 비까지 내리고 있었다. 건물에 연결된 트랩은 아예 없었고 시멘트 바닥에 내려 버스를 타고 들어간 공항 건물은 스레트 지붕만 있고 문도 없는 창고 같은 건물이었는데 에어콘은 물론 선풍기도 하나 없이 한 시간 반 동안 짐을 기다려야 했다. 입국 비자는 비교적 쉽게 도장을 찍어 주었는데 공항을 나서자마자 김성자 선교사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곳은 일반인 출입이 통제 되어 있는 구역이었는데 한국에서 손님이 공항 문 앞에 나와서 기다린다고 사정하고 들어 왔단다. 차가 기다리는 곳까지 김성자 선교사와 걸어 나가는 길이 설명하기조차 힘든 먼지가 풀풀 나는 자동차 도로 가에 줄로 바리게이트를 쳐놓은 길이었다. 약 100미터 가깝게 걸어 나가서야 길가에 무질서하게 세워놓은 차중에 우리를 마중 나온 승합차가 있었다. 그 승합차는 서준석 선교사 차로 오동근 자원 봉사자가 운전하고 나와 주었다. 제빵 기술을 익힌 오동근 봉사자는 2010년 6월 빵공장이 설치될 때 제빵 기술을 현지인에게 가르치기 위하여 나온 자원 봉사자이다. 그는 대학생으로 휴학계를 내고 이일에 봉사하고 있었는데 그 몇 개월 동안 현지인 몇 사람에게 제빵 기술을 가르쳐 이미 현지인 3사람이 기술자가 되어 빵을 굽고 있다는 것이다.  

  공항을 출발한 우리는 먼저 천막들이 밀집해 있는 지진 피해 지역으로 갔다. 누더기같이 더덕더덕하게 기워 놓은 천막들이 수백개씩 무리를 지어 널려 있는 천막촌 언덕에 한국 감리교 텐트를 쳐 놓았다. 그곳에서 감리교 빵 공장에서 구워온 빵과 현장에 빵 기구를 설치해서 구워주는 붕어빵을 미국에서 자원봉사를 온 예수 전도단 수십명 봉사자들이 서준석 선교사의 지휘에 따라 빵을 나누어 주고 있었다. 서준석 선교사는 너무 바빠 나에게 인사 못하니 나중에 인사하자고 말하고 사역에 열심을 내고 있었다. 아프리카에서 이주해온 흑인 원주민 아이들이 수백명 줄을 서서 빵을 받아먹고 있었다. 이미 오후 3시 30분이 넘었고 나는 비행기에서 먹을 것을 주지 않아 온전하게 점심을 굶은 탓에 그 아이들 뒤에 줄을 서서 빵을 받아먹었다. 손도 씻지 못하고 먼지 묻은 손으로 빵을 먹었는데 나도 아이티 원주민과 똑같이 굶주린 원주민의 모습이었다.

  오동근 봉사자가 감리교 센터 안에 지어놓은 빵 공장에 가서 빵을 더 가져와야 한다고 하기에 나는 그 차를 타고 감리교 센터로 들어갔다. 감리교센터는 아주 큰 가정집 형의 주택이었는데 마당이 넓어서 그곳에 조립식 빵공장을 지어놓고 빵굽기 사역을 하고 있었다. 감리교센터는 이층집으로 방이 7개이고 식당이 넓으며 마당까지 침실로 사용하고 있어 50명 이상이 잠자고 먹을 수 있는 공간을 가지고 있다.  봉사자들에게 식사는 현지인을 고용해서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어 제공하고 있었다.

  미국 예수전도단에서 봉사 나온 수십명이 감리교센터에서 숙식하며 빵을 나눠주는 봉사를 하고 있었다. 아이티는 먹고 잘 곳이 마땅히 없고 또 봉사를 하고 싶어도 할 사역이 마땅치 않은데 감리교가 빵공장을 설치해 놓았기 때문에 많은 봉사자들이 기쁨으로 감리교 빵 나누기에 동참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진으로 거의 도시 전체가 파괴되었는데 어느 곳에서도 복구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무질서함과 더위만이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있었다. 아마 이 도시가 복구하는 데는 10년 이상의 세월이 걸리지 않겠나 싶었다. 건축 자재도 경제력도 기술력도 충분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오후 6시쯤에 센터로 들어온 봉사 팀들이 점심도 굶었다며 급히 저녁식사를 하고 모두 천막촌으로 다시 몰려 나갔는데 저녁 8시부터 찬양 사역을 하러 발전기와 프로젝트를 싣고 나간 것이다. 밤 11시가 넘어 들어온 봉사팀은 야식을 먹고 피곤에 지쳐 식당에, 마당에, 방에 되는대로 누워 잔다. 나는 밤새 시차로 잠을 자지 못하여 더위를 피해 마당이나 식당으로 나가고 싶어도 사람들이 누워 자는 것을 방해할 수 없어 꼼짝없이 방에 있는데 모기떼가 얼마나 극성맞은지 온통 다리를 물어 긁어대었더니 피딱지가 검붉게 여기저기 생겼다. 내가 2박 3일 머무르는 동안 전기가 정전이 되어 발전기로 전기불만 겨우 켰는데 충전기가 나가 깜깜한 곳에서 지내기도 하고 선풍기도 켜지 못하고 때로는 수돗물이 나오지 않아 씻지도 못하고 지냈다.

  둘째 날 선교사들이 빈민지역에 짓고 있다는 교회건축을 보러 가자고 하여 따라 나갔는데 그 곳 빈민지역은 총을 가진 사람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그 총으로 외국인에게 강도짓을 한다는 곳이다. 빈민가에 가서 차가 더 이상 들어가지 못하니 꽤 먼 길을 걸어서 교회건축현장으로 가자고 하기에 나는 차로 건축현장까지 갈 수 있는 곳만 돌아보자고 했다. 한국에서 떠나기 전에 우리 정부가 아이티를 여행 자제국으로 정했다고 하는 이야기도 들었고 또 우리 감리교 선교사들이 그 빈민지역에서 두 번이나 강도 만났다는 소리를 들었기에 안전을 생각한 것이다. 차로 돌아볼 수 있는 교회건축 현장만을 돌아보고 감리교센터로 들어왔는데 긴장을 한 탓인지 몹시 피곤했다. 밤늦게 감리교 선교사 서준석목사, 김성자 목사, 오동근 봉사자와 함께 오랜 시간동안 회의를 했는데 그들은 그곳 사역의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감리교본부에서 도와 줄 것 몇 가지를 제안했는데 내용은 별첨과 같다.

  그들의 제안 사항에 특별히 마음이 가는 것은 자동차 한두대가 있어야한다는 점이다. 25인승 버스에다 진료 기구를 넣어 엠블런스를 만들어 이동진료 서비스를 하는 것과 자재를 싣고 다닐 트럭 한대를 기증할 후원자를 구하는 것이 급선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은 복귀가 늦어지는 지진피해로 열악한 환경에 처한 아이티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봉사사역을 확실하게 하기 위하여 꼭 필요한 도구라는 생각이다.

  3일째 되는 날 새벽 일찍 공항으로 나가서 비행기를 타고 도미니카 공화국을 방문하여 김성자 선교사가 하고 있는 사역지 3곳을 방문했다. 교회와 성경을 공부하는 현장과 2개의 학교 등 그 규모와 사역내용이 정말 감탄이 나오고 존경스러웠다. 나는 일 욕심이 많은 김성자 선교사님의 사역지를 돌아보느라 더 지친 몸으로 뉴욕을 거쳐 한국으로 오게 되었는데 그래도 보람과 뿌듯함으로 출발한지 거의 30시간이 지나서야 귀국했다. 22일 새벽에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하루 종일 본부에서 근무하고 밤에 교회에 가서 회의에 참석하고 밤 12시에야 집에 들어올 수 있었다.

  이번 아이티 방문에서 특히 힘들었던 것 중 하나가 약간 쌀쌀한 날씨에 한국을 떠났는데 아이티는 무려 40도의 무더운 날씨로 몸이 적응을 하지 못해 심한 감기를 앓았다. 그곳에서 기침, 가래 등으로 고생했는데 한국 돌아와서도 며칠동안 고생을 했다.

  이번 아이티에서 내가 감사하게 느낀 것은 우리 감리교 선교사들이 정말 대단한 사역을 하고 있고 타 봉사자들이나 타 종교 기관에 앞서 있다는 자랑스러움이었다. 어느 다른 교파에서는 빵 기계를 아이티로 보냈다가 기계가 행방불명되었고 통관도 못했다는 것이다. 우리 감리교는 선교사들이 도미니카에 있기 때문에 도미니카로 기계를 보내서 그곳에서 통관하여 트럭을 대절하여 육로로 싣고 아이티로 간 것도 기계를 현지에 보내는데 성공하는 결과를 내었고 공장 건물을 지을 건축 자재까지 한국에서 함께 보내는 지혜로운 판단 때문에 성공적으로 현지에 빵공장을 세우고 운영할 수 있어 다른 나라의 모든 봉사자나 타 교파가 부러워하는 자랑스러운 사안이 되었다. 이 일이 그렇게 잘 되도록 계획하고 진두지휘한 일등 공신이 이수기 목사님이란 것도 잊을 수 없다.

  자랑스러운 감리교 선교사님들, 목사님들, 정말 감사합니다!

2010. 10. 23.

사회평신도국 총무 엄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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